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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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오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장 그르니에-


 글을 쓸것이다. 처음 다짐했던건 초등학생때였다. 그땐 그저 시시껄껄한 로맨스소설이나 끄적이는 정도였지만 그것도 내겐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다짐을 접어야 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나는 그 다짐을 무참히 짓밟은 이모를 원망하면서 다짐도 쓰레기통으로 쳐박히고 말았다. 이모는 내 글이 일기라고 알았던 모양인지 갈가리 찢어버리고 나를 추궁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그것이 소설이네, 내 글이네 하고 말할수 없었다. 내 글을 남에게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터라 그런 식으로 알게 된 이모앞에선 더더욱 말할 수 없었다. 

  내 글이 쓰여진 종이는 그동안의 노고에 수고함의 기억도 없이 잔인하게 찢겨져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그날 나라고 외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잃어버렸다.  <글쓰기, 내가 이토록 글쓰기에 마음을 매고 있는 것은, 이것으로만이,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닌지..본문중> 의 내용은 나의 과거의 추억과 겹쳐진다.

 나는 마음의 문에 열쇠를 채우고 나만의 비밀속으로 점점 묻혀 들어갔다. 누구도 믿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중학교때 내 국어선생님중 한분은 내가 가장 반항적이었을 때 정말 소중한 말을 내게 해주신 분이다. 아마 영원히 그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넌 언어적 감각이 있다고. 문학쪽으로 길을 열어보면 어떨까..'라고.  덧붙여 아이들이 다 있는 앞에서 내가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해주셔서 의기양양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셨다. 그분의 의도가 어쨌던 간에 나는 그 칭찬이 그 시기엔 기분이 좋았지만 그 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 머리속엔 철없게도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그 말만이 아로 새겨졌었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황송하고 철이 없는 내게 과분한 칭찬이라는 것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칭찬이 인색한 환경에서 살아왔던 나는 그 칭찬이 힘들때마다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결정적 버팀목였다는 것을 근래들어 알게 된다. 고등학생때 국어선생님으로부터 또 한번 '문학으로의 길'로 가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들었을 때도 내 마음은 준비되지 않았다. 나는 상처받은 마음을 가둬놓고 열쇠를 채운 고독하고 어리석은 존재로 남았다. 그녀의 소설이 남다르지 않음은 나의 과거와 이어지는 기억 때문이었다. 항상 내 머리속에 맴돌고 있었던 그 말..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소질도 솜씨도 없다. 그냥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앞으로 무얼 할 수 있을지, 무얼 하고 싶은지간에 어떤 길로 가든 글은 쓰고 싶다. 그래서 작품속 그녀가 말했던 글을 쓰고 싶었고,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더욱 내 가슴에 와닿았다. 나는 대학교를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마치곤 초등학생때부터 아버지가 가라던 공장을 떠돌았다. 의무교육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보다 더 어릴때 공장을 다니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집에서 교육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의식주부터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먹고 사는 것에 지친 엄마가 그때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확실했던건 우리집은 결코 화목하지도 않았고 평범한 집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곳에서 나는 우울과 고독과 외로움과 상처를 처음 접하고 제일 먼저 배웠다. 집을 벗어나면서 처음으로 행복이 내 손안에 잡힐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내 가슴에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삶이 무겁다는 것을 일찍 깨우쳤던 나는 '나이라는 건 숫자의 차례대로 먹는 것만은 아니다. 어느날 열여섯에서 서른둘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본문의 말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몇달전에 나는 엄마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하고. '네가 글을 잘 쓰냐?' 이미 예상은 했었지만 그래도 엄마의 입으로 직접 듣게 되는 의심스러움을 한가득 담은 그 말은 내 가슴을 후벼팠다. 한번도 내 글을 보지 않은 엄마의 말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내가 글을 잘쓰는가에 대한 의문이 마음속을 파고 들어갔다.

 그러곤 내 자신에 대한 회의와 앞날의 일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래도 저래도 나는 글을 쓰는 일을 하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되어졌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외골수라서 한쪽으로만 이해한 것일수도 있다고 생각해본다. 엄마는 너무 고달픈 인생을 살아온 연약한 여인이었고 글이라는 것은 엄마에게 너무 멀면서도 낯설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것이 도대체 무얼할 수 있단 말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본문의 <'나는 편지 말고 다른 글을 쓸거야.' '무슨 글 말이니?' 열여섯의 나. 아직 누구에게도 한번도 말해본적이 없는 비밀을 외사촌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시나 소설 같은 것 말야.' 내 말을 묵살해버릴까봐서 열심히 더 말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내가 원해온 일은 그런 글을 쓰는 일이었고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런 사람들은 다르게 태어나는 것 같던데?' 나는 외사촌이 그러니 너는 작가가 될 수 없을거야 라고 할까봐 조바심치며 좀더 말한다. '다르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는 거야.'> 이 부분을 보며 내 생각과 닮은 작가의 그말이 마음속에 스며든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 그것이 또한 내게, 작가가 말했던 <마음속에 순결한 무엇을 두지 않으면 다시 내 발 바닥에 쇠스랑을 내리꽂고 말거라고 어떻게 말해줘야 하는지. 아무튼이라고 나는 말한다. 본문중,,> 에서의 그 순결한 무엇이었다.


 문학이란 무엇일까? 삶에 가치를 담아놓는 그릇이 문학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그릇은 실제 삶보다는 치열하지 못하나 아름다움과 초월을 닮아있다. 삶이 고달픈 사람에게는 인생이 너무 지루하고 무의미함으로 가득차 생에 대해 거부가 생길지도 모른다. 문학은 외롭고 고독하고 상처가 있었던 사람의 마음에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 문학이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선 위로와 평안함을 가져다주고 작가 신경숙씨가 말했던 것처럼 꿈을 꿀 수 있게 한다. 꿈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의식을 깨우치는 것 또한 문학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상의 그 무언가가 있는 이 책을 읽다보면 아.. 이 책은 '엄마를 부탁해'와 이어져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책속에는 시대적 환경까지 포함되어 있다.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소설. 성장소설이기도 한 이 책 속엔 너무 깊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너무 얇게도 다루지 않은 자본주의의 변화속에서의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이 들어있다. 천민자본주의의 추악한 뒷모습, 그 속에서의 인권유린, 이쪽도 저쪽도 될수 없는 어중간한 자리에서의 죄책감과 수치심.. , 그속에서 상처받은 이의 죽음까지 엮어내어 부글부글 끓는 감정을 냉정한 문체로 옮겨놓았다.

  세상은 변화되기 바로 직전에 엄청난 희생과 비이성적인 일들이 존재한다. 나는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세대지만 현재를 겪고 있는 지금 정의에 맞써 싸운 희생으로 인해 어느 정도는 그들의 일구어낸 결과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간다.

 <떠나온 길이 폭포라도 다시 지느러미를 찢기며 그 폭포를 거슬러 돌아오는 연어. 본문중> 처럼 그녀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여전히 아물어지지 않은 상처를 들추어낼 때 나 또한 그녀의 글과 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상처와 기억들이 떠오른다.

 마치 내 가슴에서 나오는 말같은 낯설지 않은 글들을 접할 때 나는 용기를 얻는다. 내가 꿈꾸던 삶을 살아가는 이를 볼때 내 가슴은 두근두근 뛴다. 왠지 내 꿈도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같다. 아직 힘겨운 길을 가는 과정이지만 곧 나도 그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런 느낌이 든다.

 소설속의 주인공이 모든 마음의 짐과 육체적 고통을 내려놓았던 외딴방. 그 방 또한 낯설지가 않다. 내 속에 있는 외딴방. 나는 그곳에서 소설의 그녀처럼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날의 추억을 간직해놓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그 방에서 꿈을 가졌던 것처럼 나 또한 그 속에서 꿈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으면 결단코 이르는 그 길을 계속 나아갈 것이다. 오늘 하루는 밤하늘의 별을 찾아보며 내 꿈을 아로 새겨본다.
 
 나는 당신이 주신 목소리로 말했고, 당신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르쳐주시고 또 그들이 내게 전해주신 말로 글을 썼습니다. 나는 지금 장난꾸러기들의 조롱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는 무거운 짐을 진 당나귀처럼 길을 가고 있습니다. - 프린시스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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