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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위한 양자물리학
리언 M. 레더먼 & 크리스토퍼 T. 힐 지음, 전대호 옮김 / 승산 / 2013년 5월
평점 :
리언 레더먼과 크리스토퍼 힐의 [시인을 위한 양자물리학]은 원제도 [Quantum Physics for Poet]로 우리 말 버전과 같다. 본문에 반감기 계산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원자물리학자, 핵물리학자, 입자물리학자의 주요 일거리이지만 특정 우라늄 원자 하나가 언제 붕괴할지는 양자 이론으로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두 저자는 양자 물리학은 언뜻 보면 애매하고 부정확한 듯하지만 실은 실재를 이해하는 올바른 길, 더 나아가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라고 말한다.(29 페이지)
하이젠베르크는 전자들의 경로에 대한 지식은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원자가 방출하는 빛에 대해서는 정확한 결론들을 내놓는 이론을 개발했다. 그가 보기에 궁극적으로는 사건들이 일어날 가능성과 확률만이 본래적인 불확실성을 동반한 채 존재했다. 이것이 신생 양자 물리학이 포착한 새로운 실재였다. 기이하게도 전자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을 때에는 두 경로를 한꺼번에 거치고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지켜볼 때에는 하나의 확정된 경로를 거치는 것처럼 보인다.
전자는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다. 또한 입자이면서 파동이다. 전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다. 전자는 양자 상태다.(33, 34 페이지) 저자들은 우리는 양자 이론을 가지고 놀고 시험하면서 양자 이론에 익숙해지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쿼크들로 이루어진 입자에도 파동 개념이 적용된다. 쿼크들은 양성자와 중성자와 모든 핵물질의 기초 재료이다. 막스 보른은 우리가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며 알 수도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엄밀한 원인과 결과 대신 확률을 우주에 지배자로 받아들이는 것을 일부 물리학자들이 반역행위로 여긴 이유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막스 플랑크,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등이다. 두 저자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원자와 분자가 주인공인 야릇한 미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개발된 물리학 법칙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라 말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뉴턴적인 언어가 새로운 원자 세계를 기술하는데 실패한 것이 양자 이론이 선택된 원인이라는 점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이론이라는 단어를 여러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흠이고 실제로 이론은 과학적으로 잘 정의된 단어가 전혀 아니다. 결론이란 데이터를 합리적이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기 위해 고안된 가설이나 가설적인 생각을 뜻한다.(53 페이지) 살아 남는 이론은 측정 및 관찰과 가장 잘 일치하는 이론이다. 그 이론에 대한 검증은 다양하고 극단적인 조건에서 이루어질수록 더 좋다. 언젠가 그 이론은 최고의 지위에 올라 더 나은 설명이 제시될 때까지 그 지위를 유지한다.
이론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과학은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이론이다. 요컨대 양자 이론은 사실이다. 과학의 역사는 기존 지식을 포용하는 혁명들의 역사이다. 양자 물리학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는 것과 같다. 저자들은 양자 이론의 기괴함은 상당 부분 인간의 조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58 페이지) 갈릴레오와 뉴턴이 제시한 모든 법칙들은 약 300년 동안 정론으로서 지배력을 유지했다. 그 법칙들은 고전 물리학의 아름다움과 합리적 안정성을 대표했다.
고전 물리학의 황금시대의 운동법칙들은 질서정연했고 보편적인 중력 법칙은 사과와 소행성을 공이 지배했으며 전기 이론과 자기 이론의 바탕에 깔린 경이로운 대칭성이 밝혀졌고 빛이 전자기장의 파동이라는 통찰까지 이루어졌다. 1900년부터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두 저자는 왜 장작불이나 토스터의 열선은 붉게 빛날까?라는 질문이 양자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젖혔다고 설명한다.
플랑크의 면밀한 계산에 따르면 소량의 단파장 복사는 같은 소량의 장파장 복사보다 세기(밝기)가 훨씬 더 강해야 한다. 왜냐하면 파란색 빛이 더 작아서(파장이 더 짧아서) 주어진 공간에 더 많이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랑크는 맥스웰의 고전적인 빛 이론에서는 모든 뜨거운 물체가 온도와 상관없이 항상 희푸르게 빛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실험에서 관찰한 낮은 온도의 흑체 복사 곡선에는 파란색 빛보다 빨간색 빛이 훨씬 더 많았다. 아니 파란색 빛은 없다시피 했다.
플랑크는 두 가지 점에서 고전이론과 극적으로 결별했다. 첫 번째 결별은 복사의 세기(에너지 보유량)와 진동수를 연결한 것이고 두 번째 결별은 덩어리 즉 양자를 도입한 것이다. 맥스웰 이론에서 빛의 세기는 연속적으로 변하며 전자기 파동의 진폭에만 의존한다. 플랑크의 이론에서 특정 진동수의 빛의 세기는 양자의 개수이고 양자 각각이 보유한 에너지는 진동수에 비례한다. 고전 물리학의 토대가 허물어지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기 시작했을 때 광전 효과라는 쓰나미가 갈릴레오와 뉴턴과 맥스웰의 자식이라 할 만한 고전 물리학을 덮쳤다. 광전 효과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을 때에도 광전지 형태로 이용된다.
광전 효과의 기본 원리는 빛이 들어가면 전기가 나온다로 요약할 수 있다. 광전 효과는 빛이 입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자 방출 여부는 빛의 밝기가 아니라 빛의 색깔에 좌우된다. 빛의 진동수가 어느 한계 아래이면 전자가 방출되지 않는다. 밝기는 빛의 양(에너지 세기)에 의해 결정되고 빛의 색은 파장에 의해 결정된다. 플랑크의 자외선 파탄 해결과 아인슈타인의 양자 효과 설명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고전 물리학은 20세기 초에 세 번째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그 충격을 건포도 푸딩 모형의 실패라고 부르려 한다.
원자는 전체적으로 말랑말랑한 건포도 같다고 생각했으나 중심에 단단한 핵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새 모형이 생긴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일로 톰슨의 모형은 러더퍼드의 모형으로 대체되었다. 보어와 러더퍼드가 없었다면 미국 원자력위원회를 상징하는 원자 도안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러더퍼드는 원자핵을 발견했고, 보어는 전자는 핵 주위의 정해진 특정 궤도만을 안정적으로 공전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고전 물리학의 법칙들에 따르면 전자가 원자핵 주위의 궤도를 도는 것은 불가능하다.
궤도 운동을 하는 전자는 가속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모든 원 운동은 속도의 방향이 끊임없이 바뀌는 운동이므로 가속도 운동이다. 그리고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 따르면 가속하는 전하는 전자기 복사 곧 빛의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해야 한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계산해보면 궤도 운동을 하는 전자는 모든 에너지를 순식간에 방출하고 마치 날개를 다친 새처럼 나선을 그리면서 떨어져 핵에 부딪힌다는 결론이 나온다. 예컨대 전자들의 궤도와 원자 자체가 붕괴할 것이며 그렇게 붕괴한 원자는 화학적으로 생명도 효용도 없는 존재일 것이다.
이처럼 고전이론에 입각하면 전자의 에너지, 원자, 원자핵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터무니없게 들리므로 새로운 이론 즉 양자 이론을 발명할 필요가 있었다. 보어는 가장 작은 전자 궤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즉시 깨달았다. 그 궤도는 모든 가능한 궤도들 가운데 세대에 가장 가까이 있으며 둘레가 가장 짧다. 그 궤도에 진입한 전자는 더 이상 핵을 향해 떨어지지 않는다. 이 최소 궤도를 일컬어 바닥 상태라 한다. 바닥 상태란 최저에너지 상태이다. 전자가 바닥 상태에 이르면 더 낮은 상태로 옮겨갈 수 없기에 원자는 안정된다. 바닥 상태는 모든 양자 시스템이 지닌 특징이다. 진공은 온 우주의 바닥 상태다.
물은 육안으로는 연속적이지만 미시적으로는 불연속적이다. 우리는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보어, 보른 등을 거쳐서 지금 어디에 도착했을까? 우리는 확률 파동을 알고 불확정성관계를 안다. 불확정성관계는 입자 관점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때로는 파동, 때로는 입자라는 말로 대변되는 위기는 해소되었다. 전자와 광자는 입자이다. 이들의 행동을 기술하려면 파동 함수를 언급해야 한다. 파동 함수들은 간섭할 수 있고 입자들은 확률 파동 함수에 맞게 나타날 자리에서 고분고분 나타난다. 그들이 어떻게 거기까지 가느냐는 허용되지 않는 질문이다. 이것이 코펜하겐 해석이다.
코펜하겐 해석의 성취는 확률과 양자적인 기괴함을 받아들이는 대가(代價)다.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드브로이, 플랑크 등은 자연이 원자 규모의 대상들을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한다는 생각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양자 이론이 미봉책에 불과하며 결국 결정론적이고 인과적인 이론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믿음을 고수했다. 그는 불확정성관계를 우회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오랫동안 여러 시도를 했다. 그러나 보어는 그 시도들을 하나씩 차례로 즐겁게 반박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가시지 않은 실존적 불안과 성취감이 뒤섞인 묘한 감정으로 이 장을 마무리한다. 1920년대가 끝날 즈음 양자역학은 이미 성숙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성취들과 개량들로 인해 양자역학은 1940년대까지도 뜨거운 논쟁거리로 남게 되었다. 양자 이론은 물리학의 울타리를 넘어 과학 전체에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생물학, 생화학뿐 아니라 천체물리학, 핵과학, 암호학, 재료과학, 전자공학 등도 양자 혁명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양자 물리학이 없었다면 정보기술은 종이 서류 보관용 장을 설계하는 기술 정도에 머물렀을 것이다.
베르너 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와 막스 보른의 확률 해석이 없었다면 정보기술이라는 것이 과연 생겨나기나 했을까? 시스템들은 가능한 최저 에너지 상태를 취하려고 한다. 원자의 경우에는 양자 규칙들에 의해 전자가 들어가서 운동할 수 있는 궤도 함수들이 규정되고 각 궤도 함수는 고유한 에너지를 갖는다. 원자를 이해하기 위한 마지막 주요 발걸음은 궤도 함수 각각에 오직 전자 2개만 들어갈 여유가 있다는 또 하나의 놀라운 깨달음이다. 파울리의 배타 원리에 따르면 원자 내부에서 두 전자가 동시에 동일한 양자 상태를 취할 수 없다.
두 전자가 동시에 동일한 양자 상태를 취할 수 없다는 말은 위치, 모양, 에너지, 회전 방향 등이 100% 같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회전 방향(스핀)만은 달라야 한다. 이 법칙 때문에 전자들이 한곳에 다 뭉쳐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서 다양한 원소들을 만들고 지금의 물질세계를 있게 한 것이다. 우리가 벽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도 파울리의 배타 원리에 의한 결과다. 같은 자리를 공유할 수 없는 전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가 없었다면 세상의 모든 물질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푹 꺼져버렸을 것이다. 파울리의 배타 원리가 만든 이 거대한 힘을 물리학에서는 전자 축퇴압이라고 한다. 축퇴압은 빈 자리가 하나도 없이 꽉 찬 것을 의미한다.
파울리의 배타 원리는 그의 최대 업적 중 하나였다. 그 원리는 원소 주기율표가 왜 그런 모습인지 설명함으로써 우리에게 화학을 선사했다. 파울리의 배타 원리는 주어진 원자 내부에서두 전자가 정확히 똑같은 양자 상태에 있을 수 없다는 간단한 명제다. 두 전자가 정확히 똑같은 상태에 있는 것은 금지된다. 이 간단한 규칙 덕분에 우리는 원소 주기율표에 등재된 원자들의 구조와 화학적 성질을 이해할 수 있다. 원자들의 구조는 파울리 제시한 두 가지 규칙에 따라 결정된다. 1) 전자들의 양자 상태는 다 달라야 한다. 2) 배열은 에너지가 최대한 낮아지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 규칙은 왜 중력이 작용하면 물체들이 떨어지는지도 설명해준다. 스핀이 있고 그 하위 범주에 전자 스핀이 있다.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흔히 스핀이라고 하는 것은 전자스핀을 지칭하는 것이다. 파울리의 배타 원리는 하나의 양자 상태에는 스핀이 서로 다른 페르미온 입자가 최대 두 개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원리다. 수소는 헬륨과 달리 채워지지 않은 껍질을 가졌다. 수소가 채워지지 않은 껍질을 가졌기에 결합하려는 욕구를 갖는 것이고 역시 채워지지 않은 껍질을 가진 산소와 결합해 물이 된 것이다.
수소의 경우 첫 번째 전자 껍질은 방이 하나여서 전자 두 개가 차야 안정적인데 전자 하나 밖에 차지 않아 하나가 부족한 상태다. 산소는 두 번째 전자 껍질이 방이 4개여서 전자 8개가 차야 안정적인데 6개여서 두 개가 부족한 상태다. 산소 혼자서는 수소 한 개만 만나면 여전히 전자 한 개가 만족하지 못한다. 결국 산소의 갈증을 해소하려면 전자 한 개를 보태줄 수 있는 수소 두 개가 필요하다. 원자마다 전자가 들어가는 전자 껍질의 위치와 크기가 다르다. 수소 두 개와 산소 하나가 만나 이루는 구조의 각도는 104.5°다.
전자는 모두 마이너스 전하를 띠고 있어서 서로 강하게 밀어낸다. 특히 결합에 참여하지 않은 전자쌍들이 수소를 아래로 강하게 밀어낸다. 이 때문에 일직선이 되지 못하고 104.5°로 구부정한 상태가 된다. 산소는 수소보다 전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전기음성도)이 훨씬 강하다. 분자가 일직선이라면 양쪽에서 잡아당겨 힘이 상쇄 되지만 104.5°로 꺾여 있다 보니 전자가 산소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전자를 빼앗기다시피 한 수소는 플러스, 전자를 독차지한 산소는 마이너스를 띠는 극성분자가 된다. 물 분자 하나하나가 미세한 자석처럼 작용한다.
물 분자가 자석이 되었기 때문에 분자들끼리는 서로 끈끈하게 달라붙는 수소결합을 한다. 물이 얼음이 될 때 104.5°의 각도를 유지한 채 서로를 밀어내며 육각형 모양의 빈 공간이 많은 규칙적인 구조를 만든다. 그래서 얼면 부피가 늘어나고 밀도가 낮아져 물 위에 뜬다. 실제로 척력이 작용해 밀어낸다기보다 결합하려면 딱 이 각도와 거리 유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두 전자가 정확히 동일한 양자 상태에 있는 것에 대한 엄격한 금지는 궁극적으로 임의의 두 전자가 서로에게 너무 바투 접근하는 것에 대한 금지로 이어진다.
전자가 공간에서 360도 회전하면 그 양자역학적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Wavefunction)의 부호가 반대로 바뀐다. 원래 상태로 완전히 되돌아가려면 360도가 아니라 총 720도를 회전해야 한다. 우리가 관측하는 물리량(물체를 발견할 확률 등)은 파동함수의 절대값 제곱으로 결정된다. 부호가 +이든 -이든 제곱을 하면 동일한 값이 되기 때문에, 전자 하나만 고립되어 있을 때는 360도 회전으로 인한 부호 변화를 직접 감지할 수 없다. 하지만 두 개 이상의 양자 상태를 겹쳐놓는 간섭계 실험을 통하면 회전한 전자와 회전하지 않은 전자 사이의 부호 차이(위상차)가 간섭 무늬의 변화로 나타나므로 이 현상을 실제로 증명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일부 과학자들은 확률 해석과 불확정성관계를 싫어했고 특히 전자가 전자총에서 나와 영사막에 도달할 때까지 잘 정의된 경로를 거친다는 주장을 원리적으로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싫어했다. 그들이 보기에 전자가 마치 정신 분열병 환자처럼 분열하여 서로 독립적인 두 경로 모두를 어떤 혼란스러운 혼합의 방식으로 거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양자역학의 성취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성취가 너무나 컸기에 일부 물리학자들은 화학과 생물학이 가장 깊은 수준에서는 한갓 물리학 분야들일 뿐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확률 해석,
고전적 실재론과의 결별 즉 원자 수준에서도 대상들은 관찰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잘 정의되어 있든 실재 하는 속성들을 지니고 존재한다는 믿음과의 결별이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물리학자들은 기본적이고 근본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무작위성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생각의 철학적으로 반감을 느꼈고 뉴턴적인 결정론을 복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저자들은 우리는 말 그대로 철학적 수렁에 빠졌다라고 말한다. 세계가 우리의 경험과 얼마나 다른가를 깨달으면 우리의 생각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지난 80년 동안 응용 양자 과학은 더 먼저 고전 시대를 대표하는 뉴턴과 맥스웰의 물리학이 거둔 방대한 성과들을 재현했다. 이제 우리는 확실히 더 깊은 수준에 도달했다. 양자 과학은 고전 물리학을 근사이론으로 포용하면서 모든 과학의 바탕이 되었고 원자, 원자핵, 아원자핵 입자, 쿼크와 렙톤의 행동 뿐 아니라 분자, 고체 구조, 우리 우주의 탄생(양자 우주론), 생명을 정의하는 거대 분자들, 현재 활발히 연구되는 생명공학, 심지어 어쩌면 인간의 의식까지 성공적으로 기술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얻었지만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불안과 큰 기대를 뒤섞으며 우리를 괴롭힌다.(295, 296 페이지)
두 저자는 E=mc²은 에너지와 질량이 등가라는 뜻이 아니라 멈추어 있고 질량이 m인 입자는 E=mc²을 만족시키는 에너지 E도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300 페이지)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유도한 공식의 진짜 이름은 정지 에너지 공식이다. 만약 두 개념이 완전히 같은 뜻(등가)이라면, 질량이 없는 곳에는 에너지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빛(광자)은 질량이 0이지만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두 저자는 진공이 음(陰)의 에너지 전자들로 가득차 있다는 생각은 비록 기괴하지만 세계가 음의 에너지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듯 했다고 말한다. 이 기괴한 개념은 현대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된 '디랙의 바다(Dirac Sea)' 이론을 가리킨다. 물리학의 대원칙 중 하나는 모든 입자는 가장 에너지가 낮은 상태(안정된 상태)로 떨어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음의 에너지 상태가 무한히 존재한다면, 우리가 아는 보통의 전자(양의 에너지)들은 순식간에 에너지를 방출하며 끝없이 더 낮은 음의 에너지 상태로 추락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순식간에 붕괴하여 음의 에너지 심연 속으로 사라져 버려야 하는 끔찍한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디랙은 이 세계의 파멸을 막기 위해 우리가 '진공'이라고 부르는 공간은 사실 이미 음의 에너지 전자로 빽빽하게 가득 차 있다는 기상천외의 가설을 세웠다.
디랙은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적용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들은 같은 상태에 중복해서 들어갈 수 없다. 이미 음의 에너지 자리가 전자로 꽉 차 있기 때문에 양의 에너지를 가진 보통의 전자들이 더 이상 음의 에너지 상태로 떨어지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 떨어질 수 없게 된다. 이 기괴한 음의 에너지 바다 덕분에 전자가 심연으로 추락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물질 세계가 안정되게 유지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이론은 단순한 궤변으로 끝나지 않았다. 디랙은 만약 이 가득 찬 음의 에너지 바다에 강한 에너지를 주면 음의 에너지 전자가 에너지를 흡수해 양의 에너지 상태로 튕겨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전자가 빠져나간 자리는 바다에 구멍('홀', Hole)으로 남게 되는데, 이 구멍은 주변에 비해 전하가 반대인 '양(+)의 전하를 가진 전자처럼 행동'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Positron), 즉 반물질(Antimatter)의 개념이다. 얼마 지나지 않은 1932년 칼 앤더슨이 실제로 우주선(Cosmic Rays)에서 양전자를 발견하면서 이 기괴한 상상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물리학적 예측 중 하나로 증명되었다. 당시에는 참으로 기괴하고 기묘한 임시방편처럼 보였던 아이디어가 역설적으로 우리 우주의 안정성을 설명하고 반물질이라는 신세계를 열어준 열쇠였던 셈이다.
양자이론과 특수상대성 이론이 모두 옳다면 양전자는 존재해야 한다.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에너지는 질량과 속도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를 수학적으로 풀면 제곱근 형태가 나타난다. 방정식을 풀면 수학적으로 양(+)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음(-)의 에너지라는 두 개의 해가 물리적으로 모두 가능해진다.
두 저자는 입자물리학자들은 거대한 디랙 바다에서 낚시를 하는 어부라고 말한다.(315 페이지) 반물질의 존재는 보손(힘을 전달하는 중개자), 페르미온(형태를 만드는 물질의 기초) 모두에 적용되는 현상이라 말한다. 디랙 바다는 직관적으로 떠올리기가 매우 용이하고 페르미온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리처드 파인만은 디랙 바다를 고찰하는 또 다른 방식을 개발했다.
본문의 9장은 중력과 양자이론; 끈이란 챕터다.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통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된 개념이다. 레너드 서스킨드 등은 우리가 관찰하는 우주가 엄청나게 거대한 초우주의 미세하고 보잘것없는 한 부분이라는 흥미로운 생각을 제기했다. 이 어마어마한 초우주 또는 메가우주를 일컬어 풍경이라고 한다. 우리는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풍경 가운데 거주 가능한 구역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369 페이지)
양자 마법에서 과거엔 꿈도 꾸지 못한 기술 장치들(레이저부터 훑기 꿰뚫기 현미경)까지 나왔다. 그러나 양자 과학을 창조하고 교과서를 쓰고 기적적인 발명을 해낸 소수의 지적 거장들은 여전히 밤잠을 못 이루며 고민한다. 아인슈타인이 여러 논문에서 지적한 대로 온갖 화려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양자 과학은 불완전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그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확률이 자연의 근본 원리 중 하나일 수 있을까? 무언가가 배제되었거나 빠졌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중력은 오랫동안 양자 과학에서 배제된 것의 실례였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는 일관된 이론을 향한 꿈은 일부 과감한 이론가들을 근본적인 수준의 연구로 이끌었고 그들은 오로지 추상적인 수학에만 의지하여 끈이론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무언가 더 깊은 것이 있지 않을까? 혹시 양자 이론의 논리 구조에 모자란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림 맞추기 퍼즐을 완성하려다가 실패를 되풀이한 아이처럼 우리는 묻는다. 혹시 핵심적인 조각 하나가 퍼즐 상자 밖으로 달아난 것이 아닐까?(372, 373 페이지)
두 저자는 물리학자들은 양자 이론이 어떤 식으로 유효한지를 훌륭하게 밝혀냈으나 양자 이론이 왜 그런 식으로 유효한가? 라는 질문 앞에서 물리학자들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 서기나 조립라인의 노동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381 페이지) 두 저자는 여전히 수많은 철학적 질문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빛은 파동이면서 또한 입자일 수 있을까? 세계는 하나뿐일까? 아니면 여럿일까? 뚫을 수 없는 암호가 존재할까? 궁극적 실재란 무엇일까? 물리학 법칙 자체가 주사위 던지기에 의해 결정될까? 혹시 이런 질문들은 공허할까? 다만 ‘양자 물리학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가 정답일까? 또 이렇게 묻고 싶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과학의 다음 번 도약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까?
두 저자들은 이 책을 읽는 일이 보람 있었고 이제 여러분과 우리 물리학자들이 세계의 원대 함과 심오한 신비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게 되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 저자들은 이 책에 여러분이 나와서 유명해 출발점에 불과하기를 여러분이 우리의 양자 우주를 구성하는 경이로운 형상들과 겉보기 역설들을 계속 탐구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