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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0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평점 :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고등학생 때 처음 읽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읽었던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이번에 다시 읽게 된 것은 스페인 여행기를 쓰면서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투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헤밍웨이가 27살이 되던 해 완성한 첫 장편소설이며,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의 유럽사회에 불어 닥친 무기력하고 시대적 불안과 상실감에 빠진 소위 ‘길잃은 세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신문사 특파원으로 파리에 머물고 있는 미국인 제이크 반스, 그와 특별한 관계인 영국인 간호사 브렛, 그녀의 약혼자 마이크 캠벨, 브렛에게 빠져드는 미국인 작가 로버트 콘, 그리고 미국에서 잘 나가는 소설가 빌 고턴 등입니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정리해가는 1부는 조금 누가 주요 등장인물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반스는 엉뚱하게도 콘이 지내온 삶을 정리하질 않나, 로버트와 그의 약혼자 프랜시스와 함께 놀러갈 의논을 하지 않나, 심지어는 카페에서 처음 만난 조젯과 함께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가 그곳에서 다른 일행과 함께 온 브랫과 따로 자리를 뜨지 않나. 도무지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들이 정리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목적 없이 순간순간을 즐기는 듯 한 느낌만 남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제이크와 브렛이 서로에 대하여 사랑하는 감정의 편린들이 조금씩 드러나기도 하는데, 제이크가 브렛에게 강하게 대시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전쟁 중에 입은 부상으로 성기능이 마비된 때문이고, 그 사실을 브렛이 알고 있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진정 사랑하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물론 현실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한편 “우리 둘이서 함께 살 수 없을까, 브랫?”이라고 묻는 제이크에게 “안 돼, 난 누구하고나 쏘다녀서 당신을 배반하고 말 거야. 당신은 견딜 수 없을 거야!”라고 답변하는 것을 보면 브랫을 자신이 남자를 밝히는 탓에 제이크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등장인물들 사이의 기본적인 역학관계에 대한 설명이 1부에서 다소 모호하게 전개되다가, 2부에서는 무대를 스페인으로 옮겨갑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여 팜플로나의 산페르민 축제를 즐기기로 한 것인데, 제이크와 빌은 먼저 출발해서 부르게테에서 낚시를 즐기다가 팜플로나로 이동하여 일행들과 합류를 하게 됩니다. 작가는 산페르민 축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마치 동영상으로 보는 것처럼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황소들이 울타리에서 풀려나 투우장까지 들어갈 때 사람들이 황소를 피해 달아나는 모습 등인데, 이런 전통은 팜플로나의 성인인 산 페르민 주교가 스페인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순교를 하게되는데, 그때 처형자들이 산 페르민주교를 황소에 매달아 끌고 다닌대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도 등장하는 것처럼 황소에 쫓기다 보면 자칫 황소에 떠받혀 죽는 사고도 생기는 모양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브랫은 팜플로나축제에서 만난 열아홉살난 에이스 투우사 로메로에게 반하고 두 사람은 사랑의 도피행을 하게 되고,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이들 일행은 주먹다짐까지 벌입니다. 물론 페터급 권투선수생활을 한 로버트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지만, 브랫이 떠난 뒤 로버트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투우에 열광하는 스페인 사람들이고 보면 멋쟁이 투우사는 뭇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의 대상일 것 같습니다. 요즈음으로 치면 아이돌 스타라고 하겠지요? 투우를 아주 좋아하는 헤밍웨이는 당연히 이 작품에서 벌어지는 투우경기를 상세하게 묘사하기도 합니다. 스페인에 갔으면 투우경기를 구경했어야 하는 건데 많이 아쉽네요.
아무리 사랑에 빠져 눈이 먼다고 해도, 현실을 현실인거죠. 브랫은 서른넷인 자신과 열아홉인 로메로의 미래를 그려볼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헤어지기로 결정을 하는데, 그리고는 생각나는 사람은 마이크도 아니고 로버트도 아닌 제이크이었다는 것입니다. 제이크 역시 전보를 받고 브렛을 찾아 마드리드로 달려가는데... 브렛은 찰나적인 삶을 버리고 규범적인 삶을 선택하게 되는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