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구름속의 산책
지진희 엮음 / 시드포스트(SEEDPOST)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대학에 다닐 때 활동하던 동아리에서는 회식 때 즐겨 외치던 구호가 있습니다. “술! 술! 술! 술은 인류의 적. 마셔서 없애자! 19OO년은 절주(節酒)의 해. 절주하시고!” 이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술의 종류보다는 분위기를 띄우는 술 마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와인을 공부할 기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지진희님의 <이탈리아 구름 속의 산책>은 와인에 대한 관심이 눈을 뜨는 책읽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서두에서 와인이란 포도를 발효시켜 만든 술이라는 정도로 인식하는 수준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신의 물방울>의 작가 아기 다시시 남매를 만나는 기회가 있어 와인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이탈리아 와인을 소개하기 위한 기획에 함께 할 기회가 생겼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탈리아 구름 속의 산책>은 와인 공부를 시작한 초보자가 와인을 공부하기 위하여 <신의 물방울>의 저자 남매를 만나러 동경에 간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이탈리아의 로마, 피렌체, 밀라노 등에서 만난 와인과 와이너리에 대한 인상을 적고 마지막으로는 한국에 돌아와서 좋은 와인을 찾아다닌 이야기로 마누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 이야기도 빠지지 않습니다.

저자는 “<신의 물방울> 덕분에 일상의 작은 부분조차도 크게 깨우친 만큼, 독자들이 내 책에서 와인에 다가가는 내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고 어떤 용기만 갖게 된다해도, 이 책의 저자로서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것 같다(27쪽)”라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와인에 접근하는 경고를 따라가기에는 부담이 엄청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책을 읽은 느낌은 우선 저자가 와인을 따라가는 여행지의 풍경, 와인을 마신 식당의 모습을 물론 저자가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가 지나치게(?) 풍부합니다. 마치 와인을 주제로 한  저자의 화보집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와인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식당, 고급지게 말하면 레스토랑과 음식에 대한 정보도 아주 구체적입니다. 그리고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상당히 감성적으로 적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여성적인 취향이 느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와인에 대한 느낌은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와인 초보자의 수준은 아닌 듯 하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로마의 네 번째 이야기, 일 콘비비오 식당에서 마신 와인 몬티아노 라치오에 대하여 ‘툭 터놓고 이야기하자면, 지금까지 마신 와인 중 3위 안에 든다고 감히 자부하는, 맑은 자줏빛의 레드와인, 숙성된 맛은 아니지만, 미세한 꽃향기도 품고 있으면서 부드러움을 간직한, 그래서 초보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을 지닌 친구 같은 와인.(75쪽)’이라고 적었습니다. 특히 이 부분에서 ‘자부’라는 단어에 미묘하게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자부는 자신이 가진, 혹은 행한 무엇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쓰는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몬티아노 라치오는 자신이 만든 와인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글을 쓴다는 것이 참 어려운 것은 생각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카메라에 야경을 담았다. 물론 내 눈에도 오래오래 기억하기 위해 담아왔다.(97쪽)”라고 적은 로마의 밤풍경입니다. 야경을 카메라로 찍는 행위를 ‘담는다’라고 합니다만, 사실은 그 영상을 카메라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담는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눈에 경치를 담는 것은 아닙니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은 기억으로 뇌에 저장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담는다’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은 풍경을 카메라로 찍는 것보다는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글로 쓰거나, 그도 아니면 지켜보는 것이 기억에 더 남는다고는 합니다만, 사진을 찍는 행위와 보는 행위를 동시에 할 수는 없는 노릇 같습니다.

이 책에 담긴 많은 사진들은 물론 로마, 피렌체, 밀라노의 분위기를 섬세하게 그린 글은 분명 매혹적이었습니다. 밀라노의 경우는 한나절 구경했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던 것 같고, 로마나 피렌체는 조만간 가볼 기회가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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