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 아프리카
월레 소잉카 지음, 왕은철 옮김 / 삼천리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지난번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읽은 책입니다. 나이지리아 아베오쿠타 출신의 요루바족인 월레 소잉카는 아프리카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시인입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해설자들>은 '언론인, 관리, 대학 교수, 화가, 엔지니어 등 다섯 사람이 등장하는데 부패하고 천박한 가치가 지배하는 아프리카 사회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지식인들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고 합니다.


에세이집 <오브 아프리카>에서 작가는 “아프리카 대륙은 원인과 결과의 면에서 다른 대륙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내부의 맥박과 외부의 개입으로 구성된 복잡한 유기체이다. 그런데 아프리카는 여전히 세계의 구성원이면서도 그 세계로부터 성취와 진보를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정의하면서, ‘이처럼 카멜레온 같은 존재에 대한 자연스러우면서도 때로는 실망스러운 선입관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이 책의 기획의도를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2부로 구성하였는데, 1부에서는 아프리카에 대한 외부의 편견과 오류를 짚었습니다. 코피 아닌 전 유엔사무총장이 주도한 ‘2001년 밀레니엄 보고서’에 포함된 ‘사하라 사막과 대서양을 횡당하면서 저질러진 노예제에 관한 총체적 진실, 대륙의 분할과 식민화, 아프리카대륙에 유독 폐기물을 버리는 일까지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는 내용을 인용하여 아프리카에 대한 4가지 허구를 정리해냈습니다. 1. 순수한 동기를 가진 모험가에 의한 허구화, 여기에는 호메루스, 헤로도투스, 셰익스피어에 이르기까지 그의 비판을 피해가지 못합니다. 2. 상업적인 허구화, 대표적 인물로는 스탠리, 벨기에의 레오폴드 국왕, 독일의 빌헬름2세 등이 있습니다. 3. 권력 지향의 내적 허구화, 여기에는 해방 이후 아프리카를 이끌었던 대다수의 독재자들이 포함될 것 같습니다. 4.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아프리카와 해외거주자들 사이의 대륙 간 교환을 지배하는 주제로 남아 있는 허구화 등입니다.


2부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처럼 외부에서 들어온 종교가 아프리카의 토착적인 정신을 밀어내고 갈등구조를 이끌었는지를 말하고, 토착종교, 나이지리아의 전통종교인 오리사교의 가능성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저자는 ‘아프리카 종교들이 아프리카인들의 삶에서 훨씬 더 간소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행동, 인간관계, 생존 전략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해주는 독특한 세계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라고 말합니다. 오리사교야 말로 타자에 관한 전체론적이고 때로 보편주의적인 주장에 대한 응답에서 아프리카 종교들에 대한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분석해내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와 교의를 읽어볼만합니다.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해서 옮긴이는 카렌 브릭센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편견과 인종주의가 배어있다는 주장입니다. 브릭센의 책에서 아웃을 떼어내는 것으로 이 책의 제목을 정했다면(확인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소잉카가 실제로 떼어내고 싶었던 것은, 겉으로는 사랑과 배려로 포장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편견과 인종주의에 지나지 않는 서구의 인식론적 폭력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에메 세제르의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은 자들이여, 만세!’라는 노랫말이나, ‘아프리카는 전 세계의 다른 지역에 뭘 강요한 적이 없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곱씹어볼만하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처음 나타난 것처럼, 아프리카가 미래 경제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아프리카의 노예무역에 대한 클린턴의 발언과 관련하여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일본의 사과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바른 것인가에 의문을 남긴 책읽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 글항아리 이슬람 총서 3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배성민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슬로베니아를 여행하면서 읽은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http://blog.joins.com/yang412/13784266>로 슬라보예 지젝을 처음 만났습니다. 열다섯명의 철학자들이 영화 <매트릭스>를 각자의 시각에서 시도한 철학적 분석이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지젝의 관점을 따로 메모해두지 않은 것을 보면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남아있어 이 책을 읽게 된 듯합니다. 결론은 역시 쉽지 않은 책읽기였다는 생각입니다.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은 2015년 1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사건을 해석함에 있어 그다운 독특한 시각을 담았습니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은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테러리스트가 풍자 주간신문인 샤를리 에브도 사에 들이닥쳐 총기를 난사한 사건으로 모두 열두 명이 숨졌습니다. 이슬람을 풍자하는 만평을 꾸준하게 게재해온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분노가 테러로 이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젝은 “우리는 더 사고해야 한다. (…) 이 사건을 감싸는 큰 흐름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14-16쪽)”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멀리는 프랑스대혁명, 스탈린, 나치에서 현대 프랑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부르카 착용의 금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황들을 인용하여 주제를 설명합니다. 다양한 인용으로 주제가 산만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젝은 제1장 ‘이슬람교도 생활방식이다’에서 서구가 추구하는 자유주의와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근본주의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분석합니다. “가장 나은 인간은 신념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가장 나쁜 인간은 열정이 넘친다.(17쪽)”라는 예이츠의 말이 샤를리 에브도 사건의 성격을 이해하기에 안성맞춤한 비유라고 합니다. “빈혈에 걸린 사람처럼 창백한 자유주의자와 열정이 충만한 근본주의자의 대립을 탁월하게 기술”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예이츠의 진단이 부족한 점은 테러리스트의 열정은 오히려 어설픈 근본주의자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근본주의의 우월함보다는 열등감에서 나온 충동적인 행동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티베트 불교도와 미국의 아미시 공동체처럼 진정한 근본주의자들은 불신자가 사는 방식에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이 자신을 할퀴건 꼬집건 일체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생각하는데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타인을 괴롭히는 짓도 반응이 재미있기 때문에 정도가 점점 심해지게 됩니다. 두어번 집적거렸는데도 반응이 없으면 시들해지기 마련입니다.


제2장 ‘이슬람교의 기록보관소에는 무엇이 있을까?’에서는 앞장에서 다룬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궁지의 원인이 되는 이슬람교의 역사관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슬람교가 갈래를 쳐 나온 유대교의 뿌리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경전과 유대교의 경전을 통하여 이슬람의 교리를 분석하려 들기에 ‘기록보관소’라는 비유를 한 것입니다. 알려진 것처럼 유대인들과 이슬람의 아랍인들의 가계는 모두 아브라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아랍인들은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권유에 따라 이집트 노예 하갈 사이에서 얻은 이스마엘의 자손이며, 유대인들은 뒤에 사라와의 사이에서 얻은 이삭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을 둘러싼 두 여자의 갈등과 하나님이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내놓은 가부장적인 기독교 방식의 해석에서는 이 사건을 대칭적 구도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삭의 후손인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은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인들에게도 무함마드를 보내 ‘사랑’의 진정한 뜻을 알렸지만,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종교는 시냇물과 바닷물처럼 결코 합쳐질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의 화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6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립 이후의 나이지리아의 국내 상황을 빗댄 <사바나의 개미언덕>을 통해서 처음 만난 치누아 아체베의 초기작품 <신의 화살>은 영국의 식민지배가 시작될 무렵을 다룬 작품입니다. 지도자의 철학에 따라 부족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우리네 역사의 어느 시점과 비교되는 바가 있습니다.


배경은 영국의 식민지배가 시작될 무렵의 나이지리아의 우무아로입니다. 여섯 마을로 구성된 우무아로 사람들은 옥페리의 배려로 오래 전에 이주해와 정착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울루를 공통의 신으로 모시기로 합의를 하였고, 에제울루라는 대사제를 두어 신의 뜻을 주민들에게 전하도록 해왔습니다. 물론 부족마다의 사제도 있습니다. 옥페리는 일찍이 백인들과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나 우무아로는 전통종교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옥페리와 우무아로 경계에 있는 땅의 소유를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면서 우무아로 내에서는 전쟁불사파와 평화유지파 간의 갈등이 일기 시작하고, 대사제 에제울루의 조정권고를 무시하고 전투를 벌이기로 결정을 합니다. 선전포고를 하러 갔던 사자가 살해되고 의사조정을 위한 전투가 아니라 사생결단을 내기위한 전쟁이 벌어지지만, 주둔하고 있던 영국 행정관의 개입으로 전투가 중단되었을 뿐 아니라 토지 소유권이 옥페리로 넘어가면서 우무아로 마을 간의 갈등이 고조됩니다.


작품의 감상포인트는 영국이라는 절대적 힘을 가진 세력에 대응하는 방법을 비교해보는 것이겠습니다. 에제울루는 자식들을 보내 영국의 문화, 즉 교육과 종교 등의 속사정을 파악하려고 하지만, 정작 그 자식들은 보고 들은 것을 아버지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독단적인 행동을 벌이므로 해서 아버지를 곤경에 빠트리게 됩니다. 이는 에제울루가 자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즉 임무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지시하지 않은데서 빚어진 비극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은 토지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옥페리와 일전을 벌이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식민당국과 우무아로 사이의 힘겨루기로 이해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제울루의 집안 사정이라던가 우무아로의 여섯 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20세기 초반 나이지리아의 전통 사회의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장을 중심으로 여러 아내와 그 소생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엿볼 수 있고, 부족내의 의사결정 과정 등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영국 식민당국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토착민들의 정신에 깃든 진정한 힘을 모두 없애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노력하는 대신 그것들을 활용할 것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정서, 아프리카의 정신, 아프리카 종족의 전체 기반을 파괴해서는 안된다.(106쪽)” 하지만 공공문서 상에 나타나는 공식적인 입장과는 달리,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그리고 행정관들이 토착민을 대하는 자세 등을 보면 우회적으로 전통을 파괴할 기회를 엿본다거나 토착민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에제울루는 대사제였지만 자신에게 부과된 임무를 다하려는 생각보다는 피동적으로 대응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신의 화살’은 대사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뱀을 모시는 우무아로에 들어온 기독교에서는 뱀은 인간의 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에 대하여 에제울루의 입장이 분명치 않은 듯합니다. “성스러운 비단뱀을 믿는 질투심 많은 종교의식을 상대로 맞서 싸우는 방법을 인간에 불과한 에제울루가 어떻게 감히 자신의 신에게 알려준단 말인가? 이건 신들의 싸움이었다. 에제울루는 신의 활시위에 걸려 있는 화살에 불과했다.(336쪽)”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가는 <신의 화살>에 이보족의 전통문화, 결혼, 상례, 농사, 천문 등을 비롯한 세시풍습을 그려 이를 통하여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는 밀려드는 서구문화에 대응하는 비서구문명의 슬픈 운명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 우리가 독서에 대하여 생각했지만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
탕누어 지음, 김태성.김영화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에 관한 책을 적지 않게 읽어보았습니다만, 대만의 문화평론가 탕누어가 쓴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업이 전문독자라고 할 만큼 책읽기에 몰입하고 있다는데, 책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사유하며, 그 사유를 바탕으로 꼭 써야 하는 글을 쓰는 것이 일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책읽기를 권장하면서 그 과정에서 곧잘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책을 쓰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독서를 관통하고 있는 거대하고 본질적인 곤경을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전혀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모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백년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미로 속의 장군>을 중심으로 책읽는 과정에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논하는 글쓰기를 완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미로 속의 장군>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말대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중심으로 써보지 그랬나 싶었습니다. 흔히 ‘서(書)’와 ‘책(冊)’은 같은 물건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서책(書冊)이라고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지만, ‘서(書)’와 ‘책(冊)’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서(書)’는 원래 글을 쓰는 것이라는 의미의 동사로 ‘사유와 글쓰기, 편집, 인쇄, 제본’을 거쳐 완성되는 일련의 제작과정을 말하고, 이렇게 해서 생산된 물건이 ‘책(冊)’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책읽기의 동력은 바로 ‘의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의문의 안내에 따라서 책읽기에 독특한 경로가 생겨나는데, 그 펼쳐지는 모습이 나뭇가지 형태-저자는 생물의 진화를 묘사하는 계통수와 흡사하다고 보았습니다-를 이룬다고 합니다.


독서의 지속 문제, 독서의 전체적인 이미지, 독서의 곤혹, 독서의 시작과 그 대가, 독서의 시간, 독서의 기억, 독서의 방법과 자세, 독서의 전문성 등에 관하여 이야기한 다음에, 유년의 독서와 마흔 이후의 독서에서의 차이, 그리고 독서의 한계와 꿈을 이야기한 저자가 지향하는 소설읽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자로서의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책읽기과정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담아내기 위하여 보르헤스, 벤야민, 칼비노 등 저자가 특히 좋아하는 작가들 이외에도 수많은 작가들의 생각들을 인용하다보니 488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에 이르고 있습니다만, 그 방대함 속에서 버릴게 하나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는 것에 더하여, 주옥같은 글귀와 미처 몰랐던 좋은 책을 만나게 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생각은 불꽃과 같아서 항상 존재하며 완전히 소멸하기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유지하려면 한 권 한 권 책을 땔감으로 태워야 한다.(52쪽)”라는 저자의 생각도 있었고, “한 사람이 나중에 어떤 인물로 자라게 되는지는 그 아버지의 서가에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128쪽)”라는 그레엄 그린의 말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나름대로의 사유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꽤나 단호한 표현을 서슴지 않는 듯합니다. 조치훈 기사에 대하여 ‘인격적으로 한계가 있지만 바둑 실력은 대단히 탁월했다’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오청원 기사나 임해봉 기사를 꺾은 조치훈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긴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부바르와 페퀴셰>를 집필하기 위하여 읽은 책이 무려 1500권이 넘는다면서 무서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고 한 대목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플로베르는 1873년에 194권을 1874년에는 294권을 읽었다고 했는데, 사실 책읽기에 열중하던 시기에 그 정도의 책읽기를 해낼 수 있더라는 체험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책읽기를 사냥에 비유한 ‘수렵에서 농경까지’를 통하여 저자의 책읽기가 진화한 과정을 적은 부록에 이르기까지 정말 좋은 책읽기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조만간 만들어보려는 사내 독서회에서 첫 번째로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물셋, 죽기로 결심하다 - 편도 티켓 들고 떠난 10개월간의 아프리카 방랑기
조은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도 티켓을 들고 떠난 10개월간의 아프리카 방랑기’라는 부제에 이끌려 읽은 것인데, 책읽기를 마치고는 당혹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나이 스물 셋에 그저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 하나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아프리카로 떠났다고 합니다.


중학교에 다닐 무렵 오빠가 암에 걸리면서 그녀에 삶에 어둠이 깃들었던 모양입니다. 오빠를 치료하는 일에 매달린 부모님은 자연 그녀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그녀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큰 문제는 아니었답니다. 병원에서는 충분히 살 수 있다고 했음에도 오빠는 치료를 잘 받지 않았던 모양이고 결국 스물셋, 저자의 나이 열아홉에 죽음을 맞았던 모양입니다.


오빠가 죽음을 맞던 날의 상황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꽤나 있습니다. 앰뷸런스를 불러 병원으로 옮겨진 오빠가 심폐소생술을 받고 호흡기 신세를 질 정도라면 중환자실에 입원했어야 할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저자와 단 둘이서 있었고, 의식이 몽롱한 오빠가 호흡기를 떼어달라고 부탁하더라고 합니다. 하지만 전체의 흐름을 보면 저자가 오해를 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실제로 오빠가 죽음을 부탁했을까 하는 의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만약에 그런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갔어야 옳지 않을까요? 중태에 빠진 오빠를 열아홉 살 된 딸에게만 맡긴 부모는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심폐소생술로 겨우 생명을 되돌려 놓은 상황이고, 딸은 대입을 앞두고 제출해야 할 숙제까지 있는 날 밤에 말입니다.


오빠의 죽음을 결정할 정도로 강단이 있었던 저자가 대학에 들어가서는 방황을 하고, 부모의 걱정을 귓등으로 흘리듯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프리카로 떠났다는 설명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저자 나이의 아이들을 둔 부모의 입장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편도티켓 달랑 끊어서 아프리카로 날아갔다면서 체제비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설명이 없는 것을 보아 부모님 신세를 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들이 일상생활조차도 위험한 곳이 많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런 곳을 스물셋 젊은 여성이 좌충우돌 10개월을 살아내는 일이 가능할까 싶습니다. 혹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저자와 처지가 비슷한 젊은이들이 따라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에 가기로 한 것은 ‘그저 증오스러운 땅을 떠나 온전히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버리는 것. 그리고 아무도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모르게 되는 것’만을 원했다는데, 그녀가 이 땅을 증오하게 된 동기가 이해할 만큼 설명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아프리카행의 목적이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수단을 시작으로 에티오피아, 마다가스카르,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를 거쳤고, 그 후로도 정신 못 차리고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을 여행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생활하는 동안 아프리카 사람들조차도 출입을 꺼리는 위험한 지역을 거침없이 드나들고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고는 했지만, 두어 줄로 정리될 상황은 아니었지 싶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해외여행에 나섰다가 실종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외교부에서도 모든 해외여행객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실종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무슨 일을 하다가 실종되는지 사례를 공개하여 무무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촉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 여행에 도움을 얻으려는 책읽기가 아이를 키우면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깨닫게 되는 책읽기였습니다.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젊은이들에게는 따라 하기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닥치는 대로 살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 짧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