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에서 살아남기 - 신자유주의를 넘어 대안 사회 건설까지
세르주 라투슈 지음, 이상빈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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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프랑스의 대표적인 탈성장 이론가이자 경제학자인 이 책의 저자 세르쥬 라투슈는 특히 프랑스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유엔과 같은 국제 기구내에서 활발한 여론 활동을 해왔는데요. ‘발전에서 살아남기’ 라는 이 글도 유네스코가 관여해 만들어진 연구물이라고 서두에 밝히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민음사가 라투슈의 글들을 거의 독점적으로 출간하고 있는데요. 지젝이나 랑시에르의 사례와 같이 유사하게 저작 시리즈물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라투슈는 지난 204년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낭비 사회를 넘어서’란 책으로 많은 관심을 이끌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 1980년대 이후부터 제한되게 해석한 세계 발전론의 일환으로 ‘신자유주의 사조’가 마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확산되게 이르렀는데요. 헨리 키신저는 꽤 노골적으로 “세계화는 미국의 헤게모니 정치의 새로운 이론에 불과하다”고 논평한 적이 있습니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된 세계의 북반구와 이와는 다르게 아직도 낙후되어 있는 남반구 사이의 긴장과 이러한 차이에서 발전적 욕구를 갖고 있는 남반구 세계의 현실과 일찍이 허구로 입증된 낙수 효과 이론(trickle-down effect)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과 궁극적으로 환경과 발전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것을 주요한 골자로 하는 내용을 라투슈는 이 책에 담고 있습니다.

꽤 의미있게 봤던 그의 주장들 가운데는 북반구의 선진 국가들이 아직도 경제 발전 이론에 기대어 더욱더 발전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과 많은 선진국의 경제 이론가들이 “국민 총생산의 수준과 성장을 인간 사회를 평가하는 최종적 판단으로 간주한다”는 것에 비판을 보이는 것 또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외형상 단순히 낙후되어 보인다는 이유 만으로 폭발적인 생산과 소비가 연계된 것을 주입시키고 실행을 강요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신자유주의가 갖고 있는 왜곡된 속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많은 인간들이 차별적 수준의 위치해 있고,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은 국가들이 경제 발전을 잣대로 삼고 있는 것은 일견 이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치적으로 불행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선진 국가들의 국민들의 무분별한 소비 생활이 지구 환경을 병들게 하고 있고, 앞으로 후발주자로 대기하고 있는 13억이 넘는 중국인들이 오늘날 미국인들과 비슷하게 소비하려고 든다면 과연 지구가 이를 견뎌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저로서도 선뜻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결국 전세계에 만연된 불평등의 문제는 이처럼 신자유의적 기치로 인한 문제일 수도 있다는 라투슈의 판단은 다른 여지가 없는 것인데요. 불평등의 문제를 경제 발전으로 해결하려고만 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그의 판단과 결국에는 어느 정도 복지체제의 확립에 희망을 거는 것이 온당하다는 것도 크게 수긍할 만합니다. 이미 이 책의 서두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3명이 가장 가난한 48개국의 국내 총생산 총액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고, 가장 부유한 15명의 개인 재산은 사하라 이남 지역 아프리카의 국내 총생산을 넘어선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32명의 재산은 남아시아의 국내 총생산 총액을 넘어서고, 가장 부유한 84명의 재산은 12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국내 총생산을 넘어선다”는 점은 이러한 무차별적인 부의 불평등이 단순이 개인의 능력 문제로 전가하거나 발전 상태의 차별로 비롯되는 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입니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2008년 뉴욕 금융 위기의 비참한 결말 뿐만 아니라 여느 오페라에서 극적인 장치로 대비되는 비극적 현실과 동일시되는 ‘경제적 불평등의 총체’도 그것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해 보입니다.

중간에 북반구에 의한 남반구 지역의 인종주의적 편견이 서구 백인들은 발전할 수 밖에 없었고, 남반구의 유색 인종들은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아직도 해석하는 서구의 이론가들 내지는 시스템의 존재 문제 또한 이러한 결말을 부채질한 것으로 봐야겠죠. 결국엔 북반구의 선진 국가들이 발전주의를 다소 후퇴시키고, 환경과 발전의 양립과 하등 쓸모도 없는 인종주의적 편견 등을 제거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라투슈는 보고 있는 듯 했습니다. 핵심적으로도 우리의 경제이론가들도 마땅히 환경과 경제의 양립 가능성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라투슈의 이 책은 분량이 크게 많지 않으면서도 상당히 의미있고 통찰력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본질을 노려보는 글들은 읽고 나서 적잖은 안도감을 주기도 합니다. 나중에 세르주 라투슈의 다른 글들을 좀 찾아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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