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 - 우리가 잃어버린 보수의 가치
로저 스크러튼 지음, 박수철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로저 스크러튼은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로 켐브리지에서 미학 박사 학위를 수여 받고, 이후 런던대학교 버크벡 칼리지 교수를 역임하는 등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타임즈와 BBC에 출연하며 일반인들에게 철학과 미학의 저변을 넓히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자신이 보수주의자라고 수차례 미디어를 통해 언급하며 그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피력하기도 하였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1980년에 출간된 것으로 보이는 ‘보수주의의 의미’의 연장선상으로 이 책을 펴내게 된 것인지 약간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How to Be a Conservative”로서 지난 2014년에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2년 뒤인 2016년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우선 이 책은 총 13장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각각의 포함되고 있는 주장들은 과거 세계 2차대전 시기부터 이슬람 난민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재의 유럽까지의 논증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약간 차례대로 살펴보자면, 1장에서 저자인 로저 스크러튼은 자신이 왜 합리적 보수주의자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1장 후반부에 대처리즘을 옹호하면서도 자신은 경제적 특권을 비롯한 기득권 층에 반대하며, 특히 “보수주의를 자유시장경제학과 차별화하는 것”에 대한 언급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대처리즘으로 영국내의 경제적 엘리트들의 출현과 자신의 경제적 특권을 차별적으로 옹호하는 인사들의 등장을 초래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큰 틀에서 대처리즘을 옹호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꽤 불명확한 부분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해봤습니다.

이후, 2장과 3장에서는 보수주의가 옹호하는 전통적인 가치인 가정과 국민의 개념, 특히 9장에서 시민 사회 내에서 국가에 대한 우국충정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같이 이 부분에서도 ‘특유의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 대해 밝힙니다. 4장과 5장은 경제적인 담론에서 사회주의와 보수주의를 설명하고 6장에서는 보수주의가 추종하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그리고 7장부터 13장까지는 현재 직면한 현실에서의 보수주의자의 눈으로 보는 문제들과 그것과 관련한 여러 해결책들과 마지막에는 후세들을 위한 간략한 담화를 끝으로 글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먼저 제가 저자의 논점에 크게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오늘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한 여러 관점입니다. “경제적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도구적 이성을 억제해야 한다”는 부분이나 “개인들의 이기심에 대한 토크빌 경고”를 언급하고, 의무와 사회적 책임 등의 전반적으로 세계의 자본주의적 이행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1장에서 대처의 입을 빌어 분배와 관련해 과연 정부가 특유의 능력이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보이면서 특히 10장에서 “차별은 그것이 어떤 측면에서 부당할 경우에만 용인할 수 없다고 약간 그럴듯하게 주장하는 것이다”라고 보수주의자들에게 조언을 하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 자본주의적 체제가 사실상 시민의 평등의 큰 위협이 되는 것은 분명함에도 반대의 차별에 대한 개선 요구를 저런식으로 대처하라고 말하는 것은 뭔가 저자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6장과 7장에 등장하는 ‘합리적 이기심’에 대해서도 과연 시장과 정치에 이 합리적 이기심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 저자의 명확한 논증이 없었으며, 사실상 인용의 인용에 그치는 아쉬운 부분이라 할 만 했습니다. 물론 ‘비뚤어진 자본주의’를 바로 잡기 위해 법을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크게 동감했고, “도덕적 제재의 지원이 없으면 시장경제는 적절하게 기능할 수 없다”는 평가에도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앞선 의무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바로 시장경제를 배타적으로 옹호하는 이들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되는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사유 재산을 신봉하고 더 나아가서는 현재로선 시장 경제의 특별한 대안이 없다는 것을 저자는 주장합니다. 앞선 고삐풀린 자본주의를 다시 정상궤도에 올리기 위해선 법의 수단 뿐만 아니라 시장에 민주주의가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 개인적으로 그렇게 여기는데요. “민주주의가 특수 이익 집단의 싸움판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시민의 공공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민주적 선거만으로는 내분을 극복하거나 공적 책임의 진정한 의미를 당선자들의 마음에 심어줄 수 없다”는 어떻게 보면 민주 정치의 제도적 한계에 대한 저자의 피력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결국 자신을 보수주의자들이라고 여기는 자들은 어찌됐든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신념을 갖고 있어야 하며, 선거와 상관없는 사회의 기득권층과 보수주의자는 확연히 구분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7장 이후부터 이어지는 오늘날 (유럽의) 문제와 관련해서, 중동 지역의 여러 전쟁으로 발생한 수많은 난민들이 유럽에 유입됨으로서 이들이 종래의 국민국가주의와는 상관없는 이슬람교의 맹종과 우선시하는 가치관으로 종교 자체가 국가와 제도에 우선하는 이들의 근본적인 상황을 저자 자신이 이처럼 우려하고 있는 것에 일정 부분 동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보편적 인류애와 인간성으로 보아서는 이들 난민 문제를 격리와 추방으로 해결해서는 안되지만 이슬람인들이 대체로 종교와 세속간의 문제를 종교 우선주의로 기울어지는 것은 기존의 유럽 국가들 내부의 사회적 불안 요소를 갖게 하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저자가 밝히는 대로 큰 틀에서 국민국가적 사회 관념체계에 이들이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그대로 사회의 한 축이 되어야 함에도 ‘기독교적 사회-흡수되지 않는 별개의 이슬람’이라는 대결구도를 만들게 되는 위험을 안게 됩니다. 근본적으로 이슬람이 무엇보다 제도와 사회에 우선되는 종교적 가치관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큰 사회적 괴리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은 유럽의 기독교적 문명 토대위에 지금까지 이어 온 발전에 전통적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고 믿습니다. 사실상 저자 역시 기존의 국가와 사회에 균열을 가하는 어떠한 것들에 대해 반대하고 “규칙, 직위, 의례, 위계 등의 가치”를 옹호하며 시민들의 자유의 영속적 결사를 지지하는 것이 이들의 의무라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10장에서 “자유 결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전체주의 국가를 옹호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보수주의가 옹호하는 전반적인 자유의 의미와 이를 바탕으로 시민의 자율성과 결사를 보장해야만 한다는 가치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저자가 언급하는 ‘보수주의’에 대한 논법이 과거 에드먼드 버크의 담론과는 차이가 있으나 오늘날 극우와 구별될 만큼 그 언저리가 명확하지 않은 심지어 과두제를 옹호하는 무늬만 보수주의자들 하고는 매우 명확히 다른 보수주의라 인식될 만 했습니다. 보수의 반대는 진보가 아니라 반동이듯이 오늘날 극우와 포퓰리즘을 추종하는 보수주의가 아니라 진짜 ‘합리적인’ 보수주의가 사회에 뿌리 내리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풍오장원 2019-12-24 2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터라이프님 덕에 스크러튼을 알게 되는군요. 스크러튼이 쓴 책들 하나하나 읽어봐야겠습니다.
동의하지 못하는 의견이라도 배울 점은 있겠지요...

베터라이프 2019-12-25 10:15   좋아요 1 | URL
자유주의의 이행과정에서 보수주의와 영합한 것이 오늘날의 보수주의의 모습일텐데요.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입으로만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어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저는 사회에 상식적이고 건전한 보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면에서는 과거 보수주의 전통이 책에서만 볼 수 있는일이 되었죠. 저도 보수주의자들의 노골적인 현실 이익에는 동의하지 않는편입니다. 하여튼 댓글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