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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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폐물적인 시간의 찌꺼기 인생이 물씬 느껴지는 이 이야기를 보고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한 가족 개개인들의 일생을 노골적이고 다소 징글징글하게 진실적으로 담은 [고령화가족]. 제목이 지니는 의미처럼 한국의 사회는 이미 고령화사회의 경계선에 있다. 청년실업자들은 늘어나고 부모는 생활고를 위해 돈을 벌어 나이 든 아들, 딸을 먹여살리면서 노후준비는커녕, 하루하루가 빠듯한 사람들이 많다. 빈익부 부익부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걱정을 전혀 안하는 사람은 오히려 빠듯한 사람들의 세계가 이상스럽고 무관심할 뿐이다.  그들은 궁핍이 열심히 살지 않은 댓가라며 비난할른지도 모른다.(자기가 아무리 세습적인 부를 누리더라도 말이다.)자본주의의 발달은 돈을 무진장 잘 버는 소수의 부자와 나머지 궁핍한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이 궁핍한 사람들이 평범하게는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진화 사회에서는 적은 노동으로도 최대한의 합리적인 생산을 이끌어낸다. 그러니 많은 사람은 필요하지 않다.

 언제나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넘쳐나고 그 중에 몇명만이 제대로된 일자리를 얻게 된다. 그도 아니면 이것 저것 다 떼이는 불공평한 권리의 일자리로 만족할밖에. [고령화가족]에서 이런 복잡하고 어지러운 진상파악을 파헤치고자 한 흔적은 없다. 다만 젊은 날의 초상을 다 겪은 40,50대 아저씨, 아줌마들의 향연이 벌어지는 곳이 이 책의 무대이긴 하다. 거기에 유일하게 싸가지 없고 개념이하인 10대 민경이가 나오는 게 옥의 티라면 옥의 T 일런지도.

 변태적이고 무식한 거구의 뚱뚱보 형, 영화를 찍었지만 말아먹어 포르노영화감독을 하고 있는 동생, 세네번의 갈아타기 결혼 경험이 있는 여동생, 그리고 그녀의 딸내미. 70세가 넘었어도 이 갈 곳 없는 네명을 24평 집안에는 심히 비좁지만 끌어안고 사는 엄마. 간단한 인물들 소개만으로도 이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예감해주는 복작복작한 책.

 어두울 수도 있을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풀어내며 마지막엔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인생을 마라톤으로 생각하면 벌써 반이상을 달려온 그들의 삶이 결코 희망을 노래하고 있지는 않다. 젊은 시절의 행복과 소망은 소망대로,  나이든 자의 고독과 무력감과 피곤함은 또 그런대로 각자의 생활 리듬에 맞추어 개성적인 삶을 제각각 살아간다. 나이 먹은 자들의 권태감만이 이 책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는다. 젊을 때는 그때의 매력대로 사는 삶의 맛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듯이, 올드 피플 때는 또 그때의 매력대로 사는 삶의 깊이와 진득한 한이 있는 것이다.

 10대때, 20대가 되면 구속에서 자유로워지고 되고 싶은 모든 것이 되리라 꿈에 부풀어 있지만, 막상 20대에 접어들면 꿈은 대폭 축소되어 평범한 누구라도 바꿔치기할 수 있는 자리에서 청춘을 죽이며 허무해한다. 그리고 30대는 재정상으로 안정도 되고 멋진 이성을 만나 가정도 이루겠지.하는 꿈이라도 꾸며 만족해한다. 하지만 또 30대가 되면 별볼일 없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40, 50대쯤이면 아이를 놓고 아이가 장성하고 나도 좀 편안하게 살면서, 가끔은 여행도 다니면서 사리라 예상하지만, 때가 오면 내 팔자가 왜 이렇게 꼬이지.라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외의 삶이 있다면, 피 터지게 고생하거나 이상한 운명의 장난이 삶의 방향을 전혀 뜻밖의 곳으로 안내한 과정과 과정의 제법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각자 자신들은 지구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할때도 있을 것이다. 숨이 붙어 있는 순간에는 내 자신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둘러보고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가족에게 혐오감과 미움, 경멸감으로 똘똘 뭉친 감정을 지니지만 막상 가족들이 하나씩 없어지고 보니 허전해한다.  추억과 기억으로 메꾸어진 과거를 통한 현재의 그의 마음속에 비어있던 공란은 어렴풋이나마 '정과 의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사랑이 메마르고 삶의 목적을 잃는 순간, 세상을 살아가는 맛을 잃는다. 허무감에 쌓여 하루하루를 방황하다 보면, 언젠가는 헤밍웨이가 그랬듯이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길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너무 깊이 삶에 휩쓸리다보면 일찍 지쳐 모든것을 자포자기하게 된다. 그렇다고 삶을 가볍게 볼수만도 없다. 그 중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 때론 좋을 때도 있고 때론 나쁠 때도 있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사랑을 가슴에 담아 두고 있는 것이 살맛 나리라.

 내 자신에게 너무 감정이입을 하다보면, 인생은 슬퍼진다. 모자란 것은 과한 것에서 메꾸고 과한 것은 모자란 것에 사랑을 베푼다면, 좀더 다수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고령화사회]는 개인과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점점 다가오는 21세기의 새로운 가정의 한 형태의 모습일 꺼라 예상되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의 가족사를 들춰내보면, 이보다 더 콩가루 집안도 있을 것이고, 이것과는 별세계의 모범적인 가정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콩가루라도 가정의 형태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리 불행하다고만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서로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삭막한 세상에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가장 인간적이지 못한 것에서 더할 나위 없이 인간적인 것을 발견했다고 하면, 바로 이 책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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