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동안
윤성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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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을 찾다 눈에 띈 단편집입니다. 제목에 이끌렸는데, 작가는 여기 담은 단편들에는 웃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주인공들이 웃는 동안만이라도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웃음은 감염성이 있다고 하던데 읽는 이도 주인공을 따라 웃다가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까요?

 

열 개의 단편을 읽고 나서야 웃음에 관한 저자의 말을 발견했고, 과연 주인공을 따라 웃었던 이야기가 있었나 되짚어 보았지만, 기억에 남은 웃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리뷰를 쓰려면 웃음 사냥에 다시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음사냥에 나서기 전에 전체적인 느낌을 먼저 정리해보면 귀신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 역시 매년 서너편의 단편을 쓴다고 했는데, 그것들이 모두 귀신에 관한 이야기라는 지는 분명치 않고, 왜 귀신 이야기를 쓰는지를 밝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등장해서 산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것인데 마치 살아있는 날처럼 적고 있어서 읽다보면 살았을 때 이야기인지, 아니면 죽었을 때 이야기인지 헷갈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단편들을 이어서 써내려갔다고 했는데, 그래서 인지 앞의 이야기에 등장했던 사람이 다시 등장하기도 합니다. ‘영화 오래보기’라는 이벤트 참가기를 다룬 ‘공기 없는 밤’에 마지막 부분에서 알듯 모를 듯한 묘사가 나옵니다. “친구의 관을 들고 화장장까지 걷던 친구들이라면, 저렇게 소파를 들고 길을 걸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영희와 영희가 길을 걷다 소파를 들고 가는 청년들을 만난다면 뭐라고 물어볼까? 관절염을 앓는 영희에게 청년들은 잠시 소파에 앉도록 해주겠지.…(118쪽)”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른 이야기에서는 카메오로 등장하는 기법을 영화에서 가져온 것 같습니다. 그 점을 분명하게 해주는 대목은 이렇습니다. “두 번째 영화를 보고 나서야 첫 번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영화를 보고 나니 첫 번째 영화와 두 번째 영화가 다르게 이해되었다. 그런 식으로 열 편의 영화들이 겹쳐졌다.(119쪽)”

 

어떤 독자는 비극 속에서 웃음을 찾아낼 줄 하는 작가라고 리뷰에 적었습니다만, 비극과 웃음에 관하여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극을 더욱 비극답게 만들기 위한 장치가 웃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극에 웃음을 제대로 끼워 넣을 수 있는 작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가 한 꼭지의 웃음을 삽입한 이유일 것입니다. 단편마다 담겨 있는 웃음이 책읽는 이들에게 어떻게 전해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읽은 이들마다의 감성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열편의 단편 가운데 나름 인상에 남는 웃음 코드를 꼽아보았습니다. 첫 번째 작품 ‘어쩌면’은 수학여행길에 버스사고로 죽어 귀신이 된 여학생들이 귀신의 집에 놀러간 장면입니다. “우리들은 귀신의 집에 들어갔어.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이 천장에서 떨어지자 거울과 압정이 소리를 질렀어. 손을 잡고 있떤 연인들이 귀신 인형의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면서 깔깔거렸어. 우리는 좀 쪽 팔였어. 가짜 귀신에게 놀란 진짜 귀신이라니. 누가 알아차릴까 봐 우리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어.(24쪽)” 요즈음 처녀귀신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만, 이 단편에 등장하는 처녀귀신들을 인간도 놀라지 않는 가짜귀신을 보고 놀라는 순진파인 것 같습니다.

 

표제작품인 ‘웃는동안’에 숨겨둔 웃음코드는 초등학교 6학년생이 엉덩이를 좌우로 비트는 우스꽝스러운 체조를 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해서 교장선생님이 단상으로 불러 올렸는데, 소년은 마이크에 대고 “죄송해요. 체조가 즐거워서가 아니라 조카가 태어나서 웃은 거예요(69쪽)”라고 말해 전교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새로 태어난 조카에게 ‘이 삼촌은 이제부터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 될 거란다’라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늘 웃으면서 살게 되었다는 소년이 깜찍하지 않습니까? 작가가 나머지 작품들에 숨겨둔 웃음코드가 무엇인지 한번 찾아나서 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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