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우연한 시선 - 시인 최영미의 서양미술 감상
최영미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술 전반에 걸쳐 앎이 부족한 편이라서 기회가 될 때마다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특히 미술은 책을 읽거나 미술관에 갈 기회가 있는데도, 여전히 답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은 그런 이유로 골라들었던 것 같습니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은 최영미 시인의 미술에 관한 에세이집입니다. 학부에서 서양사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셨으니 ‘미술을 강의한다’는 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저자의 말씀대로 이집트의 초상 조각으로부터 현대 미국회화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사에 큰 흐름을 따라가고는 있지만, 교과서적인 접근이 아니라 시인이 이들 작품을 보았을 때 받았던 감동을 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내놓은 도서정보에서는 시인의 산문집 <시대의 우울>은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고 수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없었던 것이다’라고 시작했다고 합니다. 제가 젊었을 때만해도 여성들이 공공의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만, 시인이 젊었을 때만해도 이미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은 평범한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여성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에 대하여 타인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지나친 피해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거나 이 책에 담긴 그림과 조각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시인이 월간 <노블레스>에 연재했던 것들을 묶었습니다.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베르메르, 들라크로아, 모네, 드가, 세잔, 르네 마그리트, 그리고 에드워드 호퍼 등 익숙한 화가들의 익숙한 작품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고, 과문한 탓에 아직은 모르는 화가들의 작품들도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시인의 설명이 운율을 따라 흐르는 듯 시적이라는 느낌은 어쩌면 저만의 선입견 때문일까 싶어서 소개합니다. 기원전 200년 전후에 만들어진 사모트라케 섬의 니케, 즉 <승리의 여신상>에 대한 설명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가슴과 다리를 막아서는 강력한 바람에 의해 그녀의 몸은 아직 공중에 떠 있지요. 바람은 앞으로 전진하려는 그녀를 방해하며 동시에 그녀의 옷에 수백 개의 풍부한 주름을 새겨 놓음으로써 그녀를 드러내는 힘입니다.(28쪽)’

하지만 그럴까 싶은 대목이 없지 않습니다. 같은 작품에 대하여 이어지는 설명입니다. ‘세계를 향해 날개를 펼친 상상력의 원천은 세계시민으로서의 넘치는 자신감이었지요. 도시국가의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인더스강에서 나일강까지 세계가 더 넓어졌지요.(29쪽)’ 아마도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정벌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이전까지 그리스의 관심사는 소아시아까지였고,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정벌은 그의 죽음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였으니 그리스 예술의 시야가 넓어지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분명치 않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시인은 서양미술사를 통하여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풍경화라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에게 치인 탓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풍경화에 관한 이야기만을 담은 것은 아닙니다. 인물, 정물, 조각 작품 등까지 다양한 그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내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선호하는 영역 이외에도 다양한 영역을 다룸으로 해서 책 읽는 이들의 다양성까지도 챙긴 셈입니다.

이 책에 담은 이야기들은 어쩌면 시인이 직접 보고서 느낀 점을 적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도 필자처럼 스치듯 지나면서 카메라에 담아오는 방법이 아니라 무언가 분명한 느낌이 끓어오를 때까지 오랫동안 그림을 지켜본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노르망디 지방의 르아브로로 가는 길에 옹플뢰르의 부댕 미술관에서 <흰 구름, 파란 하늘>을 보기 전만 해도 저는 부댕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지요.(130쪽)’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한 점을 보더라도 제대로 보는 방식으로 그림구경(?)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책의 제목처럼 화가의 우연한 시선에 공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 소통법 - 신화의 나라, 이집트에서 터득한 대화의 기술 51가지
이정숙 지음, 조창연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멀티태스킹이 주목을 받은 적 있습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으로 칭송받던 멀티태스킹이 오히려 집중도가 떨어지면서 속도도 늦는 등 실제로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질적인 요소를 접합해서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는 퓨전이라는 개념과는 달리 멀티태스킹은 이질적인 요소가 녹아드는 퓨전의 개념보다는 서로 충돌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멀티태스킹과 퓨전의 개념을 따로 정리해본 이유는 이집트 여행과 대화의 기술을 접목하였다는 <여행 소통법>을 읽은 느낌이 퓨전이라기보다는 멀티태스킹의 느낌이 나더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책은 ‘국내 최고의 대화전문가’라는 분이 아들 내외와 함께 이집트를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일단 읽는 내내 불편했다는 점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표지에 적은 ‘옆 사람과의 성공적인 관계는 기본 소통에서 시작된다’는 문구에는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화의 나라, 이집트에서 터득한 대화의 기술 51가지’라는 부제는 잘 못된 것입니다. 그저 대화전문가라는 저자가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겪은 일을 인용하여 대화의 기술을 설명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입니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우선 대화체의 문장이 거슬립니다. 그것도 마치 아랫사람에게 가르치는 듯한 어투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흔히 사용하는 설명체 보다는 친근한 느낌을 주려는 시도였는지 모르겠지만, 불특정 다수가 읽는 책의 경우 저자보다 나이가 많은 독자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는 이집트 여행이나 소통분야에서 저자보다 더 전문가가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대화의 기술 부문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저자가 이집트에 관하여 인용한 내용들이 사실과는 다른 듯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저자의 전문분야라고 할 대화의 기술에 관한 내용에 대한 신뢰마저도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하루에 다섯 번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하여 남성이 경전을 읊조리는 소리를 ‘부카’라고 한다는데, 이슬람 국가에서 ‘무에진’이라고 하는 남성이 사원의 첨탑 미나렛에 올라 기도시간을 알리는 성구를 읊조리는 것을 아잔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찾아보았는데, ‘부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유럽이 이집트 점령하자 이집트 사람들이 유럽으로 흘러들어와 집시가 되었다는 것도 근거가 없는 내용으로 유럽의 집시는 인도 북부의 펀잡지방 출신이라는 설이 언어학적 근거가 있다는 주장을 보면 집시가 이집트에서 온 것이라고 단정하는 저자의 입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파피루스에 관한 내용도 지나치다 싶습니다. 파피루스에 관한 기록 역시 이집트에서 개발된 파피루스가 문서작성에 사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파피루스가 8-9세기 유럽사회에서 중요한 기록문서였는지는 생각해볼 일입니다. 이집트가 파피루스는 제작비용이 싸기 때문에 대중적인 기록도구였는지 모르나 양피지에 비하여 내구성이 약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가장 주요한 기록문서로 사용되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학문에 대한 비하도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인문학이 아예 없어 서양으로부터 일본을 통해 전해진 것을 배웠다는 시각이나 수사학이 빠져 제대로 된 화법을 익힐 수 없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과거 동아시아 학문의 중심이라고 하는 중국의 학자들도 조선의 학자들의 학문수준이 높아 서로 학문을 논하기를 바라마지 않았다고 하고, 거슬러 오르면 서희의 담판과 같이 우리나라 고유의 수사학 수준도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의 기술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전개하려다 보니 이집트 여행이 뒤죽박죽 섞이는 것도 책읽는 흐름을 흩어놓았고, 저자가 흥정의 달인이라는 자랑과 영국 사람들의 배품을 배웠다는 것이 정리되지 않는 것도 헷갈리는 부분이었습니다. 차라리 이집트 여행과 대화의 기술을 별도로 정리하는 편이 훨씬 나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
주명철 지음 / 소나무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시 프랑스 여행에 대비한 공부 차원에서 읽은 책입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프랑스는 물론 서구 여러 나라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고 알고 있지만 대혁명을 전후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은 오랫동안 프랑스 혁명을 연구해온 주명철교수가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쓴 대중 교양 역사서입니다. 저자는 ‘우리나라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데 왠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면서도, 프랑스 혁명이 서구사회는 물론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프랑스 혁명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사건이지만, 우리에게 사회에 대한 이해와 더 나아가 인간성에 대한 성찰의 기회까지 제공’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의외로 전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날 무렵까지도 프랑스는 철저한 신분제에 기반한 절대왕정체제가 이어져왔습니다. 중세부터 프랑스 사람들은 왕족을 제외하고는 기도하는 사람, 싸우는 사람, 일하는 사람 등 3가지 신분에 속하기 마련이었습니다. 성직자, 기사, 그리고 나머지 농부 어부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참 관리들도 기사와 같은 부류에 속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무관과 문관이 같은 부류로 쳤던 모양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하늘이 내린 왕을 모시는 것이야 말로 타고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던하게 참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계몽주의 사상이 꽃을 피우면서 사람들은 평등하다는 인식이 움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루이 14세 시절부터 이러저러한 전쟁을 벌이는 통에 나라 빚이 늘어만 갔고, 이렇게 빈 돈은 이자에 이자를 쳐서 눈덩이처럼 부풀어만 갔습니다. 1789년 5월 5일 루이 16세는 빚을 해결해볼 요량으로 175년만의 전국 신분회의(우리가 배운 삼부회의는 일본식 표현이라고 합니다)를 개최토록 하였습니다.

이전까지는 제1신분인 성직자와 제2신분인 귀족, 그리고 평민대표인 제3신분의 모여진 의견이 각각 1표씩으로 계산하던 것을 신분회의 참석자 각각의 표로 주권을 행사하자는 요구가 나왔던 것입니다. 즉 전국신분회의가 의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루이 16세는 빚을 해결하기 위하여 모은 신분회의를 결국은 용병을 동원하여 무력으로 탄압하려 들었다가 실패하면서 사태가 꼬여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왕이 상황을 오판하여 대중의 뜻이 반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분노한 파리 시민들은 적극적인 저항에 나섰습니다.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고 시내에 병력을 배치하자 시민들은 무장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상황이 꼬여가면서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전면에 나서면서 상황은 악화되었고 결국 총과 대포로 무장을 하고 대치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총격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혁명에 성공한 다음에도 사태는 쉬이 수습되지 않고 꼬여만 갔고, 혁명세력끼리 세력이 나뉘어 대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에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성공의 과실을 다투기 시작한 것입니다.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이나 혁명 후의 처리과정을 보면 아군이 아니면 처형하는 식으로 악순환이 이루어지다보니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희생된 인명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던가 봅니다.

1789년에 시작된 혁명은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트르가 쿠데타를 일으켜 혁명 후 들어선 공화정부를 무너뜨릴 때까지 10여년의 기간을 이릅니다. 결국 혁명은 왕정을 무너뜨렸지만 잠시잠깐의 공화정을 거쳐서 황제정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읽다보니 우리나라의 제1공화국의 독재정치를 무너뜨린 4.19혁명의 마무리 과정이나 혁명세력들이 5.16 쿠데타에 의하여 무너지는 과정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역사는 반복되는 모양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년에 대하여
윌 듀런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우아하게 늙어가기’를 화두로 잡고 있는 탓에 <노년에 대하여>라는 제목만 보고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에 보니 <Fallen Leaves>라는 원제목을 번역하면서 <노년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붙인 듯합니다. 키케로의 동명의 책에서 따온 것인지 아니면 원제목에 우리말 제목의 의미가 담겨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원고는 1981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30여년이 지난 다음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쓸 때의 계획은 ‘다양한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내놓은 뒤 거기서 가지를 뻗어 현대(20세기) 문학과 철학을 훑어보자는 것(11쪽)’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이유에서 <노년에 대하여>라는 우리말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 책의 초고는 1967년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엮은이는 그의 초고를 ‘우리 인생의 시작’으로 시작하여, ‘청춘, 중년, 노년, 죽음 등에 대하여’의 순서로 잇고, ‘우리의 영혼, 우리의 신’을 거쳐 다시 ‘종교, 재림, 종교와 도덕, 도덕, 인종, 여성, 성, 전쟁, 베트남, 정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예술, 과학, 교육 등에 대하여’로 연결되며, 역사의 통찰로 마무리되어 있습니다. 문명사학과 철학을 전공한 저자의 사유의 방향이 읽히는 대목입니다. 내용을 고려하면 우리말 제목이 더욱 이해되지 않습니다.

저자는 탄생에서 출발하여 청춘, 중년, 노년을 거쳐 죽음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관하여 영혼과 신, 그리고 종교로 사유를 이어갑니다. 그 이유는 ‘아무리 헛되더라도 인간의 존재를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애써보자’라는 취지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순간부터, 우리가 묶여 있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아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그리고 인생의 여러 단계, 그러니까 유년기,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를 통과하면서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종교, 예술의 중요한 철학적 문제를 마주 바라보고 함께 걸으며 지적인 세계를 한 바퀴 돌아보자(21쪽)’라고 권유합니다.

죽음을 맞이하면서 카이사르처럼 ‘Jam satis vixi(이미 충분히 살았다)’라고 외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자손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 줄 의무가 있다’(63쪽)라는 대목은 깊이 새겨둘 이유가 충분합니다. 특히 기득권을 지키려 추한 모습을 보이는 노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현상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공감되는 바가 있습니다. ‘교회의 이상이 버림받은 것은 그 이상이 스스로 자기를 버렸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수의 비길 데 없는 윤리 위에, 사도 바울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했지만 그리스도 본인은 잘 모르는 엄청난 교리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를 덧씌웠다. (…) 고위 성직자들은 모든 공격에서 안전한 무오류의 권위를 얻으려는 욕망에 휘둘려 그 윤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95쪽)’

다만 여성에 관한 그의 생각은 요즈음에는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어머니는 생명에 의미가 있는지 의심을 품지 않는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사명을 다하고 있으며 그 사명이 자신을 풍족하게 채워 주고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점점 늘어가는 가족을 한자리에 모으고 말없이 자부심과 행복을 느낀다. 그들이 바로 자신의 몸과 영혼이 낳은 열매이기 때문이다.(130쪽)’

요즈음 우리사회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저출산과 관련한 해법도 읽을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추천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나라면 부모 노릇을 권리가 아닌 특권으로 만들겠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식을 낳기에 접합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지도 않은 채 무작정 아이를 낳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이런 시험을 통과한 부모들에게 정부는 합법적인 결혼생활에서 첫째와 둘째를 낳은 뒤 18년 동안 연금이나 면세혜택을 주어야 한다.(254쪽)’라고 답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부부에게 세금이나 연금 등에서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일정 연령부터 결혼을 하지 않는 남녀에게는 독신세를 물리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해받지 못한 사람, 마네 예술가의 삶과 진실 5
루이 피에라르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에도 흐름 같은 것이 있는 듯합니다. 최근에는 인상주의 화파에 관한 책들을 읽을 기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해받지 못한 사람, 마네>도 그런 흐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에두아르 인상주의 화가들의 무리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이전, 그러니까 인상주의 화파가 태동하게 된 토양이 되었던 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받지 못한 사람, 마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미학적 감상에 충실하고, 전기문학 자체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서구 유럽의 전기물을 선별해 소개하는 글항아리의 「예술가의 삶과 진실」 시리즈의 하나입니다.

사실 에두아르 마네에 대해서는 그가 파리의 유복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의 작품의 일부와 화풍을 아는 정도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시절 마르셀 푸르스트의 아버지 앙토냉 프루스트와 절친이었다는 사실이나 아버지를 따라서 법률을 공부하기를 바랐던 부모와는 달리 예술가가 되겠다고 하여 부모를 실망시킨 끝에 견습선원이 되어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로 떠나기도 했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열대지방으로의 여행은 그의 의지를 강하게 만들어주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열대지방의 풍광은 그의 예술적 감각에 진하게 녹아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마네를 법률가로 만들려던 아버지도 결국 아들이 예술가의 길을 걷도록 지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단 저명한 화가로부터 교습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서 말입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것은 양의 동서가 같은 것 같습니다.

역사적 주제를 다루던 화가 쿠튀르의 화실에서 미술의 기본을 배우기는 했지만 모델을 자연스럽게 연출한다거나 빛을 다루는 방법 등에서 기존의 방법에 동의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뭐든지 새로움을 시작하는 사람은 기존 사람과는 무언가 달라도 한참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쿠튀르는 ‘좋아, 자네가 새로운 화파의 두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어디 가서든 세워보지 그래(38쪽)’라고 했다는데, 쿠튀르는 번화가에 돗자리를 깔아도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초기작품인 <부모의 초상>이나 <압생트 술꾼>을 그린 초창기에는 심각한 비난을 받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1863년에 살롱에 출품했던 <풀밭의 점심>은 엄격한 비평가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마네에 대한 당시 평단의 시각을 왜곡된 채로 굳히는 계기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녹음이 짙은 숲속의 공터에 편 점심식사 자리에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남자와 함께 한 나체의 여성은 밝게 표현되어 강하게 대조되었기 때문에 더욱 성적인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습니다.

파리의 비평가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음을 알고도 남았을 마네였지만, 1865년 관전에 출품한 <올랭피아>는 불에 기름을 붓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미혼의 여자대통령의 얼굴과 합성한 그림을 국회에 전시하면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던 건에서 사용되었던 원본 그림이 바로 마네의 <올랭피아>였습니다. 작가 폴 드 생 빅토르는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의 일그러진 모습에 역겨워하는 군중은 그를 멸시하듯 압박한다. 이렇게 밑바닥까지 내려간 예술이라면 비난할 가치조차 없다.(65-66쪽)’라고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지만 말입니다.

사실 마네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챈 샤를 보들레르, 에밀 졸라, 말라르메 등은 강력한 후원자였다고 합니다. 인상주의 화파의 화가들은 그들끼리의 모여 작품전도 하고는 했지만, 마네는 굳세게 관전과 살롱에 출품하는 차별화된 길을 고집했다고 합니다. 이런 그의 외골수가 결국은 빛을 보게 되었는데, 중학시절 절친이던 앙토냉 프루스트가 미술부 장관이 된 것도 일조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 늦었던 것 같습니다.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어냈던 마네는 1883년 왼쪽 다리의 회저가 심해져 사망하였고, 사람들은 그때서야 위대한 화가를 잃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