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 신기후체제의 정치
브뤼노 라투르 지음, 박범순 옮김 / 이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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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사회학자, 인류학자, 철학자, 과학기술학 연구자인 브뤼노 라투르의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법]의 핵심 메시지는 기후 위기 시대에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세계화(Global)나 폐쇄적인 국민국가(Local)라는 기존의 정치적 지향을 버리고,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현실의 토대인 대지(Terrestrial)에 안착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개념은 인류의 집단 행동과 정치적 지향을 이끄는 중력 중심을 의미하는 유인자(Attractor)란 개념이다.

 

저자에 의하면 기존의 첫 번째 유인자는 로컬이고, 두 번째 유인자는 글로벌이고, 세 번째 유인자는 엘리트들의 도피처격인 아웃 오브 디스 월드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이자 네 번째 유인자는 인류가 생존해야 할 실질적 토대인 대지다. 유인자라 번역한 끌개는 물리학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물리 시스템이 초기 상태와 상관없이 결국 수렴하고 머무르게 되는 상태 공간(State Space)상의 영역이나 궤적을 의미한다.

 

저자는 지구과학의 임계 영역(critical zone)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대기권, 생물권, 토양권, 수권, 암석권이 서로 결합하여 인류를 포함한 육상 생명체의 생존을 지탱하는 지구 표면의 동적인 경계층이다. 식물의 캐노피(나뭇가지가 무성한 최상부)부터 암석이 풍화되기 시작하는 지하수의 하한선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공간이다. 저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경험하는 지구는 사실상 놀랍게도 얇은 생물 막(biofilm)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 머리 위, 그리고 발 아래로 불과 몇 킬로미터의 두께에 지나지 않고 그 안에서만 관측할 수 있는 막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는 무한한 우주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착륙지를 바꾼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곳에 위치함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연유에서 책의 원제목인 [어디에 착륙할 것인가?]는 적절하다고 본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점잖은 사람들의 모임에서 가이아라는 말을 꺼내기가 꺼림칙하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하며 논점은 그 배후에 신의 존재를 불가피하게 의미하는 심리적 에덴 동산 관념을 거부하고 그러한 이상적이고 심리적인 조건은 오랜 세월 생명체 자체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구가 일종의 자율 조절 총체(ensemble)라고 말하며 만일 자율 조절이 없다면, 근대 산업에 의해 자율 조절이 흐트러지지 않았다면 왜 온도에 신경 쓰겠는가?라고 말한다. 저자는 생존의 위협을 다루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협력이 얼마나 특별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는 이 팬데믹 시기에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공통의 지향점을 잃어버린 상황에 저항하기 이후에 우리는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어딘가에는 착륙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정동(情動)에 대해 말한다. 정동이란 물리적 접촉이나 특정한 사건을 통해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기억, 경험, 이해를 통해 어떤 일의 동인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효과와는 구분이 되는 개념이다.

 

이는 정동의 효과이다. 실제 정동은 1. 신체적 능력의 변화: 어떤 자극을 받아 내 신체의 활동 능력(에너지, 잠재력)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역동적인 상태나 힘을 뜻함. 2. 의식 이전의 에너지: 언어로 정의되거나(: "나는 지금 슬프다") 의식적으로 인지되기 전에, 몸으로 먼저 느끼는 미시적인 에너지의 흐름 등이다.

 

우리 각각은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계속 탈주의 꿈을 꿀 것인가 아니면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영역을 찾아 나서야 하는가. 저자는 글로벌화 플러스와 글로벌화 마이너스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글로벌화 마이너스의 지지자들은 구식이고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작은 땅덩이만을 염려하고 자기 집에 틀어박힌 모든 위험에서 자신만을 보호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비난해 왔다.

 

글로벌화 플러스는 글로벌 파트너십을 심화하여 경제적 효율성과 혁신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이다. 과거의 무조건적인 세계화와 달리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을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글로벌화 마이너스는 국가 안보, 자국 산업 보호, 리스크 분산을 위해 세계화의 범위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통제하는 움직임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격언과는 반대로 역사는 단순히 비극에서 희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인 희극 속에서 한 번 더 반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문명이라는 것은 지난 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인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지질학에서 볼 때 비교적 큰 변화가 없었던 지리적 공간과 시기에 출현했다. 이런 지질 시대로 명명된 홀로세는 인간 행위를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틀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제 인간은 유일한 배우가 아닌데도 스스로는 아직도 과분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배정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69, 70 페이지) 저자는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에게도 기후에 대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이 전력을 다해 거부하는 것이 바로 그것 아닌가라고 저자는 자신의 말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녹색당들에 대해서 한마디 한다. 그들은 어떻게 끼어들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자연에 대한 문제를 내세우면 기존 정당들은 인간의 권리를 내세우면서 반대하고 녹색당들이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면 기존 정당들은 또다시 이게 당신들이 신경 쓸 문제인가?라고 묻는다. 저자는 불법적인 것은 근거지를 없애 버리는 행위이지 어디에 소속되려는 노력이 아니라고 강조한다.(80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어딘가에 착륙하기 위한 협상보다 더 혁신적인 것, 더 실전적이고 미묘하며 기술적이고 인공적인 것은 없다. 그것은 가장 투박하고 촌스러운 동시에 가장 창조적이고 현대적이다. 저자는 대지를 월딩(worlding)의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월딩은 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의 이분법을 넘어 존재하는 것들의 다원성과 그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에 세상을 개방하는 동적 과정을 말한다.

 

저자는 생태학은 정당 이름이 아니고 걱정거리도 아닌 바 그것은 대지를 향해 방향을 바꾸라는 외침이라고 말한다.(88 페이지) 저자는 우리는 과학의 온전한 힘을, 그 힘에 붙어 있던 자연의 이데올로기는 털어버리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유물론자이면서 합리적이어야 하고 이러한 자질들을 올바르게 써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어느 정도 사실적으로 대지의 상황을 그리기 위해서 또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며 효과적인 묘사를 시작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정말이지 과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전과는 관점을 달리하는 과학 말이다.(107 페이지) 저자는 대지는 아직 제도화된 존재가 아니지만 근대인들이 자연에 부여한 정치적 기능과는 확연히 다른 역할을 하는 행위자라고 말한다.

 

저자가 보는 대지는 시간이 자극에 그대로 순응하지 않는다. 기후 변화, 팬데믹, 생태계 붕괴처럼 인간이 행동에 적극적으로 반격을 가하는 역동적인 주체다. 저자는 갈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홀로세에 있으면서 단독으로 글로벌로의 비행이나 로컬로의 탈출을 꾀하는 근대의 인간들과, 인류세에 있음을 지각하고 아직 정치적 기관의 형태는 갖추지 못한 권위 아래에서 다른 대지의 것들과 함께 거주하기를 추구하는 대지의 것들 사이의 갈등이다.

 

저자는 모든 주름과 이음매가 있는 유럽을, 그들의 피난처인 유럽을 나의 고향땅이라고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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