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은 아니지만 좋아하던 성경구절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 23장 10절; 개역개정)라는 구절이다. 이 구절 앞에는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8절),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9절) 등의 구절이 있다.
지금 내 마음에 더 와닿는 구절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린도전서 13장 12절)란 구절이다. 두 구절은 지금은 고통(불확실)스러우나 미래에는 그것들이 극복되어 승리할 것이라는 의미, 희망 등이 담긴 구절들이라는 점에서 같다. 또한 이 구절들은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의 첫 구절(1비가)을 연상하게 한다. 내가 설령 울부짖는다 해도 여러 서열의 천사들 중 누가 이 소리를 들어줄 것인가? 물론 전자는 절망스럽지만 희망을 예기하게 하고 후자는 그냥 절망스럽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10비가)에서 릴케는 ˝그리고 우리, 솟아오르는 행복을 생각하는 우리는 감동을 느끼리라, 행복함이 내려 떨어질 때 우리를 거의 당황하게 하는 감동을˝이란 말로 희망을 전한다.
욥의 말은 거창하다. 바울의 말은 소박하다. 이 차이 때문에 나는 젊어서 좋아하던 구절을 놓고 소박한 바울의 말을 좋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