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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시픈 당신에게 - 늦깎이 한글학교 어르신들이 마음으로 쓴 시와 산문 89편
강광자 외 86명 글.그림 / 한빛비즈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은 지는 꽤 됐습니다만, 느낌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아 리뷰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보고 시픈 당신에게>라는 책 제목에서부터 절절함이 묻어나는 듯해서 마음이 뭉클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늦게 우리말 읽기와 쓰기를 배우신 어르신들이 가슴에 오래도록 묻어두었던 회한 같은 감정을 시로 혹은 산문으로 쏟아낸 글 89편을 모아 엮은 것입니다. 이 분들의 사연 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님의 글을 읽는 듯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듯 합니다.
89편의 글은 내용에 따라서 4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1부 ‘내 속을 누가 아까’는 처음 수록된 시 ‘우리 영감’의 첫구절에서 따왔습니다. 평생 술 때문에 끓여온 속내를 드디어 글로 표현한 것입니다. 술주정을 하실 때는 지금지금 밟고 싶지만, 곯아떨어져 자는 꼬락서니를 보면 불쌍해서 국수를 말아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는 부부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2부 ‘그 돼지는 어찌 대쓸꼬’는 역시 처음 수록된 시 ‘새끼 돼지’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여덟살 때 집마당에 들어온 이웃집 돼지가 젓단지를 핥아가 깨트리는 것을 보고 부지깽이로 때렸더니 뻗었다는 것입니다. 놀라서 숨었는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오셔서 질질 끌고 가시더라면서 그 돼지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54년이 되도록 그 돼지 소식을 듣지 못하셨던 모양입니다. 연세가 적지 않으신데도 어린이 같은 마음은 여전하신 것 같습니다.
3부 ‘책만 펴면 졸음 오니’ 역시 첫 번째 글 ‘공부는 불면증 치료제’의 중간 연을 따온 것입니다. 편집하신 분께서 나름 신경을 많이 쓰신 표시가 나는 것 같습니다. 제목처럼 3부에 담긴 글들은 나이 들어 공부하는 어려움을 하소연하시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아무래도 기억도 예전 같지 않고, 체력도 달리고 해서 어려움은 많지만, 쓰신 글을 보면 이미 경지에 이르신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진솔하고 거칠 것이 없으니 오히려 꾸밈이 많은 글보다 더 마음에 와 닿은 듯합니다.
4부 ‘내 인생에 꽃이 폈네’는 첫 번째 글의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여기 담은 글들은 모두 한글을 깨치고 나니 세상이 달라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글을 읽거나 쓸 줄 몰라 남을 피하던 일이 옛일 같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어르신들이 모두 글쓰기 연습까지 만만치 않게 하신 듯, 글자체도 반듯하고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린이들이 즐겨하듯이 색깔을 달리해서 예쁘게 꾸미거나, 글내용과 관련이 있는 그림을 곁들여 마치 한폭의 시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계셔서 글이 삐뚤삐뚤 써진다고 하신 어르신도 또박또박 박아 쓴 글이 반듯하기만 합니다. 치료를 열심히 받으셔서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간혹 마음이 아픈 글도 있습니다. 이제는 읽고 쓰기까지 배워서 편지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정작 그 편지를 받을 당신이 세상에 없어 편지를 보낼 수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적은 글입니다. 절절한 그리움을 서방님 세상 뜨실 때 남겨준 하얀 손수건에 담아 산소 옆에 달아두셨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꼭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십니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사부곡, 사모곡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적어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책읽기를 마쳤습니다. 어르신들이 공부할 기회를 만들어주신 관계자 여러분들도 참 대단하시고, 또 어르신들의 글을 책으로 묶어 기념하실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한빛비즈도 참 대단한 일을 하셨네요. 제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