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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일전에 엄마가 아팠다. 병원에선 감기라고 했었으나 한 달이 되도록 기침과 콧물이 떨어지질 않았다. 조금씩 불안해져서 검진을 받으러 가자고 했었다. 그러나 엄마는 별거 아닌 감기일 뿐이라며 괜찮다고 끝까지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나는 답답했지만 하는 수 없이 파뿌리를 넣고 무와 생강을 썰어 넣어 푸욱 끓였다. 그리고 꿀을 타서 드렸지만 맛이 이상해 못 잡수시겠단다. 이것도 저것도 싫다고 말하는 엄마의 입에 나는 억지로 과일과 비타민C를 넣었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답답하고 어떤 면에선 엄마의 그런 모습 때문에 속이 상했다. 다행히 한 달이 지나자 조금씩 엄마의 감기가 사그러들기 시작했고 나는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걱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도 검진을 받아야 할 텐데.. 엄마는 그 비싼 걸 왜. 하신다. 돈이 얼만데.. 그 소리에 나는 또 한숨을 푸욱 내쉰다. 그깟 돈 때문에 더 큰 병을 사서 몸으로도 고생하고 돈도 더 깨질 수도 있다. 

 이 말이 쉬이 입 바깥으로 내뱉어지지 않는다. 엄마는 요새 우울증을 동반한 갱년기도 함께 겪고 있기 때문에 별 뜻 없는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으시고 역정을 내시곤 한다. 그래서 나는 어떤 말을 하기에도 조심스럽다. 대신 엄마와 나의 대화는 주로 누가 어떻더라, 누가 저랬다, 하는 바깥적인 말들을 주고받았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내 엄마가 겹쳐졌다. 내 엄마, 다행히 나는 철이 들면서부터 엄마의 공적을 인정하게 되었고 나는 도저히 그녀처럼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엄마는 이 집의 가장이기도 했고 살림을 도맡은 주부이기도 했었다. 그런 그녀를 나도 <엄마를 부탁해>의 가족들처럼 잊고 지냈던 때가 있었다. 

 나는 남들처럼 풍족하게 살지 못해 엄마를 원망했었고, 엄마는 엄마로 태어났으며 엄마를 이해하려고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성인이 되어서 취직으로 인해 엄마를 떠난 기간 동안 나는 엄마의 존재를 실감했다. 그동안 엄마로써만 자리를 지키던 분에게 인간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해성이 생겨났다. 그래서 나는 주로 엄마의 옛날이야기를 묻고 듣는 것을 즐긴다. 엄마는 시집 오기 전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이 어린 소녀 못지않게 초롱초롱 빛난다. 그러고 보면 엄마의 눈은 시집을 오고 난 후 빛을 잃은 것 같다. 
 

<엄마를 부탁해>에서 ‘가족이란 밥을 다 먹은 밥상을 치우지 않고 앞에 둔 채로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관계다. 어질러진 일상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엄마 앞에서 네가 엄마에게 손님이 되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p26) 이 부분을 보고서 내가 타지에 있다가 내려올 때면 엄마가 보여줬던 모습과 닮아 있어서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네가 태어난 곳이지만 엄마의 집이 있는 마을은 이제 네게 낯선 곳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흔적이래야 도랑의 팽나무들 몇 그루 남아 있는 게 전부이다.' (p28)인 부분에서는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타지로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느꼈던 내 심경과 많이 닮아있었다. 비록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느꼈을찍할만한 느낌은 알 수 있었다. 
 

 또, 이번에 내 엄마가 아팠을 때 보여주었던 모습은, ‘너는 이모의 죽음 앞에서도 울 수 없을 만큼 엄마가 극심한 두통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중략.. 일생을 노동에 찌든 엄마의 손등에 퍼진 검버섯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는 더 이상 엄마를 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p34) 이 부분과 겹쳐져서 이 책이 내게 주는 의미는 더 컸다. 더 많이 엄마를 이해해보려 했고 더 많이 엄마와 함께 하고 싶었다. 
  

 모든 부분이 내 엄마를 생각해보게 했고 많은 부분이 내 엄마와 닮아있었다.
‘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으로. 엄마가 너의 외삼촌을 두고 오빠! 부르며 달려가는 그 순간의 엄마를 보기 전까지는. 엄마도 네가 오빠들에게 갖는 감정을 마음속에 지니고 사는 인간이란 깨달음은 곧 엄마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겠구나로 전환되었다. 

 간혹 너는 실제로는 1936년에 태어났으나 호적에는 1938년으로 기록된 엄마의 유년을, 소녀시절을, 처녀시절을, 신혼이었을 때를 너를 낳았을 때를 생각해보곤 했다.’ (p37) 이 글을 보고는 내 엄마 또한 주민등록상과 실제 태어난 년도가 다름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더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엄마의 생애를 이야기하고 스크랩해보는 것도 이번에 내가 해본 결심이었다. 
 

 57p에 ‘쓰러진 엄마를 진찰받게 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자고 설득하지만 끝끝내 엄마는 나중에. 이러다 괜찮다며 거절한다.’ 또한 어떤가. 이번에 아팠던 내 엄마의 모습과 똑같다. 
 

 67p에 보면 막내딸이 자신이 먹을 조기를 두 궤짝을 주문해서 먹기 편하게 네댓 마리씩 비닐에 싸서 넣을 요량으로 개수대 앞에서 조기를 씻다가 조기를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에 빠지면서 엄마를 떠올린다. “문득 엄마생각을 했어, 엄만 그 재래식 부엌에서 평생 대식구의 밥을 짓는 동안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했어. 우리가 또 오죽이나 식탐이 많았어?... 중략.. 엄만 그걸 어떻게 매일매일 감당해냈을까? 엄마가 부엌을 좋아했을 것 같지가 않아.” 엄마는 부엌이었고 부엌은 엄마였음을, 과연 부엌을 좋아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도 없었던 딸.. 

 가끔 추석이나 명절 때 보면 다른 친지들은 모두 앉아서 음식만 먹고 TV만 보구 앉았고 엄마만 주방을 책임지며 나와 내 언니는 하루 종일 설거지를 했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 싫어 추석이나 명절 때 핑계로 일부러 여행을 가거나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너무너무 성질이 났지만 엄마는 내가 아니면 누가 하랴. 하며 대수롭지 않게 계속 그 힘든 일을 다 하셨다. 

 그래서 나는 대놓고 친지들에게 성질을 냈었다. 엄마는 그래도 어른들한테 그러면 못 쓴다 하셨지만, 내 눈에 그 친지들은 어른스럽지도 않았고 밉살스러울 뿐이었다. 나는 내가 일을 하기 싫어 일을 도맡아 하는 엄마를 외면했었다. 
 

 누군가에게 들었었는데 한 어미가 자신은 생선 대가리가 제일 맛있다며 대가리만 쭉쭉 빨아 드시고 살을 모두 자식들에게 발라주었었는데, 그 자식들이 나중에 커서도 자신의 엄마는 고기를 안 좋아하고 생선대가리를 좋아하신다며 생선이 식당에 올려 지면 엄마에게 생선 대가리만 주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엄마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드시기는 하시지만 난 그거 별로 좋지 않다 하시며 항상 가족들에게 건네시며 많이 먹으라 하셨었다.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시지 않으시는 걸까?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자식에게 귀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실까? 
 

 <엄마를 부탁해>에서 자식과 남편의 입장에서 당연히 잘 안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모습은 잃은 후에 더욱 선명해진다. 하나하나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존재는 낯설어지며 그동안 엄마의 존재를 잊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엄마를 부탁해>속의 가족들이 엄마를 잃은 것을 필연적이었다. 그녀를 잃기 전에 가족들의 그녀를 향한 무관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건을 진행시킨다. 이는 그녀가 뇌졸중이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한 그녀의 자식들과 그녀가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정신을 놓거나 자기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알았는데도 아내를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그녀의 남편을 통해서 확인된다. 
 

 그들은 엄마의 빈자리가, 아내의 빈자리가 큰 것을 느끼면서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야할 것처럼 했던 자신들의 행동을 뉘우친다. 이 책에서의 엄마는 대지를 닮았다. 펄벅의 작품 ‘대지’에 나오는 여인을 닮기도 한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빈손으로 모든 것을 일구어낸다. 개인의 모든 꿈과 희망을 접어두고 한 남자의 아내로만, 아이들의 엄마로만 때론 바깥으로 나돌기도 했었던 두 책의 남편들 모두를 어느 때나 돌아와도 한없이 넓은 가슴으로 포용하는 그녀는 대지의 무한한 능력과 포용력을 닮았다. 

 대지가 주는 풍요로움에 한껏 취해 고마움을 잊어버린 가족들은 대지를 떠났을 때 그곳에서 주는 안락함을 깨닫는다. 결국 다시 그곳의 평온을 얻기 위해 돌아오지만 풍요로움은 사람을 나태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작품 대지와 엄마를 부탁해 에서의 남편들의 모습은 인간의 모순적인 속성을 말해 주기 때문에 닮아 있는 것이다. 반대로, 대지와 닮은 아내의 모습조차도 엄마라는 인간 속에 내재된 뿌리 깊은 속성 때문에 두 여인의 모습이 닮아있다. 엄마는 그냥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속성의 존재이다. 

  미개척지에 우뚝 자리를 잡아 처음부터 몸소 깨달아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언제든지 가족을 받아들이는 무한한 자비로운 신이다. 책속의 엄마와 내 엄마가 너무 닮아 있어 내게 남달리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이 책이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켰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잊어버린 엄마를 떠올리고 자신이 엄마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며 한 인간으로써 엄마를 이해했을 때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이며 무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속에서 희망과 안식을 찾게 된다. 또한 대지를 닮지 않았고 엄마의 인간성을 가지지 못한 몹쓸 엄마들의 존재도 있음을 알기에 대지를 닮은 엄마를 가진 내가 얼마나 행운아였는가에 감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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