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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지음, 김석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70년대 초반 동아리에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이 책을 읽지 않으면 대화에 낄 수 없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자유로의 도피>로 오랜만에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1941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을 기억한지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막상 읽어보기는 처음입니다.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지금 자유로운가?’, ‘언제부터 자유로웠는가?’하는 질문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보편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저자가 ‘자유’를 화두로 삼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봅니다. 1941년에 나온 초판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이 아직 완결하지 못한 근대인의 성격구조에 대한, 그리고 심리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의 상호작용이라는 문제에 대한 연구의 산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대중들과 공유에 나선 것은 개인성과 인격의 독자성이라는 근대 문화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 새롭게 등장한 전체주의에 의하여 위협받고 있는 정치적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65년판 서문에서는 이 책이 “중세 사회의 붕괴로 생겨난 인간의 불안이라는 현상을 분석한 책”이라고 했습니다. “중세 사회에서는 많은 위험이 존재했지만, 인간은 그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다고 느꼈다. 수백 년 동안 열심히 노력한 끝에 인간은 꿈도 꾸어보지 못했던 물질적 부를 쌓아올리는데 성공했다. 인간은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했고, 최근에는 전체주의의 새로운 책동에 맞서 자신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인은 아직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불안한 인간은 온갖 부류의 독재자들에게 자신의 자유를 넘겨주거나, 스스로 기계의 작은 톱니가 되어 호의호식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자동인형 같은 인간이 되고 실은 유혹에 사로잡히고 있다고 진단하는 것입니다. 프롬의 이와 같은 예견이 과연 반세기가 지난 지금 맞아떨어지고 있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롬은 프로이트 등에 의하여 전개된 심리학을 개인의 차원에서 사회의 차원에 적용하는 사회심리학적 접근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만합니다. 그는 먼저 자유의 의미와 중세로부터 종교개혁을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자유가 발전해온 과정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근대 유럽과 미국의 역사는 인간을 속박해온 정치적, 경제적, 정신적 족쇄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을 줌심으로 전개되어왔다고 했습니다. 오랜 투쟁 끝에 자유를 얻어내고 이에 따라 지켜야 할 특권도 얻어내게 되었는데, 어느 시점에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억압에 맞서 싸우던 계급들이 자유의 적의 편에 서게 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프롬은 자유의 궁극적인 승리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보았습니다. 민주주의는 강화되어 낡은 군주정치를 대치하게 되었던 것인데, 이런 결과를 부정하는 새로운 흐름이 등장한 것입니다. 나치즘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체제는 사람들이 얻어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인간의 사회적, 새인적 생활 전반을 사실상 지배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체제의 본질은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권위에 복종하기에 이르렀다고 진단합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제5장 도피의 메커니즘에서 사회심리학적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을 관찰하여 얻은 결과가 집단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적용될 수 있느냐는 의문에 대하여 단호하게 긍정하는 입장을 표명하는 것을 보면, 당시만 해도 이러한 해석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프롬은 스스로 향유해야 할 자유를 포기하는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일어나는 원인으로 인간이 개체적 자아에 결여된 힘을 얻기 위해 타인이 가진 권위에 기대려는 경향으로 생기는 피학적-가학적 충동을 들었습니다. 이로서 개인은 고독감과 허무감으로부터 탈피하는 이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가학-피학성과 혼동하기 쉬운 파괴성은 분명 구분되는 개념으로 역시 무력감과 외로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기전으로 자동인형적 순응을 들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피하기 위하여 그에 순응하는 길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애써 얻은 자유로 인하여 오히려 고독감과 허무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로부터 탈피하기 위하여 타인과의 유대를 맺기 위한 방편으로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기전을 통하여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역설적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계문명의 발전이 극에 이르고 있는 현대에 들어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회적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만, 사람들과의 유대를 맺기 위하여 꼭 자신의 자유를 속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에 적합한 답이 무엇인지 더 찾아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