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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아프리카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87
카렌 블릭센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1985년 제작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누구와 함께 보았던가 기억은 가물거립니다만, 초원에 지는 장엄한 석양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어쩌면 이 또한 잘못된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만... 영화는 커피농장의 여주인과 그녀의 남편과 친구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 원작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읽기 시작했습니다만, 영화의 전개와는 전혀 다른, 오히려 아프리카에 대한 원작자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영화에서처럼 연인관계였던 데니스 핀치헨턴에 관한 내용은 둘 사이의 관계를 암시하는 구절조차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농장에 자주 들르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묘사되었습니다. “버클리 콜과 데니스 핀치헨턴에게 우리 집은 공상주의 시설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 집의 모든 물건이 곧 그들의 것이었고 그들은 우리 집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부족한 것들을 가져다 채웠다.(192쪽)” 뿐만 아니라 커피농장이 파산지경에 이르자 농장을 정리하고 유럽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동안에 데니스가 비행기사고로 죽음을 맞게 되는데, 그 죽음조차도 덤덤하게 적고 있습니다.
반면에 농장에서 데리고 있던 원주민들, 마사이족, 키쿠유족 등 원주민 이웃들에 대해서는 미주알고주알 적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자연에 관한 그녀의 묘사는 섬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나무와 꽃 심지어는 공기에 이르기까지... “이곳의 나무들은 활 모양이나 둥근 지붕 모양이 아니라 수평으로 층을 이루며 자랐기 때문에 외로이 서 있는 키 큰 나무들은 마치 야자수처럼 보이거나 돛을 말아 올린 전장(全裝-‘활짱 전체에 애끼찌를 대어 만든 활’이라는 의미인데, 혹시 ‘배의 앞쪽에 있는 돛대’라는 의미의 前檣이 아닐까 싶습니다) 범선 같은 웅대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가장자리 모양이 이상해서 마치 나무 전체가 미세하게 떨고 있는 듯했다. (…) 풀들은 백리향이나 머틀 같은 허브처럼 향이 났는데,d jEjs 곳에서는 그 향이 너무 짙어서 코가 얼얼할 정도였다.(…) 한낮에는 땅 위의 공기가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아 있었다. 흐르는 물처럼 섬광을 발하고 물결치고 빛났으며 모든 사물을 거울처럼 비추어 둘로 만들고 거대한 신기루를 만들어 냈다.(13-14쪽)”
유럽사람들이 남쪽 나라와 남쪽 사람들을 동경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아프리카에 도착하면서부터 원주민에게 뜨거운 애정을 느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주민을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았는데, 예민한 그들을 놀라게 하면 눈 깜박할 사이에 자신들의 세계로 숨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지만, 사파리에서 혹은 농장에서 알게 된 원주민들과 사적이고도 견고한 관계를 맺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다양한 방법으로 원주민들에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신뢰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주민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 것을 보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듯합니다.
준비하고 있는 아프리카 여행길에 케냐의 나이로비의 은공언덕에 있던 그녀의 삶의 터전을 볼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세렝게티에서 예정되어 있는 경비행기 탑승을 통하여 그녀가 데니스의 비행기를 타고 초원을 날던 느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햇살 속에서 날았으나 산허리에는 투명한 갈색 그림자가 져 있었고 우리는 곧 그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하늘에서 버펄로 떼를 발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처음 보았을 때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생쥐들이 마룻바닥에서 곰실거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래로 하강하여 사정거리 내인 45미터쯤 위에서 맴돌며 지켜보자 평화로이 뒤섞이고 흩어지는 버펄로들의 수를 헤아릴 수 있었다.(218쪽)” 이런 묘사들을 읽다보면 이번 여행에서 같은 느낌을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