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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과 제왕 - 문화인류학 3부작 ㅣ 넥스트 3
마빈 해리스 / 한길사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류학 분야의 책은 참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주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식인과 제왕>을 우연히 발견한 것은 인류학이 가진 힘을 새삼 깨닫게 하는 기회였습니다.
서론에서 저자는 “내가 이 책을 쓰는 목적은 인류는 앞으로 위로 전진하고 상승하는 진보를 계속 거듭해 나아간다고 보는 낡은 빅토리아식 발전관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문화발전을 보다 사실대로 설명하는 발전관을 들여앉히는 데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물질적․정신적 복지와 생산증가 및 인구억제를 위한 여러 제도의 비용과 효과, 그리고 이 양자 간의 관계를 밝혀보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식인풍습, 사랑과 자비의 종교, 채식주의, 유아살해 그리고 생산의 비용과 효과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자유로운 의사와 도덕적 선택이 사회제도의 발전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석기시대의 사람들이 그 이후의 어느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여유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16세기 유럽사람들이 발견한 신대륙에 사는 원주민들이 전쟁을 벌이고 적의 목을 베어 전리품으로 모으고, 포로를 산채로 불태우거나 종교의식에서 인육을 먹는 것을 보고 이들이 미개하다고 단정한 것을 두고, 저자는 문명화되었다고 믿었던 유럽 사람들도 인육을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신대륙의 원주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역사에는 공통된 문화적 틀을 유지하게 하고, 변화에 최초의 시동을 걸며, 같은 또는 다양한 방향으로 변환과 변혁을 결정짓는 프로세스가 있으며, 그 프로세스는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합니다.
석기시대 이래로 인류는 식량의 공급과 수요를 맞추기 위하여 손쉽게는 유아살해나 노인살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채집과 사냥으로 식량을 구하던 인류가 농업과 목축을 통하여 식량을 얻게 되었지만, 이는 삶을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도록 하는데 기여하였을 수는 있지만, 투입해야 하는 노동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집단의 수요를 채우기 위하여 다른 집단과의 전쟁이라는 차선책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잦아지면서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원시국가의 형태가 자리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앞서 신대륙 원주민들의 식인풍습을 인용했습니다만, 마야와 아즈텍에서 식인풍습이 자리하게 된데는 마땅한 단백질원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의 선주민들이 야생동물들을 남획하여 멸종하면서 이를 대체할 가축을 개발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구대륙에서 소, 돼지, 말, 낙타 등 다양한 동물을 가축화하고 있었고, 안데스지역에서는 라마나 기니피그를 가축화하고 있어 넉넉하지는 않지만 단백질원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신에게 인간을 희생물로 바치는 의식은 메소아메리카 지역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 보면 고대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유사한 현상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메소아메리카에서는 인신공양과 더불어 식인의 풍습이 있었던 것입니다.
근대에 들어서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국가가 형성되는 배경까지도 재화와 용역의 배분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중세 무렵까지도 문명수준이 압도적으로 높던 중국의 국가체제가 벌전하지 못한 것도 재화의 배분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데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요즈음 주목받고 있는 출산율 저하나, 영아살해 자녀유기 등의 끔찍한 사회현상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어린이 양육이 가져오는 순이득이 그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더 유리할 때는 자녀를 많이 낳았을 것이나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특히 진화의 방향이란 누구도 예측이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화적 진화발전 방향이 제도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열려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인간의 자유의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지금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