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힘 - 세상은 우리를 밀어내고, 당기고, 붙들고, 놓친다 페트로스키 선집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이충호 옮김 / 서해문집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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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밀거나 당기는 물리적 접촉 없이 작용하는 힘들이 있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중력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이다. 중력은 우리를 지구 표면에서 둥둥 떠올라 멀리 벗어나지 않게 하는 반면 아이가 쥐고 있는 끈 위의 풍선이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지구의 중력에 붙들려 살아간다. 사업자와 과학자는 우주정거장 내부 조건을 무중량 상태나 무중력 상태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미소 중력(microgravity)이라고 부른다. 이는 중력이 실제로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자 혁명이 일어나면서 전화기 내부가 전기 기계적인 것에서 전자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전기 기계는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부품이 필수적이다. 다이얼을 돌리면 테엽과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고 내부의 금속 접점이 실제로 부딪히며 전기 신호를 끊었다 이어주었다. 전자식에서는 움직이는 부품이 없다. 트랜지스터, 반도체, 집적회로 같은 고체 소자 내부에서 전자가 이동하며 신호를 처리한다.

 

간밤에 내가 잠을 잘 자는 데에는 중력이 한몫했다. 내 마음은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꿈을 꾸었을지 모르지만 내 몸은 지구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마찰은 순간적으로 작용하여 파악하기 힘든 힘이다. 그것은 꼭 필요한 힘과 잠재적 조건이 갖추어질 때에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반드시 필요한 잠재적 조건은 1) 접촉면, 2) 누르는 힘, 3) 미세한 거칠기의 세 가지다.

 

접촉면이란 두 물체의 표면이 맞닿아 있어야 한다. 누르는 힘은 표면끼리 서로 밀어붙이는 힘이 있어야 한다. 꽉 누를수록 마찰력의 잠재적 최댓값이 커진다. 미세한 거칠기란 아무리 매끄러워 보이는 표면도 분자 수준에서는 울퉁불퉁하며 이 접촉점들이 서로 엉겨 붙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물체가 가만히 있을 때는 마찰력이 0이다. 물체를 밀기 시작하는 순간 그 미는 힘과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마찰력이 작용한다.

 

미는 힘을 계속 키우면 마찰력도 같이 커지다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인 최대 정지 마찰력에 도달한다. 접촉을 포함한 모든 행동은 궁극적으로는 밀고 당기는 힘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지지만 그것들이 혼란스러운 조합으로 일어나 해석하거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마찰력은 걸어갈 때 디딤돌 역할을 하는 벽과 같다. 발을 밀었을 때 뒤에 단단한 벽이 있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듯이 마찰력이 있어야 발이 미끄러지지 않고 전진할 수 있다.

 

길을 걸으면서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저자는 서로 대응하는 한 쌍의 뉴턴의 힘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자신의 발이 땅을 누르는 힘은 작용으로, 땅이 자신의 발을 미는 힘은 반작용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끄러운 얼음판이라고 해서 뉴턴의 작용 반작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자 수준에서 발을 잡아줄 마찰력이 없기 때문에 발이 뒤로 미끄러져 나가며 앞으로 가기 위한 수평 방향의 작용을 땅에 전달하지 못한다.

 

땅을 밀지 못하니 몸을 앞으로 밀어줄 반작용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마찰력이 없으면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세상의 모든 물체에 초강력 윤활유를 바른 것 같은 상태를 넘어 제대로 서로 붙잡아두는 결속력이 사라지게 된다. 지구 전체가 거대한 액체처럼 흘러내려 형태를 잃어버리는 종말이 찾아온다. 물질 자체를 만드는 것은 화학적 결합력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물체들이 서로 미끌어지거나 흩어지지 않고 쓸모 있는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묶어주는 실질적인 결속력은 마찰력이다.

 

인류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문명적인 것이든 야만적인 것이든 모든 것을 항상 힘에 의존해 해결해왔다.(126 페이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는 늘 접촉하는 모든 것에 힘과 운동을 가하고 그 효과를 되돌려 받는다. 이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물리 세계와 그 방식에 익숙해진다. 경험의 도서관 밖에 존재하는 힘과 운동을 맞닥뜨릴 때 우리는 크게 놀라게 되는데 거기서 해를 입기도 하고 이득을 보기도 하며 즐거움을 얻을 때도 있다.

 

힘을 천연자원으로 이용하는 것은 실험실의 과학자나 사무실이나 현장의 공학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누구든지 재미로 힘을 이용할 수 있으며 그런 짓은 아름다운 행동이 아니라는 생각은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일만 하고 놀 줄 모르는 어른은 따분한 부모가 되고 만다.(173 페이지)

 

저자는 19세기의 박학다식한 지식인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이 힘의 과학과 기계의 과학이라고 부른 역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윌리엄 휴얼은 과학자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이다. 저자는 바로 그 힘의 과학과 기계의 과학이라는 분야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공학자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 중 하나는 거의 모든 기술 분야는 나머지 모든 기술 분야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리학 중에서 가장 오래된 분야인 역학은 일종의 패러다임 역할을 한다.

 

저자는 힘은 자신이 배운 화학공학, 전기공학, 심지어 핵공학 분야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고 말한다. 아주 큰 힘 앞에서 부러지는 것은 분필 뿐만이 아니다. 모든 것은 부러지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휴얼은 모든 실패는 성공을 향한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이는 저자가 얻은 교훈 중 하나였다.(189 페이지) 역사는 힘에 관한 감각과 감수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

 

이와 관련이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1986128일 폭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지호의 사고 원인을 조사하던 대통령위원회와 관련이 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이론 물리학 교수였던 리처드 파인만과 한 위원은 공청회 도중 탁자 위에서 단순한 실험을 보여주었다. 실험 장비 중에는 얼음물이 든 컵과 C형 클램프가 있었다. 파인만은 C형 클램프로 O링이라는 작은 고무 개스킷을 조였다. O링은 우주왕복선 부스터 로켓의 핵심 부품 중 하나였다. 그 결함이 사고 원인으로 의심받고 있었다. NASA 관리자 들은 챌린지호 부스터에 쓰인 O링이 탄성이 매우 뛰어나 팽창하면 어떤 틈도 메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파인만은 이 실험으로 발사 당시의 혹한 상황에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는지를 보여주었다.(혹한이란 플로리다주 지역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한파와 강풍이 몰아 닥친 순간을 말한다.) 얼음물에 담겨 있던 O 링을 꺼내 클램프로 힘을 가하자 고무는 변형된 상태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실제 로켓에서도 O링이 제 역할을 못하는 바람에 틈을 통해 가스가 뜨거운 가스가 빠져나오면서 결국 폭발사고가 났다. 이렇게 간단한 실험을 통해 복잡한 현상을 명료하게 밝힐 수 있었다.(193, 194 페이지)

 

힘이라는 개념은 쉽지도 않고 명백하지도 않다. 그 개념이 발전하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고 일부 물리학자들은 지금도 그 개념이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모든 물질은 어느 정도 탄력성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일종의 용수철이라고 볼 수 있다.(249 페이지) 이 말은 세상에 완벽하게 딱딱한(강체) 물질은 없다는 공학적 진리를 꿰뚫는 멋진 비유다. 우리 눈에는 돌, 콘크리트, 강철 등이 전혀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자나 분자의 미시 세계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든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은 전자기적 힘으로 묶여 있다. 이 원자 사이의 결합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스프링으로 연결된 것과 같다. 물체에 힘을 가하면 이 미세한 원자 스프링들이 아주 미세하게 압축되거나 늘어난다. 이는 탄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물체가 용수철처럼 작동한다는 것은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 에너지를 잠시 변형 에너지로 저장했다가 방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물질이 용수철처럼 힘에 비례해 늘어나다가 한계를 넘으면 영구적으로 변형되고 결국 부서진다.

 

압축력의 반대는 인장력이다. 우리가 줄다리기를 할 때 경험하는 힘이다. 여기서 우리는 돌기둥이나 강철들과 달리 강성이 없는 물체가 인장력과 압축력을 받을 때 다른 행동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양팀이 잡아당길 밧줄에 다가가기 전에 밧줄은 대개 땅 위에 헝클어진 정원용 호스처럼 구불구불하게 놓여 있다. 하지만 양팀이 밧줄을 집어들면 밧줄은 곧 강철 케이블처럼 곧고 뻣뻣해지는데 단 양쪽에서 충분히 강한 힘으로 끌어당길 때에만 그렇다.

 

상대팀이 없더라도 끈이나 치실을 손가락 주위에 감고 양손은 서로 멀어지게 함으로써 끌어당기는 힘과 밧줄의 모양을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손가락에 실이나 끈이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힘의 세기와 우리가 통증을 견디는 내용에 따라 것을 끊을 수도 있고 끊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윌리엄 휴얼이 역학에 기초해서 지적했던 수평 방향으로 아무리 세게 잡아당긴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결코 완전히 똑바른 직선으로 만들 수 없다. 항상 약간 처진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구조에서 모든 부분이 인장력이나 압축력은 똑같이 받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런 경우는 예외에 속한다. 공학자는 외력에 의해 구조물질 내부에 생기는 단위 면적당 힘의 세계를 응력이라고 부른다. 같은 힘이라도 표면 전체로 확산되느냐 좁은 부분에 집중되느냐에 따라 응력이 작아지거나 커질 수 있다. 지진이 구조에 손상을 입히는 또 한 가지 방법은 건물은 내버려둔 채 그 아래에 있는 지반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은 식기가 놓인 식탁에서 식탁보를 갑자기 홱 잡아당기는 것과 비슷하다.(41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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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제국 쇠망사 - 우리는 왜 멸종할 수밖에 없는가
헨리 지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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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지의 책이다. 저자는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로 알려진 고생물학자다. 저자는 데이지 커터처럼 모두에게 동일한 방식이 아니라 종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수준으로 일어난다고 말한다. 데이지 커터는 목적지에 투하되어 넓은 지역에 큰 피해를 주는 초강력 폭탄의 일종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들의 위대한 성공담 밑에서 예전보다 오래 버티고 있을 뿐 덤으로 주어진 수천 년이 끝나고 이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사피엔스는 어디를 가든 파괴를 자기 표식처럼 남기는 존재들이다. 호모 사피엔스(이하 사피엔스)는 홀로 살아 남은 호미닌이다. 호미닌이란 유인원에서 갈라져 나온 초기 인류 조상과 현생 인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피엔스는 지구의 자원을 과도하게 착취해왔다. 역사상 인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두 차례 이주를 감행했다. 20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최초의 호미닌으로 아프리카를 처음 떠났고 약 10만년 전을 시작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마침내 아시아와 유럽의 모든 다른 호미닌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 두 차례의 이주는 모두 구체적인 의도나 목적지 설정 없이 이루어졌다. 인구 압박이나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또는 사냥감 무리를 뒤쫓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향을 떠나서 살게 된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호미닌이 가끔씩 내킬 때만 두 발로 걷던 생활을 청산하고 이족보행을 기본적인 보법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모른다. 물론 이족보행은 유리한 방식이다. 인류사 전체를 통틀어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나 극도로 희귀했다. 한 끼의 식사로 아사를 면하고 또 한 끼로 멸종을 피하며 아주 작은 무리가 지구 표면으로 아슬아슬하게 퍼져나갔다.

 

사피엔스가 희귀했던 것은 1) 역사 속에서 급격한 기후 변화나 가뭄 등을 겪으며 몇 번이나 멸종할 뻔한 인구 병목 현상을 겪었고, 2) 다른 영장류에 비해 유전적 다양성이 턱없이 낮고, 3) 거대한 지구 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인류는 수십 명 단위의 아주 작은 무리를 지어 흩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을 비교한다. 왜 다른 호미닌 특히 네안데르탈인 같은 종족이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버티지 못했을까? 핵심은 집단에 크기에 있다.

 

현생인류가 조금 더 밀집된 공동체를 이루었고, 또 멀리 떨어진 무리끼리도 서로 교류했을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약 1만 년 전 일어난 농업혁명을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이자 전환점으로 설명한다. 농업혁명은 인류()의 개체 수를 늘리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인간(개인)의 행복과 건강이라는 관점에서는 영양실조, 전염병, 과도한 노동을 선물한 재앙이나 다름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 헨리 지의 통찰이다.

 

주목할 개념이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라는 말이다. 커다란 집단에서 극소수의 개체들이 떨어져 나와 새로운 지역에 정착할 때 유전적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고립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이 개념은 저자가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져나간 과정을 설명할 때 핵심 이론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아프리카에 살던 수많은 사피엔스 중 아주 일부만이 고향을 떠나 중동으로 이동했다.

 

이때 아프리카에 남은 본() 집단이 가지고 있던 풍부한 유전자 중 극히 일부분만 새 정착지로 배달되었다. 중동에 자리 잡은 소수 집단에서 또다시 더 적은 무리가 떨어져 나와 유럽으로 가고, 그중 또 일부가 아시아로, 다시 아메리카로 이동했다. 아프리카에서 멀어질수록 인류는 '창시자 효과'를 연속으로 겪으며 유전적 다양성이 처참할 정도로 복사, 축소되었다. 창시자가 된 소수의 무리는 필연적으로 아주 좁은 유전자 풀(Pool) 안에서 번식해야 하므로 극심한 근친교배를 겪게 된다.

 

큰 집단에 있을 때는 묻혀서 나타나지 않던 해로운 열성 유전 질환이나 유전적 결함들이 소수 정착지 안에서는 서로 유전자가 겹치면서 후대에 폭발적으로 발현되기 쉽다. 저자는 이를 유럽 왕가들이 근친혼으로 인해 혈우병 같은 유전병을 앓았던 것에 비유하며 초기 인류 무리 역시 이러한 유전적 결함 누적을 피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유전적으로 다양하다는 것은 어떤 전염병이 돌 때 누군가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창시자 효과 때문에 모두의 유전자가 비슷해진 인류 집단은 치명적인 전염병,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집단 전체가 한 번에 전멸할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게 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도 창시자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인류의 유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우주 식민지 개척 등을 제시한다. 아프리카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창시자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저자의 창시자 효과에 의하면 아프리카에서 아주 먼, 내가 사는 연천 전곡리에 살았던 에렉투스들은 어땠을까?

 

전곡리 주변에 살던 에렉투스는 많아야 수십 명 단위의 아주 작은 씨족 무리였을 것이다. 대륙은 너무 넓고 다른 무리는 없었기에, 이들은 수만 년 동안 그 좁은 무리 안에서만 짝을 짓는 극심한 근친교배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전학적으로 근친교배가 지속되면 해로운 열성 유전병이 고착화된다. 전곡리인들은 겉으로는 뼈가 튼튼하고 주먹도끼를 잘 만드는 강인한 사냥꾼이었을지 몰라도 유전적으로는 뼈나 장기, 혹은 면역계에 치명적인 약점을 공유한 약한 집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전곡리 유적에서 뛰어난 주먹도끼가 8,500여 점이나 나왔지만 인골 화석은 단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화석이 만들어져 전해지기가 어렵기도 한 점도 작용했겠지만 그들이 매우 적은 수로 살다가 흔적 없이 사라졌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남긴 전곡리의 주먹도끼는 위대한 유산이지만 머나먼 타향에서 외롭게 버티다 사라져 간 인류 조상들의 슬픈 흔적이라 할 수 있다.

 

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호모 에렉투스 중 기후 변화로 사바나 초원이 확장되면서 먹이(동물 미트)를 추적하던 일부 사냥꾼 무리가 우연히 중동을 거쳐 유라시아로 넘어왔다. 이때 대다수의 에렉투스는 기후가 익숙하고 살기 좋은 아프리카 본토에 그대로 남아 진화를 이어갔다. 이 남겨진 본가 집단이 훗날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를 거쳐 우리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게 된다.

 

저자의 관점에서 200만년전 아프리카를 벗어난 무리들은 검치호랑이가 먹다 버린 고기 찌꺼기를 찾아, 그리고 이동하는 초식동물 무리를 따라 초원 길을 걷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국경을 넘어버린 외로운 사냥꾼들이었다. 지리학 박사 박정재 교수에 의하면 200만 년 전 빙하기가 오자 아프리카는 예전보다 추워지고 건조해졌다. 이 변화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사냥감을 따라 아프리카를 탈출한 무리들은 역설적이게도 아프리카보다 훨씬 더 춥고 혹독한 유라시아의 진짜 추위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고향에 남은 이들은 예전보다 살기 팍팍해졌을지언정 얼어 죽을 일은 없는 온화한 피난처에서 버틴 셈이다. 정리하면 200만 년 전 에렉투스는 아프리카가 추워지고 건조해져서 먹이를 찾아 쫓기듯 탈출해 유라시아의 추위에 고생하다 멸종했고, 10만 년 전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와 중동이 따뜻하고 습윤해져서 초록 사막 고속도로를 타고 편하게 탈출했으나 기후가 다시 건조해지며 대부분 정착에 실패했다.

 

6만 년 전 사피엔스는 가뭄과 인구 압박을 뚫고 획기적인 언어와 상상력(인지혁명)을 무기로 탈출을 해 현대 80억 인류의 진짜 조상이 되었다. 유전적인 결함과 질병, 농경생활에도 불구하고(사실은 농업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거침없이 성장했다. 지구에 존재한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 호모 사피엔스는 야생이 제공하는 것만으로 근근히 살았다. 그런 방식으로 이 땅에 살 수 있는 인간은 고작 천만 명 정도였다. 농경은 이 땅이 인간을 부양할 수 있는 수용 능력을 키웠고 그렇게 인구의 수와 밀도가 증가했다.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 부족을 낳고 결국 세계 경제를 악화시켜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고 아기를 낳으려는 여성의 수, 아빠가 되고 싶은 남성의 정자 수를 감소시키는 인구 과잉의 뒤에 기후 변화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고 설명하는 저자는 이주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이주는 인류의 자연스러운 행보(173 페이지)이지만 모두가 이주를 선택하지는 않는다(174 페이지)고 결론짓는다. 저자에 의하면 인간의 출생률 감소에는 기후변화라는 위협에 대한 사람들의 내재적 인식이 반영되었을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지구의 다른 모든 호미닌의 멸종과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의 존재가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궁극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생인류가 그들보다 월등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떼로 몰려든 새 이웃에 밀려났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우주 식민지 개척이다.(198 페이지)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우주 식민 개척의 전제 조건은 지구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변하는 것이다. 이유는 현재 상태의 인류는 유전적으로 너무 취약해 우주라는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생명은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저 당장 죽지 않고 굴러갈 정도의 어설픈 땜질만으로도 40억 년을 버텨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광호흡에 대해 들어보자. 광호흡은 식물이 이산화탄소 대신 산소를 잘못 먹어 에너지를 낭비하는 현상이다. 광합성을 돕는 핵심 효소인 루비스코가 문제였다. 이 효소는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과거 지구에는 산소가 없어서 구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덥고 건조해지면 식물은 수분을 지키려 숨구멍(기공)을 닫는다. 잎 안에 산소만 가득 차자 루비스코가 산소를 덥석 붙잡는다. 그 결과 영양분 대신 독성 물질이 만들어진다. 식물은 이 독을 없애려고 여러 세포 기관을 돌며 오히려 에너지를 낭비한다. 루비스코의 오류는 광합성 오류다. 식물은 루비스코를 바꾸는 대신 오류가 나면 뒷수습을 하는 보조 공장(페록시좀, 미토콘드리아)을 옆에 새로 지었다. 저자는 식물의 광합성이 40억년에 가까운 어설픈 땜질의 결과라 말한다.(227 페이지)

 

저자가 광합성이 어설픈 땜질의 결과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리라. 저자는 1) 완벽한 설계자(마스터플랜)는 없다, 2) 우연은 비극과 기적의 양면성을 낳는다, 3) 인간도 어설픈 땜질의 결과물일 뿐이다 등의 말을 한다. 광합성을 하던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이 지구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자를 얻기 위해 주변에 흔한 물을 분해하다 보니 우연히 치명적인 독성 가스인 산소(O)가 뿜어져 나왔다.

 

이 어설픈 시스템 부작용으로 당시 지구 생명체의 99%가 전멸하는 대산화 사건(Great Oxidation Event)이 일어났고, 지구 전체가 얼어붙었다. 우리가 누리는 산소 호흡은 그 재앙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돌연변이들이 만들어낸 '우연한 부산물'일 뿐이다. 각 종()은 자기의 생태적 지위를 창조하거나 건설한다. 생태적 지위는 아주 작을 수도 있고 아주 거대할 수도 있다.

 

저자는 우주 식민지 개척을 원하는 이유로 옹호론자들이 제시하는 것들에는 실질적인 이유보다는 감상적인 이유가 더 많다고 말한다.(262 페이지) 왜 우주에 정착하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비합리적인 이유로 우주에 가려는 사람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은 아주 특별한 시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두 갈래다. 호모 사피엔스의 개체수가 급감하여 1만 년 이내에 멸종하거나 우주행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우주로 확장해 잠재적으로 수백만 년을 살거나.

 

이것은 다음 세기, 늦어도 200년 안에 내려야 하는 결정이다. 만약 호모 사피엔스가 우리 종의 장기적인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한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도 이르지 않다.(266, 267 페이지) 모두(冒頭)에서 말했듯 저자는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읽지 못했다. [인간 제국 쇠망사]를 읽은 후 이후 가장 먼저 할 일은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를 읽는 일이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단백질에 대한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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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으로 인해 다양한 가능성이 묵살되고 변화에 대한 저항이 커지게 된다. 습관은 일정한 시기의 문화적 생태를 떠받치는 두꺼운 지층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위대한 창조는 그 묵직한 습관의 지층에 습곡과 변동을 일으키는 용암의 분출과 같다. 문제는 그런 분출이 일어나는 조건과 논리적 형식을 추론하는 데 있다.”(김상환 교수 [이야기의 끈] 244 페이지)

 

“...하나의 산맥이 융기한 뒤에도 지각판은 끊임없는 활동 속에서 다른 산맥들을 만들어낸다. 산맥과도 같은 책들의 수직적 구조는 조각들을 연결하는 중심의 힘이 강력해 우리에게 커다란 세계를 열어준다. 지각의 중심적 힘이 모든 파편에 깃들어 있듯, 이런 책들은 일부만 읽어도 전체를 읽는 것과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이은혜 글항아리 대표 2026722일 중앙일보)

 

상당한 수준의 지질학적 지식을 문학 또는 이야기에 응용한 수준 높은 글이다. SF를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말하는 한 문예평론가와 비교하면 한 눈에 수준을 알 수 있다. 픽션을 허구라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과학이란 말과 함께 쓰면 공상이라 말하는지 궁금하다. 지층이란 말은 지각변동, 화석화, 빙하기, 진앙지, 샌드위치 구조 등과 함께 지질학에서 유래해 다른 분야에 쓰이는 개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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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 신기후체제의 정치
브뤼노 라투르 지음, 박범순 옮김 / 이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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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사회학자, 인류학자, 철학자, 과학기술학 연구자인 브뤼노 라투르의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법]의 핵심 메시지는 기후 위기 시대에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세계화(Global)나 폐쇄적인 국민국가(Local)라는 기존의 정치적 지향을 버리고,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현실의 토대인 대지(Terrestrial)에 안착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개념은 인류의 집단 행동과 정치적 지향을 이끄는 중력 중심을 의미하는 유인자(Attractor)란 개념이다.

 

저자에 의하면 기존의 첫 번째 유인자는 로컬이고, 두 번째 유인자는 글로벌이고, 세 번째 유인자는 엘리트들의 도피처격인 아웃 오브 디스 월드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이자 네 번째 유인자는 인류가 생존해야 할 실질적 토대인 대지다. 유인자라 번역한 끌개는 물리학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물리 시스템이 초기 상태와 상관없이 결국 수렴하고 머무르게 되는 상태 공간(State Space)상의 영역이나 궤적을 의미한다.

 

저자는 지구과학의 임계 영역(critical zone)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대기권, 생물권, 토양권, 수권, 암석권이 서로 결합하여 인류를 포함한 육상 생명체의 생존을 지탱하는 지구 표면의 동적인 경계층이다. 식물의 캐노피(나뭇가지가 무성한 최상부)부터 암석이 풍화되기 시작하는 지하수의 하한선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공간이다. 저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경험하는 지구는 사실상 놀랍게도 얇은 생물 막(biofilm)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 머리 위, 그리고 발 아래로 불과 몇 킬로미터의 두께에 지나지 않고 그 안에서만 관측할 수 있는 막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는 무한한 우주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착륙지를 바꾼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곳에 위치함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연유에서 책의 원제목인 [어디에 착륙할 것인가?]는 적절하다고 본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점잖은 사람들의 모임에서 가이아라는 말을 꺼내기가 꺼림칙하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하며 논점은 그 배후에 신의 존재를 불가피하게 의미하는 심리적 에덴 동산 관념을 거부하고 그러한 이상적이고 심리적인 조건은 오랜 세월 생명체 자체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구가 일종의 자율 조절 총체(ensemble)라고 말하며 만일 자율 조절이 없다면, 근대 산업에 의해 자율 조절이 흐트러지지 않았다면 왜 온도에 신경 쓰겠는가?라고 말한다. 저자는 생존의 위협을 다루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협력이 얼마나 특별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는 이 팬데믹 시기에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공통의 지향점을 잃어버린 상황에 저항하기 이후에 우리는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어딘가에는 착륙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정동(情動)에 대해 말한다. 정동이란 물리적 접촉이나 특정한 사건을 통해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기억, 경험, 이해를 통해 어떤 일의 동인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효과와는 구분이 되는 개념이다.

 

이는 정동의 효과이다. 실제 정동은 1. 신체적 능력의 변화: 어떤 자극을 받아 내 신체의 활동 능력(에너지, 잠재력)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역동적인 상태나 힘을 뜻함. 2. 의식 이전의 에너지: 언어로 정의되거나(: "나는 지금 슬프다") 의식적으로 인지되기 전에, 몸으로 먼저 느끼는 미시적인 에너지의 흐름 등이다.

 

우리 각각은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계속 탈주의 꿈을 꿀 것인가 아니면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영역을 찾아 나서야 하는가. 저자는 글로벌화 플러스와 글로벌화 마이너스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글로벌화 마이너스의 지지자들은 구식이고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작은 땅덩이만을 염려하고 자기 집에 틀어박힌 모든 위험에서 자신만을 보호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비난해 왔다.

 

글로벌화 플러스는 글로벌 파트너십을 심화하여 경제적 효율성과 혁신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이다. 과거의 무조건적인 세계화와 달리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을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글로벌화 마이너스는 국가 안보, 자국 산업 보호, 리스크 분산을 위해 세계화의 범위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통제하는 움직임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격언과는 반대로 역사는 단순히 비극에서 희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인 희극 속에서 한 번 더 반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문명이라는 것은 지난 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인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지질학에서 볼 때 비교적 큰 변화가 없었던 지리적 공간과 시기에 출현했다. 이런 지질 시대로 명명된 홀로세는 인간 행위를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틀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제 인간은 유일한 배우가 아닌데도 스스로는 아직도 과분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배정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69, 70 페이지) 저자는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에게도 기후에 대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이 전력을 다해 거부하는 것이 바로 그것 아닌가라고 저자는 자신의 말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녹색당들에 대해서 한마디 한다. 그들은 어떻게 끼어들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자연에 대한 문제를 내세우면 기존 정당들은 인간의 권리를 내세우면서 반대하고 녹색당들이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면 기존 정당들은 또다시 이게 당신들이 신경 쓸 문제인가?라고 묻는다. 저자는 불법적인 것은 근거지를 없애 버리는 행위이지 어디에 소속되려는 노력이 아니라고 강조한다.(80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어딘가에 착륙하기 위한 협상보다 더 혁신적인 것, 더 실전적이고 미묘하며 기술적이고 인공적인 것은 없다. 그것은 가장 투박하고 촌스러운 동시에 가장 창조적이고 현대적이다. 저자는 대지를 월딩(worlding)의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월딩은 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의 이분법을 넘어 존재하는 것들의 다원성과 그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에 세상을 개방하는 동적 과정을 말한다.

 

저자는 생태학은 정당 이름이 아니고 걱정거리도 아닌 바 그것은 대지를 향해 방향을 바꾸라는 외침이라고 말한다.(88 페이지) 저자는 우리는 과학의 온전한 힘을, 그 힘에 붙어 있던 자연의 이데올로기는 털어버리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유물론자이면서 합리적이어야 하고 이러한 자질들을 올바르게 써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어느 정도 사실적으로 대지의 상황을 그리기 위해서 또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며 효과적인 묘사를 시작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정말이지 과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전과는 관점을 달리하는 과학 말이다.(107 페이지) 저자는 대지는 아직 제도화된 존재가 아니지만 근대인들이 자연에 부여한 정치적 기능과는 확연히 다른 역할을 하는 행위자라고 말한다.

 

저자가 보는 대지는 시간이 자극에 그대로 순응하지 않는다. 기후 변화, 팬데믹, 생태계 붕괴처럼 인간이 행동에 적극적으로 반격을 가하는 역동적인 주체다. 저자는 갈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홀로세에 있으면서 단독으로 글로벌로의 비행이나 로컬로의 탈출을 꾀하는 근대의 인간들과, 인류세에 있음을 지각하고 아직 정치적 기관의 형태는 갖추지 못한 권위 아래에서 다른 대지의 것들과 함께 거주하기를 추구하는 대지의 것들 사이의 갈등이다.

 

저자는 모든 주름과 이음매가 있는 유럽을, 그들의 피난처인 유럽을 나의 고향땅이라고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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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때문에 지난 해 5월에 읽은 롤프 마이스너의 [지구에 관한 작은 책]을 다시 펴보았다. 두 번역자 중 한 사람인 이기화 교수는 최덕근 교수가 번역이 저술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저술은, 아는 것만 쓰면 되는데 번역은 자기가 모르는 것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알게 되어 대단한 행운이라 생각한다


저자를 통해 재미 있는 개념을 알았기 때문이다. 처음 읽었을 때 접했지만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가 어제 그 위상과 중요성을 깨달았다. 마샤 비요르네루드의 [Geopedia]는 나오지 않고 그의 [Timefulness]에는 나온다고 알려졌다. 롤프 마이스너, 마샤 비요르네루드 모두 구조지질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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