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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인문학 - 제자백가 12인의 지략으로 맞서다
신동준 지음 / 이담북스 / 2015년 6월
평점 :
지난주에 이진우 교수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http://blog.joins.com/yang412/13720719>을 소개하면서 동양의 <손자병법>과 서양의 <전쟁론>을 비교한 신동준박사의 견해를 인용한 바 있습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재해석하면서 이진우교수가 내세운 화두는 ‘21세기는 총칼이 난무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전쟁이 벌어지면 새로운 전술로 승리할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인데, 역시 지금까지 나온 전쟁에 관한 이론들 가운데서 탁월한 것들로부터 배울 점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신동준박사의 <난세의 인문학> 역시 궤를 같이 한다고 하겠습니다. 신동준박사는 21세기를 G2 즉 미국과 중국을 정점으로 하는 경제전의 시대로, 난세에 해당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난세에 살아남는 방식은 아무래도 치세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세에 살아남을 수 있는 해답을 난세 중의 난세라고 할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물론 삼천년 가까운 세월의 차이가 있고, 당시의 사회상과 현대의 사회상이 크게 다른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때의 이론이 지금에도 유효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다양한 이론들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기원전 771년 주나라가 수도를 호경에서 낙양으로 옮겨 동주라고 부르게 되면서 주나라의 황실이 쇠약해지고 지방을 다스리는 제후들이 발호하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221년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때까지 제후국들이 각축을 벌이던 550년의 세월을 춘추전국시대라고 합니다. 제후국들은 일시에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다가도 순식간에 몰락하는 등 부침이 심했고, 약소국을 병탄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렇듯 불확실성이 컸던 시기인 만큼 제후들은 나라를 잘 다스려 부강하게 만들고 백성들이 평안할 수 있는 방법을 갈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수많은 재사들이 등장하여 난세를 다스릴 방안을 내놓았는데, 이들을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이론을 내세우거나 다른 이들의 주장을 비판한 일을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고 합니다.
춘추시대 말기에 등장한 공자를 제자백가의 효시로 합니다. 공자는 은나라와 주나라의 민족신앙에 뿌리를 둔 예(禮)를 발전시켜 통치의 근간으로 삼는 유가의 이론을 정립했습니다. 그런데 공자의 예를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측면이 있었던지 제후들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하였습니다. 제후국들이 난립하면서 상호견제와 대립이 치열해진 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치세의 방식에 대한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이런 요구를 만족시킬 다양한 생각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백가쟁명하던 제자백가들을 여러 유파로 분류하였는데, 그 가운데 유가(儒家), 묵가(墨家), 도가(道家), 음양가(陰陽家), 명가(名家), 종횡가(縱橫家), 법가(法家), 잡가(雜家) 그리고 농가(農家) 등의 9개 유파(流派)가 대표적인 학자집단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신동준박사는 550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야말로 동서고금을 통하여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난세 중의 난세였기 때문에 기모기책(奇謀奇策)이 무수히 쏟아졌고, 이런 방략들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실제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제자백가들의 백가쟁명 가운데에서도 작금의 난세에 적용이 가능한 이론을 선별하고 재해석하여, 특히 우리나라가 21세기 동북아의 허브국가로 도약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제자백가들 가운데 유파의 안배 없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열두 명의 사상을 골랐습니다.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공자(孔子)의 신사론(紳士論), 순자(荀子)의 명실론(名實論), 한비자(韓非子)의 정략론(政略論), 귀곡자(鬼谷子)의 협상론(協商論), 손자(孫子)의 화전론(和戰論), 상자(商子)의 변법론(變法論), 관자(管子)의 부민론(富民論), 묵자(墨子)의 복지론(福祉論), 맹자(孟子)의 도덕론(道德論), 노자(老子)의 문화론(文化論), 열자(列子)의 허무론(虛無論), 그리고 장자(莊子)의 자유론(自由論)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 담은 열두 명의 이론들은 배열한 순서는 어디에 근거하는지 분명하지 않아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자백가의 효시인 공자를 제일 먼저 내세운 것은 그렇다고 쳐도, 사상사적으로 볼 때 제자백가의 모든 사상을 하나로 녹인 최고의 정점에 서 있다고 평가한 <도덕경>을 쓴 노자는 공자보다 1세대 정도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맨 앞도 아니고 맨 뒤도 아닌 중간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열두 명의 사상가들의 삶과 사상을 30쪽 내외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족적을 문헌에 근거하여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내용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손자병법>을 썼다는 손무가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잘라 말합니다. 손무가 실존인물이기는 하지만 <손자병법>은 후대인들이 전해오는 병법이론들을 손무의 이름을 빌어 요약한 것이라는 설과 손무 자체가 가공인물이라는 주장들이 있어왔다는 것입니다. 현존하는 <손자병법>은 조조의 <손자약해>를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입니다. 조조는 82편이나 되는 <손자병법>들을 수집하여 요약하면서 정밀한 주석을 붙인 <손자약해>를 썼다고 합니다. 손무가 가공인물일 것이라는 주장과는 달리 저자는 <손자병법>이 최고의 병법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심지어는 서양에서 최고의 병서로 치고 있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난삽하고 전쟁 자체를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비판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클라우제비츠는 전략가가 아니고, <전쟁론> 역시 내용 자체는 과거의 전사를 전투상황별로 기록한 전사 사료에 가깝다고 평가합니다.
저자는 사상가들의 대표적인 저서의 핵심 내용을 요약할 뿐만 아니라 그 사상의 계보를 짚고 있습니다. 또한 그 핵심적 내용을 근, 현대의 사건들과 연관시켜 재해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가 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 일고 있는 인문학 열풍을 단순히 치부의 기술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계하면서 공자의 인(仁)의 개념을 설명합니다. 공자가 생각한 ‘인(仁)’은 머리나 책 속에 있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의 다양한 인간관계에 내재해있는 실천적 개념으로, 인간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선행되어야만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서양문명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과학기술 문명을 이루기는 했지만 인간과 국가사회의 상호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저자는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를 논하면서 동서고금의 다양한 학문적 성과들을 연결하여 설명의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공자가 세운 유학의 전통을 맹자가 계승한 것으로 이해해왔습니다만, 저자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것은 순자이며, 맹자는 겉으로만 공자사상의 수호자임을 자처했을 뿐 내막을 보면 묵자의 사상을 이어받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공자에 이어 순자를 논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는 곳곳에서 조선의 유학자들이 성리학에 매몰되어 그 틀을 뛰어넘지 못한 우를 범했다고 비판합니다. 성리학(性理學)은 12세기 남송의 주희(朱熹)가 집대성한 유교의 주류학파로서 학문의 목적은 위기지학(爲己之學), 즉 자기수양을 위한 학문입니다. 학문을 하는 이유가 국리민복하고 부국강병에 기여하는데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선비들은 그저 자신을 위하는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나라를 잃는 결과를 자초했다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수신제가(修身齊家)하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유학의 해석이 잘 못된 것이라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제가백가를 살펴 오늘날에 대처하기 위한 요체를 찾아보라는 저자의 의도가 분명하게 읽히는 부분은 관자의 부민론(富民論)입니다. 경제학이 핵심요체입니다.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전에서 클린턴 후보가 현직대통령인 아버지 부시를 꺽고 대통령에 당선된 원동력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한 마디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현대 경제는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아시아 사회에서는 경제활동은 그리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환공을 도와 최초의 패업(霸業)을 이룬 관자는 일찍이 경제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관자』「팔관」편에 “나라를 다스리는 데 사치하면 국고를 낭비하게 되어 인민들이 가난하게 된다. 인민들이 가난해지면 간사한 꾀를 내어 나라를 어지럽히게 된다.(202쪽)”라고 적었습니다. 관자는 부국강병을 염원하는 제환공을 달래 부민을 관철시킨 연후에 부국강병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필선부민(必先富民)을 관철했다는 점에서 칭송을 받아 마땅합니다.
저자는 관자의 경제학에 담긴 금융정책이나 재정정책이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이론이나 케인즈의 재정이론에 다름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나아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부등식 이론’ 역시 관자경제학의 21세기판 이라는 것입니다. ‘자본이 스스로 증식해 얻는 소득이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을 웃돌기에 소득 격차가 더 벌어진다고 진단한 피케티는 극소수의 최고 소득자에게 지금보다 더 높은 세율로 과세하는 방안과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부과하자는 제안을 내놓아 박탈감에 빠진 민중들을 열광케 하였습니다. 나라에서 적극 개입하여 부상대고의 폭리를 원천봉쇄해야 한다는 관자의 경제학의 요체와 흡사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피케티의 해법을 적용했다가 참담한 실패를 맛본 노무현 정부의 포플리즘 정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호황 속에서 한국만 저성장을 거듭한 것도 뼈아픈 일인데, 국민들이 둘로 쪼개져 대립하는 양상을 야기한 것은 실로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는 단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글로벌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이 시대, 새로운 시각으로서의 난세를 살아가는 해법을 춘추전국시대에서 구하는 한편, 저자는 동서고금을 통한 다양한 이론과 역사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목적은 제자백가들의 이론이 현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경제의 기본틀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는 크게 3번의 변환기를 거쳤다고 보는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아나톨 칼레츠키의 견해는 관자의 경제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석합니다. 첫 번째 변환기는 애덤 스미스가 내세운 자유방임의 자본주의로 자본주의 1.0이라고 했습니다. 이 시기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세금을 징수하고 관세장벽을 세우는 정도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시기는 러시아혁명과 대공황의 위기가 찾아온 1930년대 무렵으로 경제가 정치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인식에서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여 경제를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케인즈를 대표로 하는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주류를 이루던 자본주의 2.0의 시기입니다.
세 번째 시기는 대처와 레이건이 내세운 신자유주의가 강세를 이루던 시기로 밀턴 프리드먼이 역설한 통화주의가 주류 경제이데올로기였던 자본주의 3.0의 시기입니다. 이때는 정치가 경제의 한 분야로 다루어졌습니다. 정부는 언제나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시장이 부패한 정치인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되었습니다. 자본주의 3.0은 반정부 이데올로기의 모순이 노정되면서 지속적으로 힘을 받을 수 없게 되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칼레츠키가 주장하는 자본주의 4.0은 유능한 정부가 있어야만 효율적인 시장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요구합니다. 자본주의 2.0과의 차이점은 정부의 역할은 커지되 작은 정부를 특징으로 하는 것으로 관자경제학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저자는 제자백가의 사상을 문학, 역사, 정치, 외교, 군사, 법률, 경제, 사회, 윤리, 인류학, 철학, 그리고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와 연계하여 재해석하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