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 1 59클래식Book
워싱턴 어빙 지음, 정지인 옮김 / 더스타일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년전에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에 갔을 때, 궁전 어디에서 워싱턴 어빙이 머물던 방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된 궁전이라서 어두컴컴했지만 어떤 연유로 궁전에 머물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워싱턴 어빙은 이곳에 머물며 들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알함브라>를 발표했고, 이 책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고 합니다.


19세기 미국 낭만주의 대표작가인 워싱턴 어빙은 20대 중반에 쓴 <뉴욕의 역사>로 주목을 받았고, 다시 10년 뒤에 쓴 <스케치북>으로 그는 미국의 대표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43살에 마드리드 주재 미국공사로 부임하게 된 그는 러시아영사관에서 근무하던 한 친구와 함께 세비야에서 그라나다까지 여행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알함브라궁전에 머물게 되었던 것입니다. <알함브라>에 실린 이야기들 가운데 초반은 작가가 알함브라궁전에 머물기까지의 소소한 것들이며, 그 뒤의 이야기들은 그가 수집한 그라나다지방에 전해오는 알함브라궁전 혹은 무어인들의 나스르왕조에 관한 전설입니다.


그는 스페인의 풍광과 스페인사람들의 기질을 잘도 연결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에스파냐의 자연은 삭막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 풍광을 ‘엄격할 정도로 단순한 듯하지만 인가의 영혼에 장엄함을 새겨 넣은 듯하다. 그리고 그 땅과 사람들의 기질과 모습 자체에는 무언가 아랍적인 특징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라비아반도에 자리한 우마이야왕조가 무너지면서 쫓겨난 왕족이 아프리카에서 베르베르족을 규합하여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한 711년 이후, 카스티아의 이사벨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가 연합하여 주도한 레콩키스타가 1492년 그라나다에 자리한 타이파 나스르왕조를 무너뜨릴 때까지 무려 800년 가까운 세월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빙이 여행하던 19세기 무렵 스페인의 사회적 분위기는 꽤나 어수선했던 모양입니다. 노상강도가 날뛰고 있어 무장을 하지 않으면 여행이 어려울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빙은 그런 분위기조차도 여행의 모험적 요소로 인식한 듯합니다. 또한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는 그의 특유의 성품은 이곳 사람들에게 전해오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여행을 “우리는 진짜 콘트라반디스타들의 스타일로 여행했는데, 거칠든 부드럽든 발견한 모든 것을 받아들였고, 방랑자들 처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관습들에 섞여 들었다. 그것이 에스파냐를 진정으로 여행하는 방식이다.(1권 33쪽)”


폴란드출신의 작가 얀 포토츠키가 쓴 <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점입니다만, 스페인에도 괴기한 전설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마도 오랜 세월에 걸친 이민족의 지배와 그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녹아들어 만들어낸 허황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돈키호테>가 탄생할 수 있게다 싶습니다. 어빙이 채록하여 <알함브라>에 담은 기담들 역시 그런 역사적 배경에서 나온 것들로 이해가 됩니다.


어빙은 특히 알함브라궁전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전설의 진위를 가리는데도 나름 애를 쓴 듯합니다. 사자의 안뜰에서 벌어진 아벤세헤라 가문의 참극을 일으킨 사람이 나스르왕조의 마지막 왕 보압딜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아벤 하산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보압딜은 나스르왕조가 세운 찬란한 성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않아 페르난도2세와 협상을 통하여 그라나다를 넘겨주기로 했던가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젠가는 그가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 “그라나다를 차지하고 있던 당시의 무어인들은 오늘날의 무어인들보다 훨씬 더 쾌활한 사람들이었답니다.(129쪽)”라고 적은 대목을 보면, 이슬람왕조가 몰락한 뒤에도 스페인에 남아 버텨온 무슬림들은 과거의 영화롭던 시절을 꿈꾸는 듯합니다. 이국적인 것이 더 애틋한 추억을 남기는 듯, 스페인사람들은 이민족의 지배에 반발하면서도 그에 대한 애틋한 향수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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