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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
신현림 지음 / 흐름출판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난 한번도 좋은 딸인 적 없습니다.”라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고백을 하고 있는 신현림 시인의 에세이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은 우리시대의 자식들이 외면해온 상처를 아프게 자극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녀의 고백에 가까운 권유가 더욱 마음에 새겨지는 것은 앞서 읽은 조 피츠제럴드 카터의 <엄마 엄마 엄마>에서 임종을 지켜보지 않은 채 어머니를 떠나보낸 다음 적은 뒷이야기와 달리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절절하게 적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카터의 모친의 결심과 관련하여 새겨볼 구절을 소개합니다. “죽음과 친구가 되는 법을 익힘으로써 삶을 좀 더 강하고, 편하고, 성숙하게 만들 것을 권한다. 목회자는 내 여동생은 나에게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메일로 전해왔다. ‘죽음을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정말 슬프고 끔찍한 일로 생각하지 말고,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준비로 여긴다면 그렇게 괴로운게 아닐거야. 후회없는 생을 위해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덕을 품고 살아가야겠지. 이기심을 버리고, 선과 덕을 실천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방법은 자신을 포기하고 나눈 것이야. 언니.’”
시인은 프롤로그의 제목을 ‘살아계실 때 잘하란 그 흔한 말, 그때는 몰랐다’라고 적고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송강 정 철선생은 “어버이 살아 신제 섬기기를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 뿐인가 하노라.”고 했고, 공자님께서도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가만 두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려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다.(樹欲精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했겠습니까?
시인은 ‘1부 난 한번도 좋은 딸인 적 없다’, ‘2부 후회없는 시간을 위해 지금 해야 할 것들’, ‘3부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한’이라 붙인 제목 아래 모두 서른 가지의 소소해보이지만 부모님께서 흡족하실만한 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살림돕기’에서 시인이 소개하는 소소한 일은 이렇습니다. “살림을 돕는다는 건 대단한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작은 배려의 문제다. 쓰레기 버릴 때 봉투하나라도 들어주어 오가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것, 자기 방이라도 정리정돈 잘하는 것, 밥 벅고 자신이 먹은 밥그릇만큼은 설거지통에 넣어주기, 양말 한짝이라도 뒤집어 놓지 않고 세탁조에 넣어두기 등등”입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도 새벽이면 나오기 싫은 이불에서 빠져나와 두부공장에 두부사러가기 가마솥에 불때기 등등 나름 살림을 도와드렸던 기억이 생생한데 어머니께서는 기억이 없다 하실 때 조금은 섭섭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앞에 시인이 예를 들었던 살림돕기는 아마도 아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시인이 추천하는 소소한 일이 이 땅의 모든 부모에게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가는 모습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자기 짝을 찾아 안정감 있게 사는 게 최고의 효도임은 분명하다고 했습니다만, 제 경우는 결혼이 늦어지게 된 데 부모님 의중이 조금은 작용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점에서는 크게 불효를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평소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키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으면서도 지키지 못하는 한 가지는 ‘술을 마시되 절제하라’는 선친 말씀입니다. 젊어서는 선친께 종아리를 맞은 적도 있었지만 막상 술을 마실 때는 기억하지 못하니 참 병입니다. 하지만 선친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정말 술을 멀리하려 애를 많이 썼습니다. 임종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상을 치루는 동안부터 49재를 올릴 때까지 선친께서 남기신 유고를 정리해서 책으로 묶어내는 일에 매달리면서 술을 멀리했습니다. 결국은 49재 때는 선친 호를 따서 “소운집(嘯雲集)”이라는 유고집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신현림 시인의 책을 받은 첫 느낌은 “참 예쁘다.”였습니다. 시인이면서 사진작가인 때문인지 글의 의미를 담은 사진이 제자리에 놓여 글의 감동을 크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뭐든 죽도록 사랑하세요!”라고 적어주신 시인의 마음 쓰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올린 리뷰를 읽으신 슬로우 리더/라이터님께서 덧글을 통하여 지적해주신대로 신현림 시인의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은 ‘가정의 달 5월’을 따듯하게 만들어줄 가슴 찡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