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무종교론자지만 무신론자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경험이나 사건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 무언가 나도 모르는 존재의 힘이 존재할 꺼라 느끼면서도 그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그 신을 말하는 것인지는 믿기가 힘들다.
 

 평소때는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위기의 순간이 올때 제발 도와달라며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나를 보면 이기적으로 원할때만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릴때는 교회도 다녔고 성당도 다녔었다.

 

 그러나 그 곳 어디에서도 신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내가 무척이나 신을 찾았을 때도 또한 어떤 것도 응답받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점점 신에게 멀어지면서 컸다. 자라고보니 종교에 대한 피맺힌 역사를 알게 되었고 길거리에서 마치 홍보하듯이 "하느님을 믿으라. 아니면 지옥간다"고 광신교처럼 빨간 십자가 간판을 건 몇몇 과한 행동의 사람들과 또는 "도를 아십니까? 덕이 많은 얼굴인데.."라고 물어보며 어디 미지의 세계라도 끌고 갈 것처럼 손을 끄는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고 보니 더욱더 종교에 대한 좋지 않는 관념이 생겼다.

 

 게다가 주위의 아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전부 이상한 길로 빠지기 일쑤였다. 친가쪽 사람중에는 교회에 미쳤다는 사람도 있었고 내 친구 고모도 전도사라는 사람인데도 낭비벽에 가사를 탕진하고 자기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 있었다. 웃기는 일화가 있다.

 

 친구의 이야기인데, 별로 친하진 않았었던데다가 그동안 연락도 없었던 고등학교 1학년때 동창이 7년만에 보자고 했단다. 그래서 오랜만이고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여 만났는데 그렇게 오랜만에 보았음에도 전혀 거리낌없이 내 친구를 데리고 산을 탔다고 한다.

 

 그냥 특이한 만남이다 생각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려 했지만 몇가지 물을 세도 없이 어떤 건물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그곳에서 길게 늘어뜨린 원피스 형식의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오더란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 내 친구는 결국 그 건물에 들어가 흰옷을 입은 신도들과 함께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계속 절을 했단다..
 
 지금도 그 종교가 무슨 종교인지 잘 모르는 내 친구는 황당하고 어이 없었지만 약간 겁이 나 시키는대로 했다는 데 듣는 내 입장에서도 그 황당함이 느껴지면서 웃기기도 했다. 일단 무사히 나왔으니 웃을 여유는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신을 믿는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 근처에는 존재느낌을 전혀 느낄수가 없었다.

 

 여기서 나는 종교와 신은 먼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영 신은 없다고 확신할만큼 아는 것이 많이 없는 관계라 뭐라 주장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내 옆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었다.

 

 신념을 항상 가지고 있다가 절망을 느꼈을 때 구원의 손길을 받지 못하면 그 신념을 버티고 갈 힘이 줄어들고 결국 다른 신념으로 대체되고 만다. 그러지 않으면 무너질테니까..

 

 또, 이기적이지 않았던 사람이 그렇게 되는데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한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저자가 말한 '거대한 슬픔'을 겪어보았던 나였기에 이 책의 주인공 맥처럼 신이 존재한다고 전제한다면 묻고 싶은 질문이 많았다.

 

 몇가지 질문은 벌써 맥이 물어주었고 그에 대한 답도 들었다. 그러나 그 답이 내겐 썩 시원하진 않다. 맥에게도 그랬었던지 그는 만족하지 않았었지만 신은 완벽한 대답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도저히 맥을 설득하기 힘들었던 신은 그에게 직접 심판의 자리에 앉아보길 권한다. 그 자리에서 맥은 무척이나 당혹스럽고 난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정의가 먼저냐, 선이 먼저냐.. 정의를 행하기 위해 수단이 악이 된다면 선이 있을 자리는 없어지고, 선을 행하기 위해 수단이 악이 되는 것은 말이 되는 것일까?...


 악행을 저지른 죄인에 대해선 도대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똑같이 복수를 자행하면... 결국,

 

 '아들을 잘못 키워서 무시무시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린 그 아버지는 어떻게 하죠? ,. 우리가 어디까지 가야 할까요? 이 망가짐의 유산은 아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아담은 어떻게 하죠? 하나님은 어떤가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시작했어요. 하나님도 비난받아야 하나요?'(본문중)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전 생애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기꺼이 그 일을 하는 이는 신이 아닐까.

 

 질문과 혼돈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사건은 또 다른 사건에 사건을 만들어낸다. 영화 '보이A'를 보면 가해자의 입장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물론 이 영화의 가해자는 무척이나 안타깝고 불쌍한 인물이다. 과정을 지켜보다보면 충분히 동정심과 이해를 끌어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실제 모든 가해자가 영화속 인물들 같지 않다. 너무나도 분노를 일으킬만한 악행을 자행하고도 뻔뻔한 이를 보면서 그는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누가 진리와 지식의 심판관이 되건 간에 그는 신들의 웃음소리에 파괴된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 말이 답을 대신해줄 듯하다. 이 책속에서의 하나님은 특정한 모습에 대한 편견을 깨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관계를 맺는 하나님의 모습과 명사가 아닌 동사로써 존재하는 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소설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몇몇 소재는 저자가 만들어낸 것이지만 그 속의 알맹이는 진실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루소의 말은 의미심장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거짓에는 무한한 조합이 있지만 진실의 존재 방식은 하나뿐이다' - 장 자크 루소


 책을 덮고 나서도 내가 신의 존재를 확실히 알게 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세상에는 신처럼 자비로운 사람들도 많이 있다. 신의 존재를 결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죽기전까지 빈민을 도와온 테레사여사도 그랬고 가장 불쌍한 자들 옆에 존재한다는 신처럼 그런 사람들을 돌봤던 모든 사람들을 보면 신을 느낄수가 있다.

 

 

 다만 말마따나 철저히 믿는다면서도 마음은 신과 함께 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이기심과 편견, 거짓, 악 때문에 순수한 뜻에 때가 타는 것이 아닐까..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나오는 거지처럼 그 거지를 자비의 시선으로 느끼지 않고 겉으로만 보는 그들에게 과연 신이 함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는가 말이다.  

 

 

 '사람들은 종교적 신념이 있을 때 더욱더 철저하게 기쁨에 넘쳐 악을 행한다' - 블레즈 파스칼

 

 

 이 책의 지면에 찍힌 활자로서는 아무 힘도 없지만, 이 책을 읽을 때 내면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것들이 일어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주는 마음의 소리이고 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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