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자본주의
로버트 미지크 지음, 서경홍 옮김 / 청년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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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언론인인 로버트 미지크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시사지 프로필의 베를린 특파원을 역임하고 현재는 자본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비판을 비롯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일일 정치 및 사회 문제 등을 비평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1인 미디어로서 적극적으로 비디오 블로그를 이용하고 있는데요. 그런 연유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는 좌파 언론인으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이 책은 원제 “Kaputtalismus”로 지난 2016년 독일에서 처음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이듬해인 2017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이 글의 구성은 서론 그리고 7장의 본론과 이후 간략한 결론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부 주제들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짧은 칼럼이 생각날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논증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2008년 뉴욕발 세계 금융 위기와 이후 스페인과 그리스가 맞이한 위기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유럽의 좌초한 좌파 사민주의와 그러한 토대에서 밀실 엘리트주의로 권위적 태도를 보인 유럽 정치 세력과 각 상황을 꽤 생생히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인 로버트 미지크의 비판은 전반적으로 자본주의와 세계화를 겨누고 있습니다만 이를 다시 엄밀히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와 고삐 풀린 금융 자본주의’에 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006년 이후 전세계적 경제 기조에 과도한 거품이 시스템의 좌초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예견했던 라구람 라잔과 누리엘 루비니 이 두 사람을 제외한다면 채권의 증권화를 선도하며 금융 자본주의 및 금융 시장의 붕괴를 자초했던 경제 엘리트들의 상황은 익히 많은 글과 책으로 드러나 있기도 합니다. 종래의 상품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들과 부유층의 자본을 더욱 쉽고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던 금융 자본주의가 세계적 경제학자 한스베르너 진에 의해 ‘카지노 자본주의’로 이해되기까지 그 왜곡된 노정은 가히 ‘도덕적 해이의 완결편’이라 불릴만 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여러 서평을 통해 로널드 레이건이 퇴임 직전 이란-콘트라 사건의 관련자들에게 사면을 내린것과 같은 오바마 대통령이 책임있는 경제인들을 기소하지 않은 것은 더욱 이들의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붕괴된 여러 기업에 투입된 공적 자금으로 퇴직금 잔치를 벌인 무책임한 경제 인사들이 속으로 얼마나 납세자인 시민들을 경멸했을지는 억지로 상상하지 않아도 대략 짐작이 갑니다.

여기에 미지크는 이런 세계 유수의 은행 그룹들을 ‘모리배 그룹’이라 비판하고 있는데요. “은행의 채무는 납세자들에게 지워졌고, 그 결과 국가 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고 언급합니다. 국가가 대신 책임지는 이 은행 채무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명백한데요. 수많은 자유지상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이 시장에서의 정부의 접근을 그토록 악으로 규정했다면 왜 이들은 스스로 빚으로 세운 탑의 책임을 왜 정부에 떠맡겼을까요? 역외의 역설이나 모순의 방점이라는 말로도 도저히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이러한 채무로 경제 성장과 자본 확장을 견인하는 자본주의적 구조는 “정치인들은 국가의 채무가 증가할지라도 국민들에게 돈을 선물했다는 등의 시도를 한다”고 저자는 일침합니다. 이렇듯 스페인과 그리스의 사례 역시 이와 비슷한데요. 2008년 이전 혹은 그 이후에도 중국계 자금으로 무분별한 신용 생활을 했던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과 그리스 더 나아가서는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도 비슷했습니다. 유럽 연합의 돈줄이 되고 있는 독일의 돈으로 신용 생활을 했던 스페인과 그리스도 그와 같았습니다. 다만 이러한 역설적 구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부자들의 재산이 납세자에 의해 보호되는 것”일 겁니다. 저는 이것을 부자들을 보호하는 이중 구조라 생각하는데요. 그들의 재산은 각종 시스템으로 보호하고 세금은 더 낮게 누진 과세는 반대로 매기는 소위 피케티 해법과 반대로 가는 두 가지의 혜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금 말하지만, 시장에서의 정부를 몰아내고자 노력했던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입니다. 이 부분에서도 미지크는 “왜 신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혐오하는가?”라고 되묻습니다. 과연 시장에서 민주적 통제를 제거하고 이룩한 업적이 고작 납세자들의 세금에 의지한 구제라면 우리는 더이상 할말이 없게 되겠죠. 예전의 경제학자들은 약간의 교범과 같은 의미로 ‘리스크를 줄이고 (혹은 헤지) 시장의 붕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경제학의 의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도덕적 해이로 경제 엘리트들을 지칭하게 된 것에는 다 연유가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여기에서 더 진일보해 돈에 포섭된 정치인들과 함께 “자유 민주주의 주권국가에서 권위적인 국가계획 경제주의가, 시민이 없는 민주주의가 잿빛 얼굴의 엘리트들 안에서 점점 더 많은 포고령을 통해 자본주의라는 고장난 피스톤 기계를 고치기 위하여 그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필요한 것을 관철시킨 것이다”라는 저자의 체념은 사실상 민주주의가 과두제의 위협에 직면한 것이 아닌가 불안하기까지 합니다.

아마도 세계의 수많은 정치인들에게 자신이 ‘반민주주의자’라는 딱지가 붙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민주주의는 이제는 수사에 지나지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없겠죠. 하지만 고장난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개선점을 찾아보자고 말하는 이들에게 ‘반자본주의자’라는 낙인은 매우 쉽게 찍어댑니다. ‘가장 최근의 미국사 1980-2011’를 쓴 딘 베이커의 논법 대로라면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주도한 1980년대 전후로 벌어진 신자유의적 경제 도입이 과연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는지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고 우리가 그동안 자본주의의 아주 당연한 현상이거나 논리라 여겨온 많은 모순적 상황을 어떻게 하면 개선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그동안의 면역에서 벗어나 진정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현실에서 도태되지 않은 ‘매우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진보 좌파’의 종래와는 다른 역할이 필요하며 (더이상 방관자적 패배주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경제적 공백에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포퓰리즘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시민 사회와 정치권의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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