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방 - 최정예 전투기 조종사의 추락, 포로 생활 그리고 귀환
조라 롬 지음, 전용우 옮김 / 이담북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꼭 피해야 할 일이라면 전쟁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총을 겨누어야 한다는 것도, 누군가의 총의 목표가 된다는 것도 끔찍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리고 죽음보다도 더 끔찍한 일이 포로가 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독방>은 바로 그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된 다음에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전투기조종사로 복귀한 이스라엘 공군의 조라 롬의 이야기입니다. 1967년 22살의 나이에 임관하여 미라쥬 전투기 조종사로 제3차 중동 전쟁(6일 전쟁)에 참전하였고, 당시 적기 5대를 격추하여 이스라엘 최초로 최정예 조종사(Ace pilot) 칭호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이어진 전투에서 격추당해 포로가 되었으나, 격추당시 입은 심각한 부상 속에서도 3개월간에 걸친 고문을 견뎌내 포로교환을 통하여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퇴역을 해서 정신적 안정을 찾으려 노력했을 것이나, 오히려 그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극복하고 전투기 조종사로 복귀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독방>은 그의 지난한 삶의 체험을 담담하게 서술한 자전적 기록입니다. <독방>은 포로가 되어 수감되었던 카이로의 감옥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로 돌아가 조종사로 복귀하기까지 스스로를 극복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정신적으로 고립되어있던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 점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사람들은 전쟁 포로가 되었을 때 가장 힘든 것은 신체적 고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 알고 있다. 고문도 끔찍하지만 적어도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고 그리고 마침내 회복이 된다. 그러나 외로움, 굴욕, 완전한 불확실성, 외부 세계와의 끝없는 단절, 포로 생활이 끝날 날이 하루하루 멀어져 가는 것 같은 느낌들은 사람의 핵심적인 부분을 서서히 파괴한다. 이런 것들을 견뎌 내려면 모든 정신과 감정의 강인함을 최대한 쥐어짜내야만 한다(195쪽)”

이 책에서 지금까지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치 독일이 홀로코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 연합국에서는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어떤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영국의 경우 10만 헝가리 유대인을 구출하기 위한 ‘생명의 트럭’ 작전을 수립할 때도 트럭 지원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나치는 당연히 지탄을 받아야 하겠지만, 이를 외면한 연합군측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군 측이 홀로코스트에 대하여 반성의 뜻을 밝힌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추락 후 이집트 공군으로 넘겨진 조라는 이스라엘 공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라는 신문을 견뎌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실로 놀라운 기억력과 집중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기억의 천재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단편적으로 거짓말을 진술할 수는 있겠지만 신문하는 측에서도 다양한 정보를 통하여 진술을 검증할 수 있기 때문에 포로보다는 훨씬 유리한 입장일 터인데도, 끝까지 신문자를 속여 넘길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전쟁포로에 대한 심리상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한 것이 한국전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만, 막상 그 부분을 읽으면서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히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에 대한 심리치료 부분은 요즘 주목받고 있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치료의 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납치자와 납치된 자와의 사이에 형성되는 미묘한 협력관계를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합니다만, 포로와 심문자 사이에도 미묘한 연대관계 같은 것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닐 듯합니다.

저자에게서 강인한 남자의 전형을 볼 수 있습니다. 포로생활에서 풀려난 뒤에 다시 전투기를 몰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이겨낸 데는 ‘스스로의 존엄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남자다움을 지키기 위해서였다(237쪽)’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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