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산 형사 베니 시리즈 1
디온 메이어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스릴러물은 자칫 스포일러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독후감을 정리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줄거리를 끌어오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악마의 산>은 남아프리카 출신 작가 디온 메이어의 베니형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미 읽은 <13시간>과 함께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는데, 읽는 순서가 거꾸로 되었습니다. 아직 소개되지 않은 <세븐 데이즈> 등과 함께 형사 베니 시리즈 4권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시리즈물이기는 해도 각권이 개별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읽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아마도 주인공 베니형사의 신변에 관한 이야기만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보니 베니형사의 신상문제가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케이프타운의 강력계 형사 베니 그리셜경위는 중독수준의 주정뱅인데다가 급기야 술김에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바람에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래도 아내에게 일말의 사랑이 남아있었던지 ‘6개월 안에 술을 끊지 않으면 이혼’이라는 말미를 얻었습니다. 술주정뱅이이지만 사건 하나는 깔끔하게 처리하기 때문에 강력사건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그가 마흔 넘도록 경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종료된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차별의 결과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강간, 마약, 납치, 인신매매 등 온갖 범죄의 전시장이 되고 만 남아공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스릴러물이니 형사 이외에도 범인이 또 다른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 토벨라 역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사가 만들어낸 비틀어진 인물상입니다. 반(反)아파르트헤이트의 투쟁 요원으로 활동하던 토벨라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이후에는 범죄의 세계에 잠시 몸을 들였다가 은퇴한 상태입니다. 첫사랑이 남긴 아들을 입양할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던 중에 고작 주유소를 털던 잡범이 쏜 총에 아들이 눈앞에서 죽는 참변을 당합니다. 문제는 그 범인이 풀려나 행적이 묘연해졌다는 것입니다. 토벨라는 범인을 추적하는 한편, 아동 대상 범죄자들을 줄루족의 전통 무기 아세가이로 살해하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두 명이면 집중하기는 쉬우나 자칫 이야기가 단촐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을 보조할 주인공급 등장인물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투톱이니 포톱이니 하는 것 같습니다. <악마의 산>에서는 두 명의 주인공급 인물이 등장합니다. 고급 콜걸 크리스틴과 그녀에게 집착하는 콜롬비아에서 온 마약상 카를로스가 있습니다. <13시간>에서도 그렇습니다만, <악마의 산>에서도 이야기는 베니 그리셜, 토벨라, 크리스틴 등 세 사람의 삶이 따로 시작되지만, 이야기가 정점으로 치닫는 순간 하나로 만나 엮이게 됩니다. 즉 카를로스가 크리스틴의 딸을 납치하고, 이 사건을 아동대상 범죄자를 처단하는 범인을 체포하기 위한 미끼로 사용하는 작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베니 그리셜이 술에 빠진 사연은 강력계 형사라는 직업이 주는 중압감 때문입니다. 사건 현장에 들어가면 쓰러져있는 희생자가 죽어가면서 질렀을 비명소리를 듣게 되는데, 비명소리가 머릿속에 붙박인 것처럼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부검의로 일할 때는 부검이 끝난 뒤에는 코끝에 배여 있는 피남새를 지운다는 핑계로 술을 마시곤 했던 적이 있습니다. 모두가 술을 마시기 위하여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과정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짜임새 있게 전개됩니다. 물론 반전에 반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덤으로 알게 되는 것도 수확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동 강간 사건의 40퍼센트는 아동과 성관계를 맺으면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다는 미신이 퍼져있다는 것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세계 마약상들이 몰려드는 곳이라는 것도,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찰이 범죄조직과 결탁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덤은 <악마의 산>은 케이프타운의 뒷배경이 되는 테이블마운틴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서쪽으로 올라선 봉우리이며, 다음 작품 <13시간>에 등장하는 시그널 힐과 함께 케이프타운의 좌청룡 우백호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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