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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제국 쇠망사 - 우리는 왜 멸종할 수밖에 없는가
헨리 지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5년 9월
평점 :
헨리 지의 책이다. 저자는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로 알려진 고생물학자다. 저자는 데이지 커터처럼 모두에게 동일한 방식이 아니라 종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수준으로 일어난다고 말한다. 데이지 커터는 목적지에 투하되어 넓은 지역에 큰 피해를 주는 초강력 폭탄의 일종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들의 위대한 성공담 밑에서 예전보다 오래 버티고 있을 뿐 덤으로 주어진 수천 년이 끝나고 이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사피엔스는 어디를 가든 파괴를 자기 표식처럼 남기는 존재들이다. 호모 사피엔스(이하 사피엔스)는 홀로 살아 남은 호미닌이다. 호미닌이란 유인원에서 갈라져 나온 초기 인류 조상과 현생 인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피엔스는 지구의 자원을 과도하게 착취해왔다. 역사상 인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두 차례 이주를 감행했다. 약 20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최초의 호미닌으로 아프리카를 처음 떠났고 약 10만년 전을 시작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마침내 아시아와 유럽의 모든 다른 호미닌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 두 차례의 이주는 모두 구체적인 의도나 목적지 설정 없이 이루어졌다. 인구 압박이나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또는 사냥감 무리를 뒤쫓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향을 떠나서 살게 된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호미닌이 가끔씩 내킬 때만 두 발로 걷던 생활을 청산하고 이족보행을 기본적인 보법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모른다. 물론 이족보행은 유리한 방식이다. 인류사 전체를 통틀어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나 극도로 희귀했다. 한 끼의 식사로 아사를 면하고 또 한 끼로 멸종을 피하며 아주 작은 무리가 지구 표면으로 아슬아슬하게 퍼져나갔다.
사피엔스가 희귀했던 것은 1) 역사 속에서 급격한 기후 변화나 가뭄 등을 겪으며 몇 번이나 멸종할 뻔한 인구 병목 현상을 겪었고, 2) 다른 영장류에 비해 유전적 다양성이 턱없이 낮고, 3) 거대한 지구 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인류는 수십 명 단위의 아주 작은 무리를 지어 흩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을 비교한다. 왜 다른 호미닌 특히 네안데르탈인 같은 종족이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버티지 못했을까? 핵심은 집단에 크기에 있다.
현생인류가 조금 더 밀집된 공동체를 이루었고, 또 멀리 떨어진 무리끼리도 서로 교류했을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약 1만 년 전 일어난 농업혁명을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이자 전환점으로 설명한다. 농업혁명은 인류(종)의 개체 수를 늘리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인간(개인)의 행복과 건강이라는 관점에서는 영양실조, 전염병, 과도한 노동을 선물한 재앙이나 다름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 헨리 지의 통찰이다.
주목할 개념이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라는 말이다. 커다란 집단에서 극소수의 개체들이 떨어져 나와 새로운 지역에 정착할 때 유전적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고립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이 개념은 저자가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져나간 과정을 설명할 때 핵심 이론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아프리카에 살던 수많은 사피엔스 중 아주 일부만이 고향을 떠나 중동으로 이동했다.
이때 아프리카에 남은 본(本) 집단이 가지고 있던 풍부한 유전자 중 극히 일부분만 새 정착지로 배달되었다. 중동에 자리 잡은 소수 집단에서 또다시 더 적은 무리가 떨어져 나와 유럽으로 가고, 그중 또 일부가 아시아로, 다시 아메리카로 이동했다. 아프리카에서 멀어질수록 인류는 '창시자 효과'를 연속으로 겪으며 유전적 다양성이 처참할 정도로 복사, 축소되었다. 창시자가 된 소수의 무리는 필연적으로 아주 좁은 유전자 풀(Pool) 안에서 번식해야 하므로 극심한 근친교배를 겪게 된다.
큰 집단에 있을 때는 묻혀서 나타나지 않던 해로운 열성 유전 질환이나 유전적 결함들이 소수 정착지 안에서는 서로 유전자가 겹치면서 후대에 폭발적으로 발현되기 쉽다. 저자는 이를 유럽 왕가들이 근친혼으로 인해 혈우병 같은 유전병을 앓았던 것에 비유하며 초기 인류 무리 역시 이러한 유전적 결함 누적을 피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유전적으로 다양하다는 것은 어떤 전염병이 돌 때 누군가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창시자 효과 때문에 모두의 유전자가 비슷해진 인류 집단은 치명적인 전염병,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집단 전체가 한 번에 전멸할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게 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도 창시자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인류의 유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우주 식민지 개척 등을 제시한다. 아프리카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창시자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저자의 창시자 효과에 의하면 아프리카에서 아주 먼, 내가 사는 연천 전곡리에 살았던 에렉투스들은 어땠을까?
전곡리 주변에 살던 에렉투스는 많아야 수십 명 단위의 아주 작은 씨족 무리였을 것이다. 대륙은 너무 넓고 다른 무리는 없었기에, 이들은 수만 년 동안 그 좁은 무리 안에서만 짝을 짓는 극심한 근친교배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전학적으로 근친교배가 지속되면 해로운 열성 유전병이 고착화된다. 전곡리인들은 겉으로는 뼈가 튼튼하고 주먹도끼를 잘 만드는 강인한 사냥꾼이었을지 몰라도 유전적으로는 뼈나 장기, 혹은 면역계에 치명적인 약점을 공유한 약한 집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전곡리 유적에서 뛰어난 주먹도끼가 8,500여 점이나 나왔지만 인골 화석은 단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화석이 만들어져 전해지기가 어렵기도 한 점도 작용했겠지만 그들이 매우 적은 수로 살다가 흔적 없이 사라졌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남긴 전곡리의 주먹도끼는 위대한 유산이지만 머나먼 타향에서 외롭게 버티다 사라져 간 인류 조상들의 슬픈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약 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호모 에렉투스 중 기후 변화로 사바나 초원이 확장되면서 먹이(동물 미트)를 추적하던 일부 사냥꾼 무리가 우연히 중동을 거쳐 유라시아로 넘어왔다. 이때 대다수의 에렉투스는 기후가 익숙하고 살기 좋은 아프리카 본토에 그대로 남아 진화를 이어갔다. 이 남겨진 본가 집단이 훗날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를 거쳐 우리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게 된다.
저자의 관점에서 200만년전 아프리카를 벗어난 무리들은 검치호랑이가 먹다 버린 고기 찌꺼기를 찾아, 그리고 이동하는 초식동물 무리를 따라 초원 길을 걷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국경을 넘어버린 외로운 사냥꾼들이었다. 지리학 박사 박정재 교수에 의하면 200만 년 전 빙하기가 오자 아프리카는 예전보다 추워지고 건조해졌다. 이 변화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사냥감을 따라 아프리카를 탈출한 무리들은 역설적이게도 아프리카보다 훨씬 더 춥고 혹독한 유라시아의 진짜 추위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고향에 남은 이들은 예전보다 살기 팍팍해졌을지언정 얼어 죽을 일은 없는 온화한 피난처에서 버틴 셈이다. 정리하면 200만 년 전 에렉투스는 아프리카가 추워지고 건조해져서 먹이를 찾아 쫓기듯 탈출해 유라시아의 추위에 고생하다 멸종했고, 10만 년 전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와 중동이 따뜻하고 습윤해져서 초록 사막 고속도로를 타고 편하게 탈출했으나 기후가 다시 건조해지며 대부분 정착에 실패했다.
6만 년 전 사피엔스는 가뭄과 인구 압박을 뚫고 획기적인 언어와 상상력(인지혁명)을 무기로 탈출을 해 현대 80억 인류의 진짜 조상이 되었다. 유전적인 결함과 질병, 농경생활에도 불구하고(사실은 농업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거침없이 성장했다. 지구에 존재한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 호모 사피엔스는 야생이 제공하는 것만으로 근근히 살았다. 그런 방식으로 이 땅에 살 수 있는 인간은 고작 천만 명 정도였다. 농경은 이 땅이 인간을 부양할 수 있는 수용 능력을 키웠고 그렇게 인구의 수와 밀도가 증가했다.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 부족을 낳고 결국 세계 경제를 악화시켜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고 아기를 낳으려는 여성의 수, 아빠가 되고 싶은 남성의 정자 수를 감소시키는 인구 과잉의 뒤에 기후 변화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고 설명하는 저자는 이주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이주는 인류의 자연스러운 행보(173 페이지)이지만 모두가 이주를 선택하지는 않는다(174 페이지)고 결론짓는다. 저자에 의하면 인간의 출생률 감소에는 기후변화라는 위협에 대한 사람들의 내재적 인식이 반영되었을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지구의 다른 모든 호미닌의 멸종과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의 존재가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궁극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생인류가 그들보다 월등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떼로 몰려든 새 이웃에 밀려났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우주 식민지 개척이다.(198 페이지)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우주 식민 개척의 전제 조건은 지구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변하는 것이다. 이유는 현재 상태의 인류는 유전적으로 너무 취약해 우주라는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생명은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저 당장 죽지 않고 굴러갈 정도의 어설픈 땜질만으로도 40억 년을 버텨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광호흡에 대해 들어보자. 광호흡은 식물이 이산화탄소 대신 산소를 잘못 먹어 에너지를 낭비하는 현상이다. 광합성을 돕는 핵심 효소인 루비스코가 문제였다. 이 효소는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과거 지구에는 산소가 없어서 구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덥고 건조해지면 식물은 수분을 지키려 숨구멍(기공)을 닫는다. 잎 안에 산소만 가득 차자 루비스코가 산소를 덥석 붙잡는다. 그 결과 영양분 대신 독성 물질이 만들어진다. 식물은 이 독을 없애려고 여러 세포 기관을 돌며 오히려 에너지를 낭비한다. 루비스코의 오류는 광합성 오류다. 식물은 루비스코를 바꾸는 대신 오류가 나면 뒷수습을 하는 보조 공장(페록시좀, 미토콘드리아)을 옆에 새로 지었다. 저자는 식물의 광합성이 40억년에 가까운 어설픈 땜질의 결과라 말한다.(227 페이지)
저자가 광합성이 어설픈 땜질의 결과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리라. 저자는 1) 완벽한 설계자(마스터플랜)는 없다, 2) 우연은 비극과 기적의 양면성을 낳는다, 3) 인간도 어설픈 땜질의 결과물일 뿐이다 등의 말을 한다. 광합성을 하던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이 지구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자를 얻기 위해 주변에 흔한 물을 분해하다 보니 우연히 치명적인 독성 가스인 산소(O₂)가 뿜어져 나왔다.
이 어설픈 시스템 부작용으로 당시 지구 생명체의 99%가 전멸하는 대산화 사건(Great Oxidation Event)이 일어났고, 지구 전체가 얼어붙었다. 우리가 누리는 산소 호흡은 그 재앙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돌연변이들이 만들어낸 '우연한 부산물'일 뿐이다. 각 종(種)은 자기의 생태적 지위를 창조하거나 건설한다. 생태적 지위는 아주 작을 수도 있고 아주 거대할 수도 있다.
저자는 우주 식민지 개척을 원하는 이유로 옹호론자들이 제시하는 것들에는 실질적인 이유보다는 감상적인 이유가 더 많다고 말한다.(262 페이지) 왜 우주에 정착하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비합리적인 이유로 우주에 가려는 사람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은 아주 특별한 시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두 갈래다. 호모 사피엔스의 개체수가 급감하여 1만 년 이내에 멸종하거나 우주행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우주로 확장해 잠재적으로 수백만 년을 살거나.
이것은 다음 세기, 늦어도 200년 안에 내려야 하는 결정이다. 만약 호모 사피엔스가 우리 종의 장기적인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한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도 이르지 않다.(266, 267 페이지) 모두(冒頭)에서 말했듯 저자는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읽지 못했다. [인간 제국 쇠망사]를 읽은 후 이후 가장 먼저 할 일은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를 읽는 일이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단백질에 대한 책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