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의 설계자들 - 1945년 스탈린과 트루먼, 그리고 일본의 항복 메디치 WEA 총서 8
하세가와 쓰요시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종전의 설계자들’이라는 글을 쓴 하세가와 쓰요시는 일본 출신으로 도미하여 캘리포니아대 산타바바라 캠퍼스 역사학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일본계 미국인인 학자입니다. 그에게 필생의 논저라고 불릴만한 이 글의 목적은 2차대전 대일전과 관련하여 새롭게 살펴보는 스탈린과 소련의 역할, 그동안 학계와 많은 학자로부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이 일본과 일왕의 항복을 이끌어냈다고 알려진 기존의 믿음을 다시 재검토하게 만드는 내용들을 포함한 것입니다. 참고로 이 책은 2005년에 첫 출간이 되어. 2011년 내용의 재보강을 통한 일본판이 2011년에 나왔고, 국내 번역판은 이 2001년 판을 기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어판 서문을 저자가 직접 작성하면서 마지막 부분에 “이 책에서는 딱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이런 굴욕을 강제한 나라에 태어난 저자로서 그 역사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한국 독자들이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한국인 독자들에게 겸허한 고백을 하고 있는데요. 아마도 한국어로 번역된 자신의 책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들어있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습니다.

우선 이 책은 총 7장으로 1940년 9월 독일과 이탈리아와 함께 삼국 동맹에 가세한 시점부터 1945년 9월 5일 소련군이 쿠릴열도의 모든 섬의 점령이 완료된 시기까지를 시간적 공간의 범위로 삼고 있습니다. 약간의 논외지만, 얼마전에 서평을 썼던 가토 기요후미의 ‘대일본제국 붕괴’의 많은 근거가 바로 쓰요시의 이 글이더군요.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얄타 회담이라고 잘 알려져 있는 루즈벨트와 처칠 그리고 스탈린의 당시 막바지에 이른 대전의 향방을 탐색하는 이 정치적 회담을 ‘냉혹하게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스탈린이 주도한 루즈벨트에 대한 각종 이권 쟁취로 해석하는 ‘얄타밀약’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완전하게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저는 일차적으로 치열한 독소전쟁을 전개했던 스탈린의 소련이 동등한 연합군으로서 받아들여진 점과 전자를 통해 확장되는 얄타밀약의 논리로서 노골적인 기만정책을 통한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통한 만주의 소련군 진입을 무조건 비윤리적이고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대응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도 드러나지만 사실상 만주에 대한 이권 포기를 결정했던 장제쓰와 얄타회담을 통한 중국의 양보를 기반으로 한 소련의 이들 지역의 이익을 또 미국 정부가 기만책으로 상대했다는 점에서 솔직히 이러한 정치외교적인 전술의 시험대에서 무조건 비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워 보입니다. 그야말로 순진한 생각이죠. 더불어 일소 중립조약을 루즈벨트 역시 독일과의 전선에 모든 역량을 쏟아내고 있는 소련과 동시에 미영에게도 분명 이득이라고 봤으며, 일소 중립조약이 마찬가지로 전쟁 과정에서 소련의 이익에 그 실효를 다했다는 판단으로 이미 일본과의 참전에 정당성을 갖고 있는 소련에게 조약 위반만을 들이대는 것 또한 별다른 의미가 없어보입니다. 각각의 주요한 정치 행위자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입장에 맞는 평가와 결정이 있을 순 있겠지만, 주축국의 일원이자 침략국의 일본이 국제 무대에서의 외교적 도의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지 다들 이해하실겁니다. 루즈벨트에 이어 백악관에 등장한 해리 트루먼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결과를 “진주만에 대한 복수”로 생각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트루먼을 냉혹한 살인마라고 비난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국가적 배경과 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이런 과정에서 일왕은 ‘일격평화론’에 입각한 종전 논리를 갖고 있었는데요. 즉, 저자의 설명대로 ‘상대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날리고 그러한 유리한 배경 속에서 전쟁을 마무리한다”는 이 일격평화론은 반대로 루즈벨트와 트루먼은 ‘가혹평화론자’로서 그것이 수사에 불과할지라도 무조건 항복을 포함한 어떠한 반론도 받아들이지 않는 국익의 신봉자이자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일전에 E.H 카는 “1차대전이 전쟁에 대한 그 끝도없는 낭만주의적 분위기가 더 큰 파멸을 불러 일으켰다”고 평가한 바가 있습니다. 전쟁의 패색이 이미 시작된 대전의 암울한 분위기에서 일왕을 비롯한 당시 일본의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자원과 수단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하게 미국에게 충분한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는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국가의 운명을 손안에 놓고 가늠하는 자들이라면 모든 가능의 수를 올려놓고 또한 자신들의 그런 위치를 공고히 해주는 데 기반이 된 수많은 국민들을 희생의 값어치로 여기는 것은 더욱 피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격을 오키나와에 있었던 그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민과 군에 모두를 포함한 ‘반자이 어택’으로 만든 것만으로도 일왕이 그 권좌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전 국민을 고양시켜 대결전에 준비시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는 것은 히로히토가 얼마나 미화되어 왔는지 밝히는 사례라고 여겨집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허버트 빅스가 왜 이 일왕의 가면을 벗겨내려고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다만,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종래의 트루먼을 비롯한 미국 정부가 소련의 대일 참전을 사실상 원하고 종용해 왔다는 측면의 분석이 잘못 되었을수도 있다는 해석입니다. 물론 이것과 관련해 많은 학자들로부터 다른 의견과 해석이 있습니다만 맨하탄 계획에 의해 원자폭탄이 준비되었지만 당시 루즈벨트에 이어 대통령이 된 트루먼이 오키나와의 경험을 통한 미군들의 희생을 고려했다면 원폭이 아니더라도 소련의 참전을 통한 목적 달성이 더 쉬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를 “히로시마에 의한 원폭투하는 스탈린의 대일본 참전을 앞두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더 상세하게 서술한다면 일본의 무조건 항복 자체보다는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하여 극동과 일본에서 이익을 획득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루즈벨트가 승인한 스탈린과의 얄타 회담에서의 정치적 약속을 트루먼도 존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소련의 대일본전 참전에 대해서는 매우 마뜩치 않아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점은 스탈린에 대한 트루먼의 개인적 감정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전후 관리와 질서에 있어서 소련을 잠정적으로 적으로 여겼고, 마찬가지로 히로시마를 쑥대밭으로 만든 원자폭탄을 스탈린이 “소련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받아들인것도 트루먼과 다를바 없는 생각이겠죠.

또한 당시 일본 정부가 일방적인 소련의 일소중립 조약 거부에도 소련과의 화친을 통해 미영과의 전쟁을 끝내려고 접근한 것도 자포자기의 심정인지 외교전략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안일하게 여긴것 인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나, 능수능란한 스탈린의 책략에 놀아나 선전포고장 하나만을 손에 쥔 일본의 멍청한 대응과 미영과의 직접 교섭을 당시 일본 육군이 절체적으로 반대했다고 밝히면서 이들 육군은 “1억 일본 국민을 길동무 삼아 자폭할 각오였다”는 냉엄한 한줄 평가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도 ‘국체 호지’, ‘일왕제의 존치’를 아주 일관되게 강조했던 것은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야마토인 혹은 야마토 문명으로 여겨지는 신도와 일왕이 신과 마찬가지라고 여겨지는 믿음이 주변의 모든 것을 초월해 중요한 것인지 일개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분명 이해는 되지 않았습니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항복에 서명하기까지 일왕에 대한 전쟁 책임을 회피시키고 더불어 일왕제를 존치하는데 연합국 특히 미국의 동의를 받으려고 정치적 노력을 수없이 시도하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 실로 아연한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일왕이 일본 역사의 전면에 실질적으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메이지 유신 이후 수많은 주변의 아시아인들을 말로 다 못하는 고통에 빠트려 놓고도 그 일왕은 90세 가까이 천수를 누린 것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모든 정치적 인식과 과정이 종전 도입, ‘종전을 도입한다’는 자신들의 책임을 전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수사’의 수립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종전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 책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이 막심한 피해를 초래한 세계적인 대전과 이것의 많은 정치적 행위자들이 얼마나 규정할 수 없는 군사외교적 전략과 전술을 사용했고,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국가 관계를 수도 없이 조정하고 심지어 광범위한 기만책과 허위 전술 등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했는가에 대한 가감없는 분석입니다. 연합국에 의해 대악으로 규정된 독일과 일본의 만행을 결코 숨기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막대한 민간인들의 인명 피해를 초래했던 원폭 공격과 도쿄에 대한 미 공군의 수많은 소이탄 공격에 있어서도 ‘부수적 피해’라고 여겼던 일왕과 그 신하들, 그 반대편의 커티스 르메이 같은 적극적인 전쟁론자들 모두 우리가 이룩했던 계몽과 근대의 가치와는 매우 동떨어진 역사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전쟁에 있어서 도덕론자 같은 관찰은 피해야 하지만 지금에야 심각한 제국주의자라고 알려진 영국의 위대한 총리 윈스턴 처칠이 일본 제국주의를 일개 아시아인에 의한 똑같은 아시아인들의 다툼으로 여겼던 것과 같이 세계 2차대전이 과연 해방을 위한 전쟁이었는지는 이 책을 통해서도 결국 다시 되새김 해보게 됩니다. 다만, 지금의 수많은 일본인들이 이 책을 보고 나서 자신들의 역사를 어떻게 생각해 볼지 무척 궁금해지는 것은 또 어쩔 수가 없더군요. 저자도 이와 관련하여 글 후반부에 태평양 전쟁에 참가했던 한 해병대원이 목도했던 일본군에 의한 미군 포로와 희생된 미군들에 대한 참상을 목격하고, 이를테면 희생된 미군 병사의 성기를 잘라 목이 잘린 그 병사의 입에 넣는 등의 목불인견을 통해 일본인들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표출한 바가 있습니다. 현재의 전체 일본인들이 과거 자신들의 윗세대가 자행했던 전쟁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지 식민지 지배의 후손인 저같은 한국인은 실로 궁금할 따름입니다.

끝으로 거의 이틀동안 10시간이 넘도록 이 책에 집중을 했는데요. 만약 2차대전과 전후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하세가와 쓰요시의 이 책에 적지 않은 만족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근래에는 과거 소련측의 자료가 많이 공개되어서 특히 스탈린의 전쟁 수행에 대한 행적들이 이 책에도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앞선 표현대로 스탈린은 냉혹한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가이자,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지정학을 신봉하는 매우 현실주의자라는 것을 다시금 알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얄타회담과 당시 루즈벨트와 스탈린의 정치 게임을 좀 더 알고 싶으시다면 최근 출간된 마이클 돕스의 ‘1945’를 같이 읽어 보시면 좀 더 충분한 이해를 갖게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승현 2019-04-22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하세가와 쓰요시의 책과 관련된 도서인 『8월의 폭풍』의 역자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357299

하세가와의 책이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둘러싼 당시의 국제정치적 상황을 심도 있게 고찰하고 있다면, 『8월의 폭풍』은 하세가와 책이 비교적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서 소련군이 수행한 군사작전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8월의 폭풍』은『종전의 설계자들』의 참고문헌이기도 합니다.

『8월의 폭풍』을 『종전의 설계자들』과 같이 읽으신다면 더 많은 도움이 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가 번역한 『8월의 폭풍』도 언젠가 소개해주시고 서평을 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베터라이프 2019-04-24 08:25   좋아요 0 | URL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보도록 할게요..
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