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에 관하여
안현서 지음 / 박하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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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라는 메시지의 의미가 복잡하다. 열여섯 살짜리 소녀가 장편소설을 써냈다고 하니 분명 대형 사건입니다. 그것도 단 여드레 만에 400쪽이 넘는 분량의 이야기를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원고지 30매의 리뷰를 쓰는데도 너댓 시간은 끙끙대야 하는데 이 어린 작가는 누에가 비단실을 잣듯이 막히지도 않고 술술 써내려갔다는 것입니다. 잠은 잤는지 궁금합니다.

 

<A씨에 관하여>는 장편소설이면서도 세 개의 독립적인 에피소드를 에필로그에서 묶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들 뒤에 A씨라는 신비로운 존재가 숨어서 주인공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개가 있었다’에서는 A씨에 관한 소문만 무성할 뿐, 등장했는지 조차도 분명하지 않고, 그의 존재에 대한 정보가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도 알 수 없습니다. 원단집 할아버지의 입을 빌어 ‘영겁의 세월을 살아가는 어떤 존재. 영원한 시간을 갖고 이 거리에서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을 조용히 도와주는 신기한 사람.(49쪽)’이라는 변죽만 울리고 맙니다. A씨는 두 번째 에피소드 ‘고래를 찾아서’의 말미에 슬쩍 등장합니다. ‘그런 그녀의 짓궂은 표정에 잠시 움찔하더니’라고 적어 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영화의 해피엔딩을 축하하며. Mr. A’라는 글을 남겼다면서 다시 오리무중으로 몰아넣습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 ‘Train ticket’에서는 실체를 드러냅니다. ‘환상속에서 돌아왔군요’라는 말고 함께 묘한 웃음을 남기고 사라지는 남자가 등장한 것입니다. 순간 A씨는 한 사람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퍼뜩 떠오르기도 합니다. 참.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 나온 원단집 할아버지와 현씨가 나오기도 합니다. 두 이야기가 같은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세 가지 에피소드의 주인공과 현씨가 모두 등장해서 A씨의 존재를 증명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A씨의 존재는 책의 말미에 붙여둔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열여섯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물을 관찰하고 있고, 표현해내고 있기도 합니다. 강을 정의하는 것도 그렇지만, “밤안개는 강처럼 흘러가지만 생물을 몸에 품지 않아. 그런 면에서 오히려 안개 그 자체가 살아 있다 말할 수 있어. 그 누구도 이 밤안개의 시작과 끝을 본 적이 없지. 한마디로 알 수 없는 존재인거야. 그래서 안개는 그 어떤 이름 아래 구속되지 않고 의미를 부여받지 않아. 그저 떠돌 뿐이야.(66쪽)”라고 밤안개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십대가 즐겨 말하는 투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작가 또래인 만큼 어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이 특히 그렇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주인공 소녀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존재들, 개, 노인, 꼬마, 철학자, 염세적인 남자, 그리고 살인자가 등장합니다. 요즈음 드라마에서도 다루고 있는 주인공의 다중인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존재와 의미를 인식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인 것입니다. 철학자가 등장해서인지 작가가 쏟아내는 철학적 화두들은 작가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정말 가능한가 싶습니다. 그 가운데 노인의 존재는 ‘누군가와 공유했던 모든 기억들이 거짓이 될까 두려워 만들어낸 존재로 과거의 기억들을 주제로 감정을 나누려는 의도가 담긴 것인데, 이는 친구를 잃은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가 사라졌다고 해도, 그 사람과 같이 했던 기억들이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 속에 살아남아 있는 것이지요.

 

가끔씩 또래의 친구들과 나누는 언어로 표현되는 부분이 어색한 느낌을 줍니다만, 이야기의 전체 구도나 펼쳐놓았던 장치들을 수습하는 재주가 뛰어난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몇 번씩 보여주는 엄청난 반전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벌써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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