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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사나이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7
그레이엄 그린 지음, 안흥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5월
평점 :
지난 달에 비엔나에 가면서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을까 해서 들고 갔던 그레엄 그린의 <제3의 사나이>입니다. 오래 전에 명화극장을 통해서 본 <제3의 사나이>는 마지막 장면만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어 원작을 읽어보고 싶기도 했던 것입니다. 앙상한 가지가 너무도 추워 보이는 도로 멀리서 다가오는 안나가 길가에서 기다리는 마틴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가는 마지막 장면이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비엔나의 분위기는 지금과는 달라도 엄청 달랐을 것이라서 원작의 분위기를 느껴본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럽을 대표하여 오스만터키에 맞서던 오스트리아제국이 비참한 지경에 빠진 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터키 등과 함께 연합국에 맞섰다고 패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발칸반도를 두고 러시아에게 밀릴 수 없었던 배경이 있다고 합니다. 전후 연합국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를 분할하고 독일과 분리하는 정도로 마무리를 했던 것인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병합되어 연합국과 맞섰다가 패전을 당했던 것이고, 연합국은 양국의 국토를 분할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독일과 베를린을 동서로 나누어 연합국과 소련이 감시한 것처럼, 오스트리아와 비엔나 역시 소련을 비롯한 미영소 등 4개국이 분할 감시하였던 것입니다.
이 소설의 시기적 배경은 바로 4개국이 분할 감시하던 무렵입니다. 전쟁 후 물자가 부족한 비엔나에서 페니실린을 암거래하면서 폭리를 취하고, 더하여 불량 페니실린을 유통시켜 환자가 죽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암거래를 주도하는 해리 라임을 수사당국이 뒤쫓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인공 롤로 마틴스는 해리의 어릴 적 친구로 라임 덕에 비엔나를 여행하곤 했던 것입니다. 이야기는 해리 라임의 초청으로 비엔나를 방문한 마틴스는 라임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라임의 사고현장을 찾은 마틴스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깨닫게 되고 그의 죽음을 뒤쫓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라임의 애인이라는 안나를 만나게 되고...
극적인 장면은 없지만 해리의 죽음을 뒤쫓는 과정은 추리 스릴러물의 전형을 따르고 있습니다. 마틴스가 해리의 죽음을 캐고 나선 것은 해리와의 우정이 그만큼 순수했기 때문인데, 과연 해리 역시 마틴스에 대하여 순수한 우정을 가지고 있을까요? 하지만 사건을 파고들면서 마틴스는 해리가 자신을 대한 태도가 진실했는가를 되돌아보기 시작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해리가 주도한 페니실린 암거래의 불법성과 비윤리성이 적절한 처벌을 받아야 된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마틴스는 교통사고로 죽었다던 해리를 만나게 됩니다. 해리로부터 자신을 페니실린 암거래에 가담시킬 생각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해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지하 하수도로 도망한 해리를 경찰과 함께 뒤쫓고 결국 해리에게 총을 쏘아 맞추기까지 합니다. 마틴스가 해리를 찾아냈을 때 해리가 했던 “지독한 바보야”라는 말은 해리 자신에게 했던 것인지, 아니면 마틴스에게 했던 것인지 작가는 분명하게 정하지 않았습니다. 책읽는 사람의 몫으로 돌리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저는 마틴스에게 했던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돈을 벌 길을 주겠다는데 바보같이 발로 찼다는 의미겠지요.
영화는 원작에 충실하게 전개되었던 것 같습니다만, 마지막 장면만큼은 다르더군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도 다시 한 번 보시고, 소설도 다시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정원 아래서>라는 소설이 같이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 와일디치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윈튼홀에서의 기억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것들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데, 저 역시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저 환상이었는지 확인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