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놀란 한국의 과학기술
그레고리 포코니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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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한반도 안에서 부대끼며 살다보면 세계 속에서 우리나라가 어디쯤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모르고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깨닫게 되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삼자의 시선을 통하여 가늠하게 되면 아무래도 객관적일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세계가 놀란 한국의...’라는 제목의 연속기획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만, <세계가 놀란 한국의 과학기술>이 책을 내놓은 자음과 모음의 기획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세계가 놀란 한국의 과학기술>에서는 천문학, 의학, 정보통신기술, 지식정보 등 4개의 분야에 대하여 세분의 외국인과 한 분의 한국인을 통하여 그 수준을 가늠하고 있습니다. 역시 세분은 국내에서 활동하시는 분이고 한분은 캐나다에서 활동하시는 분입니다. 분야마다 몇 개의 작은 주제로 나뉘어 세계적인 성과를 기록하고 있으며, 사이에 네 분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는데, 읽다보면 과연 각장의 주제들을 인터뷰하신 분들이 정리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겉장에는 분명 네 분이 저자로 표기되어 있기는 합니다.


천문학 분야의 경우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세계가 놀랄만한 유물은 물론 최근 천문학분야에서 한국이 이룩한 성과를 소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천문학의 현재와 이 분야를 선도하는 나라의 수준과는 엄청나다는 느낌입니다. 다만 그 격차를 좁히려는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세계가 놀랄 한국의 천문학이라는 것은 지금까지는 안중에도 없던 ‘한국에서 이런 것도 해냈다는 거지?’하는 정도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의학의 경우는 저의 전공분야이므로 어느 정도는 정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분명 응용분야라고 할 임상의학의 수준은 세계수준에 이른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기초의학의 경우는 세계와의 격차는 분명합니다. 물론 여기서 소개하는 이호왕교수님의 한탄바이러스 발견이나 장기려박사님의 생체간절제술의 성공 역시 앞서의 천문학의 경우처럼 한국에서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는 것이 아닐까요? 다시 생각해보니 ‘세계가 놀란’이라는 책 제목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해당 분야들에서 한국의 수준이 세계 사람들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도 부족함이 많아 보임을 드러내고 있는 듯합니다. 생체간이식술의 경우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것들이 많아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정밀의료처럼 이제 개념이 만들어지고 있어서 비교가 불가능한 영역에서 가능성만 가지고 ‘세계가 놀란’이라는 전제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쌓아올린 건강보험체계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는 점은 짚어볼만한 성과입니다.


정보통신기술 분야만큼은 분명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는 분야라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이 분야를 선도하신 전길남박사가 주도한 성과가 세계인들을 놀라게 만들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정보통신기술만큼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기술개발과 함께 일찍이 전국을 연결하는 정보통신망을 구축하는 투자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역설적으로 땅덩어리가 넓지 않아서 결단이 쉬웠을 수도 있습니다. 전국을 연결하는 정보통신망을 바탕으로 초연결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으니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주제인 지식정보분야인데, 이 분야를 과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우선 해봅니다. 소셜 커뮤니케이션, 지식기반 경제 등의 주제어만 놓고 보더라도 이 분야는 사회과학의 한 영역으로는 볼 수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과학기술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한국인의 특성으로 보아 세계를 선도하는 분야가 될 수 있다는 해외 전문가의 견해가 듣기 싫지만은 않습니다.


정리해보면 이 책을 통하여 4가지 분야에서의 한국의 수준이 어디쯤인가를 가늠해보는 기회였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이 책의 기획의도를 분명하게 하는 글이 덧붙여졌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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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서 생명으로 - 인간과 자연, 생명 존재의 순환을 관찰한 생물학자의 기록
베른트 하인리히 글.그림, 김명남 옮김 / 궁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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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다녀온 아프리카의 세렝게티에서는 누를 사냥한 사자들과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한 입 얻어먹을 궁리를 하는 하이에나와 흰등독수리 등을 보면서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떼의 대이동은 개체수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면서 다양한 지역의 포식자를 살찌우는 역설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태계는 그렇게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명한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교수의 <생명에서 생명으로>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의 범위가 생각보다는 훨씬 넓게 엮여있다는 것을 알게 한 책읽기였습니다. 특히 자연의 장의사라고 하는 청소동물들의 역할이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청소동물은 생명의 재료를 재분배하는 ‘생명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이에나와 흰등독수리가 청소동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생태계의 먹이사슬과 생명의 재료를 재분배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광범위합니다. 일차로 탄소와 질소와 같은 무기물로부터 생명체가 활동하는 에너지의 원천을 만들어내는 것은 식물입니다. 하지만 그 식물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인 아미노산 등은 오랜 세월을 두고 만들어져 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먼저 식물이 만들어지고, 그 식물을 초식동물이 먹고, 육식동물은 그 초식동물을 먹는 먹이 사슬의 정점에 있는 듯하지만, 그 육식동물이 죽으면 청소동물이 해체하고, 그 나머지는 굼벵이나 곰팡이 등이 미세하게 분해하여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자연으로 돌아간 원초적인 구성요소들은 다시 식물을 만들어내는 순환에 투입되는 것입니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입니다. ‘외계의 접촉이 없는 고립계에서 에너지의 총합은 일정하다’라는 물리학의 기본이 되는 법칙입니다. 그렇다면 지구라는 고립계에서 생명의 원천이 되는 기본물질(탄소, 수소, 산소 등을 비롯하여 인, 황, 칼슘, 칼륨 등과 같은 화학물질이 만들어낸 아미노산)의 총량은 고정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구상에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가면서 멸종되어가는 생물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열역학 제1법칙에 따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라’라고 했다는 성경의 창세기의 한 구절이 과학적으로는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생명에서 왔고 또 다른 생명의 원천이 된다는 의미를 충분히 나타낸다고 보았습니다. 하인리히교수는 미국의 메인주에 가지고 있는 삼림 속에 지은 캠프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의 초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조류에서 곰팡이에 이르기까지 생태계의 다양한 생물종을 관찰해왔습니다. 그러한 연구 활동을 통하여 얻은 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생명체가 죽었을 때 일어나는 일을 정리한 것이 바로 <생명에서 생명으로>입니다. 이 책에는 동물과 식물 등 육상생물은 물론 강과 바다를 아우르는 수생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태계에서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간혹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서로 싸우지 않았다면 유럽인들이 건너오기 전에 이미 버펄로를 씨를 말렸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과 함께 사는 법을 깨달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유럽인들이 저지른 버펄로남획의 책임을 슬그머니 미루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현대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지구의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조림을 한다지만, 사실은 나무들도 오랜 세월을 통하여 거친 자연에서 살아남은 것들이었는데, 인간이 심는 나무들이 더 자연적인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정리하는 책읽기였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앞선 시대에 살던 생명체가 가지던 요소들을 이어받아 태어나서 살다가 죽음을 맞으면 다시 뒤에 오는 생명체에게 모든 것을 전하는 것인데, 인간만이 숭고한 그 일을 포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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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 아프리카
월레 소잉카 지음, 왕은철 옮김 / 삼천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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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읽은 책입니다. 나이지리아 아베오쿠타 출신의 요루바족인 월레 소잉카는 아프리카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시인입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해설자들>은 '언론인, 관리, 대학 교수, 화가, 엔지니어 등 다섯 사람이 등장하는데 부패하고 천박한 가치가 지배하는 아프리카 사회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지식인들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고 합니다.


에세이집 <오브 아프리카>에서 작가는 “아프리카 대륙은 원인과 결과의 면에서 다른 대륙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내부의 맥박과 외부의 개입으로 구성된 복잡한 유기체이다. 그런데 아프리카는 여전히 세계의 구성원이면서도 그 세계로부터 성취와 진보를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정의하면서, ‘이처럼 카멜레온 같은 존재에 대한 자연스러우면서도 때로는 실망스러운 선입관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이 책의 기획의도를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2부로 구성하였는데, 1부에서는 아프리카에 대한 외부의 편견과 오류를 짚었습니다. 코피 아닌 전 유엔사무총장이 주도한 ‘2001년 밀레니엄 보고서’에 포함된 ‘사하라 사막과 대서양을 횡당하면서 저질러진 노예제에 관한 총체적 진실, 대륙의 분할과 식민화, 아프리카대륙에 유독 폐기물을 버리는 일까지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는 내용을 인용하여 아프리카에 대한 4가지 허구를 정리해냈습니다. 1. 순수한 동기를 가진 모험가에 의한 허구화, 여기에는 호메루스, 헤로도투스, 셰익스피어에 이르기까지 그의 비판을 피해가지 못합니다. 2. 상업적인 허구화, 대표적 인물로는 스탠리, 벨기에의 레오폴드 국왕, 독일의 빌헬름2세 등이 있습니다. 3. 권력 지향의 내적 허구화, 여기에는 해방 이후 아프리카를 이끌었던 대다수의 독재자들이 포함될 것 같습니다. 4.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아프리카와 해외거주자들 사이의 대륙 간 교환을 지배하는 주제로 남아 있는 허구화 등입니다.


2부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처럼 외부에서 들어온 종교가 아프리카의 토착적인 정신을 밀어내고 갈등구조를 이끌었는지를 말하고, 토착종교, 나이지리아의 전통종교인 오리사교의 가능성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저자는 ‘아프리카 종교들이 아프리카인들의 삶에서 훨씬 더 간소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행동, 인간관계, 생존 전략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해주는 독특한 세계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라고 말합니다. 오리사교야 말로 타자에 관한 전체론적이고 때로 보편주의적인 주장에 대한 응답에서 아프리카 종교들에 대한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분석해내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와 교의를 읽어볼만합니다.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해서 옮긴이는 카렌 브릭센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편견과 인종주의가 배어있다는 주장입니다. 브릭센의 책에서 아웃을 떼어내는 것으로 이 책의 제목을 정했다면(확인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소잉카가 실제로 떼어내고 싶었던 것은, 겉으로는 사랑과 배려로 포장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편견과 인종주의에 지나지 않는 서구의 인식론적 폭력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에메 세제르의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은 자들이여, 만세!’라는 노랫말이나, ‘아프리카는 전 세계의 다른 지역에 뭘 강요한 적이 없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곱씹어볼만하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처음 나타난 것처럼, 아프리카가 미래 경제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아프리카의 노예무역에 대한 클린턴의 발언과 관련하여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일본의 사과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바른 것인가에 의문을 남긴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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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 ㅣ 글항아리 이슬람 총서 3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배성민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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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를 여행하면서 읽은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http://blog.joins.com/yang412/13784266>로 슬라보예 지젝을 처음 만났습니다. 열다섯명의 철학자들이 영화 <매트릭스>를 각자의 시각에서 시도한 철학적 분석이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지젝의 관점을 따로 메모해두지 않은 것을 보면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남아있어 이 책을 읽게 된 듯합니다. 결론은 역시 쉽지 않은 책읽기였다는 생각입니다.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은 2015년 1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사건을 해석함에 있어 그다운 독특한 시각을 담았습니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은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테러리스트가 풍자 주간신문인 샤를리 에브도 사에 들이닥쳐 총기를 난사한 사건으로 모두 열두 명이 숨졌습니다. 이슬람을 풍자하는 만평을 꾸준하게 게재해온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분노가 테러로 이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젝은 “우리는 더 사고해야 한다. (…) 이 사건을 감싸는 큰 흐름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14-16쪽)”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멀리는 프랑스대혁명, 스탈린, 나치에서 현대 프랑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부르카 착용의 금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황들을 인용하여 주제를 설명합니다. 다양한 인용으로 주제가 산만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젝은 제1장 ‘이슬람교도 생활방식이다’에서 서구가 추구하는 자유주의와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근본주의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분석합니다. “가장 나은 인간은 신념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가장 나쁜 인간은 열정이 넘친다.(17쪽)”라는 예이츠의 말이 샤를리 에브도 사건의 성격을 이해하기에 안성맞춤한 비유라고 합니다. “빈혈에 걸린 사람처럼 창백한 자유주의자와 열정이 충만한 근본주의자의 대립을 탁월하게 기술”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예이츠의 진단이 부족한 점은 테러리스트의 열정은 오히려 어설픈 근본주의자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근본주의의 우월함보다는 열등감에서 나온 충동적인 행동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티베트 불교도와 미국의 아미시 공동체처럼 진정한 근본주의자들은 불신자가 사는 방식에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이 자신을 할퀴건 꼬집건 일체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생각하는데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타인을 괴롭히는 짓도 반응이 재미있기 때문에 정도가 점점 심해지게 됩니다. 두어번 집적거렸는데도 반응이 없으면 시들해지기 마련입니다.


제2장 ‘이슬람교의 기록보관소에는 무엇이 있을까?’에서는 앞장에서 다룬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궁지의 원인이 되는 이슬람교의 역사관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슬람교가 갈래를 쳐 나온 유대교의 뿌리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경전과 유대교의 경전을 통하여 이슬람의 교리를 분석하려 들기에 ‘기록보관소’라는 비유를 한 것입니다. 알려진 것처럼 유대인들과 이슬람의 아랍인들의 가계는 모두 아브라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아랍인들은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권유에 따라 이집트 노예 하갈 사이에서 얻은 이스마엘의 자손이며, 유대인들은 뒤에 사라와의 사이에서 얻은 이삭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을 둘러싼 두 여자의 갈등과 하나님이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내놓은 가부장적인 기독교 방식의 해석에서는 이 사건을 대칭적 구도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삭의 후손인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은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인들에게도 무함마드를 보내 ‘사랑’의 진정한 뜻을 알렸지만,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종교는 시냇물과 바닷물처럼 결코 합쳐질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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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화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6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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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이후의 나이지리아의 국내 상황을 빗댄 <사바나의 개미언덕>을 통해서 처음 만난 치누아 아체베의 초기작품 <신의 화살>은 영국의 식민지배가 시작될 무렵을 다룬 작품입니다. 지도자의 철학에 따라 부족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우리네 역사의 어느 시점과 비교되는 바가 있습니다.


배경은 영국의 식민지배가 시작될 무렵의 나이지리아의 우무아로입니다. 여섯 마을로 구성된 우무아로 사람들은 옥페리의 배려로 오래 전에 이주해와 정착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울루를 공통의 신으로 모시기로 합의를 하였고, 에제울루라는 대사제를 두어 신의 뜻을 주민들에게 전하도록 해왔습니다. 물론 부족마다의 사제도 있습니다. 옥페리는 일찍이 백인들과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나 우무아로는 전통종교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옥페리와 우무아로 경계에 있는 땅의 소유를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면서 우무아로 내에서는 전쟁불사파와 평화유지파 간의 갈등이 일기 시작하고, 대사제 에제울루의 조정권고를 무시하고 전투를 벌이기로 결정을 합니다. 선전포고를 하러 갔던 사자가 살해되고 의사조정을 위한 전투가 아니라 사생결단을 내기위한 전쟁이 벌어지지만, 주둔하고 있던 영국 행정관의 개입으로 전투가 중단되었을 뿐 아니라 토지 소유권이 옥페리로 넘어가면서 우무아로 마을 간의 갈등이 고조됩니다.


작품의 감상포인트는 영국이라는 절대적 힘을 가진 세력에 대응하는 방법을 비교해보는 것이겠습니다. 에제울루는 자식들을 보내 영국의 문화, 즉 교육과 종교 등의 속사정을 파악하려고 하지만, 정작 그 자식들은 보고 들은 것을 아버지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독단적인 행동을 벌이므로 해서 아버지를 곤경에 빠트리게 됩니다. 이는 에제울루가 자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즉 임무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지시하지 않은데서 빚어진 비극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은 토지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옥페리와 일전을 벌이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식민당국과 우무아로 사이의 힘겨루기로 이해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제울루의 집안 사정이라던가 우무아로의 여섯 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20세기 초반 나이지리아의 전통 사회의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장을 중심으로 여러 아내와 그 소생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엿볼 수 있고, 부족내의 의사결정 과정 등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영국 식민당국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토착민들의 정신에 깃든 진정한 힘을 모두 없애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노력하는 대신 그것들을 활용할 것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정서, 아프리카의 정신, 아프리카 종족의 전체 기반을 파괴해서는 안된다.(106쪽)” 하지만 공공문서 상에 나타나는 공식적인 입장과는 달리,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그리고 행정관들이 토착민을 대하는 자세 등을 보면 우회적으로 전통을 파괴할 기회를 엿본다거나 토착민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에제울루는 대사제였지만 자신에게 부과된 임무를 다하려는 생각보다는 피동적으로 대응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신의 화살’은 대사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뱀을 모시는 우무아로에 들어온 기독교에서는 뱀은 인간의 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에 대하여 에제울루의 입장이 분명치 않은 듯합니다. “성스러운 비단뱀을 믿는 질투심 많은 종교의식을 상대로 맞서 싸우는 방법을 인간에 불과한 에제울루가 어떻게 감히 자신의 신에게 알려준단 말인가? 이건 신들의 싸움이었다. 에제울루는 신의 활시위에 걸려 있는 화살에 불과했다.(336쪽)”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가는 <신의 화살>에 이보족의 전통문화, 결혼, 상례, 농사, 천문 등을 비롯한 세시풍습을 그려 이를 통하여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는 밀려드는 서구문화에 대응하는 비서구문명의 슬픈 운명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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