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 - 값싼 위로, 위악의 독설은 가라!
김별아 지음 / 문학의문학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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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청맹과니(눈은 떠있어도 실제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키는 우리말이다.)'라고 자주 표현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이래저래 생각을 해보았다. 산문집이지만 지루하거나 고루하지 않고 일상의 일들중 일부분을 하나하나 주제로 생각해보는 나름 알찬 시간이었다.
 

 같은 주제로 내가 생각해보았던 문제를 다른 사람의 시각으론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구나. 또는 나와 같은 생각이야., 또는 나와는 조금 틀리군.. 하는 식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과 시각을 읽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책을 읽으면서 좋은 점들을 꼽으라면 많기도 하겠지만 산문집에서 특히 좋은 점은 나와 다른 시각, 또는 공감을 느끼는 부분을 만날 수 있음으로써, 내 안에만 갇혀 있는 아집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좁은 식견, 좁은 생각, 좁은 행동 등 모두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자연을 경이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인간은 세계속의 한 점이라는 것을 뉘우치는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사상을 경험해본다는 것은 내 자신이 세계속의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렇게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리며, 또 지킬 것은 지키는 것. 그것이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되는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128p
"나는 '고독과 게으름은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에 의지하여 내가 선택한 다른 삶과 문화를 견뎌 볼 작정이었다. 그리하여 예정된 날짜에 돌아갈 수 있다면, 서른아홉의 막바지를 또다시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국에서 맞을 터였다."
 
 이 부분은 저자가 벤쿠버로 3년동안 떠나는 내용에 대해 밝힌 글이다. '고독과 게으름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말이 내 심장에 꽂혀 잊혀지질 않았다. 약간 뜨끔하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해야 할지 아무렇지도 않아 해야 할지 모를 느낌을 설명하기가 힘들다. 누군가가 한 말은 누군가들에게는 정말 여러가지 다른 견해로 해석되기도 하는 듯하다. 어쩌면 그녀처럼 나도 어디론가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을 항상 지니고 있어서였을까.

 

142p에 나오는 인터넷 댓글에 대한 이야기도 특히 흥미로웠다. 


 "사형 집행을 참관한 작가 디킨스가 기술한 평범한 민인들의 '사악함과 경박함'보다는, 자신이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채 당당하게 옳은 일을 했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나쁜 짓이기 때문에,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일은 추한 짓이기 때문에, 배신은 돌로 쳐야 할 짓이기에, 잘난 척하거나 있는 척하거나 아는 척하는 꼴은 봐줄 수가 없기에.. 나는 정의의 편이고 그들은 응징되어 마땅하다!"

 

 인터넷강국인 한국에서 인터넷 댓글들의 일부분들은 사람간의 최소한의 예의는 없고 헐뜯고 욕설들로 난무하다. 뿐만 아니라 그 댓글로 인해 여러가지 사건들도 근래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대책은 주제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정치인들은 이 일을 두고 정치적 목적으로나 쓸려고 하고 있다.

 

 디킨스가 말한 사람들에 관해서는 오스카 와일드가 체포되면서 쓴 옥중일기에도 잘 나타나져 있다. 일반인들의 잔인함과 그들의 편협함.

 

 또 한국인의 식민사관에 대해서 나오는 부분도 볼만했다. 이 부분에 관해선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라는 책을 봐도 그 답답한 한국의 현실을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자랑스런 한국인이면서도 이런 난제를 만나면 한없이 답답하고 부끄러워지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사회의 전반적인 여성, 인권, 환경, 문화문제를 다루면서도 사랑과 가족, 사사한 일상의 이야기도 함께 다루는 이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사랑에 관한 짧은 문장이  눈에 띈다.

 

 '무릇 모든 사랑이 그러하다. 깨어지고 부서져 사라지는 순간 그 정체가 가장 선명해진다.'
 
 비단, 사랑에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모든 환상들, 꿈들, 집착했던 순간들 이런 것들에서 깨고 나면 다시 힘겨운 현실과 맞딱드려야 한다.  그리고 해야할 일을 해야할 뿐이다. 가슴을 치기도 하고 시간이 치료해주리라 생각하면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라지만, 사람이기에 꼭 외로워야만 한다. 외로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달뜬 뺨을 부비며 무언가를 그리워할 줄 알고,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무언가를 절실히 기다릴 줄 알게 된다. 아직 외로워할 수 있기에, 나는 불행하지 않다."

 

 라고 책의 끝을 맺는 지은이를 보면서 내 외로움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맞다. 외로워할 줄 알아야 그리워할 줄 알고, 무언가를 절실히 기다릴 줄 알게 된다. 그런게 없다면 이 냉담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오늘도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행복을 담아놓고 또 나를 그리워할 누군가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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