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 우리를 분열시키는 이슈에 대해 말하는 법
아리안 샤비시 지음, 이세진 옮김 / 교양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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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안 샤비시는 쿠르드계 영국인으로, 케임브리지에서 자연 과학을 전공했습니다. 또한 천체 물리학으로 동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데요. 이후 그녀는 옥스포드 대학으로 옮겨, 물리학의 철학으로 두번째 석사 학위를 마치고,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제러미 버터필드와 휴 프라이스의 지도하에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녀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레바논 베이루트에 소재한 아메리칸 대학에서 철학 조교수로 일했고, 2015년부터 2019년까지는 잉글랜드 브라이튼에 소재한 공립 연구 대학인 서식스 의과 대학의 윤리학 강사를 거쳐, 이후 수석 강사에 이릅니다. 샤비시는 기본 윤리와 페미니스트 철학, 과학 철학, 사회적 인식론 등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특히, 샤비시는 도덕 철학과 페미니즘이 접목된 생명 윤리, 의료 윤리 및 이와 관련된 대학원생 지도 과정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Arguing For A Better World"로 지난 202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4년 5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저자의 이 책은 워키즘, 즉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정치적 의식과 관련된 사회 운동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사회철학적인 분석과 오늘날 많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구조적 불의'에 대해, 철학자로서의 비판적 의견까지 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철학은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본질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기도 한데요. 여기에 현재 정치적인 영역에서 극단주의 우파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타협할 수 없는 가치(여전히 헌법적 규정에서)를 앞에 내세워,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상황에 더욱 확산된 인종주의와 그런 맥락으로 점층되어 나타난 불의에 마찬가지로 철학자로서의 고민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저는 저자가 말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와 그런 양상, 그리고 그 속에서 나날이 고통 받고 있는 소수자들에 대한 연민과 얼토당토 없이 소수자들이 너무나 많은 권리를 사회에서 누리고 있다는 식으로 오도하는 그런 허위에 대한 문제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스스로의 이성으로 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심각한 편견과 인종주의, 그리고 전통적 가부장제에 근거한 남녀 갈등 문제를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아마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조장한 잘못된 사회적 관습을 그저 오래된 전통과 그것을 개선하는데 있어, 만연한 대립이 우려스럽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이익과 권리를 다수에 기대어, 획책하는 극단주의자들의 모습은 저자가 말하는 '구조적 불의'라는 문구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앞선 내용이 순차적으로 논의되는 글의 2장에서, "차별과 배제를 선동하는 은밀한 말"이라는 주제 의식은 근래 어느 지식인이나 학자가 쉽게 다루지 못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읽었던 수전 니먼의 글도 정치적인 측면에서 엿볼 수 있는 당면한 현실과 다소 한발 물러서 있는 듯 보이는 분석으로, 요즘 학계의 성향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특히 2장에서 인용된, "넌 날 알잖아. 난 인종차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중국인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와 같은 소위 저자가 규정하는 무화과잎은 "마치 나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야. 그렇지만 내가 보는 다른 인종은 의구심이 들어"와 같은 아주 교묘하면서 지독한 인식이라고 느껴졌는데요. 찰스 다윈 이후로 규명된 인종에 대한 분류의 역사가 백인을 그 기준점으로 놓고, 흑인과 유색 인종으로 규정한 학문적 매개와 같은 사회적 관습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지배적인 인식이 되어 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과거의 계몽주의자들이 불의인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노예 제도 존치를 위해, 인간이라면 마땅히 존중 받아야 될 인간의 존엄성을 서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들에게 만큼은 인정하지 않은 것은 매우 유명한 일례이기도 한데요. 일전에 우연히 어떤 유튜브 방송에서 접한, 이 찰스 다윈의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과학적 학문'의 한 맥락으로 명시된 것은 시간상 거의 백년이나 흐른 시점이었다는 분석은 그만큼 '정당하지 못한 사회적 관습'의 깊은 뿌리를 가히 짐작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장에서. 2017년의 영국의 한 조사는 응답자의 74퍼센트가 자신이 다른 인종에 대해 '아무런 편견도 없다'고 답한 결과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영국 시민들 다수는 자신이 인종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것을 거의 자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것은 한편으로, 뒤이어 논증되는 정치적 도그휘슬 dog whistle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전에 양치기가 개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사용했다는 이 도그휘슬은, 현재에 이르러서는 어떤 정치적 인식에서, 특정 계층의 주의를 불러일으키는 교묘한 장치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열심히 일하는 가정 hardworking families"과 같이 이는 보수 유권자의 마음을 얻고 싶어하는 보수 정치인이 이런 표현을 자주 써먹는다고 분석됩니다. (저자는 이 부분과 관련하여, 세간의 터무니 없는 편견처럼 평범한 백인 가정이 대체로 열심히 일하는 반면, 흑인 가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식의 이야기는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특히 지난 시절 로널드 레이건의 심각한 날조이기도 했던, '복지의 여왕'이 미국 내의 인종차별적인 편견 때문에 이 복지 여왕의 인종이 으레 흑인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사람들, 심지어 이것을 확신하는 지식인들과 정치평론가들이 이를 더욱 조장해 왔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저자인 아리안 샤비시가 비판적으로 인식한 도그휘슬과 관련해, 누구보다 레오 스트라우스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소위 네오콘의 대부로 인식되었던 그의 독창적인 학문적 결과물들이, 앞선 신보수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교묘하게 차용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난날 미국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최초의 흑인 연방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미국 사회 일각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더 이상 없다고 주장했던 '백인 남성들'이 있었습니다. 흑인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상징적 사건을 통해, 미국엔 인종 차별이 종식되었다는 식의 안일한 논리를 로빈 디앤젤로 역시, 자신의 논저를 통해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백인 주류 사회가 흑인에 대한 인종 문제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최근에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으로 극명하게 드러나기도 했는데요. "왜 흑인의 목숨만 중요하냐?"식의 논리가 BLM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본 일부 백인들에 의해 주장 되기에 이릅니다. 즉, 이는 권력 바깥에 놓여 있는 소수 흑인들에 대한 백인 인종주의자들과 극단주의자들의 터무니 없는 인식으로 사회를 사실상 분열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에 저자는 4장에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와 같은 도덕적 진술은 '이것이 유일하게 중요한 문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는, 특히 이러한 맥락에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식으로 정리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개념적으로 충분한 저자의 해석은 논증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는데요. 물론 사회에 여러 목소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왜곡된 현실 조건과 여기에 주요 기반에 되는 인종 문제에 대한 사실적 근거 없이, 그저 흑인들이 문제라는 편견과 더 나아가 오히려 백인들이 더 차별을 받고 있다는 식의 과장된 논리는 다수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점은 명백해 보이는데요. 더욱이 4장의 논증 가운데서, "정치인들은 종종 노동자 계급의 열악함을 빈곤보다는 백인성 whiteness이나 남성성과 연관 시키려는 의도에서 '백인 노동자 계급 사람들' 혹은 '백인 노동자 계급 남성들'을 들먹인다고 저자는 비판하고 있었는데요. 신자유주의 시대의 삶의 불안정성은 백인 노동자들이나 흑인 노동자들에게 마찬가지로 심각한 문제임에도 전자의 백인들에게 '백인성과 같은 인종적 동질성'만 부여하는 같은 엘리트들의 의도는 어처구니가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마치, "너희는 다른 유색인종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우리와 같은 백인들이다."와 같은 발언들 말입니다. 이렇게 백인은 남들보다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생각과 같은 노동자 계급이라도 백인 노동자 계급은 그 백인성이 우월하다는 식의 인식은 극단주의 정치의 득세와 맞물려, 사회를 분열로 이끌고 있기도 합니다. 이것은 최신의 정치적 트렌드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과 최근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시작, 분명한 여성 차별적 인식과 인종주의적 시각, 그리고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에 대한 분명한 혐오 의식을 대놓고 표출한 이런 극단적 포퓰리스트가 미국 정치의 아이콘이 된 것은 그저 계급과 정당 정치의 별다른 양태만은 아닐 겁니다. 

7장에서 소개된 바와 같이, 트럼프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아주 직접적인 거부감을 보인 인물입니다. 그는 "이 나라의 커다란 문제가 정치적 올바름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이미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소신 발언을 하고 있는 지식인들은 물론, 최근에 일반인들까지 그것의 오용과 경직성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에 샤비시는 그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부정적 여파를 재생산하는 보수 우파의 목소리와 많은 담론에서, 우리는 표현의 자유와 비방 slur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는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은연중에 사회적 화자에게 차별과 배제를 조장하는 언어의 매커니즘 자체를 자제시키는 기능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장의 논증 가운데서, 가장 공감했던 점은 인종 차별을 포함하는 이런 비방 표현들의 위력이 충분히 모욕적이기 때문에 이것이 더 이상 환기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분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후반부에 정치적 올바름이 단순한 미덕 과시 virtue signaling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온-오프라인에서 발생되는 '무차별적인 모욕 표현'을 정치적 올바름이 도덕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이는 혐오 금지법이 아니라, 혐오 표현 자체를 무시와 비꼬기와 같은 표현의 자유로 제어하자는 네이딘 스트로슨의 제안과는 사뭇 다른 대안이기도 했는데요. 제 개인적인 의견 역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와 왜곡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좀 더 첨언하자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7장의 논증 가운데,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와 멸시, 아직도 팽배한 여성에 대한 도구적 시각 등은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라는 측면에서 단순한 언어 활동 이상의 왜곡된 이미지를 재생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논의된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표면적으로 정치가 자유와 개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이런 이상을 겉으로 내세우며 차별과 억압을 강조하는 행태는 그리 장려 될 만한 일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혐오에 가까운 인종 차별적 의식, 여성을 사실상 도구로 생각하는 인식, 요즘 자주 회자되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증오가 우리 정치의 건전성이라는 요구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는 거의 명백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더욱이 민주주의 국가의 모범이라고 볼 수 있는 미국에서 이를 떠받치는 시민 계층의 심각한 분열과 건전한 토론의 파행으로 이어지는 이런 근본적 문제들에 있어, 여전히 실효적 대안이 시민 사회에 제시되지 않는다면 이 상황은 그저 '정치의 붕괴'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끝으로 그동안 신자유주의가 유인한 세계는 무엇보다 세계의 최빈층에게 극심한 피해를 끼쳤고, 이러한 자본주의적 논리가 사회의 주류가 됨으로써, 누구나 사회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불평등 구조와 이것을 떠받치는 구조적 불의의 사례는 전세계에 차고 넘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하류 계층에 속한 백인 노동자 계층이 그저 자신이 백인이라는 인종적 정체성을 제외한다면, 현실에서 삶의 온존은 백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누구나 성취할 수 없는 사활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실효성에 기반한 민주주의와 좀 더 환경을 개선 시킬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지만 아리안 샤비시의 논증대로 극단적 정치인의 손짓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시민'이 아니라 흡사 춤추는 인형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미국 사회가 대를 이어온 인종주의와 여전히 조장된 남녀 문제, 특히 백인 남성에 대한 우월적인 권리와 같은 사회적 차별이 과연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는 명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공화당 정치인들이 여성의 낙태 권리를 무산시키는 과정에서 획득한 쏠쏠한 정치적 이익과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보수 정치는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방향성과 함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 이해에서 저자가 글의 대미에 인용한 테오도어 W. 아도르노의 "잘못된 삶을 올바르게 살 수 없다"는 공언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인종주의와 타인에 대한 비방을 서슴치 않고 이런 맥락의 주장들이 옹호받는 사회 자체는 은연중에 사회적 억압이 조장되는 모습으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언급처럼, 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가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보편적 도덕적 기준의 한 요소로 발휘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 한번 고심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극단주의자들이 이 정치적 올바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그 이면의 본질을 시민들이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인간은 본디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믿는 (불확실해 보이기도 한) 알량한 이익에 흔들리기 마련이고, 이러한 매커니즘을 아주 본능적으로 조장하는 정치인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현실에선 분명히 가능한 일입니다.    

- 8장의 '캔슬 컬처'와 관련된 논증에서 저자는 이 캔슬 컬처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좌파 권위주의의 한 형태로 제시된다고 평가하고 있었는데요. 이것은 단순한 거부감의 표현 정도가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극단주의적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이를 명백히 드러내는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은 동성애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 장애인 차별, 계급주의 등과 마찬가지로 억압 oppression의 한 형태다.

따라서 억압은 그것에 영향받는 사람들이 대체로 피할 수 없다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원할한 노동 공급을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노동력을 충전해주는 그림자 노동이 필요하다.

균형만 잘 맞는다면, 손바닥만 한 권력과 자유라도 조금 더 누리는 사람들이 자기가 당하는 착취를 더 잘 감내하고 그만큼이라도 조금 더 누리게 해주는 체제를 옹호한다.

여성들이 거리에서 성적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길을 돌아가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만 봐도 구조적 억압의 영향은 명백하다.

사회적 정체성들이 상호작용하여 억압과 특권의 혼합물을 생산하는 방식을 지칭하는 용어가 바로 ‘교차성‘이다.

현재 미국과 영국에는 인종 간 평등은 이미 이루어졌고 대부분의 사람이 인종차별적 믿음을 버린 지 오래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많은 이가 말하고 있듯이......","모두가 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내가 듣기로는......","사람들이 나에게 말해줬는데......" 같은 표현을 써서 자신의 인종차별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남성의 성폭력이 그토록 쉽게 일어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회가 여성을 애초에 신뢰하지 않고 남성은 이의 제기나 책임 추궁을 좀체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발언을 들은 사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흑인에 대해서, 흑인의 생명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정도에 대해서 무엇을 아는가?‘ ‘왜 하필이면 흑인의 생명을 콕 집어 말하는가?‘ 나아가‘내가 지금 모든 생명을 소중히 생각한다고 피력한다면 어떻게 여겨질까?‘

보수주의자들이 자기네가 알던 세상의 아주 작은 변화에도 흥분하고 발작하는 사례들을 보건대, 사회 정의를 지향하는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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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1-24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쟁’이란 ‘말다툼’이기에, “말로 싸워야 한다”란, 으레 “저쪽이 하는 말은 싸워서 물리치고 없애야 한다”로 기울고 맙니다. ‘민주’는 ‘대화 + 타협’이라지만, 막상 ‘논쟁’은 ‘대화’도 ‘타협’도 아닌 ‘승리·박멸’로 기웁니다. 그래서 ‘정치적 올바름’은 “이 목소리만 올바르니까, 넌 아뭇소리도 내지 마”처럼 오히려 억누르는 담벼락으로 치닫게 마련입니다. ‘민주·대화·타협’은 이쪽이 이기거나 저쪽이 지는 틀이 아닌, 이쪽과 저쪽을 ‘잇는(소통)’ 길을 나타내려는 뜻일 테지요. 이쪽과 저쪽이 말다툼(논쟁)으로 서로 으르렁대면서 옳거니 그르거니 싸우기만 한다면, 모든 사람은 불타다가 잿더미로 죽고 맙니다. 우리는 “논쟁이 필요한 세상”이 아닌, “이야기로 마음을 주고받는 부드러운 길”로 거듭나야 비로소 사람다우리라 느낍니다. “이때에는 꼭 이렇게 해야 맞아!” 하는 ‘정치적 올바름’은 오히려 ‘올가미·올무’처럼 차갑게 가두는 목치기(단두대)처럼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느낍니다.

‘다양성’이란 ‘다름’을 나타내는데, 다른 줄 받아들이는 길이란, “나랑 목소리가 달라도 받아들이면서, 싸움질이 아닌 이야기로 마음을 나누는 길”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참다름(참답게 다름·정치적 올바름)’으로 가려면, 왼쪽은 오른쪽과 이야기하며 받아들이고, 오른쪽은 왼쪽과 이야기하며 받아들이는, 그러니까 ‘받아들임(타협)’을 이루려고 ‘이야기(대화)’를 하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쌈박질(전쟁·증오·혐오)을 모두 멈추고서 사이좋게(민주) 어깨동무(평등·평화)로 모이고 만나서 끝없이 어울려야 이룰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모둠 주먹(폭력)은 싸움(전쟁·군대)에서 비롯합니다. 가정폭력과 학교폭력뿐 아니라 성폭력도 바로 ‘싸움·전쟁·군대’에서 처음 생겼습니다. “남자 성폭력”이 아닌 “전쟁·군대 성폭력”입니다. 싸움(전쟁·군대)에 물들지 않은 사람은 암수(성별) 가운데 수컷이어도 주먹을 안 휘두릅니다. 모든 바보주먹은 언제나 싸움이 불씨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보주먹꾼인 사내를 가르치고 타이르고 나무라더라도 싸움(전쟁·군대)부터 도려내지 않고 뽑아내지 않고 없애지 않는다면, 다 부질없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논쟁·토론’은 모두 ‘박멸·섬멸·승리로 가려는 말싸움’인 바탕인 터라, 논쟁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바보주먹을 부추기고 만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모두 걷어내고서 ‘마음을 담은 말’을 주고받는 자리인 ‘이야기’로 거듭나면서, 왼오른이 어깨동무를 하고, 왼오른발로 나란히 걷고, 왼오른날개로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웃고 노래하는 길을 생각해서 열 때이지 싶습니다.

베터라이프 2025-01-24 10:05   좋아요 0 | URL
남겨주신 댓글은 좀 더 숙고하며 읽었습니다.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완전 다른 양상으로 치달은 미국 정치와 그런 변형된 극단주의 정치가 사회를 분열로 내몰고 있다는 진단과 그런 생각에 저 역시 동의하는데요.

저는 미국 정치에 좌파 혹은 진보 정치가 존재하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이며, 그저 인종적 이익과 자본주의가 왜곡한 차별에 따른 계급주의적 논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자들과 반대의 소위 리버럴 간에 정치적 대립만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대치 상황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극단주의자들의 대응이 어떤 식으로 표현의 자유와 맞물려 있는지 이를 먼저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샤비시의 이 논저도 바로 이러한 측면의 논증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현시점에서 사회적 암과 같은 증오의 정치는 어떻게 보면 나날이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고 봐도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많은 학자들과 지식인들이 건전한 공론장에 대한 함의를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지만 선동 정치가 이미 정치를 좌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누군가의 무슨 설레발 같은 진단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죠.

저 역시 누구나 마음을 열고 개방적인 시선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외쳤으면 좋겠지만 그런 이상이 현실을 개선시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유의 정치라든지, 자유주의적 관용에 대한 그간의 이해가 이처럼 아무 쓸모가 없는 시대가 된 것은 저 뿐만 아니라 모두의 마음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고 있다는 경고는 바로 이러한 본질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혁명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윌리엄 도일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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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도일은 1942년 3월,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고향인 요크셔 지역에서 학교를 다녔고 그로부터 몇년 뒤인, 1964년에 옥스포드 대학에서 역사학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후 박사 학위 역시, 같은 대학에서 "프랑스 혁명 직전 보르도 의회 의원들과 구체제"에 관련된 논문으로 통과 되기에 이릅니다. 그의 이 박사 논문은 1975년에 "보르도 의회와 구체제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요. 특히 도일은 영국 내에서 프랑스 혁명사와 관련된 권위자로, 이외에도 앙시앵 레짐, 얀센주의, 혁명시대의 귀족정과 같은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에 저자는 요크 대학, 노팅엄 대학, 브리스톨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또한 연구의 일환으로 옥스포드, 파리, 보르도, 사우스캐롤라이나 등지에서 방문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브리스톨 대학의 역사학 명예 교수이며, 동시에 영국 아카데미 회원 및 프랑스 역사 연구 협회 (SSFH)의 이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The French Revolution : A Very Short Introduction, Second edition"으로 제목에 설명된 바와 같이 2판으로, 이 책의 초판은 1980년에 출간 되었습니다. 이에 국내 번역은 2024년 12월에 이뤄졌습니다.

저에게 프랑스 혁명은 특히, 슈테판 츠바이크과 에드먼드 버크의 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읽은 혁명과 관련된 글은 바로 츠바이크의 책이기도 했는데요. 당시 접했던 판본은 대략 1988년쯤에 출간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선 이 글의 저자인 도일은 이 프랑스 혁명을 통해, '보수주의'라 불릴만한 흐름이 탄생했으며, 마찬가지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자유주의 역시, 인간 세상에 본격적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혁명 이전의 다소 느슨한 동맹 관계라고 볼 수 있었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후에 등장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 의해 서서히 서로를 향한 전쟁에 나서게 되고, 이 혁명 전쟁에 대한 결말 또한 영국과 오스트리아가 주도한 불안정한 '구체제의 복귀'로 사실상 마무리됩니다. 저는 무엇보다 프랑스 혁명이 미국의 독립과 어느 시대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헌법을 인류 역사에 등장 시킨 소위 마중물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친애왕 루이 15세가 사실상 암군으로서 소기의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저 전형적인 귀족들과 개혁을 기대할 수 없는 현체제의 모순을 넘겨 받은 루이 16세 역시, 우유부단하고 무능력한 왕이었습니다. 이미 시스템의 불안정성과 내부 모순을 갖고 있던 당시 프랑스 국정을 유능한 콜베르와 같은 재상을 적극적으로 등용해, 국정을 이끌지 못하고 더욱 나락으로 치달은 이 암군은 후에 등장하는 러시아 제국 니콜라이 2세의 몰락과 비견되는 역사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에서 저자는 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2장에서 이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었는데요. 대표적으로는 프랑스 왕국의 만연된 재정 불균형과 루이 16세의 재위 시기인 1778년부터 미국 독립 전쟁에 프랑스가 물심양면 지원에 나섬으로써 초래된 막대한 재정 지출도 체제의 불안정을 가속화했다고 논증 됩니다. 또한, 이 시기에 등장한 법복 귀족들인, "프랑스 전역을 아우르는 파리 고등 법원의 1250명 구성원 모두가 매관매직의 결과로 그 직위를 차지했다"는 저자의 비판적 분석은 프랑스의 정치와 사법 및 재정의 붕괴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 드러내는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더욱이 당시 프랑스 귀족들은 이러한 왕국의 체제적 모순들을 직면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알량한 특권 추구와 베르사유에 대해선 일절 소극적인 태도로 행동했던 점도 부정할 수 없을 텐데요. 이에 고귀한 국왕은 스위스 제네바의 은행가였던 자크 네케르를 '궁정의 고문'과 같은 위치로 영입하여, 오로지 왕실에 필요한 과세에만 집중했지만 이는 프랑스 정국 안정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왕정의 권위와 정치력이 함께 붕괴하여 위기로 치닫던 상황에서 우박을 몰고온 거대한 폭풍우가 프랑스 전역을 휩쓸며, 익어가던 곡식이 거의 초토화 되기에 이릅니다. 이는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한 결과이기도 했는데요. 그런 연유로 1789년의 추수 이전 몇 달 동안은 비참한 경제적 곤경이 빈곤 계층 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에게도 가해질 것이라는 예측은 그대로 실현 되었습니다. 결국 1789년 7월 14일, 악명 높은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을 시작으로 프랑스 전역은 그야말로 분노에 휩싸인 민중들의 손으로 거대한 혁명의 불길에 뒤덮이게 됩니다. 민심은 겉잡을 수 없이 요동쳤고, 정국의 극심한 악화는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등의 '영국식 해법'과 유사하게 진행됩니다. 바로 국민의회의 기적적인 탄생이 그러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루이 15세는 그동안 진행된 혁명의 업적 대부분을 비난하는 편지를 베르사유에 놓고 도주하다 동쪽 국경지역인 바렌에서 체포되기에 이릅니다. 결국의 이 파국은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로 대표되는 자코뱅에 의해, 왕을 단두대로 보내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극성 분자라고 볼 수 있는 상퀼로트들과 극명한 혁명의 분위기였던 그 해, 가을과 겨울 동안 지방의 특별 재판소에서 거의 1만 4000명이 사형 선고를 받아, 일부는 총살되거나 익사당했지만 대다수는 왕을 처단했던 도구인 기요틴 아래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들 상퀼로트들의 극단적인 행동과 저변의 인명 경시는 혁명을 아귀 다툼으로 만든 주요 원인이 되었는데요. 이런 정치적 파국에서 아주 불분명한 이유로 다수의 사람들을 소위 반혁명의 잔당으로 몰아 이들은 피의 잔치를 벌이게 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과거 존 듀이가 프랑스 혁명에 가졌던 그 우려의 본질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에 4장에서 저자에 의해 인용된 루소는 "인간 사회가 절망적으로 타락했고 타락시키지만 단지 전면적인 변화만이 그것을 회복시켜줄 수 있다"고 가르친 연유에는 어쩌면 그가 인간의 불확실성을 진정으로 이해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결국 이것의 당면한 여파는 당시 국민공회와 정치 권력을 향유했던 자코뱅들의 업보로 돌아오게 됩니다. "절대로 부패할 수 없는 자"였던 로베스피에르의 말로 역시, 마찬가지로 비참했던 역사의 한 장면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툴롱에서 시작된 화려한 군사 경력의 시작과 함께 나폴레옹을 통한, 프랑스의 공화주의는 혁명의 변질로 이어지게 됩니다. 군사 작전과 군 통솔에 있어 누구보다 탁월한 능력을 보인 나폴레옹은 장 란, 조아킴 뮈라, 니콜라 다부와 같은 군 엘리트들과 함께 프랑스를 유럽의 군사 패자로 이끌게 되는데요. 실질적 공화주의의 실험대가 되었던 프랑스의 영토 확장은 아무래도 이러한 현실에 이질감을 느끼고 있던 대다수 왕정 국가들에게, 큰 위기감을 안겨주었던 것은 명백해 보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혁명의 수출'과 같은 과민 반응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밀라노를 비롯, 이탈리아 북부에서 오스트리아 군을 격파하고 로마 교황청을 손에 넣은 뒤, 프로이센 마저 제압하여 프랑스 북부 저지대를 석권하게 됩니다. 다만,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의 정치적 패착과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감행한 러시아 원정의 참혹한 대실패는 그의 몰락 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1830년까지 정치적 혼란의 수렁으로 내몰게 됩니다. 다만 프랑스 군이 이르는 지역에 현지 귀족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공화주의 형태의 제한적인 시민 자치를 도입한 것은 실로 사회 변혁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렇지만 북 이탈리아를 비롯한 프랑스 군의 점령지를 전제 정치의 한 형태로 황제 자신의 측근들로 채운 점은 그것이 표면적이라 할 지라도, 혁명의 정신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이는 상호 모순이 체제 안에 점철되어 나타나는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군사적 비상 사태로 이어지게 됩니다.   

앞선 역사적 행로와 약간 구별되는 혁명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에 대해 저자인 도일은 몇가지 예시를 5장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일단 제한적이긴 하지만 전제적 민주주의를 이끈 것과 무엇보다 유럽에 자유주의 관념을 현실적으로 추동한 점을 들 수 있겠는데요. 이때 잉태된 자유주의의 본질은, "투표의 자유, 사상과 신념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자의적인 법이나 세금의 부과 혹은 구금으로부터의 자유"로 크게 대표됩니다. 물론 이 시기의 자유주의 역시, '재산의 평등'은 믿지 않았는데요. 뒤에 미국의 헌법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시기의 법의 지배란, "재산 소유자들의 절대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나폴레옹 체제의 본질이 '대의제가 없는 체제'임을 감안해 본다면, 자유주의가 말하는 대의란 어쩌면 '특정 계층의 이익'이라는 측면과 맞물려, 체제의 안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여기에 한술 더 떠, 알렉시스 토크빌은 "프랑스 혁명을 민주주의와 평등의 출현이지만 자유의 출현은 아니다" 라고 역설적으로 논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혁명 기간의 유혈 사태와 민중들이 무분별한 폭력 행위를 지향하게 되는 사태 자체가 사실상 프랑스 정치를 혼란으로 이끌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혁명의 진보는 군주제의 붕괴로 인한, 공화주의 헌법을 작성하기 위해 남성 보통 선거를 채택하고 국민공회를 소집한 일련의 정치적 과정 등은 아마 인류 역사를 통틀어 새로운 정치적 모멘텀이 되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진정한 법의 지배에 대한 아이디어가 바로 혁명의 시기에서 점차 규명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루이 16세로 대표되는 베르사유와 귀족 정치가 상당한 사회적 모순에 놓여 있었고, 대다수 민중들의 삶을 불안정성과 경제적 빈곤으로 내몰았다는 점에서 위기 의식 조차 없는 정치에 대해선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끝으로 현재까지 이 프랑스 혁명에 대한 후세의 해석은 세대를 거치면서 다소 수정주의적 입장으로 선회하게 되었습니다. 이 혁명이 내포한 인권과 자유주의, 그리고 법의 지배와 같은 현대 민주주의의 기반인 가치들이 무엇보다 피와 폭력으로부터 잉태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의 모순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더욱이 혁명 이전, 1700년대에 불었던 종교 개혁과 그것으로 인한 신,구교의 갈등 그리고 그런 와중에 프랑스 가톨릭계가 이권화하여 민중의 삶과 더욱 멀어진 것은 귀족들의 착취 만큼이나 심각한 사회적 폐해로 가증되었습니다. 사실상 이 앙시앙 레짐 자체가 권력 바깥에 있는 민중의 삶을 정치와 경제적인 측면에서 안정적으로 향유할 수 없게 만들었고 켜켜이 쌓이는 체제의 모순들이 아주 기본적인 '인간의 삶' 자체를 앞선 측면에서 더이상 지속하기 어렵게 만든 점이,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루이 16세가 과거 루이 14세의 유산을 그 절대 왕정과 같은 '하나님이 인정한 국왕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어쩌면 당연하게 여겼을 수도 있고 궁정 정치에서 파리와 지방을 좀 더 개혁하기 위한 적절한 인사는 물론, 왕실 재정을 낭비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은 점은, 1세기 전의 영국과는 사뭇 다른 현실적 파탄의 전제라고도 읽힙니다. 그럼에도 후에 등장한 프랑스의 제3 공화국은 물론, 전유럽의 점진적인 공화주의로의 이행은 민족주의의 확산 만큼이나, 그것의 본질적 가치와 정치적 체제의 변화를 이끌었던 세계사적 요인이었던 점은 분명합니다.   






프랑스혁명을 대하는 영어권 대부분의 태도를 위한 기본적인 골격은 혁명의 "최악의 난폭한 행동"이 나타나기 몇 년 전인 1790년에 이미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에 의해 만들어졌다.

왜냐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전면적인 파괴를 통해 그들이 자유라고 말한 것을 확립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기요틴에 대한 특유한 공포조차도 홀로코스트의 가스실이나 수백만에 달하는 스탈린 공포정치의 피해자들이나 강제수용소의 조직적인 잔혹성이나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의 집단적인 위협이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 비하면 보잘것없어졌다.

페인은 버크가 허세를 부리며 자랑했던 영국의 헌법이 연륜이 오래된 인간 지혜의 산물이기는 커녕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뿐이라고 선언했다.

사법적 위계질서의 정상에서는 13개의 고등법원이 있었는데, 그것은 최고의 상소 법원으로서 중요한 모든 왕령의 법안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곳의 인가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지역에서의 귀족들은 도로의 강제 노역은 고사하고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직접세인 타이유taille 납부하기를 계속 회피했다.

왕과 대신들은 프랑스가 국왕의 가장 탁월하고 교육받은 신민들의 효과적인 동의와 협력을 통해서 통치되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더 받아들여야 했다.

왕실 회계를 검토하기 위한 상설 청문위원회를 두자는 명사회의 제안을 루이 16세가 거절한 뒤 명사회는 좌초했다.

국민의회를 구성하고 있었던 재산가들은 봉건적 권리를 소유했든 아니든 지방이 무정부상태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경각심을 가졌다.

그것은 혁명의 패배나 존속을 국가 자체의 패배나 존속과 동일시하게 만들었으며 그리하여 1789년 이래로 달성된 그 어떤 것에 대한 비판자라도 반역자라고 낙인찍힐 가능성이 컸다.

새로운 프랑스는 공격으로부터 국토를 보호하려 하기 위해서만 싸울 뿐 왕조들 사이의 사적인 맹약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는 않는다고 국민의회는 선언했던 것이다.

1815년의 반발이 거든 명백한 승리 이후 100년 이내에 국민 주권은 유럽과 남북아메리카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다.

사실상 현대 정치의 보수주의의 우익은 혁명에 대립되는 모든 것인 만큼이나 프랑스혁명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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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25
케네스 미노그 지음, 공진성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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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북섬인 팔머스턴 노스에서 태어난 케네스 미노그는 어려서부터 호주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남학생을 위한 중등학교인 시드니 보이스 고등학교와 호주 시드니에 소재한 공립 연구 대학인 시드니 대학 (USYD) 에서 수학했습니다. 1950년에 예술 학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당시 시드니 대학에서 언론의 자유, 세속주의, 반공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잘 알려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존 앤더슨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됩니다. 이후 영국으로의 이주를 결심한 미노그는 우크라이나 오데사와 이집트의 포트사이드를 거치며 런던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잠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한 후에 미노그는 런던 교육청에서 18개월 동안 대체 교사로 일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게 됩니다. 다만, 영국 정경대 (LSE) 에서 석사 논문을 거절 당하자 그는 좌절하지 않고 같은 대학의 경제학부 야간 과정에 등록하게 됩니다. 졸업 후, 그는 웨스트 컨트리에 있는 연구 대학인 엑서터 대학에서 1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고, 드디어 1956년 마이클 오크숏의 초대로 런던 정경대에서 조교수로 시작해, 런던 정경대에서의 이력을 지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후, 명백하게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 입장을 피력했고 보수주의적 맥락에서 자유주의 역사관을 신념으로 견지한 학자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는 런던의 우파 싱크탱크인, SAU (Social Affairs Unit)의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미노그는 채널 4에서 진행하는 자유 시장 경제에 관한 6부작 TV 프로그램에도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2003년에 그는 호주 정부가 수여하는 '호주 연방 100주년 기념', 센터 너리 메달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 6월, 갈라파고스의 산 크리스토발 섬에서 주최한 몽펠르랭 소사이어티 회의에 참석한 이후, 당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인해,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Politics : A Very Introduction"으로 지난 1995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8년 6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케네스 미노그의 이 글은 원제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일반인들을 위한 '정치'에 관한 개론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여기에 논증되는 주요 배경은 대체로 유럽과 미국으로 한정하여 서술됩니다. 짧게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정치적 연원과 이후, 중세까지 기독교가 주도한 정치적 분화, 그리고 근대의 자유와 민주주의, 전체주의적 망령을 돌아보고, 지금의 정치가 미래에도 온전히 자리매김 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들을 논하는 것으로 글은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몽주의자들 혹은, 합리주의에 인도된 많은 정치적 관념들은 그것의 철학적 기원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은 그리스 문화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로마의 그것도 그리스인들의 삶을 추적한 결과물이기도 한데요. 물론 고대의 인류가 한정된 사회로 구축된 '국가'라는 관념에 얼마나 신비로운 이상을 부여했는지는 다소 불명확합니다. 아니 합리적 이성이라는 측면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는 그것의 정치적 유산이 실제로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점은 분명 사실로 보입니다. 하지만 앞선 기본적 서사보다 서두에 미노그가 필연적으로 지적한, "정치에 대해 쓰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시대의 편협성과 위험을 경고해야 하며, 이런 경고는 예전보다 오늘날 더 필요하다"는 말에 크게 공감하게 되었는데요. 아마도 그런 연유로 12장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그에게는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설득력과 근거가 빈약한 이데올로기'가 사회에 미치는 해악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리는 이미 인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마르크스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몇 세대에 걸쳐 세력을 확장한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이데올로그화에 대한 미노그의 비판 역시, 스스로가 오랫동안 보수주의 (혹은 우파) 학자로 알려졌지만. 그럼에도 논증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이성적인 판단을 보이고 있는 점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4장에서 미노그는 오늘날 우리가 여실히 인지하고 있는. '개인'이라는 개념이 원천적으로 기독교에서 유추된 점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법의 유구한 역사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기독교가 종래의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자, '이성의 눈을 뜬 인간'의 관념의 시작과는 다소 그 경계가 모호하다고 볼 수 있는 '법의 필요성'이 중세의 영주와 기사들간의 봉건 계약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는 16세기 역사에서 극적으로 '토머스 크롬웰이 법이 어떻게 전제 정권을 초월한 시급한 문제인지를 증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의 말로는 비참했지만 그 파국의 결과는 많은 이들에게 그야말로 새로운 '정치철학적 영감'을 안겨줬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누리고 있는 '자유'라는 가치는 법의 범위에서 비로소 효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노그는 12장 이후의 논증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의 관계에 대해 일반적인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자유의 본질, 즉 "자유의 역설은 자유가 오직 우리가 이미 가진 소유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있다"는 주목할 만한 요점은 어쩌면 개인이 누리는 자유의 한계에 대해 조금 에둘러 설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평등은 다소 모호하게 언급되고 있었는데요.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진정한 평등에 이르는 길은 매우 험난하며, 그것의 이상 자체는 오늘날 우리가 구축한 사회에서 현실적으로도 가능한지 매번 상대방과 다투게 마련입니다. 특히, 개인의 선호, 선택의 자유 및 경제적 자유를 포함한 모든 자유라는 이름의 지배적 체제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평등과 민주주의는 불가분의 관계임은 역시나 쉽게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일부 세인들이 평등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누명'을 덧씌운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정치의 발견과 그것의 파급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배경이기도 한, '자기 이익의 추구'는 미노그가 다소 회의적으로 보고 있기는 합니다만, 인간의 도덕적 본성과 철학적으로 대치되는 관념이기도 합니다. 이 글 8장에서, 정치인들이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통해, 이들이 '자기 잇속을 차리는 행위'가 비일비재하다는 현실의 폭로와 그런 와중에 우리의 공익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어느 정도 치열한 논쟁이 담겨 있기는 합니다만, 그가 말하는대로, '공정성의 관념'은 많은 변주가 존재한다는 분석 자체는 저로 하여금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아마도 저자는 자유 시장이라는 큰 틀안에서, 개인의 이익 추구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상이고, 그런 인식의 범위에 심지어 정치인들도 비켜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여겨지는데요. 다만, '인간의 합리적 이성' 만큼이나 깊게 다뤄지지 않는 아니 인간의 불확실성 만큼이나 그가 회의적으로 접근하는(소위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도덕적 본성'에 대해, 모두가 한결같이 원하는 '정의'의 존재 의미를 인간의 도덕적 본성과 결부지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정의라는 단어 자체가 수많은 정치학자들의 논의대로, 보다 합리적 이성의 숙고가 전제되어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유세계'의 시민들이고 민주주의가 뿌리 내린 사회의 기본 정의 관념이 아주 못봐줄 정도는 아니라는 미노그의 언급은 이 지점에서 순진한 생각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심지어 그의 낯뜨거운 표현처럼 '자유 세계의 정의는 세간에 알려진만큼 문제가 크지는 않다'고 이해할 수도 있을겁니다. 물론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고 싶어한다는 점은 거의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노그는 사회가 정의롭다고 여기는 쪽이나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부류가 극한 갈등에 놓일 때, 어쩌면 내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여기에 정의를 단순히 복리에 준하는 어떤 이득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그 인식의 파급은 정의 담론 자체를 뒤집어 엎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12장의 초입에서, "인간이 천사라면 아무 정부도 필요 없을 것이다"는 단언과 비슷한 그의 가정은 그만큼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善)에 이르는 길은 완만하지 않다는 지난 금언과 같이, 정의 역시 우리 정치의 토대이자 근간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정치관념적인 의미로 국한되어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요. 현실과 이상의 명백한 괴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 차이에서도 심심잖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여기의 미노그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입니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홉스는 때에 따라 자신의 주장을 신중하게 펼쳐냈습니다. 물론 그의 정치적 혹은 철학적 주장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법의 지배하에 누리는 자유가 본질적인 측면에서 정확한 정의라고 판단됩니다. 이에 저자인 미노그는 지난 세기의 첨예한 냉전의 시기에서 우리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동일시 했던 인식을 다시금 언급합니다. 우리가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를 혼동하듯이, 자유와 민주주의 역시 그러한 궤적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자유와 민주주의가 가히 한 몸이라고 강조될 필요는 없겠지만, '민주주의가 바탕이 되지 않는 자유'란 여러모로 '소수만의 자유'로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런 불평등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선 더욱 그렇겠죠.) 제가 몇 번이나 인용했지만 지지 파파차리시가 도출한 "모두가 평등한 자유"라는 것은 바로 이 시점에서 중요한 정치적 용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형적인 엘리트주의적 사고 방식으로 읽히는 10장 후반부의 논증 가운데, "일정한 부류의 사람들만이 일정한 종류의 이상을 누릴 있다"는 문장의 본질은 이미 전술 되었던 문화나 사회적 관습 이상의 '특별한 계급'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이 그저 전통의 수호자들이나 기존 사회 구조적 체제를 떠 받들고 사회를 보호하는 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저는 저들이 나날이 심각해지는 경제적 불평등 상황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피력하고, 경제 엘리트들과 야합하는 과두제에 대해 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자들과 이해 관계를 함께한 역사를 떠올려 본다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당히 뿌리 깊은 기득권 보수주의자들의 생각은 아마도 쉽게 예상되기도 합니다. 이미 일전에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자본주의가 계급을 더욱 고착화시킨다 강조했으니 말입니다. 흔히 '오프 더 레코드 상'에서 일부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민주주의와 과두제가 혼합된 정치체라도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 받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다는 소위 자기 이익적 관념은 어떻게 보면 힘 있는 자들의 우선 순위라는 내심도 이 글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법의 지배를 뼛속 깊이 이해하는 민주주의는 이를 전혀 용인할 생각이 없다는 점은 이 글에서, 강조해 두고 싶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민주주의와 과두제의 혼합은 그것이 개인의 신념이라고 할지라도 오늘날 민주주의 정체와는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이상과 사뭇 역설적인 모습이라 봐도 그리 과한 상상은 아닐 겁니다. 

끝으로 과거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에 참여한 '학자'가 말하는 정치란 과연 무엇일까하는 개인적 의문이 그동안 있었습니다. 만약 헨리 키신저를 떠올려 본다면 그에 대한 답은 어떻게 보면 전형적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자유 시장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굴절된 인식으로 바라보는 신자유주의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정치적 관념이 지배적인 다수의 기득권 세력에게 민주주의와 정치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지금도 큰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워낙 기존 정치와 과거의 유산을 다루는 많은 글들이 진실로 냉혹한 것은 사실이고, 지금도 계몽주의적 유산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극단주의자들이 기성 정치에 등장하고 있는 현실은 앞선 신자유주의자들의 뻔뻔한 얼굴 정도는 이제 참을 수 있을 정도로 느껴지니 말입니다. 결국 미노그는 자신의 글의 결말에서, 다소 의미심장하게 도덕의 재부상과 같은 근래 학계의 움직임이 어떻게 보면 현실과 이론의 괴리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일견의 '정의', 즉 시대에 뒤떨어진 이들에게 정의로운 사회가 요구하는 생각들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끊없는 일이 미래에 주어질 것으로 예견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분명하게 자유 시장의 담론이 무력화되었던 2008년을 목도했을 겁니다. 아마도 앞선 그 미래는 신자유주의가 만든 오판의 미래가 아니라, 추정컨대 '근대 정치의 왜곡된 재림'의 비극적인 미래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혁명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갖고 있으면서도 현실 개혁에 대해서는 어떠한 반응도 없는 것을 보니, 전통적인 의미에서 에드먼드 버크와 마찬가지로 보수주의자로 불릴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6장에서 저자인 미노그는, "정치적 인간은 권력에 의해, 경제적 인간은 부를 향한 이기적 욕망에 추동된다고 밝히고 있었습니다. 또한 간접적으로 표현된 시장 자유에 대한 인식, 그리고 정치가 도덕적이든 경제적이든 순수한 상태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해석 등은 그가 여느 정치학자들과는 다른 정치철학적 관념을 드러내는 증거라 여겨집니다.

-모든 측면에서 정치는 철학자들이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에서야 비현실적인 인식이지만 그것의 본질적 의미는 충분히 공감이 되고 남습니다. 
    


정치는 인간의 삶의 틀을 유지시켜주는 활동이지, 인간의 삶 자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치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가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을 현재에 대한 비성찰적 믿음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좋은 것에 대해 자기의 공적을 주장하길 원하는 정부여당과, 모든 나쁜 것에 대해 비난을 가하길 원하는 야당들이 좋고 나쁜 모든 것이 정책에 기인한다는 생각을 퍼뜨리는 일에 공모해 왔다.

그러므로 정치에 대해 쓰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시대의 편협성의 위험을 경고해야 하며, 이런 경고는 확실히 예전보다 오늘날 더 필요하다.

폭력과 무질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비롯됐다. 자기의 공동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관한 강한 도덕적 감각과 법적 감각이 타자의 중요성에 관한 어떤 감각과도 병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권리와 자유는 먼저 귀족계급과 부유한 도시 거주자들에 의해, 그리고 보통 그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다.

홉스는 그런 이상주의가 젊은 학자들을 야심 있는 사람들의 앞잡이로 만들어 유럽에 엄청난 유혈참사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로크는 사람들ㅇ이 자연법에 대해 동의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근대 정부의 이론과 실천에서 모두 핵심적인 문제에 무감각했다.

그러므로 국가는 인간화될 필요가 있다. 이 두번째 시각은 국가를 일거에 지양하려는, 그리고 정치에서 불가피한 통치자와 신민 간의 간격이 완전히 사라진 완벽한 공화국을 창조하려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독자는 정치에서 그 무엇도 순수하게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을, 또는 정말로 순수하게 경제적이거나 영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익이 개인적 비용과 이익에 따라 판단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익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비판하는 편과 비판받는 편이 서로의 의도를 오해한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행동이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가정함으로써 저치학의 과학적 기획이 제한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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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지금 이곳에 살기 위하여
지그문트 바우만.스타니스와프 오비레크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현재까지도 전세계적인 존경을 받고 있는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1925년 11월, 폴란드의 포즈난에서 태어났습니다. 히틀러의 나치가 본격적으로 침공하기 전의 폴란드에서도 전유럽의 반유대주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바우만도 폴란드인들로부터 그가 유대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했는데요. 당시 포즈난은 작은 인종의 용광로로 불릴만큼 여러 인종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는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유대인들에 대한 테러는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곧 1939년이 되자, 폴란드가 나치 독일과 소련의 침공을 받게 되었을 때, 바우만의 가족은 동쪽의 소련 지역으로 도피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동안 그는 소련이 통제하는 폴란드 제1군에 입대하여 군에 복무했고, 이에 콜베르트 전투와 베를린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1953년 이미 소령 계급이었던 바우만은, 부친이 이스라엘로 이주할 목적으로 당시 바르샤바에 있던 이스라엘 대사관에 접근하자 갑자기 불명예 전역을 당하게 됩니다. 당연히 다른 유대인들과 달리 반시오니스트였던 바우만은 자신의 부친과 다른 정치적 지향으로 말미암아 폴란드 당국으로부터 처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폴란드 시민권이 제한되자,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그로부터 3년 뒤에는 영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는 1971년부터 영국에 거주하면서 런던 정경대(LSE)에서 공부하고, 이후 리즈 대학에서 사회학 교수로 채용됩니다. 이때부터 바우만은 특유의 비판적 사회 이론가로 근대성에 대한 집요한 고찰, 홀로코스트 문제, 포스트모던의 소비주의와 이를 조장하는 자본주의의 권력화 등을 일생에 거쳐, 주요 학문 주제로 천착하게 됩니다.

스타니스와프 오비레크는 1956년생으로, 폴란드의 신학자, 역사가, 문화인류학자 및 인문학 교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런 경력 가운데, 이례적인 부분은 그가 지난 30여년간 예수회에 소속된 사제였다는 점입니다. 이에 1978년부터 1980년까지 폴란드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는 도시인 크라쿠프의 예수회 신부단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1983년까지, 이탈리아 나폴리에 소재한 교황청 신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또한, 그는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로마의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마찬가지로 신학을 공부합니다. 오비레크는 이전부터 카톨릭 교단의 정치화와 세속 권력에 대한 문제에 일관된 비판적 인식을 보였고, 유대교와 다른 신앙을 믿는 종교인들과 심지어, 불가지론자들과도 그는 지속적인 대화에 나섰는데요. 특히 2002년과 2003년, 로마 카톨릭과 대립하는 일련의 사건 뒤에,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이후, 전임 교황을 비판한 계기로 관구장 슈토프 디렉으로부터 1년 간의 대중 매체들과의 접촉 금지 처분을 받게 됩니다. 결국 그는 2005년 가을에 수도회를 탈퇴하고 사제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합니다.

이렇게 바우만과 오비레크의 대담을 실고 있는 이 글은 전작인, "신과 인간에 대하여"에 이은 두번째 기획집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원제, "On The World And Ourselves"로 지난 2015년에 출간되었고, 국내 번역은 2016년 10월에 이뤄졌습니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된 상황입니다.


일종의 서신을 통해 이뤄진 두 사람의 이 대담은 기본적으로 세계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이런 환경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폴란드 내의 종교 및 정치를 포함한 주제까지 포함하고 있는데요. 그런 연유로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폴란드 정치 상황과 카톨릭 국가인 폴란드의 종교적 배경 등을 숙지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지식은 이미 웹상에, 사실에 근접한 여러 자료들이 공개되어 있으니 필요할 때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여기에는 명확히 수식되고 있지는 않지만 바우만과 오비레크 두 사람은 명실상부한 '추방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두 사람이 본질적으로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은 폴란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인간의 역사로서, 유구한 카톨릭의 연혁들을 이해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여기 지면을 통해, 유동하는 근대의 문제점, 신자유주의적 이행의 여러 사회적 파행들, 인간 소외,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현재 인류가 해결해야만 하는 사활적 조건들과 그 문제점들을 폭넓게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이와 관련해, 두 사람은 "대안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것"으로 대처와 레이건의 소위 "대안은 없다"는 비도덕적이고 무책임한 언급이며, 인간의 정신과 그것을 이루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일방적이고 단방향적인 사회적 이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견지하기에 이릅니다. 이미 바우만은 자신의 여러 논저들을 통해, 대처의 대안은 없다는 그 비인간적인 주장에 대해 수차례 비판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 3장에서, 바우만은 자신은 더 이상 경제학자들과 토론하지 않는다는 것을 거의 양심 고백처럼 하고 있었는데요. 결국 이런 배경에는 경제학에서의 경제적 논법이 사회에 어떠한 개선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현실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이것이 경제학의 한계인지 아니면 그것에 준하는 무엇인지는 여기서 따로 논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종교적 차원이거나 혹은 자신이 항유하는 삶의 조건에서 행복이라는 담론은 사회나 인간에 따라 여러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종교가 인간의 삶에 끼친 영향을 논하는 과정에서, 오비레크는 행복에 대해, "진정한 행복은 장애물을 피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과 끊임없이 맞서 싸운 데서 오는 것이고, 이것이 충만된 삶의 비결"이라고 단언합니다. 이러한 인용의 확대된 의미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보다 우리의 행복은 자본주의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왔다는 것을 먼저 인지하고 더 나아가 내 자신의 행복 뿐만 아니라 "소외된 자들, 배제된 자들, 분노한 자들"이라는 우리 이웃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마도 충만된 삶의 현격한 조건으로도 읽힙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논의되는 오비레크의 여러 주장들은, 자신이 과거 종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으며, 오늘날 우리 사회를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관해서도 그는 면밀하고 정확한 인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3장 후반부에서, 두 사람이 공통된 맥락으로 인식하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강자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든지, 이런 신자유주의적 문제와 가이 스탠딩이 도출한 '프레카리아트 계층'의 출현이 드러내는 경제적 불평등의 총체적 문제에 누구보다 평생을 천착한 지그문트 바우만에 보이는 오비레크의 경의는 그가 단순한 사제가 아님을 드러내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바우만의 저명한 논저이기도 한, '부수적 피해'는 어느 헐리우드식의 액션 스릴러 영화에 등장하는 요소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액체 근대라는 바우만의 통찰이 담겨 있지만, 자본주의 이행 과정에서 소위 현대적으로 고도화된 자본주의 체제 하에, 어쩔 수 없는 (정치경제적인) 소외자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변명들이 이미 있어 왔습니다. 그런 지칭으로서 우리는 이 부수적 피해를 어쩔 수 없는 전근대 시대의 빈민 계급과 일맥상통한 의미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이들을 '사회적 실패자'로 규정하는 보수주의자들을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죠. 어떻게 보면 이 '용어'는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인 현실이라는 고도의 책임 회피와 체제의 문제인지 아니면 인간 자체의 결함인지, 지금도 가늠하기 힘든 난해한 지경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 바우만은 칸트로 이어지는 인간 도덕의 계보와 그것을 가능하게 한 데이비드 흄으로 대표되는 역사를 먼저 살펴봅니다. 인간 자체는 도덕적 본질의 그 무엇으로 판단했던 카를 야스퍼스의 논법에서, 이는 나치의 전체주의의 어두운 그림자인 동시에, 현재 신자유주의적 이행에서 인간은 본디 이기적인 존재라는 앞선 신자유주의자들의 매끈한 답변을 우리는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들의 본색을 이미 알아챈 데이비드 코츠는 어떤 느낌이었을지 이 시점에서 매우 궁금해 집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에 바우만은 1장에서, "밀턴 프리드먼은 사회의 심리학적 중심 원리가 탐욕이라고 역설했고, 아인 랜드는 제 잇속만 차리는 목적에 가장 적합한 수단을 선택하는 '합리적인 이기주의'를 권유"했다는 식으로 이를 비극적으로 드러내기에 이릅니다. 이런 이기심과 이기주의에 명백히 반하여 등장하는 '보편적 존엄성'과 '사회적 선의 필요성'과 같은 종래의 도덕주의적 가치들은 그야말로 현재로선 더 이상 가능하지 않는 것으로 엄연히 치부되어 왔습니다. (혹은 조장되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이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어쩌겠냐"와 같은 발언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애초에 도덕적 존재인지 아닌지의 논란을 떠나 기존의 종교가 그것의 대안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의 1장과 2장이 (폴란드 카톨릭의 현실을 포함하여) 명확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 과거 정교 일치의 로마 교황청의 정치적 영향력 같은 역사가 아니라, 현대에 이른 종교가 자본과 성공적으로 결합한 사실에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자유주의 국가들의 개신교와 돈(혹은 자본주의)이 구조적으로 혹은 계층화된 시스템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현실이나, 현재 유럽의 카톨릭이 서구 자본주의를 옹호하면서 대안을 만드는 데 실패하고, 이에 그치지 않고 다른 종교에 대해 점차 폐쇄성을 띠고 있는 장면과 같은 우리가 직면한 실체적 문제들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본질에서 종교의 편협화와 다원주의를 거부하는 태도 등의 양태는 1장을 거쳐, 2장에서 더욱 확대됩니다. 이에 바우만은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 있는 것은 정부의 무능이나 나쁜 의도가 아니라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권력과 정치의 분리, 그리고 그로 인한 기존 정치제도의 만성적인 권력 결핍" 등에 있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종교의 무능도 포함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 상태에서 나날이 등장하고 있는 극단주의적 선동 정치인의 사례는 약간의 논외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일절 관심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과거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에 대한 인식, 공공선에 대한 함의 또한, 이제는 교과서에서나 접할 정도로 감각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연유로 우리가 '좋은 이웃이 되어본 적이 없는' 근 백년이 넘는 시간은 파국의 전체주의를 잉태했고, 또한 1세기가 채 안되는 시점에 이르러, 현대화된 극우 파시즘을 기존의 정치 무대로 끌어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 두 명의 현인이 이끄는 대로, 종교의 총체적 부실과 더 많은 경쟁과 그에 따른 승자독식 사회를 규정한 신자유주의, 그리고 나날이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불평등의 상황은 이런 조건들이 중첩되어, 나날이 사회적 개선이 어려워지는 지경에 놓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3장에서 언급되는 바와 같이, "협력의 가치에 냉소를 보내면서 세상으로부터의 격리와 자신만의 안락만을 추구하는 태도의 전형"이라는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어두운 본성의 표상 또한, 개선을 어렵게 하는 다른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거의 강고한 인식의 벽처럼 말입니다. 이 부분에서 약간의 희화이긴 하지만, 은둔의 삶을 살고 있던 칸트를 흄이 강하게 일깨웠듯, 우리에게도 다시 예전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무엇보다 있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신의 도움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겐 무엇보다 필요한 문제일겁니다. 

토크빌의 주요한 언급처럼, 인간은 지난 역사를 쉽게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점은 거의 명백합니다. 지난 폴란드에서의 경험으로 공산주의 역사의 본질을 깨달은 바우만이나, 과거 요한 바오로 2세를 통해, 지금까지 카톨릭이 누적해 온 문제들을 직면하게 된, 오비레크에게는 그저 축소된 개인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이들이 겪어온 지난 날의 기억은 그야말로 역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의 일생을 관통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간접적으로 겪으면서, 인간은 누구에게나 성장할 기회가 몇 번이나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자신의 삶과 동시에 "이 행성과 인류의 삶을 파멸로 몰아가는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 점은 앞선 행복에 대한 문답에 대한 매개와 마찬가지로, 개인들의 문제와 그것에 작용하는 세계로서, 양자는 서로 불가분에 있다는 분석 때문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바우만은 평생 동안 사회학자였지만 '사회학자들도 인간이므로 절망하고 한탄할 권리' 또한 갖고 있다 고백합니다. 물론 이러한 읊조림은 그가 생전에 가졌던 현실 문제에 대한 소회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봐도 좋습니다. 따라서 바우만은 그 무엇보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품위있고 존엄한 삶을 위한 기회들이 부당하게 분배되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없다"는 우리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대의를 갖고 우리에게 응답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건 없다고 말입니다. 끝으로 약간의 논외지만 이 책에서는 바우만이 어린 시절 폴란드에서 몸소 겪었던 반유대주의와 유대인 혐오에 대해서도 관련한 몇 가지 일화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한나 아렌트가 왜 '어두운 시대'는 일반적이었다고 말했는지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작금의 현실에도 매우 잘 들어맞는 시민이 아닌, '인간 무리'의 습성이기도 한, "권위가 명령하고 군중이 복종하는 곳이라면 별다른 저항 없이 어디든 가는 대다수, 어떤 상황에서도 악행에 가담하지 않으려는 소수, 기회만 있으면 피에 대한 선호를 보여주는 소수가 있다."는 우리의 다른 실체는 일견 우발적 핵전쟁의 시작이라는 인류의 공멸 가능성보다도 더 쉽게 다른 식으로 파국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숱하게 듣고 있는 "비판적 인식 또는 그런 책임감"은 이처럼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대형 사고가 한반도 남쪽에서 있었습니다. 희생당한 모든 분들의 명복을 간절히 빕니다. 부디 평안하소서.

-이 책의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2장에서 극단주의자들을 빗댄 '외눈박이 키클롭스 (혹은 사이클롭스)와 같이 연계되어 논증되는 '자유의 독'에 대한 장면이었습니다. 후자인 자유의 독은 뒤에서 대략 유추해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명확히 이를 적시하고 있지 않은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3장 초입에서,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의 표상일 뿐이다."는 주지의 문장과 함께 차근히 논증되는 내용들이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표상은 관습과 계산 등에 따라 항상 바뀐다는 뒤이어 해석도 매우 설득력이 있었는데요. 작금의 문명이 과연 어떠한 본질을 갖고 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회개는 쉽지 않고, 자비는 원한다고 주어지지 않으며, 실수의 결과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도 악의 문제를 단순히 권위와 권력에 대한 불복종의 문제, 금제와 명령에 대한 위반으로 축소해버리는 것은 부끄러울 정도로 지나친 단순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타인의 존엄성을 부정하거나 타인이 존엄성을 획들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야말로 한 인간이 타인에 댛 저지를 수 있는 최대한의 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감각을 통해 경험되는 세계는 다양하고 불확실하고 다면적이고 애매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장애물을 피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과 끊임없이 맞서 싸운 데서 오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충만된 삶의 비결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지금 이 시대에는 지구화와 정보혁명이 야스퍼스의 시대처럼 새로운 각성, 지역적인 각성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각성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루터는 믿음은 자유의 문제로서 결코 강요될 수 없으며, 이단(즉, 믿음의 대상에 대한 대안적 해석에 의거한 저항)은 어떠한 쇠로도 부술 수 없고 어떠한 물로도 태울 수 없고 어떠한 물로도 익사시킬 수 없는 영적 문제라는 이유를 들어 불복종을 정당화했습니다.

프레카리아트는 ‘즉자적 계급‘(누군가는 그것을 인식할 수도 있지만)에서 ‘대자적 계급‘(자신의 이익과 소명을 의식하고 하나로 결합한 정치 세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극히 미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따른 것만큼 확신을 갖고 자신의 적들을 증오했으며 가차 없이 파괴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루터의 비판이 히틀러가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발상을 하게 된 시발점이었다는 홀로코스트 역사가들의 지적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학자인 스탠딩이 대안적 해법들을 제시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옹호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프레카리아트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 지구적인 상호 의존의 시대에 타자의 이익에 대한 첵임의 짐을 벗어던지다는 것은 결국 공익에 대한 책임을 벗어던진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사적 세계‘에만 초점이 모아지는 현상, 요컨대 이타주의에 대한 이기주의의 우위는 오늘날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오히려 정치적 통제에서 벗어난 권력들과 해마다 만성적인 권력 결핍과 그로 인한 비효율성을 드러내고 있는 정치로 분열된 세계에서 시대착오적인 민족국가가 여전히 낡은 형태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 근본 원인입니다.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 있는 것은 정부의 무능이나 나쁜 의도가 아니라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권력과 정치의 분리, 그리고 그로 인한 기존 정치제도의 만성적인 권력 결핍입니다.

지멜은 갈등은 서로 간의 사랑을 만들어내건 증오를 만들어내건 간에 서로를 소외시키는 황무지로부터의 출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함으로써 초래된 법적 결과들을 통해 신자유주의가 강자들에게 얼마나 유리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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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초 대산세계문학총서 57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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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이름이 이디스 뉴볼드 존스인 워튼은 1862년, 미국 뉴욕시 웨스트 23번가 브라운스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조지 프레데릭 존스로, 존스 가문 자체는 부동산으로 많은 돈을 번 부유한 가문이었습니다. 덕분에 부친이 사망하자 워튼은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부친의 사촌은 도금시대 사교계에서 이름을 알린, 캐롤라인 셰머혼 애스터로, 워튼은 이렇게 돈과 지위를 갖춘, 명망 있는 가문의 여식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작문에 재능을 보인 그녀는, 1877년, 15세가 되던해에, 비밀리에 자신의 중편을 발표합니다. 이후 1885년 4월, 워튼은 자신보다 12살 연상인 에드워드 로빈스 워튼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그의 남편은 보스턴 명문가 출신으로 워튼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유력 가문의 신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인 테디 워튼은 1880년대 후반부터 1902년까지 만성적인 우울증을 앓았고, 같은 기간에 워튼 역시 천식과 우울증을 앓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아무래도 그녀가 원하는 결혼 생활이 아니었기에 이 시기에 워튼은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생활을 하게 되는데요. 이때쯤 그녀에게 평생 지기가 되어준 헨리 제임스를 만나게 되고, 동시에 왕성한 작품 활동을 지속하게 됩니다. 이런 문학 활동외에, 정치적으로 스스로를 광적인 제국주의자로 밝힌 워튼은, 프랑스 제국주의의 헌신적인 지지자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의 이에르에서 지내면서, 그녀는 1920년에 <순수의 시대>를 완성합니다. 일생동안 단편은 85편을 쓸 정도로, 장단편에 구애 받지 않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그녀는, 1937년 8월 11일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는데요. 이후 베르사유에 있는 외국인 묘지에 묻혔는데, 오랜 친구였던 월터 베리와 함께 영면에 들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The Reef"로, 지난 191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대산세계문학총서'의 번역 작품으로, 지난 2007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워튼의 이 작품은 생전 고통스럽지만 자신에게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해주고 또한 헨리 제임스 만큼 그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모튼 풀러튼'과의 연정이 이 작품에 녹아 있습니다. 극중 주요 인물이기도 한, 조지 대로우와 소피 바이너의 만남이 이뤄지는 장소(어쩌면 중대한 스포일러일 수도 있으므로)인 한 호텔의 묘사가 워튼 자신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저에 궁금증이기도 했던 워튼이 왜 유독 남자 주인공들을 '지적이며 독서를 좋아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었는지, 비로소 그 정확한 연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조지 대로우 역시, 헌책방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었는데요. 더욱이 다른 여주인공이기도 한, 애너 리스의 입으로, "대로우가 자신의 세계를 넓혀주고, 생각의 차원을 높여주곤 했다"는 이 의미심장한 독백은, 대로우를 지적이면서 이성적인 캐릭터인 동시에 그 시대 여성들이 선호하는 남성상으로 그려낸 듯 보였습니다. 


이 극을 거의 좌우한다고 볼 수 있는 소피 바이너는 어떻게 보면 워튼의 중편소설, "버너 자매"에서 부분적으로 차용한 인물로 여겨집니다. 그녀는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을 뿐더러, 여기에 양친까지 여의고, 심지어 자신 스스로를 위해 쓸 수 있는 어느 정도 가용할 수 있는 돈도 없는 상황입니다. 더욱이 그녀를 구원해 줄 어떠한 연줄도 없고 누구에게도 금전적 자비를 구할 수도 없는 실정인데요. 그녀는 성격적으로 전혀 가늠할 수 없는, 머릿 부인집에서 그저 잡일을 몇 년간 해왔지만, 그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도 받지도 못하고 그 집을 뛰쳐 나온 시점입니다. 바로 이 작품의 서두가 소피와 대로우의 만남으로 시작되는데요. 저는 이 장면에서 일전에 읽은 엘리에트 아베카시스의 '밀입자'가 절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대로우는 젊은 시절,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연애도 해보고 어떻게 보면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영국 외무부의 외교관입니다. 그는 고위 외교직으로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도 충실한 마음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젊은 시절 치명적인 불장난으로 인해, 자신에게 맞는 아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애너 리스와 서로 먼 길을 돌아가게 되는데요. 아마도 애너 본인이 보기에 이렇게 지적이고 사리분별이 뛰어나고, 누군가에게 훌륭한 조언을 할 수 있는 멋진 사내가 당시 사교계에서 평판이 좋지 않은 여성과 염분을 뿌리고 다닐지는 꿈에도 몰랐고 그런 연유로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두 사람의 한결 같은 연정에도 불구하고, 애너는 거의 즉흥적으로 눈에 들어온 다른 사람과 결혼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제 대로우는 스스로 인생 경험이 많이 쌓였고 또 직무에 있어서도 꽤 궤도에 올라, 연구도 해보고 외국에 나가는 기회도 얻게 됩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애너는 남편을 사별하고 미망인이 된 기간이 이미 여러 해가 지나, 두 사람의 진정한 재결합이 작품의 서사 한 가운데에 놓여집니다. 다만, 애너, 그녀 자신은 프랑스의 한적한 지역에서 스스로 고립된,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삶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작고한 남편과는 전혀 애정이 없는 결혼을 시작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한 채 원만했고, 의붓 아들인 오언을 자신의 친아들 마냥 마음을 다해 키워냈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그간 이룩한 성과 가운데 하나였는데요. 저는 이 장면에서 애너의 본성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조용하고 스스로에게 진지한 여성이면서 삶과 관계에 있어, 어떠한 오점도 없는 인물인데요. 그렇지만 꽤 오랫동안 자신에게 사랑을 보이는 대로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렇기에 매번 둘은 서로 엇갈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도버해협을 두고 대로우에게 보낸 전보 역시, 그런 미적거림을 다시금 반복하는 것으로 읽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이번에도 애너의 확신을 받지 못했다고 자책하면서도 그녀의 아무런 이유도 없는 전보에 크게 실망한 대로우는 억지로 쓴 남은 휴가를 어떻게 보내야 될지, 해협을 가운데 두고 고심을 하게 됩니다. 아주 복잡하고 실망스런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그는 몇해 전, 머릿 부인의 파티에서 우연잖게 만나게 된 소피를 우연히 재회하게 됩니다. 소피는 한눈에 보기에도 아름답고 젊고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워튼은 그녀의 모습에 대한 묘사에 꽤나 공을 들이기도 했는데요. "높고 감미로운 음성과 민첩한 몸놀림 뿐만 아니라 작은 코, 맑은 피부, 환하지만 연한 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듯 가볍고 섬세한 용모"라고 묘사됩니다. 저는 서두에서 이 소피라는 여성이 대로우와 애너 사이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캐릭터로 예측했지만 이 예상은 정확하게 어긋나게 됩니다. 그간 읽은 워튼의 다른 작품들에서 등장한 여러 인물들 중, 소피 바이너라는 인물의 마음과 행적을 통한, 각인은 그만큼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녀는 자기 희생과 사랑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절대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순수하고 절제된 성품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아마도 작가인 워튼은, 당시 근대적인 분위기, 사회 계층에서 신분상의 계급이 많이 퇴색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류 계층과 이들이 주도하는 관계의 여러 모습들, 그리고 하위 계층에게 보이는 역겨운 시선 등 여기에 대로우의 젊은 시절 하위 계층 여성들을 스스로 육체적 쾌락의 대상을 삼은 것이나, 반대로 결혼에 있어서 만큼은 자신의 격에 맞는 여성을 찾으려는 그런 시도에서 애너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지속하는 것은 단순한 남녀 간의 애정 문제만은 아니라고 여겨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애너 역시 젋은 시절부터 고생이라곤 전혀 몰랐고 여기에 자신의 지위와 부에 맞는 결혼을 했으며, 지금도 사용인들을 거느리며 아무런 부족함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거듭되는 소피의 삶에 대한 진정성과 그것이 바탕이 된 좌절과 희망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대로우와 애너 두 캐릭터가 그 지위와 명예에 맞는 도덕 관념과 진실됨, 그리고 걸맞는 본성을 갖추지도 못한 점은 워튼이 소피라는 캐릭터를 통해 여실히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한 사람의 본성과 진실됨, 고결, 책임감, 관계의 진정성 등은 계급과 부의 유무는 하등 상관이 없는 것이죠. 바로 이 두 사람을 위해 소피가 보인 자기 희생적 결단과 배려는 대미로 향하는 지점부터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간혹 보이는 지성과 판단력, 그리고 달변이라고 봐도 분명한 대로우의 모습은 계급적 신분도 그렇거니와 직업조차도 의미심장한 캐릭터인데요. 그에 대한 인물조성이 작가인 워튼이 공들여 썼던 만큼, 그의 허위와 가식, 그리고 위선까지도 지문 사이의 여러 상징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애너 역시, 답답하고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그 본성안에 자리한 고결 그리고 삶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 등이 한낱 얼음 조각처럼 쉽게 부서지게 됩니다. 특히, 애너의 지독할 정도로 편집증적인 모습은 작가인 워튼이 지난날 경험한 마음의 편린들에게서 비롯된 것인가 라고 의심될 정도로 집요한 서사로 점철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의 가시가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의문이 든 동시에, 작가 본인의 삶과 작품의 모습이 함께 유동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끝으로 워튼이 왜 이 작품에 대해, 그렇게 큰 애착을 가졌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약간 논외지만, 이 작품에서도 복합적인 의미로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하는 인물인, 애들레이드 페인터의 인물 조성 역시, 가히 워튼 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본문 104 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그가 사귄 여자들은 모두 명백히 ‘숙녀‘였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대로우가 보기에 여자는 원래부터 그 목적으로 창조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남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 여기까지 진화해온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본능적으로 이 두 부류를 엄격히 구분해서 생각했고, 이 두 인생관을 양립시키려는 중간 부류의 사람들과는 교류하지 않았다.

바이너 양이 빨대로 주스를 마시는 동안 대로우는 담배를 피우면서 다른 남자들의 눈길을 끄는 여성과 같이 있다는 사실에 원초적인 자부심을 느꼈다.

바이너 양과의 관계는 이 싸구려 호텔이나 불가피하게 진부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이 세상 밖에 존재하는 미지의 영역에서 전개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삶의 모든 표현 방식을 알고 싶어 하되 그것이 아름다움과 세련된 감정을 통해 발현되기를 바라는 열정적인 아가씨는 리스가 대표하는 그런 사회에서 자신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 행복 때문에 그 애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희생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조금씩 긁어내서 우리의 행복을 이뤄야 한다면, 얼마나 비참해요!

대로우에게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은, 오언이 자신과 바이너 양이 우연히 만난 게 아니라는 의심을 한다면, 계모의 약혼자가 그런 시간에 동생의 가정교사와 단둘이 만나고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기리라는 것이었다.

"오언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 건 상관없어! 사랑에 빠진 청년은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자기에게 싫증이 났다는 자존심 상하는 사실을 회피하기 위해 어떤 이유라도 갖다 붙일 거야."

소피 바이너의 사랑과, 그 사랑 때문에 그녀가 취한 행동이 대로우 앞에 버티고 선 채 그의 눈을 응시하며 그의 얼굴에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말은, 당신이 좀 더 나이가 들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 알게 될 거라는 뜻이지.

지금 생각해보니 리스와의 결혼 생활은 엄격한 자제와 질서로 특징지어지는,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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