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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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를 공부하다면서 눈에 띈 작품입니다. 노벨상 수상작가로 유명한 파블로 네루다의 이름을 제목으로 가져온 것을 보면 네루다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삼류 신문사의 문화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이 작품의 무대가 되고 있는 이슬라 네그라에 머물고 있는 네루다를 기습 방문하여 인터뷰를 하고, 가십난에나 어울릴 야리꾸리한 기사를 써보려 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 기사는 쓰지 못했고, 대신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시인의 집을 기웃거렸고, 그 집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엿보면서 이야기의 줄거리를 가다듬어 갔던 모양입니다. 그때 만난 사람이 이 책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마리오의 부인 베아트리스 곤잘레스였나 봅니다. 실종된 남편의 이야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했던....

 

작가는 이 작품의 큰 줄거리를 “열광적으로 시작해서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며 끝을 맺는다”라고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요약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때는 1970년대 초반.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우편배달부로 일하는 마리오는 마을의 가장 고명한 주민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것이 유일한 업무이다. 아름다운 소녀 베아트리스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소녀를 위한 시를 써달라고 조른다. 네루다는 우체부에게 메타포를 가르쳐주어 베아트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하고, 베아트리스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리오와 베아트리스는 결혼을 하게 된다. 이후 네루다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마을을 떠나 있을 때나 주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어 파리에 있는 동안에도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이어간다. 피노체트가 일으킨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가 목숨을 잃고 네루다 역시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에도 마리오는 목숨을 걸고 네루다를 찾아와 그의 곁을 지킨다.”

 

시간적으로 이야기는 크게 세 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연히 우편배달부가 된 마리오가 네루다와 인연을 맺게 되고, 그의 도움을 받아 베아트리스와 결혼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도입부가 될 것 같습니다. 네루다가 지지자들에 이끌려 대통령선거에 나섰다가 살바도르 아옌데 후보로 단일화가 이루어지면서 아옌데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네루다가 프랑스 대사로 떠나게 되고, 그 사이 마리오는 네루다로부터 전수받은 메타포를 이해하여 시작(詩作) 공부에 나서는데, 사실은 일상에서 시상(詩想)을 가다듬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일상에는 개혁적인 성향의 아옌데 대통령에 대한 보수파의 조직적인 저항을 우회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아옌데 정부에서 네루다는 프랑스 대사로 임명되는데 파리에서도 이슬라 네그라의 풍광이 삼삼하여 향수병에 빠졌던 모양입니다.

 

그 사이에 네루다는 내심 기대하던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고, 마리오는 동네 잔치를 열어 문학적 스승에 대한 경의를 표시합니다. 정말 좋은 제자인 것 같습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노벨상 수상 이후에 네루다는 병이 들어 이슬라 네그라로 돌아오고, 마리오는 드디어 첫 번째 시로 공모전에 나섭니다. 네루다로부터 전수받은 메타포를 찾는 작업이 결실을 맺게 된 셈인가요?

 

처음 만남에서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해준 “칠레에서는 모두가 시인이야(28쪽)”라는 말이 사실이었던 셈입니다. 아니면 마리오가 시인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네루다가 자작시를 들려주는 동안 마리오는 자신이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네루다가 낭송해주는 단어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바다와 같았다거나, 그런 모습을 보는 동안 멀미를 느꼈는데, 마치 자신이 낭송하는 말 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배와 같았다고 합니다. 정말 특별한 마리오인 것 같습니다.

 

네루다가 투병을 하는 사이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아옌데 대통령은 숨지고 네루다 역시 연금상태에 있다가 병이 중해지면서 병원으로 옮겼지만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마리오는 찾아온 누군가에 의하여 어디론가 끌려가고....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하여 네루다의 서민적인 풍모를 부각시키고, 칠레 민주화과정이 좌초한 것을 애닲아하는 마음이 진하게 묻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군사쿠데타를 주도한 피노체트는 1974년부터 1988년까지 철권을 휘두르면서 반대세력을 탄압하였습니다. 마리오의 실종은 그와 같은 앞날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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