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산책자 - 대영박물관에서 떠난 13갈래 문명기행
이케자와 나츠키 지음, 노재명 옮김 / 산책자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독특한 여행기를 읽었습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13개의 문명을 찾아가는 여행인데, 이 여행의 공통점은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독특한 점은 또 하나 있습니다. 여행을 서술하고 있는 사람은 ‘나’가 아니라 ‘그’라는 점입니다. ‘나’아닌 ‘그’를 내세운 것은 아마도 삼자적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였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인 듯합니다.


‘그’의 여행은 관광이었지만 보통의 관광보다는 깊이를 둔 여행이었고, 세부에 주목한 전문가적인 관점이 아니라 한발 물러나 가능하면 넓은 화면을 보려는 자세를 견지했다고 입장을 밝힙니다. 그러니까 적당히 깊으면서도 넓게 훑어보려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이집트, 인도, 이란으로 넘어갈 때만해도, 손꼽히는 문명을 따라가는구나 싶었지만, 그 문명도 소소한 것에 착안한 것이었고, 캐나다의 서안 선주민의 전통미술, 오스트레일리아 에버리진의 전통미술을 찾아가기 위하여 오지를 찾아가는 모습에서는 참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로마가 없는 것도 말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일본이 없는 것도 의외였지만, 중국이 빠지고 한국이 들어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가 조금은 기분 나쁠 수도 있습니다. 수탈품으로 채워진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일본전시실의 수장품은 근세이후의 생활문화에 국한되어 있어 고대 일본의 미술사를 균형감 있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탈품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한국실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망라하여 문화의 역사적 배경을 볼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탈품으로 채워진 대영박물관에 대한 저자의 인식을 보면 복잡한 것 같습니다. 수탈한 문화재를 돌려주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과 함께 대영박물관으로 옮겼기 때문에 보전이 가능하지 않았는가 하는 시각과 덕분에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볼 수 있을, 그러니까 평생 볼 기회가 없을 문명의 흔적들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하는 인식입니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 대영박물관의 기본입장을 환영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개별 문명에 대한 저자의 접근방식은 이렇습니다. 대영박물관의 어느 전시실에서 저자에게 감동을 준 전시물이 발굴된 장소를 찾아가는 것인데, 아마도 그때부터 자료를 찾아보고, 지인을 통하여 찾아갈 방법을 모색하는데, 대부분 관련 문명의 전문가보다는 현지에서 만나는 가이드 혹은 아마추어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 관심사를 충족하는 형식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자신의 생각과 문명을 찾아가는 여로를 더하여 여행기를 완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행에 대한 단상도 기발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여행을 하다가 보면 이렇게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모든 일정을 상대에게 맡겨놓고 자신은 그저 상대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빨리 움직여야 한다. 기다리고 있을 때에 무언인가를 해야 한다.(107쪽)”


다양한 문명의 전시물을 소장하고 있는 대영박물관의 이점 가운데 문명의 특징을 서로 비교할 수 있다는 점도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 점은 인도의 불상에 대한 설명하는 가운데 나옵니다. 인도불상이 지중해문화와 교류가 있던 간다라지역의 우상제조기술이 전해지면서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이때 그리스 조각가가 이곳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불교미술이 인도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 불교미술에도 그리스의 영향이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불상이 걸치고 있는 옷, 그러니까 얇은 천에 주름을 잡아 육체를 직접 표현하는 방식은 헬레니즘문명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초기 인도불상은 서양사람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한국의 문명에 대한 저자의 인식은 복잡한 것 같습니다. 근세의 식민지배는 물론 임진년의 침략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도 색다른데, 일본과 한국의 문명을 같은 높이에 두고 있는 것은 상반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근세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한국을 통하여 대륙의 문명을 받아들였지만, 자신도 중국으로부터 직접 받아들였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출발은 대영박물관이지만, 지구촌 곳곳을 돌면서 색다른 시각으로 개별문명에 접근해가는 좋은 책읽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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