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다이어리 - Todo bien
권근혜 지음 / 갈래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여행을 다니고, 여행에 관한 글을 쓰고, 그리고 여행에 관한 글을 읽다보니, 나름대로의 기준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여행기를 읽을 때 지나치게 감성을 자극하는 경우에는 긴장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칫 작가에게 말려들어 지나친 환상을 가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 현지에 가보면 틀림없이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경우는 다소 건조한 느낌으로 여행기를 적다보니 읽는 재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와 비슷한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분들은 도움이 되었다는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어떻든 <쿠바 다이어리>를 읽게 된 것은 쿠바의 의료를 직접 경험해보았다는 소개가 있어서였습니다. 지난번 쿠바에 갔을 때 현지 가이드는 쿠바의 의료체계가 대단한 것처럼 소개해서 제가 아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카리브지역의 따가운 햇볕으로부터 약한 피부를 보호할 생각도 없이 맨살로 돌아다니다가 화상을 입고 병원엘 찾아갔다는 것인데, 그것도 저녁 6에 찾아간 병원은 쿠바 국민을 치료하는 병원이었다는 것입니다. 쿠바의 의료전달체계는 1차 진료의사로부터 진료를 받고 증상이 심하면 상급병원으로 이송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도저도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찾아간 병원에서 처음 만난 의사는 아는 것이 없는지 상급자를 데려오기를 네 차례나 하는 바람에 똑 같은 이야기를 네 번이나 반복하고서도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처방전을 겨우 받아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랬다가는 당장 TV방송에 나고 병원이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 같았다고 하니 눈에 콩깍지가 덮여도 단단하게 들러붙었던 모양입니다.


저자도 소개하는 요시다 타로의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http://blog.yes24.com/document/8702108>는 마치 쿠바정부의 연구비를 받고 쓴 보고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행간을 읽어보면 쿠바정부가 해외의 재난현장에 파견하는 대규모 의료진의 구성을 보면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의사와 의과대학생들로 구성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의료는 쿠바의 전략상품이기도 한 것입니다. 쿠바에서 자체 개발된 의약품을 사용한다고 합니다만 천연약초와 민간요법을 활용해서 자체적으로 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곧 우수한 의약품을 개발할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경제논리를 따르느라고 자체 개발보다는 제약품 수입에 열을 올리는 우리나라와 비교되었다는 저자가 과연 우리나라의 제약산업의 실상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장기간에 걸쳐 쿠바의 곳곳을 돌아보겠다는 뜻을 세운 것은 오로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가 주어지는 곳이 바로 쿠바라는 환상에 매몰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안정적인 회사에 입사해서 겨우 8개월 근무해보고 자본주의의 바닥을 경험한 것처럼 치를 떨며 쿠바로 떠났다는 식이니 요즘 말하는 개념이 투철한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쿠바남자의 안내로 시골을 여행한다거나, 심야에 외진데 있는 나이트클럽을 찾아간다는 등의 발상이 정상적이라고는 보이지 않은 것은 어쩌면 제가 너무 보수적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본 쿠바는 오랜 세월을 국가통제 아래 갇혀 살아온 사람들이 종주국 소련이 무너지면서 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겨우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당장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건물들에 사람들이 사는 것이 신기해보일 정도였고, 심지어는 묵고 있는 호텔방이 문이 잠기지 않는다는 것을 마지막 날 아침에서야 알았다는 것입니다. 저자도 쿠바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 기대려는 경향을 몇 차례나 적었습니다만, 공항의 화장실을 막고 막무가내로 돈을 받는 경우는 황당무계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쿠바라고해도 한 달 이상 외국을 여행하면서 치밀한 계획 없이 기분내키는대로 여행하는 자유로움이 부럽기도 하면서도 대책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쿠바에서 무엇을 배워가지고 돌아왔을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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