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을지도 모르는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습니다 - 아기의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선택의 시간, 4주 반
콘스탄체 보그 지음, 민세리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인턴 때, 대뇌의 대부분이 없는 무뇌증 아이를 제왕절개로 분만하는 수술을 보조한 적이 있습니다. 산모의 안전을 고려한 수술이었습니다. 수술로 태어난 아이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없습니다만,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데 필요한 뇌줄기 부분만 있는 아이가 오래 생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산전진찰을 받지 않는 산모들도 적지 않아서 분만에 임박해서야 태아가 무뇌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초음파기기와 검사시약의 발전으로 신체적 장애는 물론이고 기능적 장애까지도 임신 중에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100퍼센트의 확률로 미리 맞출 수는 없습니다. 장애가 있다고 했지만, 막상 출산을 해보니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고, 문제없다고 했는데 장애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임신 초기에는 더욱 판단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신체적, 기능적 장애의 가능성이 크다는 검사결과를 받아들게 된 부모들은 대체로 임신중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재정적인 이유, 다른 사람들의 시선, 결국은 아이의 죽음이라는 고통스러운 이별 등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지도 모르는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습니다>는 그와 같은 고통을 모두 감수해낸 젊은 부모의 감동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결심을 한 사람도 드물지는 않은 듯, 예전에 다운 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임신한 젊은 부부가 결국은 출산을 결심한 이야기를 담은 <아담을 기다리며>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을지도 모르는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습니다>를 읽다보면 주인공 콘스탄체의 결심에 대하여 양가적인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느끼면서 마지막 장을 덮고서도 여전히 어느 쪽이 우세한지 분명치 않습니다. 양가적인 감정이란 ‘출산 후 불과 2시간 생존한 아이를 낳은 것은 참 잘한 것이다, 반대로 임신 14주째 산전진찰에서 후뇌 두류(두개골 뒤쪽에 결손이 생겨서 대뇌와 소뇌의 일부가 두개골 밖으로 튀어나오는 선천성 기형)가 발견되었을 때 임신중절을 선택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말합니다.


당사자인 콘스탄체와 그녀의 남편 티보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으로 충격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늬 부모처럼 쉽게 임신중절을 선택하지 않고 결정을 할 수 있는 여유의 시간, 4주에 걸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결정을 하는 동안 참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데, 특히 출산을 격려하는 사람들이 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녀와 남편은 임신중절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닥쳤을까 하는데 대한 충격에서 헤어나는데 시간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임신을 이어가는 쪽 사람들의 조언만을 주로 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의 남동생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종교적, 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임신을 유지하여 천명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지만, 의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공중절에 무게를 두게 되는 것 같습니다. 콘스탄체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것도, 모든 것은 하느님이 주관한다는 종교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점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고통의 순간들이 지난 다음에 그녀의 결정에 공감하지 못했던 친구들을 모두 정리했다는 저자에게서 편향된 사고를 가진 것은 아니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할 때, 판단해야 하는 여러 요소들의 목록을 만들고 그 목록들의 무게를 따져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경우라면 ‘임신중절을 받는다’와 ‘임신을 유지한다’가 될 것인데, 콘스탄체와 티보 역시 그런 작업을 했지만, 깊은 고민을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 저자가 저에게 자문을 구했더라면 임신중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친구목록에서 지워졌겠지요. 그녀의 결정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반면에 꼭 그렇게 해야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아기가 아니라 살아서 태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아이라면 말입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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