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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원주민의 전쟁과 평화 - 유까딴 1847-1902 ㅣ 중남미지역원 학술총서 14
정혜주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7월
평점 :
오래 전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 멕시코 칸쿤으로 가는 여행상품을 안내하는 광고가 많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칸쿤은 유카탄반도 북동쪽 끝에 있는 작은 섬인데 1970년까지는 100여 명의 마야인들이 낚시와 채집을 하며 지내는 조그만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광고를 볼 무렵 관광지로 개발이 되었을 때였던 모양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가보았더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개발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마야원주민들의 모습이 지금보다는 원형에 가깝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중남미지역원에서 연구하시는 정혜주교수님의 <마야 원주민의 전쟁과 평화>는 유카탄반도의 마야원주민들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된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는 끄리오요들에 의한 착취와 탄압에 맞선 투쟁과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서로 교류하던 아시아-유럽-아프리카에서 멀리 떨어져 독립적으로 살아온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들로서는 1492년 컬럼버스의 도착은 재앙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마야 사람들에게는 1502년 유카탄 해안에 도착한 스페인사람들을 발견한 것은 재앙의 전주곡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1511년부터 황금을 찾아 유카탄반도 탐사에 나섰던 스페인 사람들은 마야원주민의 호전적 대응에 속수무책으로 패하였지만 그들의 신전을 장식한 금붙이는 사지라도 뛰어들도록 만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마야 원주민들이 제국을 이루고 살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최근에 공부한 바에 의하면 마야사람들은 일종의 도시국가처럼 지역에 웅거하여 생활하고 있었고, 부족들이 인정하는 신의 대리자가 세워져 있지만 중앙과의 연대가 긴밀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러한 마야 부족의 특성은 스페인 사람들이 쉽게 파고들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즉 저항하는 마야원주민과의 전투를 통하여 학살하는 한편으로는 마야원주민의 지도층을 회유하여 다른 부족을 공격하는데 힘을 보태도록 하는, 즉 부족간의 갈등을 이용하여 지배영역을 넓혀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배경에는 초기에 마야사회에 정착한 스페인 사람들을 통하여 마야 사람들의 신앙을 이용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300년이 지난 뒤에 멕시코 중앙고원에 위치했던 누에바에스파냐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이 결실을 맺어 멕시코가 독립을 쟁취하면서 유카탄반도의 마야원주민들 역시 독립을 얻었지만, 원주민들을 지배하던 라디노라고 부르는 백인 끄리오요들의 착취는 변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1847년부터 1854년까지 7년에 걸쳐 끄리오요들과 마야원주민 그리고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조 사이에 치열한 유혈충돌이 있었고, 최종적으로 패퇴한 마야원주민들은 반도의 북동쪽 밀림지역으로 밀려나 숨어살면서 47년에 걸쳐 소규모의 전투를 치르면서 저항하는 삶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저자는 54년에 걸친 마야원주민들의 치열한 독립전쟁의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제1장에서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마야 사회의 형편을 요약합니다. 독립적으로 생활하던 마야원주민들이 순식간에 노예신분으로 전락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제2장에서는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얻은 직후의 사회상황과 결국은 충돌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던 유카탄반도에서의 사회적 분위기를 설명합니다. 제3장부터는 제5장까지는 원주민과 라디노가 충돌하여 진퇴를 거듭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마야원주민들의 일부는 라니노 편에 속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아마도 원주민을 노예처럼 부렸던 라니노측이 원주민에게 조건을 제시하고 동원하였것 같습니다.
저자가 설명을 하고는 있지만 이해되지 않은 점은 원주민들이 승리를 쟁취할 수도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던 1848년 우기에 마야원주민 전사들이 대부분 옥수수를 심어야 한다면서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마야 사람들에게 옥수수 재배는 일종의 하늘의 뜻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적과 싸우는 마당에 옥수수 파종을 이유로 전장을 떠날 수도 있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 점입니다. “그들은 복수보다는 자신들의 풍습과 전통적인 의례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205쪽)”라고 합니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인지 다른 속셈이 있었던 것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순수한 쪽으로 이해되는 마야사람들의 속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