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 가는 것들에 대하여 - 인생의 끝자락에서 만나게 되는 뜻밖의 행운
윌리엄 이안 밀러 지음, 신예용 옮김 / 레디셋고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만든 봉사동아리가 내년이면 벌써 창립 40주년을 맞게 됩니다. 창립기념일, 홈커밍데이, 혹은 진료지에서 만나는 후배들이 동아리가 처음 만들어질 때의 분위기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동아리의 역사를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과거를 돌아보는 일인 듯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지난 일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우아하게 늙어가기’는 제가 오랫동안 꿈꾸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에는 우아하게 늙어가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책을 권해드리려 합니다. 윌리엄 이안 밀러교수의 <잃어가는 것들에 대하여>입니다. 밀러교수는 미시간 법과대학의 교수를 역임하고, 2008년에는 성 앤드류스 대의 카네기 100주년 기념 교수에 임명되었으며, 현재는 같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명예 교수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북유럽 영웅담인 사거(Saga) 연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도 사거의 내용을 자주 인용하고 있습니다.


책장을 열면 헌정사에 이어 셰익스피어의 <태풍>에서 인용한 대사가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나이가 들수록 육신은 점점 추해지고, 정신도 부패할 뿐이라네” 우아하게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일찍 깨달은 선지자의 직설적인 경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발전한 현대의학의 힘을 빌어 육신이 추해지는 것은 어느 정도 미룰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정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에 달려있다고 하겠습니다. 밀러교수 역시 나이 들어 잃어가는 것을 다루는 이 책에서 주로 기억력, 작업처리속도, 날카로운 감각, 집중능력과 같은 정신적 능력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오랜 역사와 광범위한 문화 속에서 노인들은 존경보다는 조롱의 대상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또한 ‘삶이란 웃음거리나 조롱거리가 되지 않고, 멸시를 당하지 않으려는 처절한 투쟁과도 같다(23쪽)’라고 하였습니다. ‘설마’하신다면 저자가 인용한 다음 글을 읽어보시면 이해되실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노인을 경멸하고, 노인 때문에 짜증을 내며, 지루해한다.(22쪽)” 14세기 영국작가 존 트레비스의 논문에 나온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래도 밀러교수는 과거의 어느 시기보다도 현재의 우리는(당연히 우리는 노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합니다. 노인으로 살기에 좋은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나이가 들면서 겪어야 하는 것들로 공포, 지혜, 불평, 은퇴와 복수와 재산을 하나로 묶었고, 감정 그리고 구원 등 모두 여섯 가지를 들었습니다. 1부 ‘공포’에서는 정신기능이 떨어지는 원인을 설명합니다. 즉 두뇌의 손상에 따라 불안정하게 늙어가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또한 옛날 노인들의 모습을 살펴보는데, 그들의 행적으로부터 칭찬하거나 비난할 면모를 발견하는 동시에 깊은 연대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부 ‘지혜’에서는 지혜가 그리 친절하거나 밝지만은 않다는 점과 지혜를 정말 지혜롭게 사용할 경우에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워진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3부 ‘불만’은 불평의 전략에 대하여 논의합니다. 불평이 별무소득으로 끝나면 입만 아픈 셈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당신의 불평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비법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신 역시 불평의 대상에서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4부 ‘은퇴, 복수 그리고 재산’에서는 현재 종사하고 있는 직업에서의 은퇴는 물론 인생에서의 은퇴, 즉 죽음을 앞두고 생각해볼 일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재산의 처분에 관한 것에서부터 심지어는 아직도 남은 복수까지도 다루었습니다. 5부 ‘감정’에서는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살아온 날들을 총괄해서 되돌아보았습니다. 6부 ‘구원’에서 저자는 “당신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생을 새로 살아 보고 싶은가? 가능하다면 속임수를 써서라도 인생을 새로 산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선택일까?”라는 질문으로 새로운 기회를 원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역사, 종교 심지어는 북유럽의 영웅담 사거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사건 혹은 인물들이 유럽 중심이기 때문에 책읽기가 수월치 않아 인내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첫장 ‘내 눈 속의 내가 현실과 멀어질 때’에서 논의하는 늙었다는 인식이 들었을 때 저자가 취한 전략 같은 경우입니다. 실제보다 더 많이 늙었다고 주장하거나 이미 찾아온 노화를 인정함으로써 나는 더 많이 잃어버리는 사태를 방지하고, 어쩌면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어느 정도는 되찾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 희생이 마법을 발휘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자살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점에 대하여 저자는 세네카를 인용하여 새로운 시각을 보여줍니다. ‘기본적으로 즐길 수만 있다면 가능한 한 오래 자기 자신과 동행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83쪽)’라고 전제한 저자는 죽음의 기한이 다가오기 전에 자신의 영혼에게 자유를 허락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비참한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는 괴로움은 이제 곧 죽게 되리라는 괴로움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사실 삶을 마치는 방법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다면 그 또한 적절하지 않은 일이 될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스콧 니어링을 생각합니다. 100세를 산 그는 특별한 질환이 없었지만 품위 있는 죽음을 맞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서 먹이를 거부함으로써 죽음을 맞는 동물처럼 그는 100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아내 헬렌 니어링이 그 과정에 함께 하였습니다. 그가 좋아한 ‘기쁘게 살았고, 기쁘게 죽으리. 나는 내 의지로 나를 버리네.’라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을 실천에 옮긴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완숙해진다는 ‘지혜’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은 반드시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고, 인식능력과 복잡한 문제를 처리하는 정신능력이 줄어드는 것을 보상하기 위하여 합리적 판단을 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지혜라는 설명은 잘못된 것이라고 저자는 잘라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에는 다양한 기술이나 입장, 행동이 포함된다고 하였습니다. 금언에 나타나는 지혜는 대체로 영웅적이라기보다는 신중하고, 분별력이 용기를 압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자는 주변에 만연한 사기꾼들과 그들의 거짓말과 속임수를 부단히 경계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혜와 교활함을 구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동년배들과 함께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는 것은 진정한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과거를 낭만적으로 치장하여 젊은이들이 지겨울 정도로 반복적으로 되뇌이며 지혜로운 척하는 일이야 말로 해서는 안될 일이다.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버릇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기억이 엷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요즘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하기 전에 “전에 이야기했는지 모르지만”하면서 분위기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세 번째 주제는 불평입니다. 사실 살아가면서 불평과 불만을 안으로만 삭이면서 사는 부처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보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불평과 불만의 상대가 밖에서 자신에게로 향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노화로 쇠퇴해가는 과정의 미덕은 마음을 영적인 문제에 집중하게 하고, 더 훌륭한 기독교적 죽음을 준비하는데 있는 것으로 본다고 합니다. 즉, 노년기를 속죄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불평을 받아야 할 빚을 받고,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며, 가지고 있는 것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의 하나라고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경우, 예를 들면 왕이나, 군주 심지어는 신이라고 할지라도 불평을 제기하는 기술(?)을 소개합니다. ‘남보다 자신을 낮추는 행위가 상대방을 패배시키거나 당신에게 해야 하는 상대방의 의무를 완수하게 하는 최고의 방법임을 기억하라(201쪽)’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물론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네 번째 주제는 ‘은퇴’인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은퇴는 현직에서 물러나는 것뿐만 아니라 삶에서 물러나는 것, 즉 죽음까지도 포함합니다. 저자는 후자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와 재산이야기가 따라 붙는 것입니다. 흔히 죽음을 맞을 때는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뒷일을 부탁하게 됩니다. 생을 통하여 이루지 못해 마음에 남는 것, 평생을 통하여 일구어놓은 재산, 심지어는 생전에 당한 부당한 일에 대한 앙갚음, 즉 복수까지도 정리를 잘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복수에 한 장을 할애한 것은 아무래도 저자의 전공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 <리멤버>에서는 아우슈비츠에서 지독하게 괴롭힘을 당한 유대인 생존자가 가해자인 독일군을 끝까지 뒤쫓아 복수의 꿈을 이루는데 자신이 직접 죽여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 중 한 사람이 치매에 걸리자 그를 조종하여 다른 가해자를 죽이도록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이 모두 죽고 복수는 성공했지만, 살인을 교사한 진실도 따라서 묻혔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복수에 대한 그의 집념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습니다. 사실 복수하기 위하여 기다리다 나이가 들게 되면 복수의 기회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몸이 쇠약해져 복수를 실행에 옮기지 못할 수도 있고, 복수의 상대가 당신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은퇴의 의식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복수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고 합니다.


5부의 주제는 ‘감정’입니다. 일종의 죽음을 앞두고 마음을 정리하는 단계에 해당합니다. 저자는 5부의 시작을 “죽은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희생하고 베풀었으며, 우리는 그들의 재산을 물려받아 쓰고 있다(275쪽)”라고 시작합니다. 요즈음 노년과 청년세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들 말합니다. 자기세대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편리함을 누릴 수 없었을 젊은 세대의 반발에 노인들은 섭섭한 감정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선대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던 적이 있는가 돌아볼 일입니다. 나이가 들면 이처럼 죽은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년층이 보수로 회귀하는 현상에 대하여 특히 젊은이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선조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이 지켜낸 국가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 마련인 것입니다. 노인들이 소유한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자신의 것이 될 것이므로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것이 스스로를 망치는 길이라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주제 ‘구원’입니다. 모든 인간은 영생을 꿈꾼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말이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죽지 않는 사람」에서 영생을 얻었던 주인공이 천년의 삶을 살다가 결국은 다시 죽는 존재로 돌아간다는 설정을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죽을 운명의 모든 존재들에게는 모든 것이 회복할 수 없고 불안한 가치를 지니는데 반하여, ‘죽지 않는 사람들’에게 각각의 행동은 무한히 반복되는 것입니다. 즉 한계가 있기에 최선을 다하여 불안한 삶을 사게 되는데 반하여 반복되는 일상은 오히려 삶이 느슨하고 지루해질 수도 있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돌이킬 수 없음’이 취약한 한편 완전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노년기의 특권은 삶을 통하여 모든 일을 겪어냈다는 온순한 쾌락의 즐거움에 가까운 감정을 누린다는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장엄하게 물러나 명예로운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위대한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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