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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거닐다 - 알면 알수록 좋아지는 도시 런던, 느리게 즐기기
손주연 지음 / 리스컴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런던여행을 앞두고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그리 좋은 선택을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목차를 보면 우리네 지하철에 해당하는 튜브라거나 버스처럼 영국적인 것들, 박물관, 서점과 공원, 궁전, 극장, 영화관, 펍, 윔블던 테니스장과 맨유경기장, 시장과 백화점 등, 정말 런던스러운 것들을 망라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별로 없습니다. 로미오라고 부르는 저자의 남친과 만나 이런 것들을 구경하러 다닌 이야기, 구경한 것에 대한 느낌이나 배경을 아주 소략하게 정리하고 남친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상적인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쿨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남이 보기에 쿨한 사람은 의외고 많지 않을 수 있습니다. 프롤로그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사랑도 이별도 쿨하게 하고 싶었다’라고 적었습니다. 쿨하게 이별하기 위하여 런던행 비행기를 탄 것처럼 적고는 내용에는 이별의 ‘ㅇ’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 저자는 왜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 회사 동료들과 일일이 안녕을 고하고 런던으로 날아갔을까요? 중간에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런던으로 날아간 내 첫사랑. 그가 가슴 저미도록 보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그녀의 첫사랑은 앞날을 기약하고 런던으로 날아갔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책의 말미에 들어서 대학원에 등록했다는 이야기가 뜬금없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로미오, 혹시 사진을 찍었다는 분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저자가 줄리엣이니 말입니다.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는 남친이 못믿어워서 쫓아간 것은 아닌지. 그리고 공부에 집중해야 할 남친을 불러내 구경을 다니다가 미안했던지 저자 역시 대학원에 등록을 한 것은 아닌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2년이나 보내다보니 영어코스를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해있더라는 것인데, 대학원은 마치고 귀국을 한 것인지도 분명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2년간 저자가 사랑했던 런던에 대한 기록이라고 적은 것을 보면 대학원에 진학만하고 이내 그만 둔 것으로 보입니다.
런던에서 보고 들은 것을 로미오와의 대화체로 가볍게 처리한 것이 어떻게 보면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춘 듯하지만그러다보니 알맹이가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용이 그렇다보니 저의 리뷰도 점점 주제가 흐트러져가고 있습니다. 중간중간에 영국의 궁전들, 공원, 박물관, 다리 등을 간단하게 소개하기도 합니다만, 그 가운데 영국을 빛낸 5인의 대표 문학가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찰스 디킨스, 루이스 캐럴, 제임스 매튜 베리, 버지니아 울프, 해럴드 핀터 등 저에게도 익숙한 이름이기는 합니다만, 이 분들 말고도 쟁쟁한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작가가 런던에서 본 것들을 굳이 영화 혹은 소설의 한 장면과 연결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겉도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세인트 파크에 가면서 한국에서 가지고 갔다는 책을 꺼내 읽다 잠이 들었다거나 그런 저자를 로미오가 찾아왔다거나 하는 등, 꼭 로미오와 함께 하는 이야기를 일부러 만들기 위한 티가 너무 난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소설을 쓰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결국 로미오가 ‘To me, you are perfect!'라는 러브 액추얼리의 닭살 오르는 대사를 뱉게 만들었다면 그녀는 런던까지 날아간 보람을 챙긴 셈입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십여년 전에 런던에 갔을 때는 2박3일에 걸쳐 자료수집차 갔던 것이라서 헤찰할 정신이 없었던 것인데, 이번에 런던에 가게 되면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찬찬히 살펴볼 계획입니다. 이 책의 저자처럼 백화점식으로 늘어놓지 않고, 하나를 보더라도 확실하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