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홀로코스트 - 개정판
로버트 S. 위스트리치 지음, 송충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1945년 카자흐스탄에서 폴란드 유대인 출신의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을 지닌 부모에게서 태어난 로버트 솔로먼 위스트리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소재한 헤브루 대학의 유럽 및 유대인 역사를 가르치는 학자였는데요. 지난 2015년 5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유대인과 반유대주의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학자로 이름을 올리며, 이러한 연구에 온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영국 켐브리지와 런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뒤이어 하버드, 브랜다이스, 옥스포드 등의 교환 교수를 거치면서 그는 반유대주의 연구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지금 소개해 드릴 이 책 역시 그의 학자적 양심과 연구의 한가운데 있는 논저로 저로서는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매우 차분하고 진지한 어조로 제2차 세계대전과 히틀러 그리고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꽤 존경받을 만하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이 책은 원제, “Hitler and the Holocaust”로 2004년 출간되었는데, 국내에도 마찬가지로 2004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제가 구한 판본은 개정판으로 지난 2011년 출간된 것입니다.

흔히 일반인들 가운데 몇몇은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자행된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관련해 과연 히틀러가 여러가지 정신적인 문제로 그야말로 ‘미친 짓’을 벌인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공식적으로 추계된 600만이라는 죄없는 사람들을 가스실로 보내는 짓 자체가 정상적인 행동의 산물이라고 이해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많은 유럽의 전문가들에 의해 아돌프 히틀러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에 초점이 맞춰지기도 했으나, 역시 제 예상대로 그는 매우 멀쩡한 인간이었습니다. 물론 저 멀쩡하다는 범주를 어느 정도까지 국한해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의 의견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어찌됐든 한 국가의 전쟁 수행을 최종적으로 승인했던 권력가가 아예 맛이 갔다는 식으로 치부해서는 안되는 일일겁니다. 히틀러 특유의 과대망상과 강박증이 저자인 위스트리치에 의해 소개되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전반적인 정신 이상의 근거로 쓰여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선 이 책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몇가지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먼저 14세기 이후부터 유럽에는 아주 뿌리깊은 ‘반유대주의적 풍토’가 만연했으며, 뒤에 등장하는 히틀러는 이를 아주 교묘하게 이용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대전 당시 독일 국적을 갖고 있던 많은 유대인들이 ‘독일 제국’을 위해 참전했으며, 독일 각지에 퍼져 살고 있던 유대인 공동체가 스스로도 독일사회에 잘 적응했고 18세기를 거치며 불안했던 반유대주의적 기조에 거의 종지부를 찍었다고 봤다는 점입니다. 이를 아주 간단히 말하면, 독일에 국한된 유대인들이 나름 독일 사회에 적응을 잘했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불명예스런 1차 대전의 참전 결과를 낳았던 아돌프 히틀러는 힌덴부르크를 내세워 친위 쿠데타에 성공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내심을 드러내게 됩니다. 바로 “선택된 민족은 둘일 수는 없는 것”이라는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 말입니다. 히틀러는 내부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해결을 준비하는 1941년 전까지는 자신의 이러한 반유대주의적 증오와 적개심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최종적으로는 스스로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유대인 절멸’을 승인하게 됩니다. 이것은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 Endlosung, 그리고 절멸 Vernichtung”이라는 단어로 함축할 수 있을텐데요. 즉, 이 글의 4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바와 같이 히틀러는 연합군을 유대인의 사주를 받은 세력으로 규정하고 연합국이 독일에 퍼부은 공습에 비하면 유대인들을 절멸 시킨것은 매우 인간적인 것이었고, 이는 “아리안족”에 대한 “유대인의 침략행위”로 받아들인 점은 뭔가 기괴하고 광기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실, 위스트리치가 밝히는 이러한 히틀러의 광기에는 근간의 소련에서 일어났던 볼셰비즘 혁명에는 유대인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세계의 암덩어리이자 전염병인 이 볼셰비즘을 분쇄하는 지상 최후의 명령이 나치 독일에 주어졌다는 일종의 단일대오가 있습니다. 히틀러의 제3제국이 최종적으로 소련을 분쇄하는 것에 대해 어떤 사명감을 갖고 있었는지는 불명확하나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나치즘이 공산주의의 박멸을 목표로 정치적 테제를 표명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선동주의적 나치즘이 곧이곧대로 볼셰비즘의 대항마로 빗대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독일 내부에서는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로 시작되는 침략 전쟁의 구실이 되었으니 실로 아이러니한 부분입니다. 선을 구축한 악이 자신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전부 거악이라고 찌르는 꼴이니 역시 인지부조화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런 볼셰비즘과 유대인의 한몸통이라는 곡해를 바탕으로 히틀러와 괴링, 하이드리히 등이 매우 철저하고 잔인하게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낸 것은 어떠한 철학적 기준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보통 인간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장에 보여지는 로마 카톨릭의 나치에 의한 유대인 절멸에 대한 애매한 태도, 그리고 “피를 부른 나치의 반유대주의가 저지른 이 처참한 광경을 알고서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거의 모든 개신교 및 가톨릭 성직자가 침묵을 지켰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는 서술은 그 시대의 종교적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시대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권력 고위층들이 모인 ‘반제 회의’에서 히틀러가 전면적인 유대인 절멸 계획을 창안하고 이를 수행하면서 폴란드, 체코, 헝가리,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이탈리아 등 거의 유럽 전체가 유대인 절멸에 부역한 역사는 독일의 제3제국을 악의 집합이라고 통칭하더라도 프랑스의 비시 정권이 나치에 투항한 것처럼 인간의 권력적 속성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력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 여겨집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근대가 어느 인종의 말살로 귀결되는 것으로 세기의 종말을 고한 것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대로 산업 사회에서 비롯된 어지러운 사회적 신분의 유동성을 재규정하려는 필사의 노력인 것과 같은 철학적 담론으로 나아가는 것은 개인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나, 이 홀로코스트가 우리의 근대를 아예 뒤엎어 버린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심지어 이런 나치에 자발적으로 부역한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점도 이것이 단순하게 총과 칼을 들고 위협하는 중대한 악의 총체에 일개 인간이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모든 이들의 권력으로부터 비롯된 이 전체주의가 어떻게 일개 ‘비정상적인 권력가’에 의해 이처럼 비인간성과 종말을 함께 표출할 수 있는지는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혹은 민족적으로 오래된 편견과 통념에 근거한 신념이 어떤식으로 인류를 절망에 빠트렸는지 결국 그것의 모든 것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후에 1964년 이스라엘 모사드에 붙잡힌 아이히만이 “오로지 기술적인 부분에서 어떻게 하면 신속하고 쉽게 유대인들을 처리할 수 있겠는가”에 몰입했다는 것에서 우리는 수백만의 인명을 말살한 이들의 진정한 배후가 무엇이었느냐에 대해 진정 탐구해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와 수많은 역사가들의 몫으로 남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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