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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의 바다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놀 / 201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http://blog.joins.com/yang412/13491439>를 통해서 만났던 팀 보울러를 신작 <속삭임의 바다>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외부 세상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섬을 무대로 역시 신념을 지켜가는 소녀가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을 다루고 있어 문제가 많은 학교와 가정 속에서도 꿋꿋하게 바른 길을 걸어가는 소년의 성장과정을 다룬 전작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사방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끝없는 바다와 수평선 밖에 없는 섬에서는 바람과 파도가 무서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집집마다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씩은 꼭 있어서 마음을 기댈 무엇인가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열다섯 살이 된 처녀 헤티가 살고 있는 모라섬도 그런 곳입니다. 어렸을 적에 섬 밖에서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러 나갔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는 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모라는 몽상가적 기질이 있어 바다유리를 들여다보면서 무언가를 발견하려고 합니다. 바다유리는 유리병 혹은 유리조각이 파도와 모래에 오랫동안 깎여 매끈한 보석처럼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버린 폐기물을 자연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 되는 셈입니다.
저자는 “헤티는 유리 속을 떠다니는 형상에 대해, 그리고 수년 동안 찾아보았지만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다른 형상에 대해서도 생각했다.(10쪽)”라고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마 헤티는 바다유리에서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님의 형상을 찾으려 애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유리 속에서 발견한 형상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그 비밀이 밝혀지는 날이 오게 됩니다. 헤티는 폭풍이 몰려오기 직전에 배를 타고 들어온 노파가 바로 그 사람이고 자신을 찾아온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배가 섬에 도착할 무렵 시작된 폭풍에 휩싸여 바다에 빠진 노파를 마을 사람들이 구해냅니다. 마을에서 나이가 많은 퍼노인은 그 노파가 바로 모라섬에 재난을 가져올 사람이기 때문에 죽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마을 사람들을 선동하고 나섭니다. 어느 동네나 이런 분이 꼭 있는 것도 묘합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선동하던 퍼노인이 사고로 죽고 퍼노인에게 동조하던 친구 그레고르 노인까지도 죽음을 맞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사경을 헤매는 노파를 집으로 모셨지만 헤티의 할머니와 친구들도 회생의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 상황에서 오직 헤티만은 회생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열여섯 살된 앳된 처녀가 마을의 원로에게 맞서 틀린 생각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용기는 쉽게 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헤티의 믿음대로 노파는 사경을 벗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섬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인 배가 폭풍에 휩쓸려 부서지는 상황에 이어 마을의 원로 둘이서 잇따라 죽음을 맞게 되자 헤티는 노파를 지키는 것이 버겁다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작은 배 ‘아기 돌고래’에 노파를 싣고 노파가 살고 있는 동네, 모라섬에서도 한참을 나가야 하는 하가까지 데려다주려고 나서게 됩니다. 섬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든 배, ‘모라의 자랑’이라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곳이지만, 헤티의 작은 배로는 어림없는 일일 터인데 용감한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신념은 세상에 무서운 일이 없게 만들 수도 있는 모양입니다.
아기 돌고래도 결국 파도를 만나 돛이 부서져 표류하게 되는데, 운명이 그렇게 인도한 것인지 노파가 살던 곳, 하가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모라섬으로 흘러온 노파, 마리타 할머니는 바다에서 잃은 딸 로사를 찾아 나선 것이었는데 하가와 모라섬은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인연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아 궁금증을 풀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헤티가 무모하다 싶은 행동도 그녀의 신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운명의 끈이 당기는 대로 나아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세상이 이런 일이’에 나올 만 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합니다. 건강한 생각을 가진 헤티가 하가에서는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