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역설 - 과소비사회의 소비심리를 분석한 미래사회 전망 보고서
질 리포베츠키 지음, 정미애 옮김 / 알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과잉 공급, 빠른 수익성 요구, 강력한 판매 촉진 장치들은 문화 상품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이렇듯 문화 상품의 짧아진 수명이 정신문화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책은 점차 서점 진열대에서 초고속으로 유통되는 제품이 되었다. 파리에 있는 550개의 영화관 가운데 3분의 1이 매주 새로운 영화를 내건다. 1956년에는 영화 제작비의 50퍼센트를 영화 상영을 시작한 지 세달이 지나야 회수했다면 오늘날 실패작은 대부분 2주 안에 결과를 알 수 있고 흥행작도 6주 또는 10주면 충분하다. .. 중략. 소비자본주의 제3단계에서 문화는 점점 투자 자본에 대한 분배의 책무가 따르는 금융 투자 상품과 다를 바 없는 상품으로 전락했다. 과잉 상품경제는 '문화의 다양성' 보호를 위한 끈질긴 노력에도 어쩔 수 없이 거의 모든 활동 분야에서 시장의 법칙에 따르게 되었으며, 미디어 자본주의는 점점 더 짧은 일회성 논리와 속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97p
 

 저자는 현대의 소비자본주의에서 단계를 나누어 각 단계의 특징을 들어 설명한다. 크게 페니아, 디오니소스, 슈퍼맨, 네메시스, 호모 펠릭스라는 단어를 언급하여 각 단어들과 특징들을 연계시킨다. 또한 참고자료에서는 수많은 책들을 인용했는데, 종류가 소설에서 인문까지 무척 다양하다. 읽다보면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인용한 부분도 찾아볼 수 있다.

 

 

 [행복의 역설]. 과연 제목이 주는 아이러니는 어떠한 것인지 이 책에서 찾아보자.

 

 

 오늘날 사람들은 행복하냐고 묻는 물음에 유럽인들은 90프로정도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막대한 숫자앞에 저자는 의문점을 제시한다. 이것이 상대적인 지수일까. 아니면 절대적인 지수일까. 옛날의 전쟁통에 비하면 행복하고, 또 끼니도 떼우지 못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나는 의식주면에서 그 이상은 되니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사람이 행복해 보이냐는 물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조금 달라질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행복하냐는 물음에, 절반이상이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할듯 싶다. 이 문제는 한국의 출산율이 낮아진 것과도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지수가 높다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수도 제법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한국사회의 복지나 서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건이 안되고 자신 하나의 앞가림마저 걱정이 앞선다.

 

 

 게다가 아이를 갖지 않은 부부들은 시간여유면에선 아이를 가진 부부들보다 자유롭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의 자유를 각자의 여가나 다른 취미생활로 눈을 돌릴 수 있게 된다. 개인의 삶을 누리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여기서 다시 행복의 역설을 깨닫게 된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안하는 것을 선택할수도 있으니까.   

 

 

 [행복의 역설]에는 현대의 사회를 과소비 사회라고 말한다. 필요이상으로 너무 많이 낭비하고 낭비를 부축이는 광고와 발전과 진보를 위해서 소비를 부축이는 국가. 국가와 광고업계와 소비자. 삼박자가 소비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추다보니 자원은 정해져있는데 과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여기저기서 구멍이 나더니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한정된 자원. 이것은 언젠가는 끝을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못하는 자원. 누구는 과소비와 과풍족함을 누리고 누구는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는 사회가 되면서 빈부격차가 심해지게 되었다. 가지지 못한 자는 분노와 증오와 질투에 휩싸여 범죄를 일으키고 가진 자는 이 자들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더더욱 보안을 막강하게 설치한다.

 

 

 한 사회에 불평등이 만연했을 때는 가장 심한 불평등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 우리는 어떤 것이든 그 자체에 욕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욕망을 느낀다. 제2법칙에서는 하나의 대상을 향해 욕망을 집중시키는데 이때 상대는 모델이자 경쟁자, 걸림돌이 된다. 제3법칙에서는 모방하는 사람과 모방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가까워지면 모방의 욕망은 날카로워지고 적대감도 커진다. 사람들 간에 차이가 크지 않을수록 서로 더 모방하고 더 강한 질투를 느끼고 부러움의 시선을 보낸다. - 366p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단지 재화와 서비스를 부족하게 소비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상품이 보여주는 행복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소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216p
 


 33p와 54p에는 이런 과소비자들의 심리가 잘 드러나있다. 


 대형상점은 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구매욕을 불러일으키고 구매 행위를 하나의 즐거움으로 느끼게 하면서 소비를 삶의 양식과 현대적 행복의 상징으로 생각하도록 조장했다. 대형상점들이 구매 행위가 물질에 집착한다는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쇼핑, '아이쇼핑'은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방식이자 중류층의 생활양식이 되었다 - 33p

 
 타인으로부터 소외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바로 브랜드에 대한 강박증을 더욱 강화시킨다. -54p

 

 

 

 현재의 과소비사회의 광고업체는 어린 연령층을 위주로 마케팅을 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을 가진 부모들은 부를 누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에서 남들처럼 먹고 살고 원하는 것을 구매하기 위하여 모두 직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바빠지면서 육아문제가다른 사람 손을 빌리게 되었고 전문 육아업체가 생기면서 아이들은 부모와 얼굴 보기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부모들은 제 아이들이 결핍되지 않게 하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교육에 자신들이 벌어들인 수입의 20%이상을 투자한다.  50%이상 투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집도 있다. 이렇게 교육열은 높아지지만 부모와 자식간에 감정이 메말라가고 낯설어지는 것에 대해 부모는 죄책감을 지니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사주고 싶기 때문에 구매선택권을 자식에게 부여한다. 여기서 아이는 '어린왕' 이 되고 과소비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양심을 팔아먹은 일부의 광고업체는 해로운 것을 구분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구매를 유발할때도 있다. 가령, 담배 같은 것은 비교적 젊거나 어린층에게 더 많이 광고를 노출시킨다고 한다. 그들에게 아이들은 잠재적 구매자가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1970년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의 특징을 이와 같이 정의했다고 한다. "소비사회에는 '반성'과 자신에 대한 관점이 부재한다..., 오로지 진열장만 있어, 개인은 더 이상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수많은 상품/기호를 바라보는 일에 흠뻑 빠져 있을 뿐이다." -151p


 

 

 저자는 이에 대한 신소비자의 특징으로 대변한다. 그들은 과학과 미디어를 통해 얻은 다량의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신중히 따지고 검토해서 현명하게 판단한 뒤 구매한다. 즉 '지식'에 따라 구매 행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행복의 역설]의 특징은 항상 전제를 꺼내고 여러 사람들의 주장과 의견을 내세운 뒤 저자가 긍정과 반박을 함께 하고 있다. 즉 소비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살펴보면서 긍정적인 면도 살펴보고 이 시대에서 피할 수 없는 흐름의 맥을 잡고 있다. 소비사회를 청산하기에는 미래의 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다. 그렇다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체제로 가거나 역사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는 없다. 이미 소비사회가 진행되었는데 역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진열장은 상품들로 넘쳐나고 광고마다 환환 미소가 가득하며 태양이 쏟아지는 해변은 멋진 몸매를 자랑하는 선남선녀들로 붐비고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까지 쾌락주의가 판친다. .. 모든 것이 관능미를 자랑하며 팔려나가고 지상낙원을 떠올리게 하는 배경음악에 맞춰 최고급 제품들이 선보인다. [이러한 낙원에서 행복은 신이고 소비는 신전이며 육체는 성경이다.] -  169p 
 


 저자는 이런 소비 사회의 행복에서 주는 역설을 따지는데, 이 시대의 행복은 소비되기도 하고 돈으로 가능하기도 하다. 

 

 

 쓸데없는 욕구를 창출하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구매욕을 자극하고 행복을 상품과 동일시한다. 그래서 인간을 조작하고 규격화하고 바보로 만들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개인의 불만족을 양산하는 악랄한 덫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광고는 행복한 광경을 연출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궁핍을 경험하게 만든다. 광고의 지배 아래 페니아는 그야말로 극단으로 내몰린다. - 190-192p


 ㅡ> 이 페이지를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직 문제제기와 주장과 해설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앞으로의 방법을 모색하고 생각해본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이 책은 제 가치를 톡톡히 한다.
 


 

 '구원'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소비와는 다른 열정과 취향을 발전시키는 장치들의 발명이나 개선에 있다. 다시 말해 소비 전염병을 악마처럼 취급하기보다는 사람들을 좀 더 다양한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이 상품을 통해서만 행복을 느끼지 않도록 이끌려면 일, 창작, 공적 활동처럼 완전히 다른 관심 분야나 욕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앞으로는 사람들이 소비의 일시적인 천국 밖에서 정체성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유형의 교육과 일을 개발해야 한다. - 417p

 

 

 

 구체적인 것을 생각해보는 것은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과제가 될것이다. 또 국가의 몫이기도 하지 않을까. 국민을 책임지는 동시에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것은 개인으로는 벅차기 때문이다.

 

 

 물질적 쾌락과 실존적 절망감, 쾌락주의와 반디오니소스 사회, 직장 생활과 사생활의 완벽에 대한 집착과 감각의 기쁨, 사치와 낭비의 극적인 비교, 파괴적인 소비와 책임지는 소비.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시대에서 심리적이고 세밀하게 통찰해나가는 [행복의 역설]은 미래를 준비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반성과 깨달음, 동시에 많은 도움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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