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의 역사 - 최초의 경작지에서부터 현대의 슈퍼마켓까지
한스외르크 퀴스터 지음, 송소민 옮김 / 서해문집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어느 분야이건 그 역사를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역사’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라면 무조건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원천이라 할 곡물의 역사를 다루었다는 <곡물의 역사>는 그런 연유로 읽고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먹방이 대세인 점도 조금은 반영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최초의 경작지에서부터 현대의 슈퍼머켓까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곡물의 역사>는  하노버의 라이프니츠 대학교 식물지리학연구소에서 식물생태학을 연구하는 한스외르크 쿠스터교수의 저작입니다. 저자는 <엘베 : 풍경과 역사>, <숲의 역사 : 원시시대부터 현대까지>, <중부 유럽 풍경의 역사 : 빙하기부터 현대까지>, <데사우-뵈를리츠의 정원 왕국 : 풍경과 역사>, <풍경의 발견 : 새 학문 입문서> 등, 생태학 분야의 역사를 짚어보는 책들을 써왔다고 합니다. 참고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 http://blog.joins.com/yang412/12850611>에서 식량문제의 해결이 인류역사에서 변곡점이 되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하여 구대륙은 물론 신대륙에서의 식물과 동물을 재배하고 가축화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을 기억합니다. 자자 역시 <곡물의 역사>에서 식물은 물론 가축의 일부가 야생에서 재배하거나 가축화되어 인류의 식량이 되어온 과정을 살피고 있는데, 유럽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 <총, 균, 쇠>와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류가 재배하게 된 식물이나 가축화한 동물의 종류가 워낙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다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모든 인류가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석기시대에서 지역별로 각기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은 야생의 동식물을 가축화하거나 작물화함으로써 식량자원과 이동수단 등으로 활용할 수 있었는가에 달려있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야생동물의 가축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제안한 ‘안나 카레리나의 법칙’은 기억해둘만 합니다. 톨스토이가 소설 <안나 카레리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의 불행한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라고 적은 대목을 결혼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그 결혼이 불행해진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는데 식성, 성장속도, 성격, 짝짓기 습성 등의 요소들이 충족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고고학자 패트릭 맥거번은 인류가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하게 된 것은 야생식물을 재배하여 식량으로 삼기위해서가 아니라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습니다.(패트릭 맥거번 지음, 술의 세계사, 글항아리, 2016년)

저자는 만일 재배식물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아예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냥과 채집만으로 살았다면 문자의 필요성이나 도시와 국가도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최초로 집단을 이루어 작물을 재배한 서남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지역’에서 문자를 만들어낸 것과 연관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수렵과 채집만으로 삶을 영위하던 선사시대의 인류가 현대인과 비교해서 불행하였는가를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렵채집을 하던 인류는 하루 너댓 시간의 노동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고, 나머지 시간은 휴식과 여가활동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채집만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도 작물을 재배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수렵과 채집으로 먹을 것을 얻는 시절에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영아와 노인살해, 금욕기간을 설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인구를 억제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농경사회에 접어들면서 식량이 풍족해지고, 노동이 분업화되면서 더 많은 노동인구가 필요해졌기 때문에 인구를 통제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두 열일곱 꼭지로 구분한 <곡물의 역사>에서는 유럽 각 지역에서의 고고학적 조사를 통하여 얻은 성과를 바탕으로, 야생식물이 재배화에 성공하게 된 과정을 뒤쫓고, 이런 재배식물이 유럽사회에 유입되는 과정 그리고 대량생산되고 세계화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저자는 생물군이 단순한 존재 혹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특성을 가진 서로 다른 개체들이 살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우리가 시장에서 달걀, 우유, 혹은 고기를 살 때 이들이 항상 똑 같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반면 곡물은 균일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곡물 역시 재배환경에 따라서 미세한 성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가공과정에서 차이가 더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야생상태이던 곡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재배곡물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자연의 선택이 우선적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단계로 인간이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에게 유용한 요소를 가진 품종이 선택되어 대를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15만 년 전에 아프리카 동쪽에서 처음 등장한 현생인류는 먹을 것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10만 년 전에는 서남아시아에, 7만 년 전에는 동아시아로, 오스트레일리아에는 5만 년 전에, 유럽은 조금 늦은 4만 년 전에 진출하였는데 이는 아마도 유럽을 뒤덮었던 빙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알래스카에는 1만5천 년 전에, 아메리카 대륙에는 1만2천 년 전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빙하기 이후에는 기후의 변화가 뒤따라서 지역별로 동식물의 분포가 달라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을 것입니다. 기후의 변화에 따라 점차 채집과 사냥으로 식량을 얻는 일이 쉽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채집한 곡물을 저장하는 과정에서 떨어진 알곡으로부터 다음해 작물이 성장하는 것을 우연하게 발견한 사람들이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자가수분에 의하여 번식되는 과정에서 재배식물과 야생식물은 점차 뚜렷하게 분리되었습니다. 고고학적 발굴을 통하여 찾아낸 선사시대의 주거지에서는 탄화된 곡식의 낟알과 수많은 식물의 씨앗과 열매들이 발견됩니다. 그것들이 단순하게 수집된 야생식물의 것인지 아니면 재배식물의 것인지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자연선택이 아닌 사람의 선택에 의하여 지배식물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는 낟알의 크기가 아니라 낟알이 익은 후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낟알을 수확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고 합니다.

가장 오래된 재배식물의 원산지는 서남아시아의 저지대 건조지역이라고 합니다. 가장 오래된 재배식물로는 기초 곡물이라고 하는 몇 가지 밀과 보리 종류, 깍지가 있는 콩과 식물인 완두와 편두, 그리고 아마 등이 있습니다. 야생식물이 재배식물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관건이 되는 요소는 앞서도 언급한대로 이삭의 축이 단단해서 낟알이 여물었을 때 즉시 땅에 떨어져 곧바로 싹을 내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수확한 낟알을 저장해두었다가 식량으로 사용하였을 것이나, 이런 식물의 낟알을 뿌리면 같은 낟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본격적인 곡물의 재배가 시작된 것이다. 경작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재배식물로부터 낟알을 수확할 때까지 먹이 경쟁자들로부터 재배식물을 지켜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정주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시점에는 정주생활자와 채집생활자 그리고 사냥생활자로 나뉘게 되었을 것입니다. 정주생활을 시작하면서 야생동물의 가축화가 병행되었을 것입니다. 경작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재배식물의 경작지를 확대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야생식물을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재배식물은 서남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졌으며, 동남아시아지역에서는 벼와 코코야자가, 인도에서는 목화와 콩이(콩은 아프리카가 원산이나 인도에서 품종이 다양해졌습니다), 중국에서는 조와 기장이, 뉴기니에서는 사고야자가, 아프리카의 사바나지역에서는 수수, 밤바라땅콩, 수박, 그리고 얌이, 아메리카에서는 호박, 땅콩, 옥수수, 토마토, 감자 그리고 고구마가 재배되기 시작했습니다.

서남아시아에서 시작한 농경은 마지막 빙하기가 지나면서 숲이 형성된 유럽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당시 서남아시아는 이미 지중해를 통하여 유럽남부와 아프리카 북부를 왕래하고 있었는데, 서남아시아의 농경이 유럽 전체로 확산된 것은 로마제국의 강역이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에 편입된 지역의 군사들 역시 남부지역에 버금가는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어야 했기 때문에 지중해 지역과 같은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새로운 재배식물이 도입되기도 했고, 재배가 불가능한 품목들은 무역을 통하여 해결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이 최초의 거대국가로서 기후 조건이 서로 다른 지역을 아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세 유럽은 장원을 중심으로 한 토지제도가 운영이 되었습니다. 장원의 영주는 재배식물의 수확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경작지를 셋으로 구분하여 각각 월동작물과 하곡작물을 재배하는 경작지와 휴경지로 운영하였습니다. 중세 이후 유럽사회는 동아시아와의 교역이 증대되면서 동아시아의 재배작물이 전해졌으며, 신대륙이 발견된 이후에는 그곳의 재배작물이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유럽사회의 재배식물의 품목과 음식의 종류는 엄청나게 확대되었던 것입니다. 채소, 샐러드, 과일 등의 종류가 다양해졌던 것입니다. 물론 기후 조건 등이 맞지 않아 재배가 어려운 경우에는 현지에서 재배하여 수입해오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런 변화는 유럽사회의 토지이용의 개혁과 세계무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농지를 분할하여 운영하던 삼포식 농업을 폐지하고 농지를 통합하여 효율적으로 경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반면 농지의 황폐화와 병해충의 피해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송능력의 확대와 함께 농지의 상업적 경영이 확산되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농업분야의 기계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농업인구가 격감하게 되고, 재배품종이 다양성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농업이 효율화됨에 따라 식량생산이 극대화되었음에도 지역에 따라 굶주리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저자는 농업이 고도화되면서 곡물생산은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거꾸로 곡물생산이 줄어들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안보적 차원에서 식량생산을 고민해본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새로운 품종의 도입과 관련하여 유전자재조합 곡물의 안전에 관한 논란도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그리고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 거론된 농업생태계의 보존과 관련한 움직임 등에 관해서도 짚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을 인류의 문화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오늘날의 문화발전은 그 발전에 의하여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큰 과제를 안고 있으며, 생명의 발전을 위한 기초가 미래에도 확실히 마련되어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298쪽)”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과제는 지금까지 알려진 자연적 상관관계에만 전적으로 초점을 맞춘다면 해결할 수 없을 것이며, 자연과 문화가 상호의존적이라는 점을 최대한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문화가 공존할 수 있는 경지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이 유럽사회를 중심으로 한 곡물의 역사라는 한계를 지적하였습니다만, 저자 역시 그 점을 간략하게 언급하였습니다. 즉 현재 세계에서 재배되는 식물종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재배식물의 역시 기술에서 모든 것을 고려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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