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의 조건 - 유럽은 어떻게 세계 패권을 손에 넣었는가
필립 T. 호프먼 지음, 이재만 옮김, 김영세 감수 / 책과함께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하버드 대학 출신의 역사학자로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기업경제학 석좌교수인 필립 T. 호프먼은 폴 케네디와, 새뮤얼 헌팅던 등이 유독 관심을 가졌던 과거 유럽이 어떻게 세계 패권을 거머쥘 수 있었는지에 대한 주요한 원인과 그 배경을 면밀하게 이 책에 담았는데요. 국내에 번역 출간된 제목은 ‘정복의 조건’이지만, 원제는 ‘Why Did Europe Conquer The World?’ 인데요. 직역하면 ‘유럽은 어떤 연유로 세계를 정복 할 수 있었는가’가 되겠습니다. 따라서 원제가 이 책의 내용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고 봐야겠는데요. 더불어 저자의 연구 성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세계사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이미 17세기 후반에 중국과 일본, 오스만 제국은 군사기술과 전술 면에서 서유럽에 뒤진 상태였다고 일단 저자는 결론을 내리면서, 이러한 판단에는 특히 화약 기술의 격차와 군사 전술의 차이가 서유럽과 유라시아에 근본적인 ‘힘의 차이’가 그 배경일텐데요. 서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전세계의 식민지 건설이 산업혁명과 과학 기술 및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의 발전으로 동아시아의 오랜 지역 패권국있던 중국을 굴욕적인 굴복상태로 만들었다는 논리가 비교적 정설로 있어 왔습니다. 다만 호프먼의 이 책은 산업화 이후의 제국주의 시기의 유럽은 다루지 않고 있는데요. 주로 서유럽의 비약적인 발전 단계에서 화약 기술과 군사 전술이 끊임없는 전쟁 상태로 인한 발전이 이뤄졌고 반대로 이러한 배경이 전무했던 중국과 일본, 인도, 오스만 제국, 러시아의 상황을 비교하며 분석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럽 세력에 의한 아시아 전역과 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 건설은 후에 일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아시아인들이 서구의 격차로 인해 일종의 전방위적인 종속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요. 어떻게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의 정도는 새삼 유럽인이든 미국인이든 별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물론 오늘날 아편 전쟁을 민족의 굴욕이라 여기는 중국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과제겠지요.

여기에는 우리가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해왔던 폴 케네디 식의 유럽 문명의 우위인정론이나, 결정론이나 헌팅턴의 서구개조론과는 아주 상이한 의견이 들어있습니다. 특히 ‘토너먼트 이론’ 이라 불리우는 끊임없는 전쟁 상태와 전쟁 행위에 대한 꽤 명예욕과 만족이라는 당시 유럽 왕족들과 귀족들의 가치관, 그로인한 전쟁술의 발전과 그 결과로 대두하고 도태되는 일종의 생물학적 ‘내부 경쟁 도태설’과 같은 작용과 반작용이 함께 오는 이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꽤 설득적이라고 볼 수 있는 주장인데요. 중세를 거쳐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 30년 전쟁과, 네덜란드 독립 전쟁 등과 같은 고만고만한 세력들의 끊임없는 무력 갈등과 전쟁이 고도화된 전쟁 기술을 발달시켰고 마찬가지로 화약 기술과 ‘대항해시대’의 유럽 항해술의 발전이 해군과 화포의 결합으로 나타나 전반적인 ‘유럽의 군사 고도화’에 이바지 한 것으로 여러 도표와 자료들을 인용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통일된 왕조로 거의 2천년간 유지했던 중국 왕조들과는 달리 유럽의 각 봉건 왕조들은 전쟁 물자와 그 수단을 투입하는데 정치적 비용이 매우 적었고, 반대로 중국은 특유의 유교 사상의 발전으로 백성을 희생하는 전쟁에 대한 반대에 따른 사족 계층의 영향이 극명한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일본과 같은 경우는 도쿠가와 막부 이전의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시대가 잠깐 동안 유럽의 ‘토너먼트 모델’에 들어맞는 시기였으나, 중국에 비해 초라한 일본의 국력으로 조선에 치달았다가 조명 연합군에 의해 축출당하면서 이후 탄생한 도쿠가와 막부가 외부 팽창보다는 내부 결집에 나서서 이 토너먼트 모델이 잠정적으로 소멸한 것으로 저자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의 유교나 불교와는 달리 서유럽의 기독교주의와 기독교 문화는 매우 직접적이고 강대하여 한때 속세 왕권을 패퇴시킬 정도의 힘을 갖고 십자군 원정 등과 같은 일치된 권력을 투사시켰는데요. 이 점도 전쟁이 일반적인 살육 행위라기 보다는 이것에 명예와 가치를 두고 그것을 고도화된 정치 행위로 포장한 것 등이 전반적인 군사 전략 및 전술 발전에 한 몫 하게 된 것입니다. 더불어 군사 행위의 중요한 수단이었던 화약과 화약 기술은 대개 자본집약적이어서 종국에는 이를 통한 기술 발전과 상업 발전 및 신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것으로 봐야겠는데요. 수많은 왕족 가문으로 분열된 서유럽이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자구책을 위해 봉건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중세와 16세기의 몽고와 타타르 족의 대규모 침입을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이 방파제가 됨으로써 매번 이민족의 침입에 시달렸던 중국 대륙과 다른 태생적 조건이었는데, 이 점 또한 서유럽과 유라시아의 중요한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혁신들은 후의 유럽의 제국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고, 유럽이 발전시키고 개선한 정치사 또한 유럽의 우위를 수세기 동안 가져오게 된 원동력이라는 점으로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글 전체는 꽤 진보된 개념으로 유럽의 정치와 역사를 서술하고 중국을 포함한 유라시아를 인종주의적 편견으로 단순화시키지 않고 꽤 객관적이고 입증이 될 만한 자료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여겨집니다. 일부의 서구의 역사가들은 아시아인들의 전근대성과 그들의 왕조 국가의 폐쇄성을 지표 삼아 인종주의적 사관을 주입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러한 입장은 작게나마 헌팅턴과 같은 학자들에게서도 보여져 꽤 실망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법 견고한 이론이 뒷받침 된 이와 같은 글은 절로 음미해 볼 만한데요. 다만 화약 기술과 관련하여 중국과 조선, 일본의 역사적 배경이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또한 중국은 역대 왕조에서 하층 관리들로부터 비롯된 가혹한 약탈 행위 등의 내부 모순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은 약간 아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자의 전반적인 이론과 바탕이 되는 자료들은 꽤 볼만한 것들이 있어서 나름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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