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래 전 읽던 최승자 시인의 ‘길이 없어’의 구절들이 생각나는 순간들이 있다. “길이 없어 그냥/ 박꽃처럼 웃고 있을 뿐,// 답신을 기다리지는 않아요./ 오지 않을 답신 위에/ 흰 눈이 내려 덮이는 것을/ 응시하고 있는 나를 응시할 뿐....” 이 응시하는 나를 응시한다는 표현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 염명순 시인의 ‘국경을 넘으며’의 한 부분이다. “나는 내 인생을 여행하지도 않았으며/ 정박하지도 않았다/ 단지 입회했을 뿐이다..” 그리고 장석남 시인의 ‘한진여’란 시. “나는 나에게 가기를 원했으나 늘 나에게 가기 전에/ 먼저 등뒤로 해가 졌으며 밀물이 왔다 나는 나에게로 가/ 는 길을 알았으나 길은 물에 밀려가고 물 속으로 잠기고/ 안개가 거두어갔다...” 리얼해서 참혹하고 그래서 아름다운 감정이입(感情移入)의 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