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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ㅣ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평점 :
생각해보면 우리 안에 들어온 하느님이라는 주제로 만든 영화가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목이 생각나는 영화로는 짐 캐리가 주연한 <브루스 올마이티> 밖에 없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리고 보면 하느님 우리들 속에서 같이 숨쉬고 있다는 생각만해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브루스 올마이티>에나오는 하느님은 세상사람들의 소망을 들어주는 것도 지쳐서 하느님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은 브루스를 불러다가 대행을 세우고 휴가를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고 마는데.... 그리고 생각하니, 사이먼 리치의 소설 <천국주식회사; http://blog.joins.com/yang412/13569396>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는 하느님이 등장하는 이야기 치고는 조금은 진지한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일작가 한스 라트는 시나리오작가로 활약한 배경 때문인지 문체가 경쾌하고,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말에 재치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장면전환도 빠르고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장소까지도 등장하는 것도 영화판에서 갈고 닦은 솜씨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누구나 사정은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합니다만, 눈앞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를 하느님이라고 주장한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혹시 겪다보면 넘어갈 수도 있겠지요. 사이비종교의 교주가 사람들을 현혹시키듯 말입니다.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에 등장하는 하느님 역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 아닌가 싶게 등장합니다만, 점차 그가 보여주는 신비한 능력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정말 하느님 아닐까 싶은 생각이 조금씩 커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왜 별 볼일 없는 심리치료사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일까요? 그것이 궁금해지는 것 같습니다. “난 신이요. 우리끼리 얘기지만 난 많이 망가졌소. 당신이 날 도와주면 좋겠소.(49쪽)”라고 말하는 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
신과의 심리상담에 들어간 주인공 야콥 야코비가 ‘그냥 맨 처음부터 시작하지.(88쪽)’라고 상담의 운을 떼자, 자칭 신이라고 주장하는 아벨 바우만은 ‘빅뱅부터? 아님 어디서부터?’라고 되묻는데, 여러분 같으면 무어라 하셨겠습니까? 놀랍게도 야콥은 ‘자네의 역사가 시작된 지점부터 이야기해야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빅뱅보다 더 이전에 신이 처음 존재하던 시점부터 시작해보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정말 철학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신이 없더라도 우리는 신을 만들어냈을 것이다.”라는 볼테르의 말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즉, 신은 우리가 만들어낸 존재라는 점을 깔고 있으면서도 신은 이미 존재하는 존재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어떻든 아벨은 창세기를 읊으면서도 자신이 세상을 창조한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에 대고 야콥은 빅뱅이론을 들고 나오는데, 빅뱅 이전에도 영겁의 텅 빈 공간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래도 세상을 창조한 신이라면 그 시점에도 존재하고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정곡을 찌른 셈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자칭 신인 아벨은 우주를 만들어낸 이유를 설명합니다. 영겁의 공간에 신 혼자서 덜렁 앉아있다고 상상해보라. 미치도록 심심하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결국 천지창조를 하면서 자신의 모습과 닮은 인간을 만들어낸 이유는 바로 이야기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신이나 대화가 없으면 병이 들 수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라는 것일까요?
한술 더떠서 신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느껴.(…) 그래서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인간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99쪽)” 결국 신은 자신이 창조한 인간 때문에 병들어가고, 결국은 자살을 감행하기에 이르는데.... 니체처럼 ‘신은 죽었다’라고 주장하기가 부담스러웠던지 작가는 신의 부활을 짐작하는 상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앞에서 인용한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도 인간의 기도를 들어주는데 신이 지쳐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만,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역시 인간을 돌보는데 지쳐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인간들이 신을 봐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