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뒤에 스페인을 다녀올 계획입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여행지가 인기를 끈다고 합니다만, 꼭 예능프로그램 때문에 스페인을 고른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가 보려는 계획이 있어 스페인에 관한 책에 관심을 두다보니 자연스럽게 찾아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행사 상품을 고르다 보니 돈키호테의 무대가 된 지역도 포함된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침 시공사에서 처음으로 스페인어판을 저본으로 한 완역판이 나왔다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돈키호테하면 주막을 성(城)으로 오해하고 창을 들고 풍차로 뛰어드는 등 해프닝을 벌이는 얼척 없는 장면만 인식되어 있어 그야말로 엉뚱한 사람의 표본이 되어왔습니다.

 

완역본으로 732쪽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단숨에 이야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아직 이유를 파악하지는 못하였습니다만, 4개로 구분된 52개의 이야기는 마치 천일야화를 읽는 느낌입니다. 돈키호테의 활약을 기록하면서 단조로울 것을 우려한 듯 등장인물이 겪은 일을 돈키호테가 듣는 형식으로 모두 일곱 개의 이야기를 엮어 넣고 있는데 이를 삽입소설이라고 한답니다. 이야기가 방대한 만큼 등장인물도 만만치 않아서 총 65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가운데 여자는 52명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세르반테스 시대의 스페인, 아니 유럽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 역시 다양해서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이나 신부와 같이 상류층도 나오지만 건달, 매춘부, 깡패, 심지어는 이민족까지 등장시키고 있어 당시의 스페인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주인공 돈키호테의 우상인 둘시네아 공주(?)는 이름은 자주 등장하지만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편력기사로 활동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난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처음 들른 주막을 성(城)으로 착각하고 성주(?)인 주막주인에게 기사임명을 요청하는 해프닝이 시작되는데, 주막주인은 그저 그날 저녁의 웃음거리로 즐길 요량으로 돈키호테를 기사로 임명하는 것이 장대한 서사시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살짝 맛이 간 돈키호테의 편력기사 흉내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고 가는 모티브가 될 뿐이고, 실제로는 엇갈리는 운명의 길에서 헤매는 남녀가 우여곡절을 겪고 난 다음에 진실한 사랑을 찾아가는 해피 엔딩을 시사한다는 것입니다. 옮긴이는 <돈키호테>의 큰 줄거리를 이렇게 요약하였습니다.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 산초에 의해 상징되는 평행선은 바로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겪는 끊임없는 갈등과 화합을 상징하는 것이다. 돈키호테와의 대립은 우리가 인생에서 부딪히게 되는 현실과 이상의 대립을 의미하고 있다.(723쪽)”

 

요즈음에도 약물, 도박, 게임 등 다양한 것들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만, 우리의 돈키호테 역시 당시 유행하던 기사소설에 빠져들다가 결국은 이성을 잃는 지경에 이르러 이토록 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즉,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편력기사가 되어 무기를 들고 말 등에 올라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 속 편력기사의 모험들을 직접 실천에 옮겨 자신의 이름과 명성을 길이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41쪽)” 그리고 보니 젊었을 때 유행하던 무협소설에 빠져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탈리아 프로렌스에 사는 기사가 절친을 동원하여 아름답고 현숙한 아내를 시험하는 장면을 읽다보면 사랑하는 이를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라는 경계로 삼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시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여자는 유리로 만들어졌다. / 그러니 시험하면 안된다, / 깨지는지 안깨지는지. / 모두 깨지고 말 테니. / 깨지기는 쉽고 / 다시 붙일 수는 없으니 / 깨질 위험이 있는 곳에 두는 것은 / 사려 깊지 못한 일 / 모두들 이렇게 생각하고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 다나에가 세상에 있다면 /황금의 비도 또한 있을 것이다.(454쪽)”

 

저자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당시의 문학 혹은 공연계에 대한 비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문제가 지금 상영되고 있는 연극에 대한 저의 원한을 불러일으키는군요. 그것은 기사도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툴리우스에 따르면 연극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의 거울이며 관습의 표본이며 진실의 상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상연되고 있는 것들은 엉터리의 거울이고 우둔함의 표본이며 방탕함의 상입니다.(668쪽)” 즉 지나친 상업주의를 경계하고 순수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아, 요즈음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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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2014-09-27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은 뜻이 담겨 있었네요. 꼭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처음처럼 2014-09-28 06:58   좋아요 1 | URL
요즘 이벤트기간이라서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답니다. ㅎ