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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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오베라는 남자>에서 나름대로 정한 세상 살아가는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남자를 그린 데뷔작으로 일약 주목을 받은 스웨덴의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소설입니다. 이번에는 자상하면서도 뚝심 있는 할머니를 이어받은 8살 소녀가 주인공입니다. 무대는 할머니와 손녀딸 엘사가 살고 있는 4층 아파트입니다. 아파트라고는 하지만 각층에 두 집이 살고 있는 빌라입니다. 맨 위층에는 할머니의 집과 엘사가 엄마와 사는 집이 있습니다.


엘사는 우리말로 ‘미운 나이’라고 하는 일곱 살입니다. 물론 이야기 중에 여덟 살 생일을 지내게 되니 한창 미운 나이를 지나가는 시기라고 해야 하나요? 어떻든 엘사는 어른들이 ‘나이에 비해 아주 성숙하다’라고 평가하는 특이한 아이입니다. 할머니는 그런 엘사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줍니다. 그것은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엘사로 이어지는 모녀3대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가정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두 사람은 환상적 요소가 강한 특별한 관계인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깰락말락나라’라는 신비로운 나라를 같이 여행하고 그 기억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환상의 세계에서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동화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런데 엘사의 할머니께서 안타깝게도 암으로 돌아가시게 됩니다. 죽음을 앞두고 할머니는 엘사에게 중요한 미션을 맡깁니다. 할머니로부터 받은 편지를 아래층에 사는 괴물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미안하다’라는 인사와 함께... 미션은 꼬리를 물고 등장합니다. 할머니는 아파트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를 남긴 것입니다. (생전에 이러저러한 일을 해서) ‘미안하다’라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미션에는 엘사로 하여금 할머니의 과거사를 이해하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얽혀 있는 인연을 이해하고, 떠나지 않도록, 즉 환상을 공유하도록 하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이리저리 얽혀 있기 때문에 그 연결을 파악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환상의 세계에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서 할머니가 엘사에게 들려주는 환상의 세계에 관한 동화는 기실 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드러납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즐기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을 뿐 아니라, <반지의 제왕>, <해리포토>등 판타지 소설들을 오마쥬하는 장면도 많이 나올 뿐 아니라, 인터넷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어 주로 젊은 층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가끔 위험한 일을 저질러야 할 때도 있다. 그래야 우리가 진정한 인간인거다(17쪽)”라는 구절은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나오는 모양입니다. 엘사의 할머니는 외과의사였고, ‘국경없는 의사회’처럼 구호활동을 벌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갈데 없는 사람이 생기면 집으로 데려와 아파트에 살게 했던 것입니다. 할머니가 구호활동에 나섰던 것은 자신이 고아출신이란 점도 작용했던 모양입니다.


할머니가 엘사에게 준 미션은 할머니 소유의 아파트를 엘사에게 물려주기 위한 조치였던 모양입니다. 엘사라면 아파트에 살고 있는 누구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엘사가 유언장을 읽기 전에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처였던 것입니다. 할머니가 남긴 마지막 편지는 엘사 자신에게 보내진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의 편지는 ‘사랑한다’가 아니라 ‘주글 수밖에 없어서 미안해(539쪽)’였습니다. 할머니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할머니가 마음속으로는 그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할머니가 무엇을 원했는지를 기억해냈습니다. 결국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집을 팔고 이사를 가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들 사이에서 더 많은 동화가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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