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공화국 - 법은 정의보다는 출세의 수단이었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56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난 강준만은 1980년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년뒤인, 1982년에 중앙일보에 입사합니다. 하지만 곧 그곳을 그만두고, 학업을 위해 도미를 하게 됩니다. 1984년 미국 조지아대학 대학원 신문방송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88년 미국 위스콘신대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이후 한국으로 귀국해, 이듬해인 1989년에 전북대 사회과학대 언론심리학부 (신문방송학) 교수가 됩니다. 그는 이 시기부터 특유의 정치평론과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요. 특히, 1995년에 출간한 '김대중 죽이기'는 당시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미 그는 1988년부터 발간중인 월간, '인물과 사상'의 주필로서, 날카로운 논평과 지식인 및 정치인 실명 비판으로도 유명했습니다. 현재는 한국 사회의 병폐들, 정치 문제, 엘리트주의 비판,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비평으로 이름을 알린 특별한 강단 지식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위의 제목으로 2025년 4월, 국내에 출간되었습니다.

조금 공교로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다음 대선에서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의 사건이 대법원 전원 합의체에서 파기환송 되었습니다. 고등법원으로 돌아간 그의 사건은 다음 심리를 통해 유죄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요. (고등법원이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판례를 보면 말입니다.) 그런 연유로 대한민국 정치는 좀 더 고난을 당해야하는 운명과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강준만 교수는 자신의 이 글 서두에서, 당위의 측면에서 대한민국 사법 제도에 대한 비판이 어느 정도 진영 논리에 인질이 되었다는것을 밝히고, 자신은 그런 진영 논리에 자유로운 검찰과 사법부 및 그런 사법 카르텔 비판하고자하는 취지를 언급하고 있었는데요. 이러한 목적성은 상식선에서 충분히 공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책은 크게 2가지 '법조공화국'의 적나라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최근까지 존치했던 '사법고시'와 이를 통해 변호사 자격과 동시에 법조 관리로 등용되는 체계 자체에 매몰된 한국 사회와 이들 사법 관료들이 퇴임후, 얻게 되는 "전관예우"가 얼마나 한국 사회에 병폐가 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논합니다.

강 교수의 언급대로 서울대 법대 출신들 대부분이 소위 천재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1980년대 이전부터 서울대 법학과가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마당이 되었고, 그런 분위기에서 대학에 들어간 이 수재들이 고시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이 있었을 겁니다. 물론 이런 논의에서 강 교수가 확장된 분석으로 이들 사법 관료가 왜 우리의 민주주의에 큰 관심이 없게 되었는지 따로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검찰과 사법부에 소속된 행정적 법률가들이 소위 '신성 가족'이라는 깨뜨릴 수 없는 관념하에, 자신의 사적 이익과 가족만 챙길 수밖에 없는지 그러한 인식의 저변을 그는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었는데요. 이러한 관념적 행태를 전부 인성으로 치부할 수 없지만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이 천재들이 스스로 인격적으로 겸양과 겸허를 갖추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이것의 근본적 이유는 이들의 오만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국민들이 이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통해 배출된 법률가들에 대한, 특유의 찬사와 동경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이들 법률가들이 갖는 '선민 사상'은 이렇게 구조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법 제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주요 체제입니다. 시민의 기본권과 자유, 그리고 평등은 견실하고 공정한 사법 제도가 뒷받침 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물론 합리적이고 올바른 정치가 마중물이 되어야 하는 것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하는 한국 사회에서 의도적이지 않게 사법부의 어떤 판결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도 분명합니다. 강 교수는 이를 '정치의 사법화'로 인용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강교수의 탁월한 선견지명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야 할 것 없이, 이들 법조인들을 선호하는 이면에는 우리 국민이 이들 법조인들을 무척이나 좋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합니다. 즉, 그 법조 이력에 대한 터무니없는 신뢰에서 말입니다. 어느 지방에서는 검찰 출신이나 판사 출신이 선거로 나오면 그렇게 좋아한다는 사례를 들면서 말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의사와 마찬가지로 변호사와 같은 법률가들에게 지대한 동경과 표면적으로는 공부를 잘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로 일부는 폄하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걸 고려해 본다면, 오로지 시험 맹신주의만을 비판하기도 어려운 실정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들이 오로지 자신만의 능력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예전에 유출된 의사들 익명 게시판 글에서, 의사들 대부분이 돈 때문에 아둥바둥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자체를 폄하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더욱이 이들 엘리트 계급들이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삶을 그동안 조소해 왔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는데요. 아주 일차원적으로 개인의 능력에 빗대어서 말입니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우리의 엘리트주의는 일방적으로 매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까지 합니다. 본디 자본주의가 계급주의를 용인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이지만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또한 정치를 온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인원을 선발하는 제도 자체를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여기는 '왜곡된 천재들'도 문제겠지만, 이것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 자체도 정상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 역시 이러한 취지의 언급을 하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앞서 언급한 '신성 가족'과 '선민 사상'은 아주 교묘히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1990년대부터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전관예우'역시 이 책에서 잘 다루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사법시험 출신자들의 전관예우 뿐만 아니라 다른 고시, 예를들면 행정고시나 고위 공직을 역임한 관료들이 로펌이나 민간 기업에 재취업을 해 고액 연봉을 받는 등의 '전관예우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었는데요. 저 개인적으로 믿을 수가 없었던 부분은, 검찰과 판사 출신의 전관이 사건을 정식으로 수임하지 않고, 일종의 로비와 다름없는 "그 사건은 내 사건이다."라고 사건 검사와 판사에게 언질을 주며, 일종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였습니다. 한 달에 1억의 보수를 받는다는 대형 로펌의 전관 출신 변호사의 일례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요. 그래서 의뢰인들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그 판사 아느냐? 그 검사 아느냐?"는 질문을 하는 연유겠지요. 어떻게 이 지경이 된 상황에서, 국민을 위한 공정한 재판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포장된 대의,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철저한 사익 추구는 결코 사법 제도에 걸맞는 문구가 아닙니다. 이는 민주주의 체제를 아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강 교수의 이 책을 통해, 이재명 후보가 내뱉은 전관예우에 관한 발언과 그의 아내 김혜경씨의 재판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아내인 김혜경씨의 그 트위터 사건과 관련된 재판에서 전관 변호사들이 대거 변호했다는 사실에서 실망보다 더 착찹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제 개인적인 의견을 더해본다면, 이번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전원합의체 판결로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되었지만, 공적인 측면에서 그가 대선 후보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조희대 대법의 정당성을 그저 운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만약 피선거권이 박탈된다면 (높은 확률로 그렇게 되겠지요) 대선 결과가 무효로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거를 완주해 대통령이 된다면 사법 문제가 임기 내에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겠지만 그러한 임기가 과연 우리 모두가 원하는 정당한 결과인지, 당사자가 숙고해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판결의 결과가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그 결과로 인한 정치적 파급을 고려하고 더 나아가 이것이 국가 정체에 어떠한 일이 될 것인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말입니다.


-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성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이 글의 문구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 문장은 과거 바이든 행정부 당시의 인사 정책을 분석한 것에 기인한 것인데요. 이는 윤석열 행정부와 그의 관료들과 대비되어 더 인상이 깊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아니더라도 저 문장은 제가 존경해 마지 않는 로버트 달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이전에 판검사와 변호사의 관문이었던 사법시험(사법고시)이 한국인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의원들에게 정치는 먹고사는 생계수단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의원들이 생계수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벌이는 일은 정치인을 저주해야 할 이유가 된다.

사법고시생들의 이른바 ‘손익분기점‘에 대해 35세니 40세니 하고 말이 많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사회적 증거‘는 많은 사람이 하는 행동이나 갖는 믿음은 진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말한다.

한국의 정치는 당파성, 개인 중심, 기회주의성을 보이면서 합리적 타협의 기초를 결여하게 되었다.

법조 특권주의의 동력은 ‘소용돌이 사회‘인데, ‘소용돌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쓴 사람들이 ‘법조 특권주의‘를 비난하는 데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에서 소수의견을 굽히지 않은 대법관 양병호는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서 고문을 받았으며 강요 끝에 사표를 제출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단호함과 성실함을 탑재한 법조인들이 무언가에 대해 확고한 기준을 갖는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새 어떤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은 무서운 일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어느새 말끔하게 정리된 잔디밭을 돌아보았던 생각이 난다."

"민의는 법전처럼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정치는 이미 정해진 규칙에 따라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들은 눈에 보이는 업적을 군사작전 하듯이 속전속결로 해치워 보여주기 위해 공동체 의식, 시민들 간의 신뢰와 협력, 나눔과 돌봄의 문화 등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본, 아니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무형 인프라를 희생시키는 일을 해온 셈이다.

로펌은 그런 인간 정리나 이기심의 문제를 조직화하고 시스템화해 매끄럽게 처리해주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많은 전관이 로펌을 찾게 만들었다.

2018년 10월 대법원 산하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가 발표한 ‘전관예우 실태조사 및 근절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조사‘결과에 따르면, 법조 관련 종사자 (법원, 검찰청 직원 포함) 가운데 "전관예우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55.1퍼센트였다. 판사는 응답자 중 23.2퍼센트, 검사는 42.9퍼센트, 변호사는 75.8퍼센트가 인정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