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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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최소한 세 번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먼저 '세계'라는 이야기에 대해, 그리고 '나'라는 이야기에 대해, 결국에는 '우리'라는 이야기에 대해.(314p)

 이 책은 각각 개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타인인 누군가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책 속의 각자 다른 캐릭터들이 겪는 그들의 삶의 입장에서 엮어낸 이 책은 인간에게는 나이면서, 타인이면서, 서로이면서, 모두가 되는 그 묶음적인 삶을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또, 소통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부터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로써 언어, 문화, 타인이라는 장벽들이 영혼의 문으로 서로 맞닿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총 9편의 단편들속의 캐릭터들은 각자 다른 삶속을 살아가며 그 속에서 그들 모두는 각 삶의 주인공이다. 한 개인은 한 사회속에서 소속되어 있고 그 사회는 다시 세계속에 소속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세계속 한 개인이 되는 것이다. 그 개인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없으며 자신이 발을 내딛고 있는 그 땅위의 모든 소속으로부터 넓게는 세계속 소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말 안해도 알겠지만, UFO를 타고 지구밖으로 탈출한다 하더라도 우주속 어딘가의 소속에 위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존재의 숙명이다. 

 그 존재의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들의 삶은 알게 모르게 개인의 삶이 사회와 세계의 사건들 때문에 변화되기도 한다. 명상가들은 모든 존재는 각자 일으키는 에너지의 파동으로 인해 서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기도 한다. 게다가 과학계에서도 이 에너지파동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래서 나비효과라는 말도 생겨났을 것이다.

 여자친구와의 갑작스런 헤어짐과 그 헤어짐이 9.11테러와 무관하지 않았고, 택시 운전 중 우연히 보게 되는 화재현장과 더불어 천문학적인 확률을 우습듯이 뚫고 몇번을 같은 택시에서 만난 승객과 운전사.. 이런 경우들은 우연인 것 같지만 사실 모두 에너지의 파동에 의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고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일들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나는 '내겐 휴가가 필요해'와 '달로 간 코미디언'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내겐 휴가가 필요해'는 도서관에서 만나게 된 인연으로 전직 형사와 사서와의 인간적인 교류는 소통의 해소를, '달로 간 코미디언'은 아버지의 부재와 딸과의 관계와 PD와 맹인인 점자도서관관장과의 만남에선 표면적으론 소통이 불가능하지만 타인의 삶을 듣고 느끼는 것으로써도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당신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마도 전염된 각자의 불꽃들이 외롭게 타오르던 한 시기.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중략.. 우리의 얼굴이 서로 닮아간다는 걸 믿는다는, 역시 미신과도 같은 이야기다.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이 미신 같은 이야기는 나를 매혹시킨다. (318p 작가의 말중)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그의 단편들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것 같았다. 또 그의 마음속에 있는 휴머니즘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어느정도는 이해되는 듯하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315p) 한나 아렌트가 한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또 무한하게 필요로 한다. 아마도 각자가 맡은 삶의 무게에서 가끔은 잠시동안 짐을 내려놓고 허리를 쭉 뻗은 뒤 상쾌한 공기를 마실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작가는 글로써 이 슬픔을 견뎌냈을 것이다. 그 글속에는 소통에 대해 저자가 내린 결론을 이야기로써 승화시킨다.

 듣는 사람이 없으면 말하는 사람도 없어. 세계는 침묵이야. 암흑이고.(2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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